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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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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루사는 1246년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도시로, 타루사 공국의 수도였으며,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에 복속되었다. 모스크바 남부 국경을 방어하는 요새 역할을 했으며, 1812년 러시아 원정 당시 러시아군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1917년 소비에트가 수립된 후,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가 붉은 군대에 의해 탈환되었다. 소련 시대에는 반체제 인사들의 정착지였으며,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 현재 타루사는 타루스키 구의 행정 중심지이며, 여러 박물관과 러시아 애니메이션 영화 오픈 페스티벌이 개최되기도 했다. 미술 도자기 공장, 연구소, 제조 공장 등이 있으며,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 등 여러 유명 인사가 묻힌 묘지가 있다.

2. 역사

타루사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남부 국경을 지키는 요새였으며, 남쪽에서 쳐들어오는 크림 칸국리투아니아 대공국 등의 군대로부터 모스크바를 방어했다. 우그라 강 대치 당시에는 이반 3세가 이끄는 모스크바 군의 기지가 되기도 했다.

국토가 남쪽으로 확장되면서 국경 도시로서의 중요성은 사라졌지만, 이후 조국 전쟁 등에서 러시아 군의 거점이 되었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12월 27일 타루사에 소비에트가 수립되었다. 대조국 전쟁 (독소전)에서는 1941년 10월 24일부터 12월 19일까지 독일군에 점령되기도 했다.

마을 성벽이나 요새의 흔적은 지금도 마을의 성당 근처에서 볼 수 있다. 오카 강 높은 기슭에 있는 타루사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았으며,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작가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 외에도 다양한 소설가와 화가들이 타루사에 머물거나 집을 지어 창작 활동을 했다. 또한 소비에트 시대 이래로 영화 촬영도 종종 이루어졌다.

2. 1. 초기 역사

타루사는 1246년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3] 당시 오카 강 상류 공국 중 하나인 타루사 공국의 수도였다.[4] 이 공국의 첫 번째 통치자는 미하일 V세볼로도비치 대공의 아들인 유리 미하일로비치 대공이었다. 이후, 지역 통치자들은 수도를 메슈초프와 보랴티노로 옮겼고, 14세기 말에 모스크바 대공국에 복속되었다.[4] 15세기 중반에 타루사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돌아왔다.[4] 16세기에는 크림 타타르족과 노가이 호르드에 대항하기 위해 흙담과 참호로 요새화되었다.[4] 1876년에는 타루사에 40명의 장인과 7개의 작은 공장이 있었다.[4]

타루사라는 지명은 오카 강의 지류인 타루사 강에서 유래했다. 1246년 타루사는 오카 강 상류 공국에 속하는 타루사 공국의 수도였으나, 이후 공들은 메쇼프스크와 볼랴티노로 거처를 옮겼고, 14세기에 타루사가 모스크바 대공국에 병합되었다.

타루사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남부 국경을 굳게 지키는 곳이었으며, 남쪽에서 쳐들어오는 크림 칸국리투아니아 대공국 등의 군대로부터 모스크바를 방어하기 위해 요새가 건설되었다. 모스크바 군과 대 오르다 군이 대치했던 우그라 강 대치 당시에는 이반 3세가 이끄는 모스크바 군의 기지가 되었다.

2. 2. 모스크바 대공국과 리투아니아

타루사는 1246년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3] 당시 오카 강 상류 공국 중 하나인 타루사 공국의 수도였다.[4] 이 공국의 첫 번째 통치자는 미하일 V세볼로도비치 대공의 아들인 유리 미하일로비치 대공이었다. 이후, 지역 통치자들은 수도를 메슈초프와 보랴티노로 옮겼고, 14세기 말에 타루사는 모스크바 대공국에 복속되었다.[4] 15세기 중반에 타루사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돌아왔다.[4]

2. 3. 러시아 제국 시기

1246년부터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타루사는 오카 강 상류 공국 중 하나인 타루사 공국의 수도였다.[3][4] 이 공국의 첫 번째 통치자는 미하일 V세볼로도비치 대공의 아들인 유리 미하일로비치 대공이었다. 이후, 지역 통치자들은 수도를 메슈초프와 보랴티노로 옮겼고, 14세기 말에 타루사는 모스크바 대공국에 복속되었다. 15세기 중반에 타루사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돌아왔다.[4] 16세기에는 크림 타타르족과 노가이 호르드에 대항하기 위해 흙담과 참호로 요새화되었다.[4] 1876년에는 타루사에 40명의 장인과 7개의 작은 공장이 있었다.[4]

2. 4. 소비에트 연방 시기

1917년 12월 27일, 타루사에 소비에트 권력이 확립되었다.[4] 그 후 몇 년 동안, 마을의 교회는 폐쇄되었고 스탈린의 기념비가 중앙 광장에 세워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은 타루사에 접근하여 모스크바로 가는 길에 이 도시를 점령했다. 1941년 10월 24일부터 12월 19일까지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후 붉은 군대가 독일군의 맹렬한 포화 속에서 겨울에 오카 강을 건너 오카 강 상류의 독일 요새를 성공적으로 공격하여 도시를 탈환했다.[4] 현재 타루사의 요새와 도시 성벽의 잔해는 베드로와 바울 대성당 근처의 지역 공원에서 볼 수 있다.

