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마니 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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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이마니 말리는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뮤지션으로, 밥 말리의 아들이다. 10대 시절 랩과 DJ를 시작해 여러 앨범을 발매했으며, "Judge Not", "Dear Dad" 등의 싱글로 인기를 얻었다. 2000년대에는 여러 앨범을 발매하고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음악 활동 외에도 영화 《쇼타스》, 《원 러브》 등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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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마니 말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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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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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76년 2월 26일 |
출생지 | 자메이카 트렐로니, 팰머스 |
직업 | 음악가, 가수, 작곡가 |
악기 | 기타, 보컬, 피아노, 트럼펫, 봉고 |
활동 시기 | 1996년–현재 |
장르 | 레게, 댄스홀, 힙합, R&B |
레이블 | 샹 레코드, Gee Street/V2 레코드 |
관련 활동 | 영 벅, 프로토제 |
가족 | 밥 말리 (아버지), 애니타 벨네비스 (어머니) |
2. 초기 생애 및 가족
카이마니 말리는 자메이카 팔머스에서 아니타 벨나비스와 밥 말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리타 말리와 밥 말리가 결혼하기 전의 혼외 출생이었다.[3] 다섯 살 때 아버지 밥 말리가 암으로 사망했고,[3] 아홉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이주했다.[4][5] 어린 시절 스포츠에 집중하여 축구와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으며,[4][7] 어머니의 지도로 피아노와 기타 레슨을 받고 고등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4] 그의 음악 취향은 미국 라디오 방송국에서 들었던 힙합, 록 음악, 팝 음악 등의 영향을 받았다.[4][6]
2. 1. 출생과 가족 배경
카이마니 말리는 자메이카 팔머스에서 리타 말리와 밥 말리가 결혼하기 전, 아니타 벨나비스와 밥 말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카이마니 말리가 다섯 살 때 그의 아버지는 암으로 사망했다.[3] 아홉 살 때 말리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이주했다.[4][5]2. 2. 미국 이주와 성장
카이마니 말리는 자메이카 팔머스에서 아니타 벨나비스와 밥 말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리타 말리와 밥 말리가 결혼하기 전의 혼외 출생이었다.[3] 다섯 살 때 아버지 밥 말리가 암으로 사망했고,[3] 아홉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이주했다.[4][5] 그의 음악 취향은 미국 라디오 방송국에서 들었던 힙합, 록 음악, 팝 음악 등의 영향을 받았다.[4][6] 어린 시절 스포츠에 집중하여 운동선수로서 축구와 미식축구에 참여했다.[4][7] 어머니의 지도에 따라 피아노와 기타 레슨을 받았고 고등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4]2. 3. 스포츠 활동
어린 시절 카이마니 말리는 스포츠에 집중했으며, 축구와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다.[4][7]2. 4. 음악 교육
어머니의 지도로, 카이마니 말리는 피아노와 기타 레슨을 받았고 고등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다.[4] 그는 미국 라디오 방송국에서 들었던 음악, 특히 힙합, 록, 팝의 영향을 받았다.[4][6]3. 음악 경력
카이마니 말리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 현재까지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96년 데뷔 앨범 ''Like Father Like Son''을 발매한 이후, ''The Journey''(2000년), ''Many More Roads''(2001년), ''Milestone''(2004년), ''Radio''(2007년), ''Maestro''(2015년) 등 다수의 앨범을 발매했다. 특히 2001년에 발매한 ''Many More Roads''는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8] 2007년에는 반 헤일런(Van Halen)의 오프닝 공연으로 투어에 합류했다.[6][9]
3. 1. 초기 활동 (1990년대)
십 대 시절에 말리는 랩과 DJ를 시작했다. 그의 첫 싱글은 "Unnecessary Badness"였다. 마이애미의 한 스튜디오에서 녹음 세션 중 노래의 후렴구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은 후 가수로 영감을 받았다. 말리는 곧 스티븐, 줄리안, 데미안과 함께 트랙을 실험하기 시작했다.1996년 말리는 샹 레코드(Shang Records)와 계약하고 데뷔 앨범 ''Like Father Like Son''과 여러 싱글 "Judge Not"을 녹음했다. Patra와 함께 한 이 곡에 이어 "Dear Dad" (영국 레게 차트 1위)[2], "Who the Cap Fit (remix)", "Sensimelia"가 잇따라 발표되며 차세대 레게 뮤지션으로서 그의 명성을 높였다. 1997년 말리는 Refugee Camp All-Stars와 푸지스의 Pras와 손을 잡고 Eddy Grant의 "Electric Avenue"의 히트 커버 버전인 "Avenues"를 발표했다. 말리는 국제 음악 쇼케이스 미뎀(Midem)이 마이애미에서 처음 개최되었을 때 출연했다. Cameo Theatre에서 말리는 카리브해 뉴스 에이전시를 통해 36개국에 생중계된 공연을 펼쳤다.

말리는 입찰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1997년 지 스트리트(Gee Street)/V2 레코드(V2 Records)와 계약하고 레이블 동료 P.M. Dawn과 함께 싱글 "Gotta Be Movin' On Up"을 완성했다.
3. 2. 전성기 (2000년대)
십 대 시절에 말리는 랩과 DJ를 시작했다. 그의 첫 싱글은 "Unnecessary Badness"였다. 마이애미의 한 스튜디오에서 녹음 세션 중 노래의 후렴구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은 후 가수로 영감을 받았다. 말리는 곧 스티븐, 줄리안, 데미안과 함께 트랙을 실험하기 시작했다.1996년, 말리는 데뷔 앨범 ''Like Father Like Son''과 여러 싱글 "Judge Not"을 샹 레코드(Shang Records)와 계약하고 녹음했다. Patra와 함께 한 이 곡에 이어 "Dear Dad"(영국 레게 차트 1위),[2] "Who the Cap Fit (remix)", "Sensimelia"가 잇따라 발표되며 차세대 레게 뮤지션으로서 그의 명성을 높였다. 1997년 말리는 Refugee Camp All-Stars와 푸지스의 Pras와 손을 잡고 Eddy Grant의 "Electric Avenue"의 히트 커버 버전인 "Avenues"를 발표했다. 말리는 국제 음악 쇼케이스 미뎀(Midem)이 마이애미에서 처음 개최되었을 때 출연했다. Cameo Theatre에서 말리는 카리브해 뉴스 에이전시를 통해 36개국에 생중계된 공연을 펼쳤다.
말리는 입찰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1997년 지 스트리트(Gee Street)/V2 레코드(V2 Records)와 계약하고 레이블 동료 P.M. Dawn과 함께 싱글 "Gotta Be Movin' On Up"을 완성했다.
2000년에 말리는 ''The Journey''를 발매했다. 2001년에는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Many More Roads''를 발매하여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8] 투어를 진행했다. 2004년에는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Milestone''을 발매했다. 2007년에는 ''Radio''를 발매했다. 또한 2007년에는 반 헤일런(Van Halen)의 오프닝 공연으로 투어에 합류했다.[6][9]
3. 3. 최근 활동 (2010년대 ~ 현재)
2015년 말리는 앨범 ''Maestro''를 발매했다.
2019년에는 XXXTentacion, Stefflon Don, Vybz Kartel과 함께 싱글 "Royalty"를 공동 작업했다. 그는 XXXTentacion의 사망 이후 촬영된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했다.[10]
4. 연기 경력
- 쇼타스(2002)
- 원 러브(2003)
- 헤이븐(2004)
- 에니 미니 마이니 모(2013)
- 킹 오브 더 댄스홀(2016)
5.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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