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토 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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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지모토 유스케는 1975년 7월 22일에 태어난 일본의 킥복싱 선수로, 2000년 K-1 Rising 2000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서울과 K-1 월드 그랑프리 2007 홍콩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하와이에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2010년 은퇴 경기를 치렀으며, 개인적으로는 탈모로 인해 스킨헤드 스타일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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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 유스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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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후지모토 유스케 |
출생 이름 | 후지모토 유스케 |
별칭 | 분 분 마루 (Bun Bun Maru) |
국적 | 일본 |
출생일 | 1975년 7월 22일 () |
출생지 | 교토, 일본 |
스타일 | 정도회관 |
소속 팀 | 몬스터 팩토리 |
활동 기간 | 11년 (1999년–2010년) |
킥복싱 전적 | |
승리 | 27 |
KO승 | 13 |
패배 | 17 |
KO패 | 15 |
무효 경기 | 1 |
기타 정보 | |
최종 업데이트 | 2010년 12월 11일 |
2. 선수 경력
1975년 7월 22일 출생. 후지모토 유스케는 2000년 프로 킥복싱 선수로 데뷔하여 주로 K-1 무대에서 활동했다. 선수 생활 초기에는 지역 토너먼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며, 2004년 경기 중 오른팔 골절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겪기도 했다.[2]
부상 복귀 후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2005 하와이 준우승을 시작으로 점차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2006년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서울과 2007년 K-1 월드 그랑프리 2007 홍콩에서 아시아 GP 챔피언에 오르며, 일본 선수 최초로 K-1 해외 지역 예선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등[4] 전성기를 맞이했다. 2007년에는 초대 K-1 헤비급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에서는 2006년 어네스트 후스트, 2007년 사와야시키 준이치에게 연달아 패배하며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8년 에베르톤 테이셰이라와의 경기에서 또다시 오른팔 골절 부상을 당한 후[5] 오랜 공백기를 가졌고, 결국 2010년 K-1 월드 그랑프리 2010 파이널에서 헤스디 게르기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6] 최종 전적은 27승 17패 1무효이다.
'''주요 경기 기록'''
경기일자 | 상대 | 결과 | 내용 | 대회 |
---|---|---|---|---|
2010년 12월 11일 | 이집트 헤스디 겔게스 | 패 | 1R KO | 일본 K-1 월드 GP 2010 final |
2008년 4월 13일 | 브라질 에베르통 테이셰이라 | 패 | 5R KO | 일본 K-1 월드 GP 2008 in yokohama |
2007년 9월 29일 | 일본 사와야시키 준이치 | 패 | 3R KO | 대한민국 K-1 월드 GP 2007 final 16 |
2007년 8월 5일 | 중국 왕창 | 승 | 1R KO | 홍콩 K-1 월드 GP 2007 in hongkong |
2007년 8월 5일 | 일본 김태영 | 패 | 2R KO | 홍콩 K-1 월드 GP 2007 in hongkong |
2007년 8월 5일 | 중국 신홍장 | 승 | 3R 판정 | 홍콩 K-1 월드 GP 2007 in hongkong |
2007년 4월 29일 | 모로코 바다 하리 | 패 | 1R KO | 미국 K-1 월드 GP 2007 in hawaii |
2007년 3월 4일 | 일본 모리 아키오 | 승 | 4R KO | 일본 K-1 월드 GP 2007 in yokohama |
2006년 9월 30일 | 네덜란드 어네스트 후스트 | 패 | 3R KO | 일본 K-1 월드 GP 2006 final 16 |
2006년 7월 30일 | 나이지리아 보비 올로건 | 승 | 3R 판정 | 일본 K-1 월드 GP 2006 in sapporo |
2006년 6월 3일 | 한국 김민수 | 승 | 2R KO | 대한민국 K-1 월드 GP 2006 in seoul |
2006년 6월 3일 | 일본 나카사코 츠요시 | 승 | 3R 판정 | 대한민국 K-1 월드 GP 2006 in seoul |
2006년 6월 3일 | 한국 김동욱 | 승 | 3R 판정 | 대한민국 K-1 월드 GP 2006 in seoul |
2006년 4월 30일 | 미국 카터 윌리암스 | 패 | 3R 판정 | 미국 K-1 월드 GP 2006 in las vegas |
2005년 7월 30일 | 트리니다드 토바고 게리 굿리지 | 패 | 3R KO | 미국 K-1 월드 GP 2005 in hawaii |
2005년 7월 30일 | 미국 마커스 로이스터 | 승 | 1R KO | 미국 K-1 월드 GP 2005 in hawaii |
2005년 7월 30일 | 미국 스콧 정크 | 승 | 3R KO | 미국 K-1 월드 GP 2005 in hawaii |
2005년 6월 14일 | 일본 토미히라 타츠후미 | 패 | 1R KO | 일본 K-1 월드 GP 2005 in hiroshima |
2005년 6월 14일 | 일본 모리구치 하지메 | 승 | 3R 판정 | 일본 K-1 월드 GP 2005 in hiroshima |
2005년 4월 30일 | 미국 카터 윌리암스 | NC | 1R 비골 부상 | 미국 K-1 월드 GP 2005 in las vegas |
2. 1. K-1 데뷔 초기 (2000년 ~ 2004년)
