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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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채선은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여성으로, 판소리 명창이다. 무당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였으며, 17세에 판소리 후원자 신재효에게 발탁되어 판소리를 배웠다. 22세에 경복궁 낙성연에서 흥선대원군의 눈에 띄어 궁궐 가수가 되었으며, 최초의 여성 명창이 되었다. 흥선대원군 실각 후 신재효에게 돌아가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으며,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녀의 삶은 영화 《도리화가》의 소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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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채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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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로마자 표기 | Jin Chae-seon |
출생 | 1842년 또는 1847년 |
출생지 | 고창군, 전라북도, 조선 |
사망 | 알 수 없음 |
직업 | 판소리 가수 |
2. 생애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난 진채선은 신재효에게서 판소리를 배웠으며, 정악에도 능했다.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서 뛰어난 기예로 흥선대원군의 눈에 띄어 궁중 가수로 발탁되었고, 춘향가와 심청가를 잘 불렀다. 진채선은 판소리 최초의 여성 명창으로 여겨진다.
신재효는 진채선을 위해 판소리 《도리화가》를 지었다. 대원군 실각 후, 진채선은 병든 스승 신재효에게 돌아가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 1884년 신재효 사후, 진채선의 행방은 묘연해졌으며, 명성황후에게 죽임을 당했거나 중국으로 도망쳤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1][5]
2. 1. 출생과 성장
전라북도 고창 무장면에서 여성 무당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였으며, 정가에도 능했다. 17세에 판소리 후원자였던 신재효에게 발탁되어 그의 서당에서 판소리 창법과 공연을 배웠다. 당시 여성의 판소리 공연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지만, 신재효는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1]22세에 신재효는 진채선을 남장시켜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 보냈고, 여기서 흥선대원군(고종의 아버지)의 눈에 띄게 되었다. 대원군은 진채선의 노래 실력을 높이 평가하여 궁중 가수로 머물게 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진채선은 대원군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1][5][6] 진채선은 춘향가와 심청가를 잘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2. 2. 판소리 입문과 신재효와의 만남
진채선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여성 무당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였고, 정가에 능했다. 17세에 판소리 후원자 신재효에게 발탁되어 그의 서당에서 판소리 창법과 공연을 배웠다. 당시 여성의 판소리 공연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재효는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22세에 신재효는 진채선을 남장시켜 경복궁 경회루에서 열린 낙성연에 참석시켰고, 그곳에서 흥선대원군 (고종의 아버지)의 눈에 띄었다.대원군은 진채선의 노래 실력을 높이 평가하여 궁궐 가수로 머물게 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진채선은 대원군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1][5][6] 그녀는 춘향가와 심청가를 잘 불렀다.[1]
2. 3. 경복궁 낙성연과 흥선대원군
진채선은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서 뛰어난 기예를 발휘하여 청중을 놀라게 했고,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1][5][6] 신재효는 22세의 진채선을 남장시켜 경복궁 경회루에서 열린 낙성연에 공연을 보냈고, 진채선은 그곳에서 흥선대원군(고종의 아버지)의 눈에 띄었다. 대원군은 진채선의 노래 실력을 높이 평가하여 궁궐 가수로 머물게 했으며, ''두산백과''에 따르면 진채선은 대원군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1][5][6]2. 4. 춘향가와 심청가
진채선은 《춘향가》와 《심청가》를 잘 불렀다.[1][5]2. 5. 신재효와의 관계와 도리화가
진채선은 신재효에게서 판소리 지도를 받았고, 정악에도 능했다. 경복궁 경회루 낙성연에서 뛰어난 기예를 발휘하여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았다. 판소리 최초의 여성 명창이 된 진채선은 《춘향가》, 《심청가》를 잘 불렀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잃자, 그녀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명성황후에게 죽임을 당했거나 중국 등으로 도망쳐 조용히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녀의 사망년도 또한 확인 불가이다.[1][5]17세에 판소리 후원자 신재효에게 발탁된 진채선은 그의 서당에서 판소리 창법과 공연을 배웠다. 당시 여성의 판소리 공연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재효는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22세에 신재효는 진채선을 남장시켜 경복궁 경회루에서 열린 낙성연에 공연을 보냈고, 그곳에서 흥선대원군(고종의 아버지)의 눈에 띄었다.
대원군은 진채선의 노래 실력을 높이 평가하여 궁궐 가수로 머물게 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진채선은 대원군의 첩이 되었다고 한다.[1][5][6]
신재효는 자신이 연정을 품고 있던 제자를 잃은 것에 큰 슬픔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위해 판소리 《도리화가》를 지었다. 대원군이 실각한 후 진채선은 이미 병든 스승에게 돌아가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 1884년 신재효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종적을 감추었다.[1][5]
그녀의 삶은 영화 도리화가의 소재가 되었다.
2. 6. 흥선대원군 실각 이후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후, 진채선의 행방은 묘연해졌다.[1][5] 일설에는 명성황후에게 죽임을 당했거나, 중국으로 도망쳐 조용히 살았을 것이라고도 한다.[1][5] 그녀의 사망년도 또한 확인 불가이다.[1][5]진채선은 병든 스승 신재효에게 돌아가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고도 한다. 1884년 신재효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종적을 감추었다.
3. 대중문화 속 진채선
2015년 영화 《도리화가》에서 배수지가 진채선을 연기했다.[7]
참조
[1]
웹사이트
진채선
https://www.doopedia[...]
Doosan Encyclopedia
2016-10-27
[2]
웹사이트
Jin Chae-seon
http://thesaurus.his[...]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2016-10-28
[3]
서적
KOREAN MUSICOLOGY SERIES, 2
https://www.gugak.go[...]
National Gugak Center
2016-10-28
[4]
서적
Pansori
https://www.gugak.go[...]
National Gugak Center
2015-03-31
[5]
웹사이트
Jin Chae-seon, Joseon's First Female Pansori Singer
http://world.kbs.co.[...]
KBS World
2013-02-08
[6]
간행물
Gochang: Among the Dolmens, Lives Lived and Loves Lost
http://www.koreana.o[...]
Korea Foundation
2016-04-09
[7]
웹사이트
Suzy sees former self in 'The Sound of a Flower' singer
https://www.koreatim[...]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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