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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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벨라는 19세기 말 브라질에서 시작된 빈민가로, 카누두스 전쟁 이후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한 군인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노예제 폐지 후 해방된 흑인들의 유입과 도시화로 인해 파벨라는 빈민가로 변모했으며, 1930년대부터 브라질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산업화로 인한 이주민 증가와 군사 독재 정권의 파벨라 근절 정책으로 파벨라의 규모가 커졌다. 현재 브라질 인구의 약 6%가 파벨라에 거주하며, 2010년 기준 상하수도, 전기, 쓰레기 수거 등의 서비스가 일부 제공되고 있다. 파벨라는 사회적 차별과 빈곤의 상징으로, 대중문화의 소재로도 활용되며, 관광 대상이 되기도 한다. 브라질 정부는 파벨라 개선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왔으나, 파벨라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제툴리우 바르가스 정권은 1930년대 도시 재개발을 명목으로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에서 대규모 철거를 진행했고, 이로 인해 쫓겨난 사람들이 리우데자네이루 외곽에 판잣집 주택가를 형성하면서 최초의 파벨라가 만들어졌다. 바르가스의 이스타두 노부 정권은 비밀 경찰을 이용해 도시빈민을 살해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브라질 전역에 파벨라를 건설했다.
파벨라는 빈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브라질의 불평등한 부의 분배와 깊은 관련이 있다. 브라질은 소득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나라 중 하나로,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상당수의 국민이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21]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은 파벨라 주민들이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착취당하는 환경을 만들었다.[22]
2. 역사
1950년대 브라질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파벨라의 규모를 더욱 확장시켰다.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았지만, 도시 주택을 살 여유가 없어 파벨라에 유입되었다. 브라질 정부는 파벨라를 다른 도시와 차단하고자 경찰을 배치해 포위했고, 주민과 경찰 사이의 충돌은 일상적으로 발생했다.
1964년 브라질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극우 군사독재정권은 파벨라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파벨라의 주택을 불태우면서 파벨라는 학살의 현장으로 변했다. 군사독재정권이 리우데자네이루 외곽 재개발 정책을 강행한 이후 강제 이주된 파벨라로 유입되면서 파벨라는 인구 과밀화로 몸살을 앓았다.
이에 파벨라 주민들은 군사독재정권의 파벨라 탄압에 무장투쟁을 통해 저항했고, 거주 환경 개선을 위해 상수도관을 건설했다.[54] 1980년대부터 다수의 주민들이 토지없는 노동자 운동에 가입해 토지개혁 운동을 주도했다.[55]
2. 1. 파벨라의 기원
"파벨라"라는 용어는 1800년대 후반, 카누두스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이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3] 이들은 바이아(Bahia) 주에서 자라는 '파벨라(favela|파벨라pt)'라는 식물(Cnidoscolus quercifoliusla)의 이름을 따서, 정착한 언덕을 '모루 다 파벨라(Favela Hill)'라고 불렀다.[5][6][7][8]
노예제 폐지 이후, 도시로 이주한 흑인들이 파벨라에 유입되면서 파벨라는 빈민가로 변모했다. 파벨라가 건설되기 전부터 탈주한 흑인 노예들이 세운 킬롱보(quilombo)라는 마을이 리우데자네이루 주변 산비탈에 있었고, 1888년 노예제 폐지 이후 갈 곳 없는 흑인들이 이곳으로 유입되었다.
1940년대 주택난으로 도시 빈민들은 교외에 판자촌을 짓기 시작했고, 파벨라는 빈곤한 카리오카(리우 거주민)들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다. 파벨라의 폭발적인 성장은 1940년대 제툴리우 바르가스의 산업화 정책으로 수십만 명의 이주민이 유입된 시기와 1970년대 판자촌이 리우 도시를 넘어 대도시 외곽으로 확장된 시기까지 이어졌다.[11]
2. 2. 파벨라의 확장과 정부 정책
제툴리우 바르가스 정권은 1930년대 도시 재개발을 명목으로 대규모 철거를 진행했고, 이로 인해 쫓겨난 사람들이 파벨라를 형성했다. 1964년 브라질 쿠데타 이후 군사독재정권은 파벨라 주민들을 탄압하고 학살했으며, 파벨라는 인구 과밀화 문제를 겪었다.[54] 파벨라 주민들은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고, 거주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1980년대부터는 토지없는 노동자 운동에 참여하여 토지개혁 운동을 주도했다.[55]
1950년대 브라질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파벨라의 규모를 더욱 확장시켰다. 브라질 정부는 파벨라를 도시와 차단하려 했으나 주민들과의 충돌이 발생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대규모 파벨라 제거 프로그램이 시행되어 파벨라 거주자들은 도시 외곽으로 강제 이주되었다.[40] 이 과정에서 군사 정권은 제한적인 지원만을 제공했고, 파벨라 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41]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공공 정책은 파벨라 근절에서 보존과 개선으로 전환되었다. 1993년 시작된 "파벨라-바이루" 프로그램은 파벨라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했다. 그러나 1995년 "오페라상 리우"라는 군경 합동 개입이 승인되면서 폭력 문제는 여전히 심각했다.
