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니치 죄르지는 헝가리의 카누 선수로, 부다페스티 스파르타쿠스 스포츠 클럽에서 카누를 시작하여 Csepel SC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는 1996년 하계 올림픽 C-2 500m에서 금메달, C-2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2000년 하계 올림픽 C-1 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차바 호르바트와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95년에는 5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7월 훈련 중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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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하계 올림픽 카누 참가 선수 - 알렉산다르 주리치 유고슬라비아 주니어 카약 챔피언 출신인 알렉산다르 주리치는 보스니아 전쟁 후 망명하여 싱가포르 축구 선수로 전향, S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싱가포르 국가대표팀으로도 활동, 2012년 AFF 스즈키컵 우승에 기여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1992년 하계 올림픽 카누 참가 선수 - 비르기트 피셔 독일 카누 선수 비르기트 피셔는 8세에 카누를 시작해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 올림픽 6회 출전 금메달 8개와 은메달 4개 획득, 올림픽 카누 경기 최연소 및 최고령 금메달리스트 기록을 보유하고 선수 생활 중 몇 차례 중단을 겪은 후 은퇴했다.
콜로니치는 부다페스티 스파르타쿠스 스포츠 클럽에서 카누를 시작했지만, 곧 Csepel SC로 옮겨 선수 생활 전체를 이 클럽에서 보냈다. 그는 199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헝가리를 대표하여 국제 무대에 데뷔했으며, 1992년 하계 올림픽에도 참가했다.
1992년 올림픽 이후, 콜로니치는 차바 호르바트와 복식조를 이루어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1996년 하계 올림픽 C-2 500m 금메달[2]과 C-2 1000m 동메달을 포함하여 수많은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을 휩쓸었다.
1998년 호르바트가 은퇴하자 콜로니치는 싱글 종목으로 전향하여 2000년 하계 올림픽 C-1 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성공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후 다시 복식으로 돌아와 젊은 죄르지 코즈만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콜로니치와 코즈만 조는 2004년 하계 올림픽 C-2 1000m 동메달과 2006년, 2007년 세계 선수권 대회 C-2 500m 금메달을 획득하며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갔다.
그는 2008년 하계 올림픽에도 코즈만과 함께 C-2 500m와 1000m 종목에 출전할 예정이었으며, 이는 그의 다섯 번째 올림픽 참가가 될 예정이었다.
2. 1. 초기 경력 (1991-1992)
콜로니치는 부다페스티 스파르타쿠스 스포츠 클럽에서 카누를 시작했으나, 곧 Csepel SC로 옮겨 선수 생활 전체를 이 클럽에서 보냈다. 그는 1991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헝가리를 대표하여 C-4 종목에서 5위와 6위를 기록했다. 199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아틸라 팔리즈와 함께 C-2 종목에 출전하여 5위와 7위를 차지했다.
2. 2. 차바 호르바트와의 협력 (1993-1998)
1992년 하계 올림픽 이후, 콜로니치는 차바 호르바트와 팀을 이루어 몇 년 동안 복식 종목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1993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1995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5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기록을 세웠다.
이들의 협력은 1996년 하계 올림픽에서 정점을 찍었다. C-2 500m 종목에서는 사진 판독 끝에 극적으로 금메달을 차지했고[2], C-2 1000m 종목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1993년부터 호르바트가 은퇴한 1998년까지, 콜로니치와 호르바트는 C-2와 C-4 종목에서 총 11개의 세계 선수권 금메달을 합작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C-2 500m 종목에서는 단 두 번의 주요 국제 대회를 제외하고 모두 금메달을 휩쓸며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2. 3. 싱글 및 죄르지 코즈만과의 협력 (1999-2008)
1998년 차바 호르바트가 은퇴한 후, 콜로니치는 싱글 종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에서 C-1 500m 종목 금메달을 획득하며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그 후 그는 다시 복식으로 돌아와 젊은 죄르지 코즈만과 팀을 이루었다. 이들은 2004년 아테네 하계 올림픽 C-2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2006년 세계 선수권 대회와 2007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C-2 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콜로니치와 코즈만은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C-2 500m와 C-2 1000m 두 종목 모두에 헝가리 대표로 출전할 예정이었다. 이는 콜로니치의 다섯 번째 올림픽이 될 예정이었으며, 그는 2008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헝가리 국기를 들 선수로 고려되기도 했다(이 영예는 나중에 카약 선수 졸탄 캄머러에게 돌아갔다).
3. 갑작스러운 죽음 (2008)
2008년 7월 15일, 콜로니치는 부다페스트에서 훈련 도중 심장 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훈련 중 의식을 잃은 그는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소생하지 못했다. 부검 결과, 그의 관상 동맥에서 발견된 소량의 죽상 경화반이 사망 원인으로 추정되었다.[3]
콜로니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가 출전 예정이었던 2008년 하계 올림픽의 C-2 종목 출전권을 두고 헝가리 내에서 논의가 있었다. 세계 챔피언 카누 선수인 아틸라 바이다를 포함한 일부는 그의 자리를 비워두어 고인을 기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콜로니치의 파트너였던 죄르지 코즈만 역시 처음에는 올림픽 출전을 거부했으나, 코치와 동료들의 설득 끝에 참가를 결정했다. 코즈만은 타마스 키스와 새롭게 조를 이루어 C-2 1000m 경기에 출전했고,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다. C-2 500m 종목에는 미하이 샤프란과 마티아스 샤프란 형제가 대신 출전하게 되었다.[4] 아틸라 바이다는 2008년 올림픽 경기 동안 콜로니치를 추모하기 위해 검은색 완장을 착용하고 경기에 임했다.
3. 1. 사후 논쟁
콜로니치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그의 오랜 코치였던 로버트 루다시와 헝가리 국가 구급 서비스(OMSz) 사이에 언론을 통한 논쟁이 벌어졌다. 루다시 코치는 구급차가 신고 후 37분이나 지나서 도착했으며, 도착한 차량에는 제세동기조차 없었다고 주장하며 응급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반면, OMSz 측은 구급대원이 17분 만에 현장에 도착하여 즉시 콜로니치에게 제세동을 실시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OMSz는 콜로니치의 몸에서 근육 피로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는 붕대가 발견되었다고 언급하며, 이는 심장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다시 코치는 붕대 사용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3]
이 논쟁은 헝가리 카누 연맹(MKKSz)과 OMSz가 2008년 7월 21일 공동 성명을 발표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성명에서 루다시 코치는 콜로니치를 살리기 위해 "성실하고 높은 수준의" 노력을 보여준 구급대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또한 MKKSz는 논란이 된 붕대에 대해 사전에 테스트를 거쳤으며, 구매 역시 헝가리 올림픽 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4. 수상 경력
올해의 헝가리 카누 선수 (10회): 1993, 1995, 1996, 1999, 2000, 2001, 2002, 2003, 2005, 2006
올해의 헝가리 팀 멤버 (차바 호르바트와 함께): 1995, 1996
체펠 명예 시민 (1996)
체펠 SC 영구 챔피언 (1997)
체펠 SC 최우수 남자 선수 (1997)
부다포크-테테니 명예 시민 (2000)
헝가리 카약-카누 영구 챔피언 (2008)
4. 1. 훈장 및 특별상
헝가리 공화국 공로 훈장 장교 십자훈장 리본 헝가리 공화국 공로 훈장 - 장교 십자훈장 (1996)
헝가리 공화국 공로 훈장 사령관 십자훈장 리본 헝가리 공화국 공로 훈장 - 사령관 십자훈장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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