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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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G전자는 1958년 금성사로 설립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라디오 생산을 시작으로 가전제품, 통신, 전선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70년대 기업 공개와 해외 진출을 통해 성장했으며, 1990년대에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과 함께 LG전자로 사명을 변경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2000년대에는 디지털 기술 혁신과 디자인 경영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2021년에는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하고 전장 사업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가 설립되었다. 1959년에는 주식회사 금성사(현 LG전자)로 설립 등기(제2916호)를 마쳤으며, 사장 구인회, 부사장 구정회, 상무 허준구, 취체역(비상임) 허학구, 구자경, 감사 김주홍으로 구성되었고 자본금은 1억 환이었다. 같은 해 금성사는 금성(GOLDSTAR) 상표를 등록하고 라디오 생산을 시작했다.
1995년 금성사에서 LG전자로 상호를 변경하고, 해외 시장 공략을 가속화했다. 같은 해, 중국 창사 공장 건설, 중국지주회사(LGECH) 설립, 미국 생산법인 LG인포컴 설립, 구미공장 내 TFT-LCD 공장 준공 등을 통해 글로벌 생산 기반을 다졌다. 또한 심포니2와 초고속 CD-ROM을 출시했다.
2. 금성사 (1958년 ~ 1995년)
1960년 금성사(현 LG전자)는 대한민국 최초로 트랜지스터 6석 라디오와 진공관 4구 라디오를 생산했다. 1961년에는 건전지 신문광고에 상표를 게재했다. 1962년에는 서독 후어마이스터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미국과 홍콩에 라디오를 수출했다. 같은 해 온천동공장을 기공하고, 취업규칙을 제정했다.
1963년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금성사분회가 결성되었고, 온천동공장이 가동 및 준공되었다. 1964년에는 온천동 종합전자전기공장(11동, 연건평 1만 173평)이 완공되었고, 독일 지멘스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1965년에는 라디오 신문광고에 상표를 게재하고, 일본 히타치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또한 문교부지정 실업기술원양성소를 설립했다.
1966년에는 사시를 제정하고, 한국케이블공업을 합병했으며, 교환기 생산 400만 명을 돌파했다. 1967년에는 <금성사보> 창간호를 발간하고(월간, 타블로이드 8면), 본사를 서울로 이전했으며(서울 중구 을지로 3가 116번지), 가전, 통신, 전선 등 3개 사업부로 구성된 사업부제를 채택했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FM/AM 라디오를 생산하고, 전선사업부는 히타치전선과 <전력 및 통신케이블 기술제휴>를 맺었다.
1969년에는 반도체 생산회사인 금성전자(주)를 설립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펌프, 웰만텔케이블, 가스레인지를 개발했다. 금성통신(금성사 통신기기 제조 판매사업 분리)과 금성전선(현 LS전선)이 금성사로부터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1970년대 LG전자(당시 금성사)는 기업 공개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1970년 전자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여 자본을 조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생산 시설 확충에 투자했다. 1975년에는 민간기업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 1976년 기술연구소를 개소하여 기술 경쟁력을 강화했다.
1970년 대한민국 최초로 공냉식 에어컨디셔너를 개발 생산하고, 1973년 카세트 녹음기 개발, 1974년 자동세탁기 생산, 1977년 대한민국 최초 19인치 컬러TV 양산, 1978년 청소기 개발 및 컴퓨터 사업부 신설, 1979년 컴퓨터 컬러TV 시판, VTR 개발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했다.
1975년 TV 생산을 위한 구미공장을 준공하고, 1976년 창원 2공장 준공, 1978년 구로공장 준공, 1979년 김해 모터공장 준공 및 구미TV공장 준공 등 생산 시설을 확장하여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했다.
1978년에는 미국에 판매법인(GSEI)을 설립하고, 전자업계 최초로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77년에는 매출 1천억 원을 돌파했다. 이러한 성과를 통해 LG전자는 대한민국 대표 전자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대 금성사(현 LG전자)는 기술 자립과 시장 선도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1980년 컬러TV 시판을 개시하고, 유럽판매법인을 설립하며 해외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1981년에는 미국 헌츠빌에 컬러TV 공장 건설에 착수하며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1982년에는 한국 최초로 컬러 비디오 카메라와 컴퓨터(GS leveI-6)를 개발하고, 1983년에는 컴팩트 디스크 플레이어(CDP)를 개발하는 등 첨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디자인연구소와 시험연구소를 설립하여 자체 기술 역량을 강화했다. 1983년 금성사는 창립 25주년을 맞이하여 CI를 변경했다.
1984년에는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외형적인 성장도 이루었다. 1987년 우면동에 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1988년 홍콩 현지법인(LGEHK)을 설립하는 등 연구 개발 투자와 해외 시장 확대를 지속했다.
1989년에는 냉장고 생산 1000만 대를 돌파하고, 캠코더를 첫 수출하는 등 가전제품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처럼 1980년대는 금성사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1990년대는 LG전자가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1990년 냉장고 생산 1000만 대를 달성하고, 아일랜드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성과를 냈다. 1991년에는 아일랜드와 독일에 디자인 연구소 및 기술정보센터를 설립하고, 미국 제니스와 자본 제휴를 맺는 등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했다.
