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스키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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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미스키 파크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위치했던 야구장으로, 1910년에 개장하여 1990년에 폐장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으며, 4번의 월드 시리즈와 3번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을 개최했다. 빌 베엑 구단주 시절 다양한 팬 서비스와 독특한 응원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디스코 데몰리션 나이트와 같은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1991년 철거되었으며, 현재는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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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스키 파크 - [경기장/극장]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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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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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세계 야구 궁전 올드 코미스키 파크 화이트삭스 파크 |
위치 | 324 West 35th Street, 시카고, 일리노이주 |
기공 | 1910년 |
개장 | 1910년 7월 1일 |
폐장 | 1990년 9월 30일 |
철거 | 1991년 |
소유주 | 시카고 화이트삭스 |
운영 | 시카고 화이트삭스 |
표면 | 천연 잔디 인조 잔디 내야 (1969년–1975년) |
건설 비용 | 미화 75만 달러 |
건축가 | 재커리 테일러 데이비스 오스본 엔지니어링 |
시공사 | George W. Jackson |
이전 명칭 | 화이트삭스 파크 (1910년–1912년, 1962년–1975년) |
수용 인원 | 28,000명 (1910년–1926년) 52,000명 (1927년–1937년) 50,000명 (1938년) 51,000명 (1939년) 50,000명 (1940년–1946년) 47,400명 (1947년–1953년) 46,550명 (1954년–1972년) 44,492명 (1973년–1982년) 43,695명 (1983년–1985년) 44,087명 (1986년–1987년) 43,931명 (1988년–1989년) 43,951명 (1990년) |
최대 관중 기록 | 55,555명 (1973년 5월 20일, 화이트삭스 vs. 미네소타) |
최소 관중 기록 | 511명 (1971년 5월 6일, 화이트삭스 vs. 보스턴) |
구장 크기 (1910년) | |
파울 라인 | 363 ft (약 110.6 m) |
좌우 중간 | 382 ft (약 116.4 m) |
중앙 | 420 ft (약 128.0 m) |
백스톱 | 98 ft (약 29.9 m) |
구장 크기 (1986년) | |
파울 라인 | 347 ft (약 105.8 m) |
좌우 중간 | 382 ft (약 116.4 m) |
중앙 | 409 ft (약 124.7 m) |
백스톱 | 86 ft (약 26.2 m) |
사용 팀 | |
MLB | 시카고 화이트삭스 (1910년–1990년) |
NFL | 시카고 카디널스 (1922년–1925년, 1929년–1930년, 1940년–1958년), Card-Pitt (1944년) |
AFL | 시카고 불스 (1926년) |
NAL | 시카고 아메리칸 자이언츠 (1941년–1952년) |
NASL | 시카고 머스탱스 (1967년–1968년), 시카고 스팅 (1980년–1985년) |
주요 대회 |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개최 | 1933년, 1950년, 1983년 |
2. 역사
'''코미스키 파크'''는 1910년 찰스 코미스키가 건설한 야구장으로, 원래 이름은 '''화이트삭스 파크(White Sox Park)'''였다. 초기 설계는 에드 월시의 영향으로 투수 친화적이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개보수를 거쳤다. 1939년에는 조명탑이 추가되었다.[10]
빌 베엑 구단주 시절에는 "폭음 스코어보드", "피크닉 에어리어" 등 다양한 팬 서비스 시설과 이벤트가 도입되어 인기를 끌었다.[22] 칵테일 판매 라운지가 있어 일부 언론인들은 "시카고 최대의 야외 술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22]
1980년대에 들어서 구장이 노후화되면서, 구단은 새 구장 건설을 추진했고, 1990년 코미스키 파크는 폐장 후 철거되었다.
2. 1. 구장 건설 배경 및 초기 역사 (1910-1959)
1901년 구단 창단 이래 화이트삭스는 목조로 된 작은 사우스사이드 파크를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1909년 샤이프 파크 건설로 강철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건설된 구장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목조 구장은 더 이상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구단주 찰스 코미스키는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어질 새 구장 건설을 결정했다. 화이트삭스의 투수 에드 월시와 건축가 Z. 타일러 데이비스에게 미국 각지의 야구장을 견학하게 하여 새 구장의 구상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코미스키 자신도 한때 쓰레기 매립지였던 토지를 매입하여 1910년 2월 10일에 건설을 시작했다.[10]내야에 2층 스탠드를 갖춘 새 구장은 5개월 만에 완공되었다. '''화이트삭스 파크''' (''White Sox Park'')로 1910년 7월 1일에 개장했다. 설계에는 투수 월시가 관여했는데, 그의 영향이 컸는지 필드는 넓어서 투수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었다.[10]
구장의 설계는 화이트삭스 투수 에드 월시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투수 친화적인 규모(파울 폴까지 약 110.34m, 중견수까지 약 128.02m)로 유명했다. 이후 변경이 이루어졌지만, 구장은 대체로 수비 팀에 유리하게 유지되었다. 수년간 이는 화이트삭스의 경기 스타일에 반영되었다. 견고한 수비와 짧고 빠른 안타였다. 이 구장에서는 칼튼 피스크가 94개로 기록을 세웠지만, 100개의 홈런을 친 선수는 없었다.[11]
코미스키 파크에서의 첫 경기는 1910년 7월 1일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에게 2-0으로 패한 경기였다.[3][4] 코미스키 파크에서 열린 첫 번째 노히터는 1911년 8월 27일 에드 월시가 던진 것으로, 보스턴을 상대로 5-0으로 승리했다.[12]
1926년 시즌 종료 후 개수를 실시하여 외야석을 대폭 증설했다. 또한, 중견수 뒤에 있던 스코어보드도 좌익수, 우익수 양쪽 펜스로 이전되었고, 스코어보드 자리에는 객석을 설치했지만, 이는 "타자의 시야를 가린다"는 불평으로 인해 1947년에 철거되었다.
1959년 빌 벡이 구단주로 취임하자 다양한 장치가 시도되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피크닉 에어리어"와 "폭음 스코어보드"이다. "피크닉 에어리어"는 좌익수 스탠드 아래에서 선수와 같은 눈높이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이며, "폭음 스코어보드"는 스코어보드 위에 설치된 풍차가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연출이다. 이것들은 새 구장에도 계속 채용될 정도로 명물이 되었다.[22]
2. 2. 빌 베엑 시대 (1959-1981)
빌 베엑이 구단주로 취임하면서, 코미스키 파크에는 다양한 팬 서비스를 위한 시설들이 도입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폭음 스코어보드"와 "피크닉 에어리어"이다.[22] "폭음 스코어보드"는 스코어보드 위에 설치된 풍차가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장치였고, "피크닉 에어리어"는 좌익수 스탠드 아래에서 선수와 같은 눈높이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22] 이러한 시설들은 새로운 구장에도 계승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22] 구장 내에는 칵테일을 판매하는 라운지도 있어, 일부 언론인들은 코미스키 파크를 "시카고 최대의 야외 술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22]1961년, 빌 베엑은 건강 문제로 구단을 아서 앨린 가문에 매각했다. 새 구단주는 구장 이름을 "코미스키 파크"에서 "화이트삭스 파크"로 변경하고, 잔디 유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내야를 인조 잔디로 교체했다.
하지만 1975년, 빌 베엑은 구단의 시애틀 이전을 막기 위해 다시 구단주로 복귀했고, 구장 이름은 다시 코미스키 파크로, 내야 잔디는 천연 잔디로 환원되었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