2013년 세계청년대회 기간 중 프란치스코 교황이 브라질의 파벨라를 방문하기도 했다.
2003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파벨라의 생활기반시설을 개선하고 관광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08년 룰라는 치안을 명목으로 평화경찰부대를 설립하고 파벨라에 배치했지만, 이는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56]
2. 3. 룰라 정부 이후
2003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파벨라의 생활기반시설 개선 및 관광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56] 2008년 룰라 대통령은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평화경찰부대(UPP)를 설립하고 파벨라에 배치했지만, 이는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되기도 했다.[56]
3. 파벨라의 사회와 문화
20세기 브라질 정부는 도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시도했다. 1970년대에는 군사 정권 주도로 파벨라를 철거하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공 주택으로 이주하거나, 원래 살던 농촌 지역으로 돌아가야 했다.[23]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파벨라를 개선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는 오히려 파벨라를 중산층 주거 지역으로 바꾸면서 원래 거주민들을 거리로 내몰거나 도시 외곽으로 쫓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24]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같은 대도시에서는 빈곤층 인구와 파벨라가 급증했다. 이를 "파벨리자상"(파벨라 증가 또는 파벨라화)이라고 부른다. 1969년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약 300개의 파벨라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 수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950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 인구의 7%만이 파벨라에 거주했지만, 현재는 19%가 파벨라에 살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리우데자네이루 전체 인구 성장률은 둔화되었지만, 파벨라 인구는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2010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의 빈민가 인구는 16% 감소하여 전국 인구의 약 6%를 차지한다고 한다.[27]
3. 1. 파벨라 주민과 차별
파벨라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파벨라두스''(favelados)라고 부른다. 파벨라는 빈곤과 관련이 있으며, 브라질의 불평등한 부의 분배의 결과이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국가 중 하나로, 상위 10%가 국민소득의 50%를 차지한다.[21] 그 결과, 파벨라 주민들은 차별과 불평등, 착취를 경험한다.[22] 파벨라 거주와 관련된 오명은 일자리 확보에 어려움을 초래한다.[1]
최초 파벨라 주민들은 아프리카계였으며, 현재도 주류를 이룬다. 19세기 유럽의 빈곤한 이민자 유입으로 백인계 주민들도 파벨라에 들어왔다. 과거에는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았지만, 현재는 경제적 이유로 차별받고 있다.[40]
브라질 정부는 20세기 동안 빈곤 대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했다. 1970년대 군사 정권 시절 파벨라 철거로 10만 명 이상이 공공 주택이나 지방으로 이주했다.[23]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한 빈곤 지역 대책도 시행되었으나, 이는 도심 인근 빈곤 지역을 고급 주택지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기존 파벨라 주민들을 거리로 내몰거나 일자리가 없는 교외로 내쫓는 결과를 낳았다.[24] 리우데자네이루 시의 노숙자 인구는 대부분 흑인이며, 파벨라의 중산층 주택화와 심각한 빈곤으로 거처를 잃은 사람들이다.[40]
3. 2. 종교
움반다(움반다)와 칸돔블레(칸돔블레)는 전통적으로 파벨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종교였으나, 최근 수십 년 동안 오순절교(오순절교)를 포함한 복음주의(복음주의)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1] 복음주의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동시에 종교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1]
3. 3. 음악
