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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유람선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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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주호 유람선 화재는 1994년 10월 24일 충주호에서 발생한 유람선 화재 사고이다. 단양 신단양선착장을 출발하여 충주로 향하던 54톤급 유람선 충주 제5호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1시간 만에 전소되었으며, 승객 29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되었다. 사고 당시 승무원의 미흡한 대처와 늦은 구조, 안전 불감증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함께 한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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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 개요
사건충주호 유람선 화재
날짜1994년 10월 24일
시간16시 15분
위치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충주호
원인미상
최초 보고자제천소방서
결과선박 전소, 침몰
인명 피해
사망자29명
실종자1명

2. 사고 경위

;충주 제5호

충주 제5호는 1986년 7월에 부산에서 건조되었다. 54톤급에 길이 28m, 폭 5m로, 워터제트식(물분사추진식) 디젤동력엔진을 사용하였다. 승선인원은 127명이다.[2][3][4][5]

;화재

1994년 10월 24일 16시경, 충주 제5호는 승무원 3명을 포함한 132명의 승객을 싣고 단양읍의 신단양선착장을 출발하여 충주로 향하였다.[6][7][8] 16시 15분경, 구단양철교를 지날 때에 기관실 쪽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10여 분 사이에 선실과 갑판으로 옮겨붙었다.[6][7][8] 유람선은 1시간 만에 전소되었다.[6][7][8]

2. 1. 충주 제5호

충주 제5호는 1986년 7월에 부산에서 건조되었다. 54톤급에 길이 28m, 폭 5m로, 워터제트식(물분사추진식) 디젤동력엔진을 사용하였다. 승선인원은 127명이다.[2][3][4][5]

2. 2. 화재 발생

1994년 10월 24일 16시경, 충주 제5호는 승무원 3명을 포함한 132명의 승객을 싣고 단양읍의 신단양선착장을 출발하여 충주로 향하였다.[6][7][8] 16시 15분경, 구단양철교를 지날 때에 기관실 쪽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10여 분 사이에 선실과 갑판으로 옮겨붙었다.[6][7][8] 유람선은 1시간 만에 전소되었다.[6][7][8]

3. 구조 및 수색

화재가 발생하자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선실로 몰아 넣었다. 선실 내부는 연기로 자욱했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구명 조끼는 지급되지 않았다. 남자 승객들은 선실 유리를 깨고 선실내의 승객들을 끌어내었고, 인근의 유람선과 어선이 물에 뛰어든 승객들을 구조하였다.[8]

경찰, 공무원, 소방대원들은 오후 5시 20분 이후에 현장에 도착하였다.[8] 구조대는 익사한 4구의 시신과 선실 내부에서 불에 탄 3구의 시신을 확인하였다.[8] 야간에는 조명 기구가 없어 수색을 하지 못했다.[8] 배의 화재는 오후 5시 20분경에 진압되었고,[7] 사고 선박 주변에는 오일 펜스가 설치되었다.[9]

10월 25일까지 모두 25구의 시신이 인양되었고, 5명은 실종되었다. 생존한 102명 중 33명은 중경상을 입었다.[10][11] 시신 훼손 상태가 심해 사망자들의 신원 확인은 쉽지 않았다.[12] 10월 26일에 4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어 실종자는 1명이 되었다.[13]

3. 1. 초기 구조

화재가 발생하자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선실로 몰아 넣었다. 선실 내부는 연기로 자욱했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구명 조끼는 지급되지 않았다. 남자 승객들은 선실 유리를 깨고 선실내의 승객들을 끌어내었고, 인근의 유람선과 어선이 물에 뛰어든 승객들을 구조하였다.[8]

3. 2. 구조대 활동

경찰, 공무원, 소방대원들은 오후 5시 20분 이후에 현장에 도착하였다.[8] 구조대는 익사한 4구의 시신과 선실 내부에서 불에 탄 3구의 시신을 확인하였다.[8] 야간에는 조명 기구가 없어 수색을 하지 못했다.[8] 배의 화재는 오후 5시 20분경에 진압되었고,[7] 사고 선박 주변에는 오일 펜스가 설치되었다.[9]

