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 메이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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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미 메이스너는 미국의 전직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1989년 메릴랜드주 토슨에서 태어났으며,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6위를 기록했고, 같은 해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또한 2007년 사대륙 선수권 대회와 전미 선수권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메이스너는 부상으로 인해 2010년에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으며, 2020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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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미 메이스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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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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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킴벌리 클레어 메이스너 |
출생일 | 1989년 10월 4일 |
출생지 | 메릴랜드주 타우슨 |
거주지 | 벨 에어, 메릴랜드 |
신장 | 162 cm |
은퇴 | 2010년 |
경력 | |
코치 | 크리스 콘테 |
이전 코치 | 리처드 캘러핸 토드 엘드리지 팸 그레고리 (-2008) |
안무가 | 로리 니콜 |
이전 안무가 | 니콜라이 모로조프 팸 그레고리 |
소속 클럽 | 델라웨어 대학교 피겨 스케이팅 클럽 체서피크 FSC |
스케이팅 시작 | 1996년 |
최고점 | |
총점 | 189.87 |
총점 기록일 | 2006 세계 선수권 대회 |
쇼트 프로그램 점수 | 64.67 |
쇼트 프로그램 기록일 | 2007 세계 선수권 대회 |
프리 스케이팅 점수 | 129.70 |
프리 스케이팅 기록일 | 2006 세계 선수권 대회 |
주요 결과 | |
세계 선수권 대회 | 금메달 - 2006 캘거리 (여자 싱글) |
4대륙 선수권 대회 | 금메달 - 2007 콜로라도스프링스 (여자 싱글) |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 은메달 - 2004 헤이그 (여자 싱글) |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 동메달 - 2004 헬싱키 (여자 싱글) |
2. 생애
킴벌리 "키미" 메이스너[2]는 1989년 10월 4일 메릴랜드주 토슨에서 족병 전문의인 폴 메이스너와 주디 (로스) 메이스너의 막내로 태어났다.[3][4] 그녀의 가족은 가톨릭 교회 신자이며,[3] 메릴랜드주 히코리에 있는 본당에서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했다.[6]
메이스너의 세 오빠는 아버지처럼 아이스하키를 했고, 그녀는 그들의 경기에 따라갔다. 그녀는 1996년 1월, 여섯 살 때 "이상한 빙판 폭풍"[3]으로 메릴랜드주 벨에어의 뒷마당이 임시 링크로 변한 후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탔다. 몇 년 후, 델라웨어 대학교 피겨 스케이팅 클럽에서 레슨을 받고, 코치 팸 그레고리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3]
메이스너는 메릴랜드주 폴스턴에 있는 공립 중등학교인 폴스턴 고등학교에 다녔다.[3] 2007년에 폴스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9] 2014년에는 토슨 대학교를 졸업했다.[122]
2. 1. 어린 시절
킴벌리 "키미" 메이스너[2]는 1989년 10월 4일 메릴랜드주 토슨에서 족병 전문의인 폴 메이스너와 주디 (로스) 메이스너의 막내로 태어났다.[3][4] 그녀의 가족은 가톨릭 교회 신자이며,[3] 메릴랜드주 히코리에 있는 본당에서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했다.[6]메이스너의 세 오빠는 아버지처럼 하키를 했고, 그녀는 그들의 경기에 따라갔다. 그녀는 1996년 1월, 여섯 살 때 "이상한 빙판 폭풍"[3]으로 메릴랜드주 벨에어의 뒷마당이 임시 링크로 변한 후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탔다. 몇 년 후, 델라웨어 대학교 피겨 스케이팅 클럽에서 레슨을 받고, 코치 팸 그레고리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3]
메이스너는 메릴랜드주 폴스턴에 있는 공립 중등학교인 폴스턴 고등학교에 다녔다.[3] 2007년에 폴스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9] 2014년에는 토슨 대학교를 졸업했다.[122]
2. 2. 선수 경력
키미 메이스너는 여섯 살 때 오빠들이 아이스하키를 하는 것을 보고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텔레비전으로 피겨 스케이팅을 보았고, 네 살 때 시작했던 발레를 "스케이팅을 더 좋아해서" 결국 포기했다.[2] 6년 후 그녀는 첫 번째 트리플 점프인 살코를 성공했다.[2]1999-2000 시즌, 메이스너는 주니어 선수로 2000년 사우스 애틀랜틱 지역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4위를 차지했고, 2000년 미국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진출하여 16위를 기록했다. 다음 시즌인 2000-2001년에도 미국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16위를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인터미디에이트 레벨이었으며,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2002년 사우스 애틀랜틱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도 인터미디에이트 레벨로 참가하여 7위를 기록했다.[1][4][11]
2002-2003 시즌에 노비스 부문으로 올라가, 2003년 이스턴 섹셔널에서 1위를, 2003년 사우스 애틀랜틱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2003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 진출했다.[1][12][13] 그녀는 "단숨에 등장"[14]하여 내셔널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미국 내셔널 대회였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트리플 러츠 점프를 포함한 세 개의 트리플 점프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는 계획했던 네 번째 트리플, 살코 점프를 싱글로 처리했지만, 악셀-더블 토 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으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15][16] 그녀는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2003년 트리글라브 트로피에서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17]
2003-2004 시즌, 전미 선수권 주니어 클래스 우승.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는 첫 출전에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4-2005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3위. 전미 선수권 대회에서는 시니어 클래스에 출전, 트리플 악셀에 성공(미국 여자 선수로서는 토냐 하딩 이후 두 번째)하여 3위를 차지했다. 세계 선수권 대회에는 국제 빙상 연맹이 정한 연령 제한 때문에 출전할 수 없어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4위를 기록했다.

