지강헌 인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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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강헌 인질극은 1988년 발생한 사건으로, 탈주범 지강헌과 그의 일당이 인질을 잡고 벌인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지강헌을 포함한 탈주범들은 검거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고, 인질로 잡혔던 가족들은 이후 탄원서를 작성하여 탈주범들의 선처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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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K리그는 외국인 선수 규정 하에 포항제철 아톰즈가 우승하고, 이기근 득점왕, 김종부 도움왕, 박경훈 MVP, 6번의 해트트릭, 이회택 감독상 수상 등 다양한 기록이 나온 풍성한 시즌이었다.
지강헌 인질극 | |
---|---|
사건 개요 | |
사건 종류 | 인질극, 탈주 |
발생 위치 | 대한민국 전라북도 익산시 |
발생 날짜 | 1988년 10월 8일 ~ 1988년 10월 16일 |
주요 가담자 | 지강헌, 강영일, 안광술, 김길수, 황인환, 최계수, 손동환 |
인질 | 8명 (교도관 2명, 일반 시민 6명) |
사망자 | 지강헌, 안광술 |
부상자 | 교도관 1명, 경찰 1명, 인질 2명 |
주요 인물 | |
주동자 | 지강헌 |
사망자 | 지강헌, 안광술 |
생존자 | 강영일, 김길수, 황인환, 최계수, 손동환 |
사건 전개 | |
탈주 | 영등포교도소 탈주 |
인질극 시작 | 익산 주택가 |
인질극 진행 | 경찰과의 대치, 협상 과정 |
인질극 종료 | 경찰 특공대 투입, 지강헌 사살, 나머지 생포 |
주요 내용 | |
범행 동기 | 수감 생활 불만, 사회에 대한 불만 |
요구 사항 | 교도소 처우 개선, 언론 인터뷰 |
경찰 대응 | 협상 시도, 인질 안전 확보 노력, 특공대 투입 |
사건의 영향 | 교도 행정의 문제점 지적, 사회적 관심 증가 |
기타 | |
영화화 | 홀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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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교도 행정 난맥이 빚은 경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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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탈주범 목록 (1988년 기준)
다음은 1988년 당시 탈주범들의 명단이다.[8]
자세한 내용은 검거된 탈주범 및 사망한 탈주범 문단을 참고하라.
2. 1. 검거된 탈주범
이름 | 나이(1988년 기준) | 형량 | 비고 |
---|---|---|---|
안광술 | 22세 | 징역 12년 | 자살[8] |
한의철 | 20세 | 징역 15년 | 자살[8] |
지강헌 | 35세 |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 | 경찰특공대의 진압 도중 총에 맞아 병원에서 사망[8] |
손종석 | 21세 | 치료감호자 | 1988년 10월 8일 남태령고개에서 검거[8] |
최철호 | 24세 | 징역 1년 6개월 | 1988년 10월 8일 미아7동 집 앞에서 검거[8] |
정호택 | 22세 | 공범 | 1988년 10월 8일 한남동 룸살롱에서 주인의 신고로 검거[8] |
김성진 | 23세 | 공범 | 1988년 10월 8일 한남동 룸살롱에서 주인의 신고로 검거[8] |
한재식 | 30세 | 공범 | 1988년 10월 8일 한남동 룸살롱에서 주인의 신고로 검거[8] |
김동연 | 31세 | 징역 15년(1심) | 1988년 10월 14일 자수[9] |
손동완 | 26세 | 징역 7년 | 1988년 10월 14일 신촌에서 검거[8][10] |
강영일 | 21세 |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 | 1988년 10월 17일 지강헌의 권유로 자수 시도[6][11] |
김길호 | 21세 | 징역 10년 | 1990년 7월 1일 면목3동에서 검거[8][12] |
2. 1. 1. 손종석
손종석은 당시 21세로 치료감호자였다. 1988년 10월 8일 남태령고개에서 검거되었다.[8]2. 1. 2. 최철호
최철호는 당시 24세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88년 10월 8일 미아7동 집 앞에서 검거되었다.[8]2. 1. 3. 정호택
정호택은 당시 22세로, 공범이다. 1988년 10월 8일 한남동 룸살롱에서 주인의 신고로 검거되었다.[8]2. 1. 4. 김성진
김성진은 1988년 당시 23세로, 공범이다. 1988년 10월 8일 한남동 룸살롱에서 주인의 신고로 검거되었다.[8]2. 1. 5. 한재식
한재식은 1988년 당시 30세로, 공범이었다. 10월 8일 한남동 룸살롱에서 주인의 신고로 검거되었다.[8]2. 1. 6. 김동연
김동연은 당시 31세로, 징역 15년(1심 형량)을 선고받았다. MBC 뉴스데스크 방송을 통해 가족들의 애끓는 자수 호소를 받아들여 10월 14일 21시 50분경 자수 의사를 밝힌 직후(21시 40분경) 현장 검사를 나온 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9]2. 1. 7. 손동완
손동완은 1988년 당시 26세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10월 14일 밤 신촌에서 경찰에 검거되었다.[8][10]2. 1. 8. 강영일