파벨라에서 인기 있는 음악 장르로는 펑크, 힙합, 삼바가 있다.[28] 최근에는 파벨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펑크 카리오카가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29] 이러한 음악은 종종 다른 노래의 샘플을 사용한다. 인기 있는 펑크 아티스트로는 MC 날두(MC Naldo)와 부셰샤(Buchecha)가 있다.[1] '바이리스 펑크(Bailes funk)'는 이러한 펑크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파티의 형태로, 파벨라에서 유행했다.[1] 인기 있는 힙합 아티스트 MV 빌(MV Bill)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다지 디 데우스 출신이다.[1] 파벨라 브라스(Favela Brass)는 리우의 페레이랑에 설립된 무료 음악 학교로, 어린이들에게 음악 공연을 통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30]
4. 파벨라에 대한 공공 정책
"파벨라"라는 용어는 1800년대 후반, 카누두스 전쟁에서 온 병사들이 리우데자네이루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3][4] 이들은 리우데자네이루의 프로비덴시아 언덕을 "파벨라 언덕"이라 불렀는데, 이는 바이아 지역의 "모루 다 파벨라"라는 언덕 이름에서 유래했다.[5][6][7][8] 1950년대 파벨라는 사회 문제로 인식될 정도로 성장했으며, 1937년 건축법을 통해 공식 문서에서 처음으로 파벨라의 존재가 인정되었다.[32]
1940년대 주택난으로 인해 도시 빈민들은 교외에 판자촌을 건설했고, 파벨라는 빈곤한 카리오카(리우 거주민)들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다.[11] 1950년대 도시화로 인해 시골에서 도시로 대규모 이주가 발생했고,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파벨라에 남게 되었다. 도시는 파벨라에 상하수도, 전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고, 파벨라는 빈곤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되었다.
1970년대 브라질 군사 독재 정권은 파벨라 근절 정책을 시행하여 수십만 명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12] 카를루스 라세르다 정권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시다지 디 데우스(신의 도시)와 같은 공공 주택 프로젝트로 이주했지만, 열악한 도시 계획과 부족한 투자로 인해 새로운 파벨라로 붕괴되었다. 1980년대에는 마약 거래와 관련된 폭력이 증가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유럽으로 향하는 코카인의 중간 지점이 되었고, 마약 거래는 소규모 무기 거래 증가와 갱단 간의 경쟁을 야기했다.[12]
현재 대부분의 파벨라는 1970년대 건설 붐으로 인해 브라질의 가난한 주에서 노동자들이 농촌 유출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13] 시간이 지나면서 파벨라에는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주민들은 사회 및 종교 단체를 조직하여 서비스를 얻고 집을 개선했다. 그러나 혼잡, 비위생, 영양실조, 오염으로 인해 질병이 만연하고 유아 사망률이 높으며, 홍수와 산사태의 위험도 있다.[14]
파벨라의 서비스 (2010년 인구 조사) | 비율[15] |
---|---|
상하수도 | 67.3 |
급수 | 88.3 |
전기 | 99.7 |
쓰레기 수거 | 95.4 |
파벨라 거주자 | 인구 |
브라질 인구 중 파벨라 거주자 | 11,400,000 (6%) |
파벨라의 인구 통계 | 비율[16] |
파르두 또는 흑인 | 68.4 |
문맹 | 8.4 |
19세기 후반, 국가는 카누두스 전쟁(1896-7) 참전 용사들에게 프로비덴시아 언덕 정착을 허가하며 최초의 무허가 정착지 건설을 규제했다. 흑인 노예 출신들의 유입으로 정착지가 확장되었고, 이 언덕은 모루두 프로비덴시아로 알려졌다. 최초의 공식적인 정부 개입은 프로비덴시아와 주변 빈민가의 과밀화와 질병 발생에 대한 대응이었다.
20세기 초 파벨라는 반사회적 행동과 질병 확산의 온상으로 여겨졌다. 모루다 시프리아나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엘비라 로드리게스 마르케스가 중상을 입자, 마르케스 가족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상류층이 명예가 없다고 여겼던 파벨라 주민들에 대한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17]
1940년대 "파르케 프로레타리우" 프로그램은 파벨라 주민들을 임시 주택으로 이주시켰지만, 새로운 공공 주택 단지는 건설되지 않았고, 임시 주택은 새로운 파벨라로 성장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공공 정책은 파벨라 근절에서 보존과 개선으로 전환되었다. 1993년 파벨라-바이루 프로그램은 기본적인 위생 서비스와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파벨라를 공식 도시 공동체에 연결했으며, 토지 소유권을 합법화했다. 그러나 총격 사건, 마약 갱단, 폭력은 증가했고, 1995년 국가는 오페라상 리우라는 군경 합동 개입을 승인했다.