2005-2006 시즌, 전미 선수권에서는 컨디션 불량에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순위를 한 단계 올려 2위를 차지했다.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처음 출전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5위로 부진했지만,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2종류의 3회전+3회전 콤비네이션 점프, 후반에 3회전 연속 점프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는 등 프리 스케이팅에서 당시 역대 3위(기술 점수는 당시 역대 1위)를 기록, 토리노 올림픽 2위인 사샤 코언, 4위인 무라누시 아키 등을 역전하여 16세의 나이로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2006-2007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는 점프가 안정되지 않아, 스케이트 아메리카 2위, 에릭 봉파르컵 3위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획득 점수 24점은 6위 동률이었지만, 총점에서 미치지 못해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전미 선수권에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사대륙 선수권 대회에서도 쇼트 프로그램 6위로 부진했지만 프리 스케이팅에서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120점 이상을 획득하며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2연패를 노렸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개인 최고 점수를 경신하며 4위,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3위로 종합 4위를 기록했다.
2007-2008 시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ISU 그랑프리 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 진출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오른쪽 발목 염좌의 영향으로 6위에 머물렀다[167]。 더욱이 전미 선수권에서는 7위로 부진했다. 세계 선수권 대회 전에 코치를 리처드 캐러한, 토드 엘드리지로 바꾸어 컨디션 회복을 목표로 했다[168]。
2008-2009 시즌, 플립과 루츠의 롱 에지 판정 도입에 따라 플립의 에지 수정을 실시한 결과, 전혀 점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랑프리 시리즈는 두 경기 모두 8위에 그쳤다. 전미 선수권 직전, 훈련 중에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껴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하여 부어오름과 통증이 지속되어 MRI 검사를 받은 결과, 오른쪽 무릎뼈의 슬개골 건염과 부분적인 탈구로 진단받았다. 의사의 진단에 따라 시즌의 나머지를 망치게 되었다.
올림픽 시즌인 2009-2010 시즌 여름에는 컨디션이 좋았고, 코치인 리처드 캐러한은 미국 대표의 2자리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랑프리 시리즈 개막 직전에 키미의 점프 연습 중에 젊은 스케이터가 갑자기 튀어나와 부상을 입었다.
의사의 진단으로 인해 이 시즌 역시 망치게 되었고, 밴쿠버 올림픽 대표 선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은퇴할 생각은 없으며, 시즌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 24세에 소치 올림픽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발표했지만, 소치까지 경기에 복귀하지 못했다.
사샤 코언과 함께 세계 선수권 여자 싱글 미국의 마지막 메달리스트가 되었고, 미국 선수들은 9개 대회 동안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2016년 대회에서 애슐리 왜그너의 은메달 획득으로 염원하던 목표를 달성했다.
2. 2. 1. 초기 경력 (2002-2004)
키미 메이스너는 여섯 살 때 오빠들이 아이스하키를 하는 것을 보고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텔레비전으로 피겨 스케이팅을 보았고, 네 살 때 시작했던 발레를 "스케이팅을 더 좋아해서" 결국 포기했다.[2] 6년 후 그녀는 첫 번째 트리플 점프인 살코를 성공했다.[2]1999-2000 시즌, 메이스너는 주니어 선수로 2000년 사우스 애틀랜틱 지역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여 4위를 차지했고, 2000년 미국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 진출하여 16위를 기록했다. 다음 시즌인 2000-2001년에도 미국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16위를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인터미디에이트 레벨이었으며,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는 3위를 차지했다. 2002년 사우스 애틀랜틱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도 인터미디에이트 레벨로 참가하여 7위를 기록했다.[1][4][11]
2002-2003 시즌에 노비스 부문으로 올라가, 2003년 이스턴 섹셔널에서 1위를, 2003년 사우스 애틀랜틱 지역 선수권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2003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 진출했다.[1][12][13] 그녀는 "단숨에 등장"[14]하여 내셔널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미국 내셔널 대회였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프리 스케이팅에서도 트리플 러츠 점프를 포함한 세 개의 트리플 점프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는 계획했던 네 번째 트리플, 살코 점프를 싱글로 처리했지만, 악셀-더블 토 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으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15][16] 그녀는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2003년 트리글라브 트로피에서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17]
