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에리히 노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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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스 에리히 노사크는 독일의 작가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여 법학을 공부했으나, 공산당에 가입하고 혁명 운동에 참여했다. 나치 정권 하에서 집필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며 시를 발표했으며, 함부르크 대공습으로 원고를 잃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주요 작품으로 『멸망』, 『죽은 자에게 헌정』, 『늦어도 11월에는』 등이 있으며, 독일 산업 연합 문화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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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에리히 노사크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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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1년 1월 30일 |
사망 | 1977년 11월 2일 (76세) |
직업 | 작가 |
국적 | 독일 |
수상 | |
게오르크 뷔히너 상 | 1961년 |
2. 생애
함부르크 출신의 작가로, 부유한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김나지움 졸업 후 예나 대학교에서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던 중 기존의 부르주아적 관습을 거부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유리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독일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집필 금지 처분을 받고 정치적 감시를 당했으며,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943년 함부르크 대공습으로 집과 함께 그동안 써왔던 원고와 일기를 모두 잃는 비극을 겪었으나,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중요한 작품인 『멸망』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하여, 『죽은 자에게 헌정』, 『사신과의 인터뷰』 등을 발표하며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 등에게 인정받고 "폐허 문학"의 작가로 주목받았다. 1950년대부터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늦어도 11월에는』, 『동생』 등 다수의 장편 소설과 단편을 발표했으며, 『늦어도 11월에는』으로 1957년 독일 산업 연합 문화상을, 1961년에는 독일 문학계 최고 권위의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했다.
이후 아우크스부르크 근교, 다름슈타트,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등지로 거처를 옮기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고, 1975년 마지막 작품 『행복한 인간』을 발표했다. 1977년 함부르크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901-1922)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아메리카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무역상이었고, 어머니는 유서 깊은 클렌케 가문 출신이었다. 이러한 부유한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7세 때 스케이트를 타다가 부상을 입어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해졌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서재에 있던 프리드리히 헤벨의 일기를 즐겨 읽었으며, 16세가 되어서는 요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고 문학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1918년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예나 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하여 언어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생 시절에는 학생 결사 단체인 Corps Thuringia Jena|코어 튀링기아 예나de에 가입하기도 했으나, 결투 과정에서 뺨에 상처를 입는 경험을 한 뒤 부르주아 계급의 낡은 관습에 회의를 느끼고 이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아버지로부터 받던 경제적 지원을 스스로 끊고, 유리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자립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2. 2. 청년기와 초기 활동 (1922-1933)
예나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법학을 공부하던 중, 학생 결사 코어 튀링기아 예나 (Corps Thuringia Jenade)에 가입했으나, 결투로 인한 상처를 계기로 부르주아 계급의 인습에 반감을 느껴 결사를 탈퇴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의 경제적 지원을 끊고 유리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 시기였던 1923년에는 결혼과 함께 독일 공산당에 입당하여 혁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시기 러시아 혁명을 소재로 한 희곡 『일린』을 집필했으나, 상연되지는 못했다.1929년에는 아버지의 무역 회사에 잠시 몸담아 브라질로 파견되었지만 몇 달 만에 귀국했고, 이듬해인 1930년에 다시 공산당에 입당하며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사크는 작가로서 활동을 금지당하고 경찰의 가택 수색을 받는 등 정치적 탄압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다시 아버지의 회사로 돌아가 점차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노이에 룬트샤우』 (Neue Rundschaude) 지에 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2. 3. 나치 정권 하 (1933-1945)
1933년 나치 정권이 집권하자 노사크는 글쓰기를 금지당하고 경찰의 가택 수색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전의 공산당 활동 경력 등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그는 생계를 위해 아버지의 무역 회사에 들어가 점차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문학 활동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아, 『노이에 룬트샤우』(''Neue Rundschau'') 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1943년 7월, 함부르크 근교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제2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군의 함부르크 대공습으로 인해 그동안 써왔던 원고와 일기를 모두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 참혹한 경험은 그의 작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바탕으로 공습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린 르포르타주 형식의 작품 『멸망』(''Der Untergang'')을 집필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자신감을 얻었고, 이는 종전 후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 4. 전후 활동과 문학적 성취 (1945-1977)
1943년 7월, 휴가 중 함부르크 대공습을 겪으며 그동안 써두었던 원고와 일기가 모두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르포르타주 형식의 작품 『멸망』을 집필했고,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신감을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는 "인간에 대한 화성인의 보고"(Bericht eines Marsbewohners über die Menschende)와 같은 단편들을 지방 신문에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1947년에는 『죽은 자에게 헌정』, 1948년에는 단편집 『사신과의 인터뷰』를 출판했다. 이 두 작품은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주관하던 잡지 『레 탕 모던』(Les Temps modernes프랑스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 문단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작품들은 독일 패전 후의 참상과 실존적 고뇌를 다룬 "폐허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았다.