후지모토는 2000년 1월 25일 K-1 Rising 2000에서 프로 킥복싱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야마나카 마사노부를 상대로 2라운드 TKO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 잠시 아마추어 신분으로 전환하여 몬스터 챌린지 2000 K-2 토너먼트에 참가했고, 다시 만난 야마나카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이는 한동안 후지모토의 유일한 대회 우승 기록이었다. 이후 3년 동안 4개의 지역 토너먼트에 참가했지만, 자주 패배하며 K-1 서바이벌 2003 일본 그랑프리 결승전에서는 예선 탈락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K-1 버닝 2004에서는 몬타냐 실바와의 경기 도중 오른팔이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2] 이 부상으로 인해 후지모토는 약 14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 2. K-1 전성기 (2005년 ~ 2008년)
2005년 부상에서 복귀한 후지모토는 K-1 월드 그랑프리 2005 하와이에서 결승에 진출했으나 게리 굿리지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2006년은 그의 K-1 경력에서 중요한 해였다. 6월 3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서울 아시아GP에서 김민수 등을 꺾고 우승하며, 일본 선수 최초로 K-1 해외 지역 예선에서 우승하는 기록을 세웠다.[4] 이 우승으로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출전권을 얻었으나, 9월 30일 오사카 개막전에서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로킥에 의한 3라운드 KO패를 당했다.
2007년에는 3월 요코하마에서 열린 초대 K-1 헤비급 챔피언 토너먼트에서 무사시를 KO로 꺾는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승에서 바다 하리에게 1라운드 KO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8월에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GP에서 김태영에게 준결승에서 패배했음에도 상대의 부상으로 결승에 진출, 왕창을 꺾고 우승하는 등[1] 논란 속에서도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러나 9월 서울 개막전에서는 '신데렐라' 사와야시키 준이치에게 3라운드 KO패하며 2년 연속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2008년 4월 13일 요코하마 대회에서 에베르톤 테이셰이라에게 연장전 끝에 KO패하며 오른팔 골절 부상을 당했다.[5] 이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고, 그의 K-1 전성기는 사실상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마무리되었다.
2. 2. 1.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하와이 준우승
2004년 K-1 버닝 2004에서 몬타냐 실바와의 경기 중 입은 오른팔 골절 부상[2]으로 인해 14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5년 4월 30일 K-1 월드 그랑프리 2005 라스베이거스에서 카터 윌리엄스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렀으나, 경기 도중 윌리엄스에 의해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다시 입어[3] 경기는 무효 처리되었다.같은 해 6월 14일 K-1 월드 그랑프리 2005 히로시마에서는 모리구치 하지메에게 3라운드 판정승을 거두었으나, 토미히라 타츠후미에게는 1라운드 KO패를 당했다.
7월 30일에는 K-1 월드 그랑프리 2005 하와이에 출전하여 결승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회전에서 스콧 정크를 3라운드 KO로, 준결승에서 마커스 로이스터를 1라운드 KO로 꺾으며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게리 굿리지에게 3라운드 KO로 패배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 2. 2. 2006년: K-1 월드 그랑프리 서울 우승
2006년 6월 3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서울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1회전에서 한국의 김동욱을 상대로 3라운드 판정승을 거두었고, 준결승에서는 일본의 나카사코 츠요시에게 역시 3라운드 판정승을 거두었다. 결승전에서는 씨름 선수 출신이자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인 김민수를 만나 2라운드 KO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 우승은 후지모토가 K-1 해외 지역 예선에서 우승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라는 기록을 세웠으며[4],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 그랑프리 개막전 진출권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같은 해 9월 3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오사카 개막전에서는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선수 어네스트 후스트와 맞붙었다. 후지모토는 초반 좌우 훅으로 과감하게 돌진하며 경기를 풀어가려 했으나, 노련한 후스트의 강력한 카운터 로킥에 고전하다 결국 3라운드 KO로 패배하며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2. 2. 3. 2007년: K-1 월드 그랑프리 홍콩 우승
2007년 3월 4일, K-1 월드 GP 2007 IN YOKOHAMA에서 열린 초대 K-1 헤비급 챔피언 토너먼트 준결승전에서 무사시를 만났다. 후지모토는 뛰어난 타이밍과 리치를 활용하여 두 번의 K-1 월드 그랑프리 준우승자인 무사시를 상대로 연장전 끝에 머리에 하이킥을 성공시키며 KO승을 거두었다. 이는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승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2007년 4월 28일, K-1 월드 GP 2007 in HAWAII에서 바다 하리와 초대 K-1 헤비급(100kg 이하) 챔피언 결정전을 치렀다. 하지만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이며 경기 시작 1분도 채 되지 않아 왼 하이킥을 맞고 1라운드 KO패, 챔피언 등극에는 실패했다.
