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13번 출입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13번 출입구는 그리스 축구 클럽 파나티나이코스 AO의 서포터 클럽으로, 1966년 11월 19일에 창립되었다. 1950년대부터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은 13번 출입구에 모여 응원했으며, 1966년 정식 클럽으로 출범했다. 1971년 파나티나이코스의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은 13번 출입구를 포함한 팬들의 열정을 더욱 고조시켰다. 13번 출입구는 SK 라피트 빈의 울트라스 라피드, GNK 디나모 자그레브의 배드 블루 보이즈, AS 로마의 쿠르바 수드(페다인)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그리스의 농구 - 그리스 농구 국가대표팀
    그리스 농구 국가대표팀은 1935년 FIBA에 가입하여 1987년 유로바스켓 우승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2005년 유로바스켓 우승, 2006년 FIBA 농구 월드컵 준우승 등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니코스 갈리스, 파나기오티스 야나키스 같은 전설적인 선수를 배출하며 유럽 농구계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 그리스의 농구 - 그리스 농구 연맹
    그리스 농구 연맹은 그리스 농구를 관리하고 발전시키며, 클럽 대회를 주관하고 그리스 농구 국가대표팀의 국제 대회 참가를 지원하는 단체이다.
  • 그리스의 스포츠 - 그리스 올림픽 위원회
    그리스 올림픽 위원회는 그리스의 올림픽 운동을 관장하는 국가 올림픽 위원회로서,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을 조직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 주관 및 주요 스포츠 시설 운영을 담당한다.
  • 그리스의 스포츠 - 2004년 하계 패럴림픽
    2004년 하계 패럴림픽은 2004년 아테네에서 개최되었으며, 19개 종목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메달 집계 1위를 차지했다.
13번 출입구
기본 정보
레오포로스 알렉산드라스 스타디움의 13번 출입구에 있는 Gate 13 그래피티
별칭Gate 13
약칭G13
설립1966년
유형서포터즈 그룹
울트라스 그룹
응원 팀파나티나이코스 A.O.
모토파나티나이코스는 투쟁적인 영혼을 의미한다.
위치아테네, 그리스
경기장레오포로스 알렉산드라스 스타디움
O.A.C.A. 니코스 갈리스 올림픽 실내 홀
색상녹색
흰색
웹사이트gate13.gr

2. 역사

1952년 10월, 최초의 파나티나이코스 서포터 클럽인 '파나티나이코스 서포터들의 클럽'(Σύλλογος Φιλάθλων Οπαδών Παναθηναϊκού|파나티나이코스 서포터들의 클럽el)이 창립되었으나, 활동 기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50년대 말부터 서포터들은 홈경기 및 원정 경기 응원을 조직하기 시작했으며, 아포스톨로스 니콜라이디스 경기장의 13번 출입구에 정기적으로 모였다. 13번 출입구는 다른 좌석과 달리 번호가 매겨지지 않아, 팀의 가장 가난한 팬과 서포터들을 위한 장소였다.

원정 경기 응원 등을 조직하기 위해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이 구독하는 ''체육의 메아리''(Αθλητική Ηχώ|체육의 메아리el)와 ''범아테네 뉴스''(Παναθηναϊκά Νέα|범아테네 뉴스el) 두 신문을 이용했다. 1966년까지 암펠로키포이, 조그라푸, 파티시아, 키지, 페트랄로나, 파파구-홀라르고스, 페리스테리, 니카이아-코리달로스, 파트라스 등 기반 지역을 딴 서포터 클럽들이 존재했고, 대부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통일된 명칭 없이 정기적으로 모여 팀, 감독의 활약, 원정 경기 응원 계획, 레오포로스 경기장 입장권 확보 등을 논의했다.

1962-63 시즌부터 13번 출입구의 명칭을 딴 통합 클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13번 출입구라는 조직은 정비되었고, 선수들과 팬들로부터 인지되고 존경받기 시작했다.

1966년 11월 19일, 아테네 콜로노스 로 68번지에서 파나티나이코스 서포터 클럽 "13번 출입구"(Σύνδεσμος Φίλων Παναθηναϊκού Αθλητικού Ομίλου "Η Θύρα 13"|신데스모스 필론 파나티나이코우 아슬리티코우 오밀루 "이 티라 13"el)가 창립되었다.[1] 13번 출입구는 파나티나이코스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창립 며칠 뒤인 1966년 11월 27일, 아테네에서 베로이아로 가던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을 태운 버스가 추락하는 사고로 13번 출입구 창립 멤버인 요르고스 코스코로스(Γιώργος Κόσκορος|요르고스 코스코로스el)와 디미트리스 사란타코스(Δημήτρης Σαραντάκος|디미트리스 사란타코스el)가 사망했다.