타루사의 레닌 거리


소련 시대 동안 타루사는 많은 반체제 인사와 소련 당국에 의해 탄압받은 사람들이 정착하는 장소가 되었다. 아나톨리 마르첸코, 라리사 보고라즈, 글레브 야쿠닌, 파벨 리트비노프, 알렉산드르 긴즈버그, 안드레이 아말리크, 세르게이 코발레프, 조야 크라크말니코바, 레프 코펠레프, 프리다 비그도로바와 같은 유명한 반체제 인물들의 고향이 되었다. 타티아나 멜니코바의 저서 ''타루사 - 101번째 킬로미터''는 타루사에 살았던 반체제 인사들의 삶과 운명을 다루고 있다.

1961년,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는 그의 유명한 ''타루사 페이지''를 출판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 책은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중앙 당의 검열을 벗어나 다양한 자유 사상가와 반체제 작가들에게 지면을 제공한 소련에서 유일한 책이 되었다. 이 책이 출판된 후, 이념적으로 유해한 것으로 선언되어 모든 서점과 도서관에서 제거되었다. 칼루가 출판사 사장은 견책을 받았고, 편집장은 해고되었으며, 다른 탄압도 뒤따랐다. 파우스토프스키가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개인적으로 호소한 덕분에 계획된 탄압의 물결이 멈출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루사 페이지''는 소련 문학에서 의미 있고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 책은 불라트 오쿠자바, 블라디미르 막시모프, 프리다 비그도로바, 나데즈다 만델슈탐, 나움 코르자빈과 같은 작가들을 대중에게 소개했으며, 이들은 이후 몇 년 동안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타루사의 부활 성당

3. 행정 구역 및 문화

=== 행정 구역 ===

행정 구역 틀 내에서 타루사는 타루스키 구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한다.[5] 지방 자치체로서 타루사 도시는 타루스키 시립 구에 '''타루사 도시 정착지'''로 통합된다.[6]

=== 문화 ===

타루사의 츠베타예프 가족 박물관


타루사에는 타루사 지역 향토 박물관과 츠베타예프 가족 박물관과 같은 여러 인기 있는 박물관이 있다. 또한 칼루가(Kaluga) 지역 미술관의 분관인 타루사 타운 미술관이 있으며, 보리스 쿠스토디예프(Boris Kustodiev), 니콜라이 크리모프(Nikolay Krymov), 이반 아이바조프스키(Ivan Aivazovsky), 레프 라고리오(Lev Lagorio), 바실리 폴레노프(Vasily Polenov)와 같은 러시아 예술가들의 풍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러시아 애니메이션 영화 오픈 페스티벌(Open Russian Festival of Animated Film)은 2002년까지 타루사에서 열렸으며, 이후 수즈달(Suzdal)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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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행정 구역

행정 구역 틀 내에서 타루사는 타루스키 구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한다.[5] 지방 자치체로서 타루사 도시는 타루스키 시립 구에 '''타루사 도시 정착지'''로 통합된다.[6]

3. 2. 문화



타루사에는 타루사 지역 향토 박물관, 츠베타예프 가족 박물관 같은 여러 인기 있는 박물관이 있다. 칼루가 지역 미술관의 분관인 타루사 타운 미술관도 있는데, 보리스 쿠스토디예프, 니콜라이 크리모프, 이반 아이바조프스키, 레프 라고리오, 바실리 폴레노프 같은 러시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러시아 애니메이션 영화 오픈 페스티벌은 2002년까지 타루사에서 열렸으며, 이후 수즈달로 옮겨졌다.

오카 강 높은 기슭에 있는 타루사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았다.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작가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 외에도 다양한 소설가와 화가들이 타루사에 머물거나 집을 지어 창작 활동을 했다. 소비에트 시대 이래로 영화 촬영도 종종 이루어졌다.

4. 경제

타루사에는 미술 도자기 공장,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산하 러시아 우주 연구소의 디자인 스튜디오, 제조 공장, 유제품 공장이 있다.

5. 묘지

타루사에는 구 묘지와 신 묘지, 두 개의 묘지가 있다. 구 묘지에는 작가 콘스탄틴 파우스토프스키, 조각가 바실리 바타긴,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딸 아리아드나 에프론, 건축가 세르게이 크루틸린, 작가 나데즈다 크란디예프스카야가 묻혀 있다.

참조

[1] 간행물 2010Census
[2] 서적 Географические названия мира Москва 1998
[3] 서적 The Columbia Gazetteer of the World: A to G https://books.googl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8
[4] 서적 Słownik geograficzny Królestwa Polskiego i innych krajów słowiańskich, Tom XII
[5] 간행물 OKATO reference
[6] 법률 Law #369-OZ
[7] 웹사이트 CITY POPULATION http://www.citypopul[...]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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