2007년 8월 5일, K-1 월드 GP 2007 IN HONG KONG에서 개최된 ASIA GP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 1회전: 중국의 스홍지안에게 3라운드 판정승을 거두었다.
- 준결승: 대한민국의 김태영에게 2라운드 KO패했으나, 김태영이 경기 중 입은 안면 부상으로 닥터 스톱되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이 과정은 논란을 낳았다.[1]
- 결승: 관중들의 조용한 반응 속에서[1] 결승전에 나섰으나, 중국의 산타 챔피언 왕창을 1라운드 KO로 꺾고 우승을 확정 지었다.[1]
2007년 9월 29일, K-1 월드 GP 2007 IN SEOUL FINAL16에서 일본의 사와야시키 준이치와 대결했다. 1라운드에 왼 훅으로 상대에게 코피를 흘리게 하는 등 선전했으나, 이후 사와야시키의 카운터와 스트레이트에 여러 차례 다운을 당했다. 결국 3라운드에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며 세 번의 다운을 더 허용, KO패하고 말았다. 이 패배로 후지모토는 2년 연속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2. 2. 4. 2008년
2008년 4월 13일, K-1 WORLD GP 2008 IN YOKOHAMA에서 극진 가라테 세계 챔피언 에베르톤 테이셰이라와 대결했다. 이 경기는 후지모토의 2008년 유일한 경기였다. 그는 연장 2라운드에서 세 번의 다운을 당하며 KO패했다. 이 시합 도중 오른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는데, 이는 그의 선수 경력 중 두 번째 팔 골절이었다.[5] 이 부상으로 인해 1년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이후 개인 블로그를 통해 킥복싱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5]2. 3. 은퇴 경기 (2009년 ~ 2010년)
2008년 4월 13일, K-1 WORLD GP 2008 IN YOKOHAMA에서 에베르톤 테이셰이라에게 패배하며 오른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5] 이 부상으로 인해 1년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개인 블로그를 통해 킥복싱에서의 은퇴를 고려하고 있음을 밝혔다.[5] 이후 후지모토는 두 차례에 걸쳐 은퇴 경기를 치렀다. 첫 번째는 2009년 11월 한일 국제 무술 대회였고, 두 번째는 2010년 12월 K-1 월드 그랑프리 2010 파이널 무대에서 K-1에 공식적으로 작별을 고하는 경기였다.[6]2. 3. 1. 2009년: 한일 국제 격투기 대회
2008년 가라테 챔피언 에워턴 테이셰이라와의 경기에서 오른팔이 두 번째로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후,[5] 후지모토는 1년 넘게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킥복싱에서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5] 이러한 고려 끝에 후지모토는 2009년 11월 3일 은퇴 경기를 치렀고, 한일 국제 무술 대회에서 하마다 준페이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2. 3. 2. 2010년: K-1 월드 그랑프리 2010 파이널
2009년 11월 첫 은퇴 경기를 치른 지 1년여 만에, 후지모토 유스케는 K-1 무대에 공식적으로 작별을 고하기 위해 다시 링 위에 섰다. 2010년 12월 11일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10 파이널에서 그는 헤스디 게르기스를 상대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상대 선수보다 키가 약 20.32cm 가량 작았고, 이전보다 근육량도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였던 후지모토는 경기 시작 1라운드 만에 세 차례 다운을 당하며 결국 TKO로 패배하였다. 경기 종료 후에는 공식 은퇴식이 진행되었으며, 후지모토는 가족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K-1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6] 그는 최종적으로 27승 17패 1무효의 전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3. 개인사
후지모토 유스케는 1975년 7월 22일에 태어났다. 그는 열렬한 보디빌더이자 역도 선수이며, 벤치 프레스 개인 최고 기록은 140kg이다.[9] 가족으로는 누이(여동생)가 있으며,[10] 조카는 한 명, 조카사위는 한 명 있다.[11]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은어이다.[12]
하루 6시간씩 매일 쉬지 않고 연습을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명 시절에는 나가타니엔의 '칼슘 후리가케' CM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한때 미들급인 K-1 WORLD MAX에 참전하기 위해 체중을 대폭 감량하려 했으나, 74kg에서 더 이상 줄지 않아 포기했다고 한다.