2003-2004 시즌에 주니어 선수로 활동했다. 불가리아에서 열린 소피아 컵에서 은메달을, 슬로베니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스웨덴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으며, 5위를 차지했다.[18][19][20][21] 2004년 전미 선수권 대회 주니어 부문에 출전하여 쇼트 프로그램에서 2위를 차지한 후 프리스케이팅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22] 이전 시즌 노비스 부문 우승과 함께 그녀는 서로 다른 레벨에서 2년 연속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드문 스케이터 중 한 명"이 되었다.[23]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은 그녀를 네덜란드에서 열린 2004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 미국 대표팀에 선발했고, 그녀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녀는 이 대회에서 가장 어린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쇼트 프로그램 후 3위를 차지했으며,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 콤비네이션, 트리플 플립, 더블 악셀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메이스너는 나중에 그것이 그녀의 시즌 첫 번째 클린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 후 2위를 차지했는데, 완전히 회전하지 않은 트리플 플립으로 시작했다. 그녀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 콤비네이션, 트리플 살코, 트리플 루프, 두 개의 더블 악셀, 트리플 러츠를 성공했지만, 두 번째 트리플 살코를 실패했다. 또한 좋은 자세로 레이백 스핀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2][23][24][25]
2. 2. 2. 시니어 데뷔 및 성장 (2004-2006)
메이스너는 2004-2005 시즌 초에 트리플 악셀 점프를 연습하여 2004년 8월에 성공하기 시작했지만, 약간의 허리 부상으로 인해 이 기술 연습을 두 달 동안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는 다른 7개의 트리플 점프가 포함되어 있었다.[23][26][27] 그녀의 시즌 "개인 목표"는 모든 기술을 더 크게 만들고 "2층 관람석에 있는 사람들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도록 스케이팅을 하는 것"이었다.[30]그녀는 프랑스 주니어 그랑프리 쿠르쉐벨에서 시즌을 시작하여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에서 2위를 차지하며 종합 2위를 기록했다.[28][23] 그녀의 두 번째 그랑프리 대회인 2004 스케이트 롱 비치에서 그녀는 일본의 아사다 마오에 이어 다시 2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 후 2위를 차지하여 46.33점을 얻었다. 그녀는 트리플 러츠-더블 토룹 콤비네이션에서 어려움을 겪어 러츠 점프에서 넘어지고 더블 토룹 전에 회전을 했다. 또한 트리플 루프에서도 어려움을 겪어 더블 점프로 채점되었지만 프로그램은 흐름이 좋았고, 스핀도 훌륭했으며, 더블 악셀도 성공했다. 그녀는 또한 프리스케이팅 후 2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트리플 플립을 성공한 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을 수행했지만 루프 점프를 실패했다. 그녀는 트리플 살코, 좋은 트리플 러츠, 그리고 다운그레이드된 더블 플립-더블 토룹 콤비네이션을 성공시켰다. 그녀는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87.40점을, 종합 133.73점을 받았다.
메이스너는 두 번의 2위로 헬싱키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2년 연속 출전 자격을 얻었다.[29][30][31][32] 그녀는 "부진한 쇼트 프로그램"[30]으로 인해 트리플 러츠를 실패하여 7위로 떨어졌지만, 3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러츠가 일주일 내내 "정말 엉망이었다"[30]고 말했지만,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2개를 성공했고, 그 중 하나는 콤비네이션으로 뛰었으며, 프리스케이팅에서 2위, 종합 3위로 복귀했다.[30]
메이스너는 2004년 10월 캠벨 국제 피겨스케이팅 클래식에서 "인상적인 시니어 데뷔"를 했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캐롤리나 코스트너를 대신하여 미셸 콴, 사샤 코헨과 경쟁하여 5위를 차지했다. 이는 그녀가 우상이었던 콴과 처음으로 경쟁한 것이었다.[2][23] 그녀와 그녀의 코치 팸 그레고리는 이 대회를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열리는 메이스너의 첫 시니어 전미 선수권 대회를 위한 준비로 여겼다.[26] 메이스너가 전미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면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추측이 있었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마지막 순간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33] 그레고리는 메이스너가 전미 선수권 대회를 불과 일주일 전에 꾸준히 트리플 악셀을 성공했다고 보고했다.[27]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 후 4위를 차지했는데, AP 통신은 이를 "시니어 랭킹에 막 진입하는 선수에게 매우 훌륭한 성적"이라고 칭했다.[33] 메이스너는 또한 기자들에게 자신의 연기와 모든 점프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방식에 대해 좋은 느낌을 받았지만,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33] 피겨스케이팅 기자 엘빈 워커는 그녀가 "활기차고 기술적인 기량으로" 스케이팅했다고 말했다.[34] 그녀는 워밍업 중 깨끗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후,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의 세 번째 점프인 트리플 악셀을 포함하기로 결정했다.[27] 그녀는 토냐 하딩이 1991년에 성공한 이후 14년 만에 경쟁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최초의 미국 여자 선수였다. 1937년부터 마리벨 빈슨이 보유했던 기록과 타이를 이루며 아홉 번째 미국 타이틀을 획득한 콴은 "스케이팅과 미국 스케이터에게 놀라운 일이고 환상적입니다. 이곳은 토냐 하딩의 고향이므로 그녀가 이 기술을 시도하고 성공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라고 말했다.[27]
메이스너는 트리플 악셀의 마지막 회전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35]했지만, 착지는 안정적이었고 3위를 차지하여 시니어 레벨에서 첫 메달을 획득했다.[35] 그녀는 두 개의 러츠 점프와 트리플 토-더블 토-더블 루프 콤비네이션을 포함하여 7개의 트리플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그녀의 기술 점수는 5.7에서 5.9 사이였고, 프레젠테이션 점수는 5.4에서 5.7 사이였으며, 프리스케이팅 3위, 종합 3위를 기록했다.[27][36][37]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E. M. 스위프트는 메이스너가 관중으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얻었고 콴으로부터의 관심을 돌렸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한 메이스너가 "미국에서 침체되기 시작한 스포츠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미국 스케이팅의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38] 메이스너는 세계 선수권 대회 시니어 부문에 출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지만, 2005 주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의 미국 대표로 선발되었다.