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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식 어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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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73식 어뢰는 1973년 일본 해상자위대에 제식 채용된 대잠 어뢰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54식 어뢰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Mk.44 어뢰의 성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개발되었다. 73식 어뢰는 Mk.44와 상호 운용성을 위해 외형 치수가 유사하게 설계되었으며, 1978년부터 1983년까지 개량형 개발을 통해 성능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미국제 Mk.46 mod.5의 도입으로 인해 73식 어뢰는 점차 퇴역하여 2012년에 전량 폐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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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식 어뢰
무기 정보
이름73식 어뢰
원산지일본
종류단어뢰 (LWT)
미사일 여부
[[해상자위대]] 쿠레 역사자료관 전시품
해상자위대 쿠레 역사자료관 전시품
설계기술연구본부
설계 시기1960년 - 1973년
제작사미쓰비시 중공업
사용 국가일본
사용 기간1973년 - 2011년
제원
무게약 230 kg
길이2.5 m
직경324 mm
성능
속도40 노트 (kn)
사거리6,000 m
탄두
탄두 무게HBX 폭약 (약 40 kg)
엔진 및 유도 방식
엔진전기식 (해수 전지 + 2중 반전 프로펠러)
유도 방식능동 음향 호밍

2. 개발 배경

기술연구본부는 1950년대 후반에 개발하던 시제 54식 3형 어뢰에 3차원 패시브 호밍 유도 시스템을 도입했으며,[3] 그 과정에서 3차원 액티브 호밍 유도 시스템에도 일부 착수했다. 1960년부터 이 기술의 국내 개발 및 확립을 위해 기술연구본부에 G-9 계획으로 위탁 연구가 시작되었다.[2]

해상자위대1961년부터 미국제 Mk.44 어뢰를 도입하고, 1964년부터 라이선스 생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고속 원자력 잠수함 배치로 인해 Mk.44의 속도 부족 문제가 제기되었고, 미 해군은 1966년부터 고성능 Mk.46 어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4] 해상자위대도 Mk.46 도입을 추진했으나, 원활하지 않아 자체 개발을 검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G-9 계획은 Mk.44의 후계기 개발로 변경되었다. Mk.44는 아스록이나 QH-50 DASH 등의 페이로드로도 중요했기 때문에, 73식 어뢰는 Mk.44와 유사한 외형 치수를 갖도록 설계되어 상호 운용성을 확보했다.[2]

3. 개발 과정

기술연구본부는 1950년대 후반에 시제 54식 3형 어뢰 개발 당시 3차원 패시브 호밍 유도 시스템을 도입했고,[3], 이 과정에서 3차원 액티브 호밍 유도 시스템에도 일부 착수했다. 이러한 기술의 국내 개발 및 확립을 목적으로 1960년1961년에 기술연구본부에 위탁 연구 형태로 G-9 계획으로 개발이 시작된 것이 73식 어뢰였다.[2]

해상자위대1961년부터 미국제 Mk.44 유도 단어뢰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1964년부터 라이선스 생산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군의 고속 원자력 잠수함 배치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Mk.44로는 어뢰 속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미 해군은 1966년부터 고성능 Mk.46 배치를 시작했다.[4]

해상자위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되었지만, Mk.46의 해외 판매가 쉽게 진행되지 않아 자체 개발을 통한 갱신이 검토되었다. 이에 따라 G-9 계획은 Mk.44의 후계기로 변경되었다. Mk.44는 어뢰 단독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아스록이나 QH-50 DASH 등의 페이로드로도 중요했기 때문에, 상호 운용성 확보를 위해 외형 치수는 대체로 Mk.44의 것을 따랐다.[2]

1962년부터 부내 연구 및 부분 시제품 제작이 진행되었고, 1965년1966년에 기술 시험을 실시했지만 결과가 불충분했다. 따라서 1967년1968년에 호밍 장치의 안정성을 높이고 전지 기종을 변경하는 등의 개선을 실시했고, 1969년에는 개발 명칭이 G-9B로 변경되었다.[5]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실용 시험을 거쳐 1973년에 73식 어뢰로 제식화되었다.[2]

4. 개량 및 퇴역

73식 어뢰는 대잠함정 및 항공 부대의 주력 어뢰로서, Mk.44와 병용되었다. 1978년부터 1983년까지 개량형인 73식 어뢰(개)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는 어뢰 방어책에 대한 대항 기능(TCCM 기능) 향상을 목표로, 소나에 새로운 진동 소재를 채용하고 패시브 모드를 추가했으며, 자체 항행 소음을 줄여 미국 해군이 당시 막 장비화한 Mk.46 mod.2에 필적하는 성능을 확보했다.[1]

그러나 1981년 시험 도중, 미국제 최신형인 Mk.46 mod.5의 대일 수출이 허가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TCCM 기능을 포함하여 Mk.46 mod.5가 성능적으로 더 우수했기 때문에, 73식 어뢰의 후계로는 Mk.46 mod.5가 채택되었고, 73식 어뢰(개)의 신규 생산은 중단되었다.[1]

대신 1984년부터 기존의 73식 어뢰에 개수용 키트를 조립한 '''73식 어뢰(B)'''가 장비되었다.[1] 한편, Mk.46 mod.5의 TCCM 기능은 제공되었지만, 관련 기술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 블랙박스 상태였다. 이에 해상자위대는 훈련 등의 실 운용을 통한 분석과 기술적 평가를 바탕으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TCCM 능력 향상을 도모했다.[1]

73식 어뢰(B)는 2011년에 운용이 종료되었고, 2012년에 전량 폐기되었다.[1]

참조

[1] 서적 自衛隊装備年鑑 2006-2007 朝雲新聞社
[2] 간행물 国産護衛艦建造の歩み(第19回) 補給艦「さがみ」,4次防期の新装備その1(73式短魚雷) 海人社
[3] 간행물 国産護衛艦建造の歩み(第5回) 第1次防衛力整備計画以前 昭和29-32年度 海人社
[4] 간행물 国産護衛艦建造の歩み(第10回) 2次防艦に関わる外国製新装備 海人社
[5] 간행물 水雷兵器 潮書房
[6] 웹사이트 海上自衛隊における弾薬の処分事業 http://www.mof.go.jp[...] 2014-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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