2009년 이후 리우데자네이루에는 부유한 지역과 파벨라를 분리하는 벽이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비평가들은 경제적 분리를 위한 것이라고 비난한다.[18]
4. 1. 파벨라 철거 정책과 실패
제툴리우 바르가스 정권 시기부터 브라질 정부는 파벨라 철거 정책을 시행했다.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에서 재개발을 명목으로 대규모 철거가 이루어졌고, 쫓겨난 사람들은 도시 외곽에 판잣집을 짓고 살아야 했다.[54] 바르가스의 이스타두 노부 정권은 비밀경찰을 동원해 도시 빈민을 탄압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브라질 전역에 파벨라를 형성했다.1940년대 "Parque Proletário(프롤레타리아 공원)" 계획은 파벨라를 철거하고 주민들을 임시 주택으로 이주시킨 후 새로운 공영 주택을 건설하려는 시도였다.[40] 그러나 공영 주택 건설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오히려 새로운 파벨라가 생겨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64년 브라질 쿠데타 이후 군사 정권은 파벨라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54] 이 과정에서 파벨라는 학살의 현장으로 변했고, 강제 이주된 주민들은 인구 과밀과 열악한 주거 환경에 시달렸다. 1970년대 군사 정권은 파벨라를 해체하고 주민들을 교외 지역으로 이주시켰으나, 기반 시설 부족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이 정책은 실패했다.[40][41]
1950년대 레시페 주교였던 엘데르 카마라는 파벨라 주민들을 위한 집합주택 단지 건설 계획인 "Cruzada São Sebastião"(세바스티앙의 십자군)을 추진했지만, 이 역시 제한적인 성공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브라질 정부의 파벨라 철거 정책은 파벨라의 확장과 주민들의 고통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파벨라 주민들은 무장 투쟁으로 저항했고,[54] 1980년대부터는 토지없는 노동자 운동에 참여하여 토지개혁 운동을 주도했다.[55]
4. 2. 파벨라 개선 정책과 한계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공공 정책은 파벨라를 없애는 것에서 벗어나 보존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18] 1993년에 시작된 파벨라-바이루(Favela-Bairro) 프로그램은 파벨라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18]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인 위생 서비스와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도로 연결과 공공 공간을 통해 파벨라를 공식적인 도시 공동체에 연결했으며, 토지 소유권을 합법화했다.[18]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파벨라에서는 총격 사건, 마약 조직, 폭력이 증가했다.[18] 1995년부터 1995년 중반까지 국가는 오페라상 리우(Operação Rio)라는 군경 합동 작전을 승인했다.[18] 오페라상 리우는 이전의 실패한 정책으로 인해 생긴 사회적, 정치적 공백을 틈타 파벨라를 장악한 마약 조직으로부터 통제권을 되찾으려는 시도였다.[18]
2009년 이후 리우데자네이루에는 부유한 지역과 파벨라를 분리하는 벽이 생겼는데, 공식적으로는 자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장벽이 경제적 분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18]
4. 3. 평화유지경찰대(UPP)
2008년부터 리우데자네이루 시의 여러 파벨라에 평화유지경찰대(Unidade de Polícia Pacificadora, 약칭 '''UPP''')가 배치되기 시작했다. UPP는 마약 밀매업자들로부터 파벨라를 되찾기 위한 사법 기관 및 사회 서비스 프로그램이다.[56] 이 프로그램은 세르지우 카브랄 리우 주지사의 지원을 받아 조제 마리아누 벨트라메 주 공공 안전 장관이 이끌었다.
세르지우 카브랄 주지사는 2007년 콜롬비아를 방문하여 2000년 이후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 정부가 시행한 공공 안전 개선 정책을 살펴보았다. 브라질로 돌아온 후, 카브랄 주지사는 리우, 특히 파벨라의 안전 개선을 위해 17억 달러를 확보했다. 2008년, 주 정부는 평화유지경찰대(UPP)를 창설했다. UPP 경찰관들은 특수 훈련을 받았고, 월 300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2012년 10월까지 28개의 파벨라에 UPP가 설치되었으며, 리우 정부는 2014년까지 40개의 UPP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파벨라 내 UPP 설치는 초기에 리우데자네이루의 정예 경찰 대대인 BOPE가 주도했다. BOPE는 갱 두목을 체포하거나 몰아내기 위해 파벨라에 진입하여 중화기와 마약을 압수하고, 수 주에서 수개월 동안 현장을 확보했다. 이후 BOPE는 새롭게 훈련된 수백 명의 경찰관으로 구성된 UPP로 교체되었다. UPP는 해당 파벨라 내에서 지역 경찰 활동을 하며 상주한다.