[30] 메이스너는 기자들에게 실망하지 않았고 주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지만, 그레고리는 이것이 메이스너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하고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35][39] 하지만 ESPN은 메이스너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세계 선수권 대회에 "임무"로 파견하여,[40] 올림픽 선수인 페기 플레밍, 폴 와일리와 함께 출연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캐나다 키치너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메이스너는 종합 4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링크 가장자리에 가까이 갔지만, 트리플 러츠-더블 토룹 콤비네이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또한 트리플 루프와 더블 악셀을 성공하여 52.67점을 획득하고 팀 동료인 알리사 츠즈니보다 0.25점 미만으로 3위를 차지했다. 그녀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메이스너는 트리플 플립, 트리플 러츠-더블 토룹 콤비네이션, 더블 악셀-더블 토룹 콤비네이션, 트리플 루프, 트리플 살코로 시작했다. 그녀는 프로그램 후반부에 러츠와 플립을 모두 싱글 점프로 바꾸어 93.96점을 획득하고 프리스케이팅 4위를 차지하면서 종합 4위로 떨어져 총 146.63점을 획득했다.[41][42]

메이스너는 2005–2006 시즌을 올림픽에 집중하며, 더 어렵고 복잡한 스핀과 스텝으로 프로그램을 더 성숙하게 만들려고 했다.[43] 그녀는 트리플 악셀을 포기하고 시즌 동안 가끔 시도하면서, 콤비네이션 점프에 집중했고 악셀의 일관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8] 이전 시즌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스너는 시즌 대부분 동안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고, 대부분의 경기에서 고전했으며, ESPN에 따르면 동료 미국 스케이터 앨리사 시즈니(Alissa Czisny)에게 "가려졌다"[44]고 한다.
미스너는 2005년 캠벨 클래식에서 3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그녀는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지 않았지만, 총 109.08점을 획득하여 개인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45][46] 파리에서 열린 2005년 에릭 봉파르 트로피에서 그녀의 첫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47] 그녀는 "재앙적"인[48] 쇼트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녀는 트리플 러츠에서 스텝 아웃하며 계획된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성하지 못했고, 넘어지면서 44.92점을 획득했다.[47] 그녀는 두 개의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과 두 개의 트리플 러츠를 포함하는 "화려하고 어려운"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반등했다. 그녀는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 루프 콤비네이션으로 시작하여 더블 악셀,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 트리플 루프를 이어갔는데, 트리플 루프는 다운그레이드되었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더블 악셀-더블 토 루프-더블 루프 점프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미스너와 그레고리는 미스너의 러츠에 만족했지만, 트리플 악셀의 착지가 일관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없다고 동의했다. 그녀는 프리 스케이팅 후 4위, 종합 5위를 차지했다.[48][49]
NHK 트로피에서 그녀는 더 편안하고 긴장을 덜한 모습으로 다시 5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56.10점을 획득하여 3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파리에서 획득한 점수보다 높았다.[47][50] 파리에서의 쇼트 프로그램과 달리, 그녀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콤비네이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는데, 이는 이 날 저녁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점프 콤비네이션(10.0점)이었다. 그녀의 스핀은 프로그램에서 가장 약했는데, 스핀의 중심이 잡히지 않았고 넘어질까 봐 두려워했지만, 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다.[47] 그녀는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96.08점을 획득하여 5위를 차지했고, 총 152.18점을 기록했다.[50][51]
2006년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 미스너는 은메달을 획득했고, 미국 올림픽 팀에 선발되었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 후 4위를 기록했지만,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훌륭한 연기"[52]를 펼친 후, 3위를 차지한 에밀리 휴즈(Emily Hughes)를 넘어섰다. 사샤 코언이 생애 첫 미국 선수권 대회 타이틀을 획득했다.[52][53] 이는 IJS 채점 시스템이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었다.[54] 선수권 대회 기간 동안 언론의 초점은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의 미국 올림픽 여자 팀 결정과 코헨의 우승 가능성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미스너의 지난 시즌의 성공과 선수권 대회 2위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그녀에게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부상으로 인해 선수권 대회에 불참한 미셸 콴은 팀에 합류하기 위해 청원했다. 결국,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은 코헨과 미스너 외에 에밀리 휴즈 대신 콴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44][55] 콴은 토리노에서의 연습 세션 중 발생한 부상으로 올림픽에서 기권해야 했고, 휴즈가 그녀를 대신했다.[56]
