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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억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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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화억옹주는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와 후궁 정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옹주이다. 1717년(숙종 43년)에 태어나 숙종의 첫 손녀이자 영조의 첫 자식으로 사랑을 받았으나, 돌을 보름 앞두고 요절했다. 사후 55년 뒤인 1773년(영조 49년)에 영조에 의해 화억옹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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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억옹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화억옹주
한자 표기和憶翁主
향염(香艶)
작위조선 영조의 옹주
가계
아버지영조
어머니정빈 이씨
출생과 사망
출생일1717년 4월 22일 (음력)
출생지조선 한성부 창의궁 사저
사망일1718년 4월 8일 (음력)
묘소
능묘(정보 없음)

2. 생애

1717년(숙종 43년) 숙종의 넷째 아들 연잉군(영조)과 첩실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향염(香艶)이다. 숙종의 첫 손주이자 영조의 첫 자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돌을 보름 정도 앞두고 병으로 요절하였다.[1]

당시 연잉군은 어머니 숙빈 최씨의 상중이어서 바로 장사를 치르지 못하고 나중에 장사를 치렀으며, 첫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남달라 딸에 대하여 광지에 글을 남겼다.[1]

1773년(영조 49년), 영조에 의해 화억옹주(和憶翁主)로 추증되었다.[2]

2. 1. 출생과 죽음

1717년(숙종 43년) 4월 22일, 한성부 창의궁 사저에서 당시 국왕이었던 숙종의 넷째 아들 연잉군(영조)과 첩실 이씨(정빈 이씨)의 딸로 태어났다.

이름은 '''향염'''(香艶)이며, 숙종에게는 첫 손주이고 영조에게도 첫 자식이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돌을 보름 정도 앞두고 병으로 요절하였다.[1]

당시 연잉군은 어머니 숙빈 최씨의 상중이어서 바로 장사를 치르지 못하고 나중에 장사를 치렀는데, 첫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남달라 딸에 대하여 광지에 글을 남겼다.[1]

1773년(영조 49년) 10월 7일, 영조에 의해 '''화억옹주'''(和憶翁主)로 추증되었다.[2]

2. 2. 사후

숙종의 첫 손주이자 영조의 첫 자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돌을 보름 정도 앞두고 병으로 요절하였다.[1]

당시 연잉군은 어머니 숙빈 최씨의 상중이어서 바로 장사를 치르지 못하고 나중에 장사를 치렀다. 첫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남달라 딸에 대하여 광지에 글을 남겼다.[1]

1773년(영조 49년) 10월 7일, 죽은 지 55년 후에 영조에 의해 화억옹주(和憶翁主)로 추증되었다.[2]

3. 가족 관계

관계이름
조부숙종
조모숙빈 최씨
아버지영조
외조부이후철
외조모김해 김씨
어머니정빈 이씨
남동생진종
여동생화순옹주


참조

[1] 문서 유녀향염 광지
[2] 간행물 승정원일기 177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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