1967년, 파나티나이코스의 서포터 클럽은 아테네그리스 전역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그리스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서포터 클럽들은 해체되었고, 13번 출입구는 1968년 아테네 소크라투스 로 39번지에 본부를 다시 열고 활동을 재개했다. 당시 그리스 경기장 내부 분위기는 잔잔했으며, 가끔 개인적인 차이로 싸움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13번 출입구는 조직이 확장되었고, 레오포로스 경기장이 대부분의 경기에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깃발과 로고가 유럽과 국내 경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아포스톨로스 니콜라이디스 경기장 실내 홀 "인디언 툼"에서 파나티나이코스 팬들 사이에 농구 인기가 높아졌다. 13번 출입구는 팀의 선거와 같은 비체육 활동에도 참가했고, 입장권 가격과 같이 클럽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표출하기도 했다.

1971년은 파나티나이코스 역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축구부가 1971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그리스 클럽으로는 최초로 유럽 주요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다. 이로 인해 파나티나이코스 팬 숫자가 크게 늘었다. 13번 출입구는 유러피언컵에서 파나티나이코스의 주요 경기에 함께 했다. 15,000명의 팬들이 베오그라드로 원정을 떠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의 경기를 지켜봤고, 20,000명의 팬들은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약스와의 결승전을 응원했다. 파나티나이코스 축구팀의 유럽대항전 성공에 힘입어, 니카이아, 비로나스, 테살로니키 등지에 신생 클럽들이 생겨났다.

그리스 군사 정권 몰락 후, 그리스 전역에서 서포터 클럽들이 다시 조직되었다. 1978년까지 파나티나이코스는 그리스 전역에 52개의 서포터 클럽을 보유했지만, 올림피아코스는 서포터 클럽이 많지 않았다. 1976년, 13번 출입구의 10주년 행사에서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은 세상을 떠난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을 추모하는 묵념 시간을 가졌다. 13번 출입구는 경기장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곳이 되었으며, 여러 깃발과 배너가 스탠드에 색과 특징을 부여했다.

2. 1. 기원

1952년 10월, 최초의 파나티나이코스 서포터 클럽인 '파나티나이코스 서포터들의 클럽'(Σύλλογος Φιλάθλων Οπαδών Παναθηναϊκούel|파나티나이코스 서포터들의 클럽, 약칭 Σ.Φ.Ο.Π.)이 창립되었으나, 활동 기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50년대 말, 서포터들은 홈경기 및 원정 경기 응원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포스톨로스 니콜라이디스 경기장(레오포로스 경기장)의 13번 출입구에 정기적으로 모였다. 13번 출입구는 다른 좌석과 달리 번호가 매겨지지 않아, 팀의 가장 가난한 팬과 서포터들을 위한 장소였다.

원정 경기 응원 및 기타 행사를 조직하기 위해,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이 가장 많이 구독하는 ''체육의 메아리''(Αθλητική Ηχώel|체육의 메아리)와 ''범아테네 뉴스''(Παναθηναϊκά Νέαel|범아테네 뉴스) 두 신문을 이용했다. 1966년까지 암펠로키포이, 조그라푸, 파티시아, 키지, 페트랄로나, 파파구-홀라르고스, 페리스테리, 니카이아-코리달로스, 파트라스 등 기반 지역을 딴 서포터 클럽들이 존재했고, 대부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통일된 명칭 없이 정기적으로 모여 팀, 감독의 활약, 원정 경기 응원 계획, 레오포로스 경기장 입장권 확보 등을 논의했다.

1962-63 시즌부터 가장 열광적인 서포터들이 모였던 13번 출입구의 명칭을 딴 통합 클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13번 출입구라는 조직은 정비되었고, 선수들과 팬들로부터 인지되고 존경받기 시작했다.

2. 2. 1966년: 13번 출입구 창립

1966년 11월 19일, 아테네 콜로노스 로 68번지에서 파나티나이코스 서포터 클럽 "13번 출입구"(Σύνδεσμος Φίλων Παναθηναϊκού Αθλητικού Ομίλου "Η Θύρα 13"|신데스모스 필론 파나티나이코우 아슬리티코우 오밀루 "이 티라 13"el)가 창립되었다.[1] 13번 출입구는 파나티나이코스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창립 며칠 뒤인 1966년 11월 27일, 아테네에서 베로이아로 가던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을 태운 버스가 추락하는 사고로 13번 출입구 창립 멤버인 요르고스 코스코로스(Γιώργος Κόσκοροςel)와 디미트리스 사란타코스(Δημήτρης Σαραντάκοςel)가 사망했다.