1992년 금성부품과의 합병, 구미 2공장 및 대형 컬러브라운관공장 준공 등 국내 생산 기반을 강화했다. 1993년에는 중국에 TV 공장을 준공하고, LCD 사업부를 설립하며 첨단 기술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1994년 매출 5조 원을 돌파하고, 산업평화의탑 급탑을 수상하며 경영 성과를 인정받았다. 1995년, 금성사에서 LG전자로 사명을 변경하고, 금성통신을 합병하여 정보통신 분야 역량을 강화했다. 또한, 중국 창사에 공장을 건설하고, LG전자중국지주회사(LGECH)를 설립하는 등 중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1996년 인도와 브라질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공장을 준공하는 등 해외 생산 거점을 확대했다. 또한, 14.1인치 TFT-LCD 개발에 성공하고, 통돌이 세탁기를 출시하는 등 기술 혁신과 신제품 출시에도 힘썼다.
1997년에는 영국 웨일즈에 전자복합단지를 준공하고, 브라질 마나우스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유럽과 남미 시장 진출을 확대했다. 또한, 102cm(40인치) PDP TV를 독자 개발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24배속 CD-ROM을 개발하는 등 디지털 기술 경쟁력을 강화했다.
1998년에는 제니스의 멕시코 컬러TV 공장을 인수하고, 세계 최초로 152cm(60인치) PDP TV를 개발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였다. 1999년에는 '디지털 LG'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선포하고, 6시그마를 전사적으로 확대하며 경영 혁신을 추진했다.
2. 1. 1950년대: 설립과 초기 성장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가 설립되었다. 1959년에는 주식회사 금성사(현 LG전자)로 설립 등기(제2916호)를 마쳤으며, 사장 구인회, 부사장 구정회, 상무 허준구, 취체역(비상임) 허학구, 구자경, 감사 김주홍으로 구성되었고 자본금은 1억 환이었다. 같은 해 금성사는 금성(GOLDSTAR) 상표를 등록하고 라디오 생산을 시작했다.
2. 2. 1960년대: 기술 혁신과 사업 확장
1960년 금성사(현 LG전자)는 대한민국 최초로 트랜지스터 6석 라디오와 진공관 4구 라디오를 생산했다. 1961년에는 건전지 신문광고에 상표를 게재했다. 1962년에는 서독 후어마이스터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미국과 홍콩에 라디오를 수출했다. 같은 해 온천동공장을 기공하고, 취업규칙을 제정했다.
1963년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금성사분회가 결성되었고, 온천동공장이 가동 및 준공되었다. 1964년에는 온천동 종합전자전기공장(11동, 연건평 1만 173평)이 완공되었고, 독일 지멘스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1965년에는 라디오 신문광고에 상표를 게재하고, 일본 히타치와 기술 제휴를 맺었다. 또한 문교부지정 실업기술원양성소를 설립했다.
1966년에는 사시를 제정하고, 한국케이블공업을 합병했으며, 교환기 생산 400만 명을 돌파했다. 1967년에는 <금성사보> 창간호를 발간하고(월간, 타블로이드 8면), 본사를 서울로 이전했으며(서울 중구 을지로 3가 116번지), 가전, 통신, 전선 등 3개 사업부로 구성된 사업부제를 채택했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FM/AM 라디오를 생산하고, 전선사업부는 히타치전선과 <전력 및 통신케이블 기술제휴>를 맺었다.
1969년에는 반도체 생산회사인 금성전자(주)를 설립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펌프, 웰만텔케이블, 가스레인지를 개발했다. 금성통신(금성사 통신기기 제조 판매사업 분리)과 금성전선(현 LS전선)이 금성사로부터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2. 3. 1970년대: 기업 공개와 글로벌 진출
1970년대 LG전자(당시 금성사)는 기업 공개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통해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1970년 전자업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여 자본을 조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생산 시설 확충에 투자했다. 1975년에는 민간기업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 1976년 기술연구소를 개소하여 기술 경쟁력을 강화했다.
1970년 대한민국 최초로 공냉식 에어컨디셔너를 개발 생산하고, 1973년 카세트 녹음기 개발, 1974년 자동세탁기 생산, 1977년 대한민국 최초 19인치 컬러TV 양산, 1978년 청소기 개발 및 컴퓨터 사업부 신설, 1979년 컴퓨터 컬러TV 시판, VTR 개발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했다.
1975년 TV 생산을 위한 구미공장을 준공하고, 1976년 창원 2공장 준공, 1978년 구로공장 준공, 1979년 김해 모터공장 준공 및 구미TV공장 준공 등 생산 시설을 확장하여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했다.