파벨라에서는 경찰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UPP가 파벨라 내에서 일하는 것이 효과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더 나은 방법이다. 리우의 안전 책임자 조제 마리아누 벨트라메는 UPP의 주요 목적이 마약 밀매를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무장한 사람들이 거리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고문반대기구(OMCT)는 2010년 보고서에서 리우데자네이루 파벨라의 살인율 감소를 언급하며, 공공 안전과 파벨라 내부 정책을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2년 지방 선거 결과, UPP가 관리하는 파벨라 주민들은 마약 두목이나 다른 조직 범죄 집단이 통제하는 지역에 비해 다양한 후보들에게 표를 분산시키는 경향을 보였다.[19]
최근 브라질 정부는 지역 경찰 활동과 참여적 계획을 공공 정책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파벨라 시크(Favela Chic)'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리는 '파벨라-바이루(Favela-Bairro)'를 기반으로, 파벨라를 도시의 공식적인 사회 구조에 통합하고 파벨라 주민들이 지역 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러한 정책 변화가 2014년 FIFA 월드컵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동안 리우가 받았던 많은 언론의 관심에 대한 정부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Anthony(2013)는 정부가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과거의 강압적인 정책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0년 리우 시장 에두아르두 파이스(Eduardo Paes)가 도심 파벨라인 모루 드 프라제레스(Morro de Prazeres)와 라보리아우(Laboriaux)를 철거하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을 예로 들었다.

콜롬비아에서 유입된 코카인 거래는 브라질 사회와 파벨라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파벨라에 마약 사용이 집중되고 지역 갱단들이 마약 판매 및 댄스 파티를 개최함으로써 갱단은 성장하였고,[43] 파벨라가 마약왕에게 지배당하게 되었으며, 마약밀매 조직과 경찰 간의 시가전이나 범죄자들 간의 총격전이 발생하는 곳도 있다. 불법 행위도 만연하여 리우데자네이루 시민 10만 명당 살인율이 40명을 넘었고, 파벨라에서는 이 수치가 더욱 높아진다.[44] 주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마약밀매 조직과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민과 조직이 지역 질서를 유지하고 서로 존중함으로써 파벨라의 범죄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안전한 생활이 가능하다.
2014년 FIFA 월드컵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계기로, 리우데자네이루 주에서는 군경의 특수경찰작전대(Batalhão de Operações Policiais Especiais) 및 민간 경찰의 특별 인력 조정국 등 강력한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범죄조직 소탕작전을 전개하였고,[47][48][49], 이후에는 군경의 평화유지경찰부대(Unidade de Polícia Pacificadora, UPP)를 24시간 주둔시켜 감시하고 있다. 또한 올림픽 기간에는 전국에서 선발된 인원으로 구성된 국가 치안 부대가 순찰을 실시했지만, 그럼에도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50]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일본의 국제협력기구(JICA) 등의 협력을 얻어, 파벨라 지역에 민간 경찰관이 상주하는 파출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경찰관이 수예 강좌 등의 행사를 범죄 예방 활동의 일환으로 기획하는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파출소가 커뮤니티 하우스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파출소를 통한 얼굴을 알 수 있는 범죄 예방이 범죄율 감소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51]
2017년 현재에도 치안 악화는 심각해지고 있으며, 빈번하게 경찰과 군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7년 12월 13일에는 파벨라 중 하나인 마레에 800명 규모의 군대가 투입되는 군사 작전이 전개되었다.[52]
5. 파벨라의 대중문화
파벨라를 소재로 한 다양한 미디어가 제작되어 파벨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확산되었다.[1] 이러한 미디어는 파벨라를 관광 명소로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1]
1959년 영화 《오르페우스 흑인》은 리우에 있는 이름없는 파벨라를 배경으로 한다. 2002년 영화 《시티 오브 갓(원제: Cidade de Deus)》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다드드데우스 파벨라를 배경으로 한다. 2007년 영화 《일급 특수부대》(원제: Tropa de Elite)는 리우데자네이루 군경의 특수경찰작전대대(BOPE, Batalhão de Operações Policiais Especiaispt)를 다룬 작품으로, 리우의 파벨라가 주요 배경이다. 이 영화는 2010년 속편 《일급 특수부대: 적과의 내전》(원제: Tropa de Elite 2)으로 이어진다.
