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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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흥선궁(興宣宮)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어머니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살았던 집(사가)이며, 고종이 태어나서 자란 곳(잠저)입니다.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 내에 있었습니다.
원래 흥선궁은 현재의 덕성여자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 일본문화원, 중앙문화센터, 운현초등학교 일대를 포함한 넓은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역사적 배경:
- 1863년(철종 14)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군 이하응은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는 여흥부대부인으로 봉해졌고, 고종의 잠저였던 이곳은 '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 흥선대원군의 집권 기간 동안 운현궁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으나, 1873년(고종 10) 고종의 친정 선포로 흥선대원군이 실각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 1898년(광무 2) 흥선대원군 사후 장남 이재면이 운현궁을 이어받았지만, 이미 크게 쇠락하여 유지, 관리가 어려웠습니다.
- 1910년(순종 3) 순종은 이재면을 흥왕(興王)에 책봉하고 운현궁을 흥친왕궁으로 칭했으나, 한일병합조약으로 인해 다시 운현궁으로 돌아갔습니다.
- 일제강점기인 1912년 토지조사 때 운현궁은 대한제국 황실재산으로 몰수, 국유화되었습니다.
- 1948년 미 군정장관 딘 소장에 의해 운현궁 소유권은 이우의 아들 이청에게 이전되었습니다.
현재의 운현궁:
- 1977년 사적 제25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현재 남아있는 운현궁의 규모는 크게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수직사로 구성되어 있고, 유물전시관과 기획전시실이 있습니다.
- 노안당(老安堂): 흥선대원군이 주로 기거하던 사랑채로, '노인을 편안하게 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노락당(老樂堂): 안채로, '즐거운 노년을 보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 이로당(二老堂): 별당으로, '두 노인이 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운현궁은 1991년 흥선대원군 5대손 이청이 국가에 양도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참고: 흥선궁은 신궁(神宮)으로, 은신군, 남연군, 흥선대원군, 여흥대원비 민씨를 모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흥선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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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궁 | |
개요 | |
별칭 | 저경궁 |
종류 | 궁 |
용도 | 별궁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
좌표 | 37°35′10″N 126°58′20″E |
역사 | |
건설 시작 | 1615년 |
건설 완료 | 1616년 |
건설 주체 |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
소유 | 조선 왕실 |
주요 사건 | 인조반정의 모의 장소 고종 즉위 전 거주 |
현재 상태 | 건물 소실, 터만 남아있음 |
건축 | |
건축 양식 | 조선 건축 양식 |
면적 | 약 10,000평 |
특징 | |
특징 |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살던 집 인조반정의 모의 장소 고종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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