2. 3. 군사 정권 시기 (1967-1971)

1967년, 파나티나이코스의 서포터 클럽은 아테네그리스 전역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그리스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서포터 클럽들은 차례로 해체되었다. 13번 출입구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1968년 아테네 중심의 소크라투스 로 39번지에 본부를 다시 열고 활동을 재개했다. 다른 많은 클럽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뒤따랐다. 당시 그리스 경기장 내부 분위기는 잔잔했으며, 가끔 개인적인 차이로 싸움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13번 출입구는 조직이 확장되었고, 레오포로스 경기장이 대부분의 경기에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깃발과 로고가 유럽과 국내 경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아포스톨로스 니콜라이디스 경기장 실내 홀 "인디언 툼"에서 파나티나이코스 팬들 사이에 농구 인기가 높아졌다. 13번 출입구는 팀의 선거와 같은 비체육 활동에도 참가했고, 입장권 가격과 같이 클럽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표출하기도 했다.

2. 4. 1971년 유러피언컵 결승 진출

1971년은 파나티나이코스 역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축구부가 1971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그리스 클럽으로는 최초로 유럽 주요 대회 결승전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로 인해 파나티나이코스 팬 숫자가 크게 늘었다.

13번 출입구는 유러피언컵에서 파나티나이코스의 주요 경기에 함께 했다. 15,000명의 팬들이 베오그라드로 원정을 떠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와의 경기를 지켜봤고, 20,000명의 팬들은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약스와의 결승전을 응원했다. 파나티나이코스 축구팀의 유럽대항전 성공에 힘입어, 다른 서포터 클럽들이 재조직되거나 새롭게 창설되었다. 1972년에는 니카이아, 비로나스, 테살로니키 등지에 유명한 신생 클럽들이 생겨났다.

2. 5. 군사 정권 몰락 이후 (1974-1978)

그리스 군사 정권이 몰락한 후, 그리스 전역에서 서포터 클럽들이 다시 조직되었다. 1978년까지 파나티나이코스는 그리스 전역에 52개의 서포터 클럽을 보유했지만, 올림피아코스는 서포터 클럽이 많지 않았다. 1976년, 13번 출입구의 10주년 행사에서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은 세상을 떠난 파나티나이코스 팬들을 추모하는 묵념 시간을 가졌다. 13번 출입구는 경기장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곳이 되었으며, 여러 깃발과 배너가 스탠드에 색과 특징을 부여했다.

3. 조직 및 활동

13번 출입구는 현재 조직 구성, 운영 방식, 주요 활동 등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4. 다른 클럽과의 관계

13번 출입구는 GNK 디나모 자그레브의 배드 블루 보이즈, AS 로마의 쿠르바 수드(페다인), 샴록 로버스 (SRFC 울트라스)와 가깝게 지내며,[1] 라피트 빈 팬들의 울트라스 라피드와도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1]

90년대에는 레알 마드리드 C.F. (오르굴로 바이킹고), AFC 아약스 (F-SIDE 암스테르담), 페렌츠바로시 TC, 함마르비 IF FF, AS 생테티엔,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토트넘 홋스퍼 FC, 스포르팅 CP, CA 리버 플레이트, 아나돌루 에페스 S.K.의 팬 그룹들과도 우정을 나누었다.[1]

4. 1. 울트라스 라피트 (SK 라피트 빈)

2001년 파나티나이코스 FC가 슈투름 그라츠와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치른 이후 라피트 빈 팬들의 울트라스 라피드와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1] 이후 깃발 교환과 같은 방식으로 이 우정을 돈독히 하는 많은 활동이 있었다.[1] 2016년 6월, 울트라스 라피드는 아테네에서 열린 게이트 13 창립 5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1]

4. 2. 기타 우호 관계

GNK 디나모 자그레브의 배드 블루 보이즈, AS 로마의 쿠르바 수드(페다인)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1] 샴록 로버스 (SRFC 울트라스)와도 끈끈한 우정을 가지고 있는데, 2017년 게이트 13 울트라 일원들이 샴록 로버스의 갈웨이 원정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하면서 더욱 깊어졌다.[1]

90년대에는 레알 마드리드 C.F. (오르굴로 바이킹고), AFC 아약스 (F-SIDE 암스테르담), 페렌츠바로시 TC, 함마르비 IF FF, AS 생테티엔,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토트넘 홋스퍼 FC, 스포르팅 CP, CA 리버 플레이트, 아나돌루 에페스 S.K.의 팬 그룹들과도 우정을 나누었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