3. 1. 탈모
후지모토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대머리와 없는 눈썹이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7] 그는 무술 대회 참가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해 원형 탈모증을 겪었으며, 이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겪었던 질환이라고 밝혔다.[7] K-1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과 눈썹을 잃게 되자, 결국 머리를 밀기로 결정했다.[7] 본인은 이러한 외모 변화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스킨헤드 스타일이 후지모토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눈썹은 2005년 7월부터 다시 자라기 시작했으며,[8]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눈썹이 다시 자란 것에 대해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3. 2. 정골요법 치료사
이전에 정골요법 치료사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었다. 자신의 블로그에 흰 가운을 입은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는 정골요법 일을 그만두었으나, 2009년 12월부터는 출장 정골요법을 시작했다.4. 기타
하루 6시간씩 매일 쉬지 않고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성격 때문인지, K-1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카락과 눈썹을 잃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스킨헤드 모습이 후지모토의 특징이 되었다. 이후 눈썹이 다시 자란 것에 대해 자신의 블로그에서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4. 1. 기타 활동
이전에 정골요법 치료사로 생계를 유지했으나 현재는 그만두었다. 무명 시절 나가타니엔의 '칼슘 후리가케' CM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2009년 12월부터는 출장 정골요법을 시작했다. 한때 미들급인 K-1 WORLD MAX에 출전하기 위해 체중 감량을 시도했지만, 74kg에서 더 이상 체중이 줄지 않아 단념했다고 한다.4. 2. K-1 WORLD MAX 참전 목표
한때 미들급인 K-1 WORLD MAX에 참전하기 위해 체중을 크게 줄이려 했으나, 74kg에서 더 이상 감량하지 못해 포기했다고 한다.5. 전적
후지모토 유스케는 2000년 1월 25일 K-1 Rising 2000에서 야마나카 마사노부를 2라운드 TKO로 꺾으며 프로 킥복싱에 데뷔했다. 같은 해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한 몬스터 챌린지 2000 K-2 토너먼트에서 다시 만난 야마나카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우승했는데, 이는 한동안 그의 유일한 대회 우승 기록이었다. 이후 3년간 여러 지역 토너먼트에 참가했지만, K-1 서바이벌 2003 일본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4년 K-1 버닝 2004에서는 몬타냐 실바와의 경기 도중 오른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14개월간 공백기를 가졌다.[2]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2005 라스베이거스에서 카터 윌리엄스를 상대로 복귀했지만, 경기 중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다시 입어 무효 경기로 처리되었다.[3] 같은 해 K-1 월드 그랑프리 2005 하와이에서는 결승까지 올랐으나 게리 굿리지에게 KO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06년은 후지모토에게 전환점이 된 해였다. 6월 3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서울에서 씨름 선수 출신 김동욱, 가라테 선수 나카사코 츠요시, 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 김민수를 차례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일본 국적의 K-1 선수가 해외 지역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최초의 사례였다.[4] 이 우승으로 K-1 월드 그랑프리 2006 오사카 개막전 출전권을 얻었지만, 에르네스토 후스트에게 3라운드 KO로 패배했다.
2007년 3월, 초대 K-1 헤비급 챔피언을 가리는 토너먼트가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2007 요코하마에 참가했다. 준결승에서 무사시를 상대로 뛰어난 타이밍과 리치를 활용한 공격 끝에 하이킥으로 TKO 승리를 거두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바드 하리에게 1라운드 1분도 채 되지 않아 KO로 패배하며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같은 해 8월 K-1 월드 그랑프리 2007 홍콩에서 두 번째 지역 그랑프리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타이에이 킨에게 패배했음에도 킨의 안면 부상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등 논란이 있었다.[1] 결승에서는 산타 챔피언 왕창을 꺾고 우승했다.[1] 이어진 K-1 월드 그랑프리 2007 개막전에서는 사와야시키 준이치에게 여러 차례 다운을 당한 끝에 기권패했다.
2008년에는 가라테 챔피언 에워턴 테이셰이라와의 경기에서 오른팔이 다시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패배했다.[5] 이 부상 이후 1년 넘게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며, 개인 블로그를 통해 은퇴를 고려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5] 결국 2009년 11월 3일, 한일 국제 격투기 대회에서 하마다 준페이를 상대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은퇴 경기를 치렀다. 약 1년 뒤인 2010년 12월 10일, K-1 월드 그랑프리 2010 파이널에서 헤스디 게르기스를 상대로 K-1 무대에서의 공식 은퇴 경기를 가졌다. 이 경기에서 1라운드 TKO로 패배한 후 은퇴식을 통해 가족과 관계자,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6] 소스에 따르면 그의 최종 프로 전적은 27승 17패 1무효이다.
5. 1. 킥복싱 전적
(후지모토 유스케 은퇴 경기)(프로 데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