미스너는 올림픽 일주일 전, 토리노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쿠르마유르(Courmayeur)에서 훈련했다. 그녀는 올림픽 선수촌에 머무는 대신 가족과 함께 아파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이는 그녀가 경기에 침착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는 대회에서 가장 어린 선수 중 한 명이었고, 토리노에서 가장 어린 미국 선수였다. 그녀의 쇼트 프로그램은 기본 점수 31.7점으로, 출전 선수 중 가장 강력한 스케이터들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었다.[57][58][59] 미스너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59.40점을 얻어 5위를 차지했는데, 1위를 차지한 코헨보다 7.33점 뒤졌다.[60][61] 미스너의 프레젠테이션은 깔끔했고, 대회에서 가장 높은 기술 점수를 받았다. 그녀의 구성 점수는 약했고 11위를 기록했지만, 프리 스케이팅에 진출하면서 메달 경쟁을 벌였다.[59][62] 그녀의 계획된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은 두 개의 트리플-트리플 점프 콤비네이션으로 시작되었고, 중간 부분에는 세 개의 싱글 트리플 점프가 포함되었다. 미스너는 가능한 최고 점수를 얻기 위해 프로그램 마지막 부분에 세 개의 더블 점프 콤비네이션을 계획했다.[62] 그녀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106.31점을 획득하여 6위를 차지했고, 총 165.71점으로 종합 6위를 기록했다.[60] ESPN은 이를 "올림픽 첫 출전인 젊은 여성의 탄탄한 활약"이라고 평가했다.[44]
미스너는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며칠 동안 독감에 걸렸고, 귀국 비행 중 오른쪽 고막이 파열되어 스핀 연습 시 고통을 겪었으며, 세계 선수권 대회 훈련을 2주 동안 방해받았지만, 그녀는 기자 릭 메이스에게 올림픽 경험을 통해 더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44][63][64] 올림픽에서의 "실망스러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향 벨 에어는 그녀의 귀국을 기념하여 퍼레이드를 열었고,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를 명명했다.[59][63][65] 메이스는 미스너의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 가능성이, 비록 팀 동료 사샤 코언이 대회에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팀 동료 미셸 콴의 부재와 토리노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荒川静香)와 러시아의 이리나 슬루츠카야의 부재로 인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캘거리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미스너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88.63점을 받아 3위를 차지했다. 코헨은 94.21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고, 일본의 스구리 후미에(村主章枝)의 90.59점보다 거의 4점 앞섰고, 미스너보다 거의 5점 앞섰다. 미스너의 첫 점프는 트리플 러츠-더블 토 루프 콤비네이션이었는데, 콤비네이션에서 두 개의 트리플을 시도하는 대신, 그녀는 스핀과 레벨 3 스텝에서 평소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66]
미스너는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두 개의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트리플 플립-트리플 토와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을 포함하여 일곱 개의 트리플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는데, 이는 대회에서 유일했다.[44][66][67][68] 그녀는 모든 요소를 성공했고, 프로그램 전체에서 집중력을 유지했는데, 마지막 부분의 더블 악셀-더블 토 루프-더블 루프까지 포함했는데, 나중에 관객이 일어나기 전에 음악이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69] 그녀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개인 최고 점수인 129.70점을 획득하여 총 218.33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은메달을 획득한 스구리보다 거의 9점, 코헨보다 10점 이상, 2006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荒川静香)보다 4점 이상 높은 점수였다.[63][68] Associated Press는 이를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66]라고 불렀고, ''볼티모어 선''은 "미스너의 경력의 정점"[1]이라고 불렀는데, 그녀는 캘거리에서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획득하여 당시 일곱 번째로 어린 세계 챔피언이 되었는데, 시즌 대부분을 올림픽에 집중했고 아직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8][44] 이는 크리스티 야마구치 이후 여자 스케이터가 미국 선수권 타이틀을 획득하기 전에 세계 선수권 대회를 우승한 첫 번째 경우였고, 2003년에서 미셸 콴이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미국 선수가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 첫 번째 경우였다.[70][69] 그녀는 기자들에게 지난 해 러시아에서 게스트 해설자로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것이 캘거리에서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69] 2006년 3월, 미국 올림픽 위원회는 미스너를 이달의 선수로 선정했다.[68]
2005-2006 시즌, 전미 선수권에서는 컨디션 불량에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순위를 한 단계 올려 2위를 차지했다.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처음 출전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5위로 부진했지만,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2종류의 3회전+3회전 콤비네이션 점프, 후반에 3회전 연속 점프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는 등 프리 스케이팅에서 당시 역대 3위(기술 점수는 당시 역대 1위)를 기록, 토리노 올림픽 2위인 사샤 코언, 4위인 무라누시 아키 등을 역전하여 16세의 나이로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2. 2. 3. 세계 챔피언 등극 (2006)
미스너는 2005-2006 시즌을 올림픽에 집중하며, 더 어렵고 복잡한 스핀과 스텝으로 프로그램을 더 성숙하게 만들려고 했다.[43] 트리플 악셀을 포기하고 시즌 동안 가끔 시도하면서, 콤비네이션 점프에 집중했고 악셀의 일관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8] 이전 시즌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스너는 시즌 대부분 동안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고, 대부분의 경기에서 고전했으며, ESPN에 따르면 동료 미국 스케이터 앨리사 시즈니(Alissa Czisny)에게 "가려졌다"[44]고 한다.