195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며 장편 소설 『늦어도 11월에는』, 『동생』 등을 발표했다. 특히 『늦어도 11월에는』은 1957년 독일 산업 연합 문화상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1956년에는 아우크스부르크 근처의 아이슈테텐으로 이주했으며, 1961년에는 독일 문학계 최고 권위의 상 중 하나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60년대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 『알고 있어요』, 『달테스 씨의 경우』 등을 발표했다. 거주지도 여러 차례 옮겨 1963년에는 다름슈타트, 1965년부터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생활했다. 1975년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행복한 인간』을 발표했으며, 이듬해인 1976년에는 75세 생일을 기념하여 그의 대표적인 산문, 편지, 시를 모은 문집 『이 내면의 타자』가 간행되었다. 노사크는 함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했다.
2. 5. 후기 생애 (1956-1977)
1956년에 아우크스부르크 근처의 아이슈테텐으로 이주했다. 이전 작품인 『늦어도 11월에는』으로 1957년 독일 산업 연합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61년에는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받았다. 60년대에는 『알고 있어요』, 『달테스 씨의 경우』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63년에는 다름슈타트로, 1965년부터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거처를 옮겼다. 1975년에 마지막 작품인 『행복한 인간』을 발표했고, 이듬해인 1976년에는 75세 생일을 기념하여 대표적인 산문, 편지, 시를 모은 문집 『이 내면의 타자』가 간행되었다. 이후 함부르크에서 사망했다.3.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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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원제 | 한국어 제목 | 비고 |
---|---|---|---|
1947년 | Gedichtede | 시집 | |
1947년 | Nekyia. Bericht eines Überlebendende | 죽은 자에게 바치는 헌사 | |
1948년 | Interview mit dem Todede | 죽음과의 인터뷰 | 단편집, 한때 Dorotheade로 개정 |
1949년 | Die Rotte Kainde | 카인의 무리 | 극, 전시 중 집필 |
1955년 | Spätestens im Novemberde | 늦어도 11월에는 | |
1955년 | Der Neugierigede | 호기심 많은 사람 | 중편 |
1955년 | Die Begnadigungde | ||
1956년 | Die Hauptprobe. Eine tragödienhafte Burleske mit zwei Pausende | 본 공연 | 극 |
1956년 | Spirale. Roman einer schlaflosen Nachtde | 나선 잠 못 이루는 밤의 로망 | 단편집, 「그림자의 법정」(Unmögliche Beweisaufnahmede) 수록 |
1958년 | Begegnung im Vorraumde | ||
1958년 | Der jüngere Bruderde | 동생 | |
1961년 | Nach dem letzten Aufstand. Ein Berichtde | 마지막 반란 후에 | |
1963년 | Ein Sonderfallde | 별난 경우 | 극 |
1963년 | Das Testament des Lucius Eurinusde | 루키우스 유리누스의 유언 | |
1964년 | Das kennt mande | 알고 있어요 | |
1964년 | Sechs Etüdende | ||
1965년 | Das Mal u. Andere Erzählungende | ||
1966년 | Die schwache Position der Literaturde | 문학이라는 약한 입장 | 평론・강연집 |
1968년 | Der Fall d'Arthezde | 다르테즈의 경우 | |
1969년 | Dem unbekannten Siegerde | 미지의 승자에게 | |
1971년 | Pseudoautobiographische Glossende | 의사 자전적 주석 | |
1972년 | Die gestohlene Melodiede | 도난당한 멜로디 | |
1973년 | Bereitschaftsdienst. Bericht über die Epidemiede | 대기 역병에 관한 보고 | |
1974년 | Der König geht ins Kinode | ||
1975년 | Um es kurz zu machende | ||
1975년 | Ein glücklicher Menschde | 행복한 인간 | |
1976년 | Dieser Anderede | ||
1997년 | Die Tagebücher 1943-1977de | 사후 출판 (일기) | |
2001년 | Geben Sie bald wieder ein Lebenszeichen.de | 사후 출판 |
4. 수상 경력
연도 | 수상 내역 |
---|---|
1957년 | 독일 산업 연합 문화상 |
1961년 | 게오르크 뷔히너 상 |
1963년 | 빌헬름 라베 상 |
1973년 | 푸르 르 메리트 훈장 |
1973년 | 알렉산더 친 상 |
1974년 | 독일 연방 공로 훈장 |
5. 한국어 번역 작품
(내용 없음 -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해당 섹션 제목과 관련된 한국어 번역 작품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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