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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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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마길은 조선 시대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하여 서민들이 다니던 길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종로1가, 공평동을 지나는 도로로, 2010년 도로명 주소로 고시되었다. 과거에는 종로1가에서 6가까지 이어졌으나, 현재는 일부 구간만 남아있다. 피마길은 음식점과 여관 등이 밀집된 종로의 명물이었으나, 재개발로 인해 변화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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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마길
피맛골
한글피맛골
한자-
가타카나피맛코루
로마자 표기alphabet-type: 문화관광부 2000년식
alphabet: Pimatgol
상세 정보
어원말을 피하는 골목
역사적 배경조선 시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지나갈 때 평민들이 말을 피하여 다녀야 했던 길
특징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현재 상황종로 재개발로 인해 대부분 사라짐. 일부 구간만 보존.
관련 문화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공간, 다양한 음식점과 술집이 위치.
보존 노력일부 구간 원형 보존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는 조형물 설치
참고 문헌전종한, 도시 뒷골목의 ‘장소 기억’ -종로 피맛골의 사례-, 대한지리학회지, 2009
조선일보, 600년서울 종로 피마동(避馬洞) 골목, 1991-09-26
머니투데이, 서울 종로 '피맛길' 원형 보존된다, 2009-10-19
프레시안,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2013-07-10
아시아경제, [한국의 골목길] 피맛골, '빈대떡 신사' 달래주던 대폿집은 어디로..., 2018-10-26

2. 역사

피마길은 조선 시대에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서민들이 다녔다는 '피마(避馬)'에서 유래했다. 과거 종로구 청진동, 종로1가에서 6가까지 이어졌으나, 현재는 종로1가 교보문고 뒤편에서 종로3가 사이에 일부 남아있다.

1980년대 초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후, 2003년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이 허가되어 청진동 166번지 일대에서 건축 공사가 시작되었다. 2004년 1월, 공사 현장에서 조선 시대 건축물에 사용된 장대석 10여 점과 기와 등이 발견되었다.

2. 1. 조선시대

조선 시대에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하여 서민들이 다녔다는 의미의 '피마(避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는 고관과 마주치면, 고관이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피하려는 서민들에게는 골목길을 오가는 습관이 생겨났고, 피맛골은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에는 현재의 종로구 청진동, 종로1가에서 6가까지 이어졌지만, 현재는 종로1가의 교보문고 뒤편에서 종로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피맛골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도 생선구이를 제공하는 식당을 비롯한 각종 음식점, 여관 등이 밀집되어 있는 종로의 명물이다.

1980년대 초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후, 2003년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이 허가되면서 청진동 166번지 일대에서 건축 공사가 시작되었다. 2004년 1월, 공사 현장에서 조선 시대 건축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장대석 10여 점과 기와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2. 2. 현대

조선 시대에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서민들이 다녔다는 의미인 '피마(避馬)'에서 피마길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1]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는 고관과 마주치면, 고관이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1] 이러한 불편을 피하려는 서민들은 골목길을 오가는 습관이 생겨났고, 피맛골은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1]

과거 피마길은 현재의 종로구 청진동, 종로1가에서 6가까지 이어졌지만, 현재는 종로1가 교보문고 뒤편에서 종로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1] 현재도 생선구이를 제공하는 식당을 비롯한 각종 음식점, 여관 등이 밀집되어 있는 종로의 명물이다.[1]

1980년대 초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후, 2003년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이 허가되면서 청진동 166번지 일대에서 건축 공사가 시작되었다.[1] 2004년 1월, 공사 현장에서 조선 시대 건축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장대석 10여 점과 기와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1]

3. 도로 정보

도로명으로서 '''피마길'''(避馬길, Pima-gil)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247-2에서 공평동 100-18까지를 잇는 317m의 도로이다. 2010년 7월 2일 종로구 도로명 주소가 고시되었다.[1] 현재는 도로라기보다 건물들 내부를 지나는 통로에 가까워 차량은 통행할 수 없으며, 다른 도로와의 교차로는 횡단보도로 되어 있다.[1]

3. 1. 주요 경유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 종로1가 - 공평동)


3. 2. 노선

도로명으로서 '''피마길'''(避馬길, Pima-gil)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247-2에서 공평동 100-18까지를 잇는 도로이다. 2010년 7월 2일 종로구 도로명 주소가 고시되었다.[1] 현재는 도로라기보다 건물들 내부를 지나는 통로에 가까운 형태이다. 따라서 차량은 통행할 수 없으며 다른 도로와의 교차로는 횡단보도로 되어 있다.[1]

교차로접속 노선소재지비고
종로1길종로구종로1.2.3.4가동교차로 이름 없음
종로3길
종로5길
종로7길


4.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하여 서민들이 다녔다는 의미의 '피마(避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는 고관과 마주치면, 고관이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피하려는 서민들에게는 골목길을 오가는 습관이 생겨났고, 피맛골은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5. 특징

도로명으로서 피마길(避馬길, Pima-gil)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247-2에서 공평동 100-18까지를 잇는 도로이다. 2010년 7월 2일 종로구 도로명 주소가 고시되었다. 현재는 도로라기보다 건물들 내부를 지나는 통로에 가까운 형태이므로, 차량은 통행할 수 없으며 다른 도로와의 교차로는 횡단보도로 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하여 서민들이 다녔다는 의미의 '피마(避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는 고관과 마주치면, 고관이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피하려는 서민들에게는 골목길을 오가는 습관이 생겨났고, 피맛골은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6. 재개발 논란

피마길은 조선 시대에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하여 서민들이 다녔다는 의미의 '피마(避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말을 타고 종로를 지나는 고관과 마주치면, 고관이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피하려는 서민들에게는 골목길을 오가는 습관이 생겨났고, 이때 피마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1]

1980년대 초 도심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후, 2003년 서울특별시 건축위원회에서 재개발이 허가되면서 청진동 166번지 일대에서 건축 공사가 시작되었다. 2004년 1월, 공사 현장에서 조선 시대 건축물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장대석 10여 점과 기와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1]

7. 사진

참조

[1] 저널 도시 뒷골목의 ‘장소 기억’ -종로 피맛골의 사례- https://scienceon.ki[...] 대한지리학회 2021-01-25
[2] 뉴스 600년서울 종로 피마동(避馬洞) 골목 https://newslibrary.[...] 2021-01-25
[3] 뉴스 서울 종로 '피맛길' 원형 보존된다 http://news.mt.co.kr[...] 2010-02-11
[4] 뉴스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https://www.pressian[...] 2021-01-25
[5] 뉴스 "[한국의 골목길] 피맛골, '빈대떡 신사' 달래주던 대폿집은 어디로..." http://view.asiae.co[...]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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