NHK 트로피에서 그녀는 더 편안하고 긴장을 덜한 모습으로 다시 5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56.10점을 획득하여 3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파리에서 획득한 점수보다 높았다.[47][50]
2006년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 미스너는 은메달을 획득했고, 미국 올림픽 팀에 선발되었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 후 4위를 기록했지만,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훌륭한 연기"[52]를 펼친 후, 3위를 차지한 에밀리 휴즈(Emily Hughes)를 넘어섰다. 사샤 코언이 생애 첫 미국 선수권 대회 타이틀을 획득했다.[52][53] 이는 IJS 채점 시스템이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었다.[54]
미스너는 올림픽 일주일 전, 토리노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쿠르마유르(Courmayeur)에서 훈련했다. 그녀는 올림픽 선수촌에 머무는 대신 가족과 함께 아파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이는 그녀가 경기에 침착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59.40점을 얻어 5위를 차지했는데, 1위를 차지한 코헨보다 7.33점 뒤졌다.[60][61] 그녀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106.31점을 획득하여 6위를 차지했고, 총 165.71점으로 종합 6위를 기록했다.[60]
미스너는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며칠 동안 독감에 걸렸고, 귀국 비행 중 오른쪽 고막이 파열되어 스핀 연습 시 고통을 겪었으며, 세계 선수권 대회 훈련을 2주 동안 방해받았지만, 그녀는 기자 릭 메이스에게 올림픽 경험을 통해 더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44][63][64]
캘거리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미스너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88.63점을 받아 3위를 차지했다. 코헨은 94.21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고, 일본의 스구리 후미에(村主章枝)의 90.59점보다 거의 4점 앞섰고, 미스너보다 거의 5점 앞섰다.[66]
미스너는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 두 개의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트리플 플립-트리플 토와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을 포함하여 일곱 개의 트리플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는데, 이는 대회에서 유일했다.[44][66][67][68] 그녀는 프리 스케이팅에서 개인 최고 점수인 129.70점을 획득하여 총 218.33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은메달을 획득한 스구리보다 거의 9점, 코헨보다 10점 이상, 2006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荒川静香)보다 4점 이상 높은 점수였다.[63][68] Associated Press는 이를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66]라고 불렀고, ''볼티모어 선''은 "미스너의 경력의 정점"[1]이라고 불렀는데, 그녀는 캘거리에서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을 획득하여 당시 일곱 번째로 어린 세계 챔피언이 되었는데, 시즌 대부분을 올림픽에 집중했고 아직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8][44] 이는 크리스티 야마구치 이후 여자 스케이터가 미국 선수권 타이틀을 획득하기 전에 세계 선수권 대회를 우승한 첫 번째 경우였고, 2003년에서 미셸 콴이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미국 선수가 세계 타이틀을 획득한 첫 번째 경우였다.[70][69]
2005-2006 시즌, 전미 선수권에서는 컨디션 불량에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순위를 한 단계 올려 2위를 차지했다.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처음 출전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5위로 부진했지만,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2종류의 3회전+3회전 콤비네이션 점프, 후반에 3회전 연속 점프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는 등 프리 스케이팅에서 당시 역대 3위(기술 점수는 당시 역대 1위)를 기록, 토리노 올림픽 2위인 사샤 코언, 4위인 무라누시 아키 등을 역전하여 16세의 나이로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2. 2. 4. 부상과 슬럼프 (2007-2010)
2006-2007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는 점프가 안정되지 않아, 스케이트 아메리카 2위, 에릭 봉파르컵 3위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획득 점수 24점은 6위 동률이었지만, 총점에서 미치지 못해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전미 선수권에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사대륙 선수권 대회에서도 쇼트 프로그램 6위로 부진했지만 프리 스케이팅에서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120점 이상을 획득하며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2연패를 노렸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개인 최고 점수를 경신하며 4위,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3위로 종합 4위를 기록했다.2007-2008 시즌,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ISU 그랑프리 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 진출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오른쪽 발목 염좌의 영향으로 6위에 머물렀다[167]。 더욱이 전미 선수권에서는 7위로 부진했다. 세계 선수권 대회 전에 코치를 리처드 캐러한, 토드 엘드리지로 바꾸어 컨디션 회복을 목표로 했다[168]。
2008-2009 시즌, 플립과 루츠의 롱 에지 판정 도입에 따라 플립의 에지 수정을 실시한 결과, 전혀 점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랑프리 시리즈는 두 경기 모두 8위에 그쳤다. 전미 선수권 직전, 훈련 중에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껴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하여 부어오름과 통증이 지속되어 MRI 검사를 받은 결과, 오른쪽 무릎뼈의 슬개골 건염과 부분적인 탈구로 진단받았다. 의사의 진단에 따라 시즌의 나머지를 망치게 되었다.