강영일은 당시 21세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8] 10월 17일 마지막 순간에 지강헌의 권유로 자수하려 했으나, 인질극을 벌이던 가정집에 다시 들어오려 하자 지강헌이 "영일아, 네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내 마음을 갖고 가라"며 강영일의 발아래를 총으로 쏘아 못 들어오게 했다.[6][11] 인질 중 한 명은 강영일이 가장 나이가 어리고 형기도 짧은 편이어서 지강헌이 강영일을 살리려고 시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11] 강영일은 미니버스를 요구했다.[6]2. 1. 9. 김길호
김길호는 1990년 7월 1일 면목3동에서 마지막으로 검거되었다.[8][12] 당시 21세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8]2. 2. 사망한 탈주범
안광술, 한의철은 인질극 도중 자살했고, 지강헌은 경찰특공대의 진압 과정에서 총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8]2. 2. 1. 안광술
안광술은 당시 22세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8]2. 2. 2. 한의철
한의철은 1988년 당시 20세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8] 인질극 도중 자살했다.[8]2. 2. 3. 지강헌
지강헌(당시 35세)은 징역 7년 및 보호 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경찰특공대의 진압 도중 발사한 두 발의 총에 맞아 병원에서 사망했다.[8]3. 인질의 탄원서
인질로 잡혔던 가족들은 탄원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1]
평범하고 단란한 우리 가정에 10월 11일의 새벽은 잊을 수 없습니다. TV와 라디오를 통해 알고 있는 교도소 탈주자들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겁은 먹었지만, 이들의 행동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식사도 커피도 마시게 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국민들의 놀라게 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가져오게 한 이들 모두는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국어
이들이 가고 난 후 솔직히 우리 네 식구 모두 울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죄는 미웠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이 탄원서를 읽으시고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셔서 희망의 빛을 벗삼아 세상의 좋은 등대지기가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인질의 탄원서 中한국어[1]
인질들은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행동이 부드러워져 함께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는 등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회에 끼친 혼란을 고려하여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인질들은 이들이 떠난 후 눈물을 흘렸으며,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었다"고 말하며, 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 사회의 좋은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했다.[1]
참조
[1]
문서
[2]
뉴스
교도 행정 난맥이 빚은 경악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88-10-10
[3]
뉴스
범인 왜 나머지 택했나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88-10-17
[4]
웹인용
총에 맞은 ‘홀리데이’ 주인공 최소율은 왜 변명도 못하고 나머지했나
http://www.hani.co.k[...]
한겨레
2013-02-23
[5]
뉴스
7인 탈주범 안개속에...
http://dna.naver.com[...]
경향신문
1988-10-11
[6]
뉴스
지옥의 14시간…발만 구른 마지막 인질극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88-10-17
[7]
웹인용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
[8]
뉴스
탈주범 7명 서울 잠입 인질 강도 5명 검거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88-10-10
[9]
뉴스
누님 TV 호소보고 자수 결심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88-10-14
[10]
뉴스
신촌 독안의 5명, 또 놓쳤다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88-10-15
[11]
문서
[12]
뉴스
이감중탈주 김길호 21개월만에 검거
http://dna.naver.com[...]
경항신문
199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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