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후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허욱은 후한 시대의 관료로, 대사농을 거쳐 위위, 태위까지 올랐다. 광화 5년(182년) 영제의 조서에 따라 자사들이 보고한 지방관 감찰에서, 환관에게 뇌물을 받고 그들의 자제와 빈객을 제외하고 청렴한 관리들을 탄핵하여 비난을 받았다. 사도 진탐과 의랑 조조의 규탄으로 영제에게 꾸짖음을 당하고, 자신이 추천한 관리가 죄를 지어 면직되었다.
허욱은 후한 말기의 관료로,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范曄중국어의 《후한서》 권8 효영제기, 권57 두난유이유사열전, 권76 순리열전
[1]
서적
한관의
범엽, 《후한서》 권8 효영제기 광화 4년조 혜동주(惠棟注)에 인용
2. 생애
2. 1. 관직 임명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사농에서 위위로 전임되었다.[2]
광화 4년(181년) 9월, 위위에서 태위로 승진하였다.[2]
2. 2. 부정부패와 면직
광화 5년(182년) 정월 신미일, 영제는 조서를 내려 자사들로 하여금 백성을 괴롭히는 지방관을 찾아 보고하게 하였다. 허욱과 사공 장제는 환관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그들의 자제와 빈객들을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고는 도리어 변방의 작은 군들의 청렴한 관리 스물여섯 명을 탄핵하였는데, 관리와 백성들은 명단이 허위로 꾸며진 것이라며 항의하였다. 사도 진탐과 의랑(議郞) 조조가 이를 규탄하니, 영제는 허욱 등을 꾸짖고는 명단의 관리들을 의랑에 임명하였다.[2]
같은 해 10월, 자신이 벽소(辟召)한 관리가 죄를 지어[3] 면직되었다.
3. 출전
참조
[2]
서적
태위허욱비
[3]
서적
후한기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