올림픽 시즌인 2009-2010 시즌 여름에는 컨디션이 좋았고, 코치인 리처드 캐러한은 미국 대표의 2자리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랑프리 시리즈 개막 직전에 키미의 점프 연습 중에 젊은 스케이터가 갑자기 튀어나와 부상을 입었다.
의사의 진단으로 인해 이 시즌 역시 망치게 되었고, 밴쿠버 올림픽 대표 선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은퇴할 생각은 없으며, 시즌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 24세에 소치 올림픽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발표했지만, 소치까지 경기에 복귀하지 못했다.
2. 3. 은퇴 이후
키미 메이스너는 2008-2009 시즌에 캐럴라인 캘러헌과 토드 엘드리지 코치와 함께 선수 복귀를 시도했다.[128] 발레 강사와도 훈련했지만,[129] 캘러헌과의 협업은 "항상 최고의 경기력을 내도록 이끌었던 기쁨을 빼앗아 갔다"라며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122]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메이스너는 좋은 연습에도 불구하고[129][130] "일련의 넘어짐과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점프"로 인해 종합 8위에 그쳤다.[129][130] 쇼트 프로그램에서는 트리플 플립에서 넘어졌지만,[131] "최근 대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성숙함과 행복함"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6위를 기록했다.[132]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지난 시즌 그녀의 자신감을 무너뜨렸던 것과 같은 악마와 싸우는 듯 보였다"라는 평가를 받았고,[133] 여러 번의 점프 실수와 콤비네이션 점프 실패로 9위를 기록, 총점 135.92점을 받았다.[130][133][135] 스콧 해밀턴은 메이스너의 부진을 급성장 탓으로 돌리며 미래의 성공 가능성을 언급했다.[130] 2008 러시아 컵에서도 쇼트 프로그램 8위, 프리 스케이팅 7위, 종합 8위에 머물렀다.[136][137]
고관절 굴곡근 부상으로 2009 US 내셔널 선수권 대회에서 기권한 후,[138][139] 2009년 8월에는 훈련 중 어린 스케이터와의 충돌을 피하려다 오른쪽 무릎에 슬개건염과 부분 탈구 진단을 받았다.[122][140][141] 이로 인해 로스텔레콤 컵과 NHK 트로피에서 기권하며 올림픽 출전 자격을 잃었지만, 스케이팅 은퇴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141]
2010년 초, 메이스너는 사샤 코헨 등을 지도했던 크리스 콘테 코치와 함께 점프 기술 재건과 아이스 쇼 프로그램 안무에 힘썼다.[142] 물리 치료사로도 활동하고, 아이스 쇼에 출연하며 대학 강좌를 수강했다.[142] 2010년에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143]
선수 경력의 끝이 어려웠다고 밝힌 메이스너는 대회 훈련 중단으로 우울함과 상실감을 느꼈다고 한다.[144][145][122] 부상 회복 후 복귀를 예상했지만,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스케이팅에서 멀어졌고, 은퇴를 받아들이기까지 5년이 걸렸다.[144][145][122]
2012년 프로암 대회에 출전하여 6위를 기록했고, 2014년과 2015년에는 Stars on Ice와 함께 풀타임으로 투어했다.[144] 2016년에는 소치 올림픽에서 NBC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144] 또한, 주니어 스케이터들을 코치하며 스케이팅과의 인연을 이어갔고, 코칭을 통해 스케이팅의 기쁨을 되찾았다고 밝혔다.[144][160][122] 2020년에는 미국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145][146][143] 이를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라고 언급했다.