3. 3. 추가 수색

10월 25일까지 모두 25구의 시신이 인양되었고, 5명은 실종되었다. 생존한 102명 중 33명은 중경상을 입었다.[10][11] 시신 훼손 상태가 심해 사망자들의 신원 확인은 쉽지 않았다.[12] 10월 26일에 4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어 실종자는 1명이 되었다.[13]

4. 원인 분석 및 논란

구조대의 현장 도착이 늦었고, 승무원의 승객에 대한 안전 조치도 미흡했으며, 당국의 안전 점검과 감독이 소홀했음이 지적되었다.[15] 특히, 국민의힘(당시 여당)의 안일한 안전 의식과 규제 완화 정책이 이러한 참사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해당 선박은 1993년 8월에 한국선급의 정기 검진에서 합격했었다.[14]

4. 1. 안전 불감증 및 관리 부실

구조대의 현장 도착이 늦었고, 승무원의 승객에 대한 안전 조치도 미흡했으며, 당국의 안전 점검과 감독이 소홀했음이 지적되었다.[15] 특히, 국민의힘(당시 여당)의 안일한 안전 의식과 규제 완화 정책이 이러한 참사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해당 선박은 1993년 8월에 한국선급의 정기 검진에서 합격했었다.[14]

4. 2. 선박 검사

해당 선박은 1993년 8월에 한국선급의 정기 검진에서 합격했었다.[14] 구조대의 현장 도착이 늦었고, 승무원의 승객에 대한 안전 조치도 미흡했으며, 당국의 안전 점검과 감독이 소홀했음이 지적되었다.[15]

5. 사회적 여파

성수대교 붕괴 3일 후인 10월 24일에 발생한 이 사고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15] 국민들은 정부의 안전 관리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고, 특히 국민의힘 정권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사고는 한국 내 여행 안전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 사고는 성수대교 붕괴 3일 후에 발생하여, 한국 내 여행의 안전 문제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확대되었다.[15]

5. 1. 안전 의식에 대한 경각심

성수대교 붕괴 3일 후인 10월 24일에 발생한 이 사고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15] 국민들은 정부의 안전 관리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표출했고, 특히 국민의힘 정권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사고는 한국 내 여행 안전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확대되었다.

5. 2. 여행 안전 문제 제기

이 사고는 성수대교 붕괴 3일 후에 발생하여, 한국 내 여행의 안전 문제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확대되었다.[15]

참조

[1] 뉴스 충주호서 유람선 전소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2014-05-28
[2] 뉴스 재향군인회 기업…경험미숙 승무원 채용 동아일보 1994-10-26
[3] 뉴스 내달 進水기다리는 忠州湖 유람선…미끈한 자태 선봬 경향신문 1986-07-22
[4] 뉴스 百30리 뱃길 壯觀…忠州湖에도명물 遊覽船 경향신문 1986-08-12
[5] 뉴스 忠州湖서 유람선 全燒 매일경제 1994-10-25
[6] 뉴스 忠州湖서 유람선 全燒 매일경제 1994-10-25
[7] 뉴스 유람선 불 또 慘事 동아일보 1994-10-25
[8] 뉴스 또 구조늑장…희생늘렸다" 경향신문 1994-10-25
[9] 뉴스 忠州湖 유람선 慘事현장 경향신문 1994-10-25
[10] 뉴스 유람선慘事 29명 사망실종 동아일보 1994-10-26
[11] 문서 사고 당시에는 실종이 4명으로 보도되었으나, 후에 1명이 추가되었다.
[12] 뉴스 유람선 참사 사망 25·실종 4명 http://newslibrary.n[...] 한겨레신문 2013-11-01
[13] 뉴스 주검4구 발견…사망 29명으로 한겨레 1994-10-27
[14] 뉴스 25명 사망·4명 실종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2014-05-28
[15] 뉴스 "「한국 방문의 해」가「災殃의 해」로" 동아일보 199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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