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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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상은 북위 효창 시대의 혼란을 피해 고구려로 망명한 인물이다. 고구려 안장왕은 거란을 시켜 한상을 데려오게 했으며, 대사자 관등을 내리고 요동에 안치했다. 이후 동족 500여 명을 이끌고 동위 또는 북제로 재이주했으며, 그의 아버지 한기는 수나라에서 관직을 지냈다. 서진 말기부터 동위와 서위의 대립까지 북중국의 혼란으로 중국계 이민의 고구려 유입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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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한상 |
원어 이름 | 韓詳 |
국적 | 북위 → 고구려 |
작위 | 북위 평주사마자의참군 |
작위 2 | 고구려 대사자 |
군주 | 북위 효명제 |
군주 2 | 고구려 안장왕 |
출생일 | 미상 |
출생지 | 미상 |
사망일 | 미상 |
사망지 | 미상 |
성별 | 남성 |
자녀 | 한기 |
2. 생애
북위 효창 시대(525년~528년)에 중국 북부의 혼란을 피해 고구려로 망명하였다.[1][2] 고구려 안장왕에게서 관직을 받고[3][1] 요동 지역에 안치되었으나,[1] 이후 동족 500여 명을 이끌고 다시 중국의 동위 또는 북제로 재이주하였다.[1]
2. 1. 고구려 망명
북위 효창 시대(525년~528년)에 중국 북부 지역의 혼란이 극심해지자, 한상은 이를 피해 고구려로 망명했다.[1] 고구려의 안장왕은 당시 거란을 동원하여 북위의 영주를 공격하게 했고, 이때 평주사마자의참군(平州司馬諮議參軍)이었던 한상과 그가 이끌던 500호를 고구려로 데려왔다.[3] 안장왕은 한상에게 대사자(大使者)의 관등을 내렸으며, 고구려의 대상이 직접 그를 만났다고 전해진다.[3] 한기(한상의 아버지) 묘지명에는 그가 고구려에서 "태사(太史)"에 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며,[2] 이후 요동 지역에 안치되었다.[1]이러한 중국계 인물의 고구려 유입은 서진 말기의 혼란이나 동위와 서위의 대립 시기처럼 북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혼란기에 주로 발생했으며, 고구려가 이러한 혼란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2] 한상의 망명 역시 520년대 북위 말기 내란을 틈타 고구려가 요서 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영주의 유력 가문이었던 한상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2]
이후 한상은 동족 500여 명을 이끌고 동위 또는 북제로 다시 이주하였다.[1]
2. 2. 요동 안치 및 재이주
북위 효창 시대(525년~528년)에 중국 북부 지역의 혼란을 피해 고구려로 망명했다.[2] 이후 요동 지역에 안치되었으며, 고구려로부터 태사(大司者, 대사자)라는 관직을 받았다.[1][2] 그러나 이후 한상은 동족 500여 호를 이끌고 다시 중국의 동위 또는 북제로 재이주하였다.[1][2]한상과 같은 중국계 인물의 고구려 유입은 당시 북중국의 정치적 혼란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서진 말기의 혼란기나 동위와 서위가 대립하던 시기 등, 군사적·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될 때마다 중국인들이 고구려로 망명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구려 역시 북중국의 정치·군사적 상황 변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2] 특히 한상의 망명은 520년대 북위 말기의 내란을 틈타 고구려가 요서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영주 지역의 유력 가문(호족)을 받아들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2]
한상의 아버지인 한기는 북제를 거쳐 수나라에서 관직 생활을 했으며, 590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3. 역사적 배경
북위 효창 시대(525년~528년)의 혼란을 피해 고구려로 망명한 중국계 인물들이 있었다.[1] 이러한 유망민 유입은 서진 말기나 동위와 서위의 대립 시기 등 북중국의 정치적 불안기 때마다 나타났던 현상이다.[2] 한상 역시 이 시기 고구려로 망명하여 요동에 안치되었고, 고구려로부터 "태사(대사자)" 벼슬을 받았다.[1] 이는 520년대 북위의 내란을 틈타 고구려가 요서로 진출하며 영주의 호족 세력을 받아들인 정책과 관련이 있다.[2] 그러나 이후 한상은 동족 500여 명을 이끌고 다시 동위 또는 북제로 이주하였다.[1] 그의 아버지 한기는 북제를 거쳐 수나라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590년에 사망했다.[1]
3. 1. 북중국의 혼란과 고구려의 유망민 수용
북위 효창 시대(525년~528년)의 극심한 혼란은 많은 중국인이 고구려로 망명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중국계 유민의 고구려 유입은 서진 말기의 혼란기나 동위와 서위가 대립하던 시기 등 북중국의 군사적,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2] 이는 고구려가 북중국의 정치 및 군사적 격변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활용하여 요서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520년대 북위 말기의 내란 상황을 이용하여 고구려는 영주 지역의 호족 세력을 받아들이는 등 적극적인 유민 수용 정책을 펼쳤다.[2]한상 역시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고구려로 망명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시 북위의 평주사마자의참군(平州司馬諮議參軍) 직책에 있던 한상은 고구려 안장왕의 주목을 받았다. 안장왕은 거란을 동원하여 북위의 영주(營州)를 공격하도록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한상과 그가 이끌던 500호의 무리를 고구려로 데려왔다.[3] 한기 묘지의 기록에 따르면, 한상은 효창 연간의 혼란을 피해 고구려로 망명했으며, 이후 요동 지역에 안치되었다고 한다.[2][1]
고구려로 귀순한 한상은 안장왕으로부터 대사자(大使者)라는 높은 관등을 수여받았으며, 고구려의 대상이 직접 그를 접견하는 등[3] 상당한 예우를 받았다. 이는 당시 고구려가 북위의 혼란을 기회로 삼아 요서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한상과 같은 북위의 유력 인사를 적극적으로 포섭하려 했음을 시사한다.[2]
그러나 한상은 고구려에 정착한 이후, 다시 동족 500여 명을 이끌고 동위 또는 북제로 재이주하였다.[1] 그의 아버지인 한기는 이후 북제를 거쳐 수나라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590년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1]
4. 가계
북위 효창 연간(525년~528년)의 혼란을 피해 고구려로 망명했다.[1] 이후 요동 지역에 정착했으며, 고구려로부터 '태사(대사자)'라는 관직을 받았다. 이후 동족 500여 명을 이끌고 동위 또는 북제로 다시 이주했다.[1]
서진 말기의 혼란이나 동위와 서위의 대립 시기처럼, 북중국의 정치적·군사적 혼란기에는 중국인들이 고구려로 망명하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이는 고구려가 북중국의 정세 변화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2] 한상의 망명은 520년대 북위 말기 내란 시기에 고구려가 요서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영주 지역의 유력 가문들을 받아들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2]
한상의 아버지 한기는 북제를 거쳐 수나라에서 벼슬을 지냈으며, 590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참조
[1]
뉴스
한국 고대사회 外來人의 존재양태와 사회적 역할
https://cms.dankook.[...]
檀國大學東洋學硏究院
2017-07
[2]
뉴스
5호16국·남북조 상쟁기 이주민과 고구려·백제
http://contents.nahf[...]
国史編纂委員会
[3]
뉴스
한국 고대사회 外來人의 존재양태와 사회적 역할
https://cms.dankook.[...]
檀國大學東洋學硏究院
2017-07
[4]
뉴스
5호16국·남북조 상쟁기 이주민과 고구려·백제
http://contents.nahf[...]
国史編纂委員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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