2018년 10월, 오랜 남자친구 조시 헤인과 약혼했으며, 2019년 여름에 결혼했다.[147][148]
3. 기술
메이스너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피겨 스케이팅 선수 중 한 명으로, 점프 시 공중 자세가 좋았고, 부드러운 착지, 빠른 속도, 높은 에너지를 보였다.[70] 그러나 예술성은 약점으로 지적되었는데, AP통신은 2007년에 이러한 점이 그녀의 어린 나이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70] 코치 팸 그레고리는 메이스너의 훈련 자세와 직업 윤리를 타라 리핀스키와 세라 휴즈와 비교하며, 그녀의 용기와 경쟁 정신을 칭찬하며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하다"고 평가했다.[7][30] 그러나 그녀의 경기력은 일관성이 부족했는데, 특히 2006년 말 이후에 더욱 심해졌다.[101]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필립 허쉬는 그녀의 기복이 심한 스케이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2006년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우승을 안겨준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과 2005년 전미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성공한 트리플 악셀이 "일회성"이었는지 질문했다.[82] 2005년, 메이스너는 볼티모어 선과의 인터뷰에서 경기 당일에 트리플 악셀을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43] 2006년, 기자 릭 메이즈는 메이스너가 쇼트 프로그램보다 프리스케이팅에서 더 잘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수많은 점프가 예술적 결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67]
커쉬는 메이스너를 그녀가 존경했던 미셸 콴과 비교하며, 2004년 당시 14세였던 메이스너의 표현력은 콴이 14세였을 때만큼 미숙했지만, 메이스너의 점프는 콴만큼 일관성이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26] 많은 스포츠 기자들은 메이스너를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미래로 간주했고, 2010년 동계 올림픽과 같은 미래 대회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다.[8][44][133] 2007년, 톰슨은 콴 자신이 메이스너를 "피겨 스케이팅의 새로운 얼굴"이라고 불렀다고 보도했다.[100]
메이스너는 5 종류의 3회전 점프(악셀 점프 제외)를 뛸 수 있었다. 3회전 악셀도 2005년 전미 선수권에서 성공했지만[165], 국내 선수권이었기 때문에 ISU 공인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 콤비네이션 점프는 3회전 플립-3회전 토 루프와 3회전 러츠-3회전 토 루프 2종류를 뛸 수 있었다.[166] 또한, 아이스 쇼 연습 중에는 여러 번 클린 3A+3T를 성공했다.[167]
4. 사회 공헌 활동
키미 메이스너는 2006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후, 메릴랜드 대학교 의료 센터와 존스 홉킨스 병원의 소아 종양 환자들에게 장난감과 게임을 제공하고 치료 기간 동안 가족들의 외출 비용을 지불하는 "쿨 키즈 캠페인"의 공식 홍보대사가 되었다.[5] 그녀는 또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의 Livestrong bracelet에서 영감을 얻어 자선 단체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팔찌를 디자인했다.[149] 그녀의 안무가 로리 니콜은 메이스너가 암에 걸린 아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녀가 더 나은 사려 깊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5] 메이스너는 또한 공립 학교 읽기 챌린지의 대변인이 되었다.[82]
2007년에는 쿨 키즈 캠페인과 벨랑제-페데리코 재단을 위한 볼티모어의 기금 마련 행사 "키미의 얼음 위의 천사들"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73] 에반 라이사첵, 조니 위어, 마이클 바이스, 일본의 사토 유카, 캐나다의 조아니 로셰트와 제프리 버틀, 영국의 스티븐 사촌, 미국의 아이스 댄서 타니트 벨빈과 벤 아고스토, 미국의 페어 팀 브룩 캐스틸과 벤 오콜스키를 포함한 여러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도 공연했다.[73] 이 쇼는 전 페어 스케이팅 챔피언 리앤 밀러가 안무했다. 약 120명의 어린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이 쇼를 무료로 관람하고 출연진과 함께 파티를 열었다.[73]
5. 수상 및 기록
키미 마이스너는 미국 노비스(2003년), 주니어(2004년), 시니어(2007년) 타이틀을 모두 획득한 몇 안 되는 스케이터 중 한 명이다.[150] 2006년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최연소 미국 선수였으며,[150] 2006년 세계 선수권, 2007년 사대륙 선수권 대회, 2007년 미국 선수권 대회를 동시에 석권한 최초의 미국 선수이자 여성 선수였다.[143] 2005년 미국 선수권 대회에서는 경기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두 번째 미국 여성 선수가 되었다.[150]
2006년에는 미셸 콴 트로피(올해의 가장 좋아하는 스케이터)를 수상했다.[73] 2020년에는 미국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50]
대회/연도 | 2002-03 | 2003-04 | 2004-05 | 2005-06 | 2006-07 | 2007-08 | 2008-09 |
---|---|---|---|---|---|---|---|
동계 올림픽 | 6 | ||||||
세계 선수권 대회 | 1 | 4 | 7 | ||||
4대륙 선수권 대회 | 1 | ||||||
전미 선수권 대회 | 1 N | 1 J | 3 | 2 | 1 | 7 | |
GP 파이널 | 6 | ||||||
GP 러시아 컵 | 8 | ||||||
GP 스케이트 아메리카 | 2 | 1 | 8 | ||||
GP 에릭 컵 | 5 | 3 | 2 | ||||
GP NHK배 | 5 | ||||||
세계 Jr. 선수권 | 2 | 4 | |||||
JGP 파이널 | 5 | 3 | |||||
JGP 스케이트 롱비치 | 2 | ||||||
JGP 쿠르슈벨 | 2 | ||||||
JGP 스케이트 브레드 | 1 | ||||||
JGP 소피아 컵 | 2 | ||||||
트리글라프 트로피 | 3 N |
- N = 노비스 클래스, J = 주니어 클래스
6. 프로그램
시즌 | 쇼트 프로그램 | 프리 스케이팅 | 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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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뉴스
Meissner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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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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