마이클 잭슨은 1995년 자신의 앨범 《히스토리: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제1권》(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의 수록곡 "그들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아"(They Don't Care About Us) 뮤직비디오에서 파벨라를 주요 배경으로 사용했다. 당시 브라질 정부는 파벨라의 빈곤한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우려하여 촬영을 불허했으나, 주민들이 직접 치안과 위생 개선에 힘쓰면서 촬영이 성사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2009년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에는 파벨라가 등장한다. "제압"과 "말벌집" 임무뿐 아니라 멀티플레이어 맵에도 등장하며, 이 맵은 2014년 《콜 오브 듀티: 고스트》의 "침략" DLC에 다시 등장한다. 2015년 비디오 게임 《톰 클랜시의 레인보우 식스 시즈》의 오퍼레이션 스컬 레인 DLC에는 브라질 출신 오퍼레이터 두 명과 브라질 파벨라 맵이 포함되어 있다.
6. 파벨라 관광
1990년대 중반 이후, 파벨라는 새로운 관광지로 떠올랐다. 빈민가 관광의 일환으로 파벨라 투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투어는 파벨라의 현실을 보여주고 빈곤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빈곤을 상품화하고 주민들의 삶을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1]
파벨라 투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31]
특징 |
---|
파벨라 내 사회-지리적 차별과 공간적 불균형 (특히 임대료, 부동산 시장 및 실업)에 대한 설명 |
현대적인 인프라 장비 (예: 무선 LAN, 의료 서비스) 및 최신 쇼핑 및 서비스 인프라 (예: 패션 매장, 은행, 카페)에 대한 정보 |
사회 또는 문화 프로젝트의 자원 봉사자와의 만남 및/또는 해당 프로젝트 방문 |
학교, 유치원 또는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기타 기관 방문 |
개인 주택 방문 및 거주자와의 의사소통 |
식당이나 카페 방문 |
브라질 연방 정부는 파벨라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정부는 파벨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리우 탑 투어 프로젝트(Rio Top Tour Project)'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산타 마르타 파벨라에서 시작되었으며, 연방 정부는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145000USD (23만 레알)을 지원했다.[33] 관광객을 위해 영어 표지판 설치, 삼바 학교 개방, 전망대 건설 등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주민들은 관광 가이드로 훈련받고 있다.[33]
7. 파벨라의 미래
파벨라 인구는 경제 악화, 사회적 유동성 감소, 교육 불평등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45] 중산층의 빈곤화와 빈곤층의 파벨라 유입은 파벨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저학력·미숙련 노동자에 대한 구인난, 브라질 교육 공교육 수준 저하, 빈곤층의 고학력 취득 어려움 등은 파벨라 탈출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브라질 국립·주립 대학교는 학비가 무료이지만, 입학 경쟁이 치열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파벨라 출신은 입학하기 어렵다.[45]
1950년 리우데자네이루 인구의 7%만이 파벨라에 거주했지만, 21세기에는 19%로 증가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리우데자네이루 전체 인구 증가율은 8% 감소했지만, 파벨라 인구는 41%나 증가했다. 1990년대 이후 파벨라 인구 증가율은 24%로 도시 전체 증가율 7%를 크게 상회한다.
브라질 정부는 파벨라 문제 해결을 위해 "Favela Bairro"(근처 파벨라) 계획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46]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이 계획은 파벨라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회 기반 시설 및 생활 수준 개선을 목표로 한다. 2005년까지 6억달러가 투입되어 공원, 도로 건설, 사회복지사 배치 등이 이루어졌다. 전기, 상하수도, 쓰레기 수거 서비스, 어린이집 등이 파벨라에 도입되었고, 가정폭력, 성희롱, 중독 상담도 제공된다. 계획 시작 후 파벨라 내 상업 활동 증가와 지가 상승도 나타났다.[46]
파벨라의 서비스 (2010년 인구 조사) | 비율[15] |
---|---|
상하수도 | 67.3 |
급수 | 88.3 |
전기 | 99.7 |
쓰레기 수거 | 95.4 |
파벨라 거주자 | 인구 |
브라질 인구 중 파벨라 거주자 | 11,400,000 (6%) |
파벨라의 인구 통계 | 비율[16] |
파르두 또는 흑인 | 68.4 |
문맹 |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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