1978년에는 미국에 판매법인(GSEI)을 설립하고, 전자업계 최초로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77년에는 매출 1천억 원을 돌파했다. 이러한 성과를 통해 LG전자는 대한민국 대표 전자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 4. 1980년대: 기술 자립과 시장 선도
1980년대 금성사(현 LG전자)는 기술 자립과 시장 선도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1980년 컬러TV 시판을 개시하고, 유럽판매법인을 설립하며 해외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1981년에는 미국 헌츠빌에 컬러TV 공장 건설에 착수하며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1982년에는 한국 최초로 컬러 비디오 카메라와 컴퓨터(GS leveI-6)를 개발하고, 1983년에는 컴팩트 디스크 플레이어(CDP)를 개발하는 등 첨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디자인연구소와 시험연구소를 설립하여 자체 기술 역량을 강화했다. 1983년 금성사는 창립 25주년을 맞이하여 CI를 변경했다.
1984년에는 매출 1조 원을 돌파하며 외형적인 성장도 이루었다. 1987년 우면동에 중앙연구소를 설립하고, 1988년 홍콩 현지법인(LGEHK)을 설립하는 등 연구 개발 투자와 해외 시장 확대를 지속했다.
1989년에는 냉장고 생산 1000만 대를 돌파하고, 캠코더를 첫 수출하는 등 가전제품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처럼 1980년대는 금성사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2. 5. 1990년대: 디지털 전환과 LG전자로의 변화
1990년대는 LG전자가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1990년 냉장고 생산 1000만 대를 달성하고, 아일랜드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성과를 냈다. 1991년에는 아일랜드와 독일에 디자인 연구소 및 기술정보센터를 설립하고, 미국 제니스와 자본 제휴를 맺는 등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했다.
1992년 금성부품과의 합병, 구미 2공장 및 대형 컬러브라운관공장 준공 등 국내 생산 기반을 강화했다. 1993년에는 중국에 TV 공장을 준공하고, LCD 사업부를 설립하며 첨단 기술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1994년 매출 5조 원을 돌파하고, 산업평화의탑 급탑을 수상하며 경영 성과를 인정받았다. 1995년, 금성사에서 LG전자로 사명을 변경하고, 금성통신을 합병하여 정보통신 분야 역량을 강화했다. 또한, 중국 창사에 공장을 건설하고, LG전자중국지주회사(LGECH)를 설립하는 등 중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1996년 인도와 브라질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공장을 준공하는 등 해외 생산 거점을 확대했다. 또한, 14.1인치 TFT-LCD 개발에 성공하고, 통돌이 세탁기를 출시하는 등 기술 혁신과 신제품 출시에도 힘썼다.
1997년에는 영국 웨일즈에 전자복합단지를 준공하고, 브라질 마나우스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유럽과 남미 시장 진출을 확대했다. 또한, 102cm(40인치) PDP TV를 독자 개발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24배속 CD-ROM을 개발하는 등 디지털 기술 경쟁력을 강화했다.
1998년에는 제니스의 멕시코 컬러TV 공장을 인수하고, 세계 최초로 152cm(60인치) PDP TV를 개발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였다. 1999년에는 '디지털 LG'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선포하고, 6시그마를 전사적으로 확대하며 경영 혁신을 추진했다.
3. LG전자 (1995년 ~ 현재)
1996년에는 인도에 LG소프트센터와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영국에 종합가전공장 기공식을 가졌으며,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공장을 준공하는 등 해외 진출을 확대했다. 브라질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더불어, 96 고객감동서비스 실천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심포니 멀티 PC, 통돌이 세탁기, 크린캡 에어컨, 14.1인치 TFT-LCD 등을 개발, 출시했다.
1997년에는 웨일즈전자복합단지를 준공하고, 브라질 마나우스공장, 인도 공장, 영국 공장, 카자흐스탄 컬러TV공장, 경상북도 구미 PDP 공장, 중국 창사 TV공장 등을 설립하거나 준공하며 생산 거점을 확대했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로 24배속 CD-ROM을 개발하고, 102cm(40inch) PDP TV를 독자 개발하는 등 기술 개발에도 힘썼다.
1998년에는 제니스 멕시코 컬러TV공장을 인수하고, LG소프트를 합병했다. 세계 최초 152cm(60inch) PDP TV를 개발하고, 초고속 광스토리지를 개발하는 등 기술 혁신을 이어갔다.
1999년에는 '디지털LG'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선포하고, 미국 제니스와 자회사를 출범시키며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LG전자서비스를 설립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40배속 CD-ROM과 광스토리지를 개발했다. 6시그마를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LG전자는 2000년대에 들어서 디지털 기술 혁신과 디자인 경영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0년 대형 TV 엑스켄버스와 디오스 냉장고를 출시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48배속 CD-RDM을 개발했다. 같은 해 휘센 에어컨을 출시하고 에어컨 세계 1위를 달성했으며, LG정보통신을 합병했다. 미국 제니스의 자회사 및 서비스 부문 총괄법인을 통합하고, 터키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했다.
2001년에는 경상북도 구미에 초대형 LCD 공장을 설립하고, 중국 산둥성에 CDMA 가공공장을 준공하는 등 생산 기반을 확장했다. 또한, 인터넷 세탁기, 인터넷 에어컨, 인터넷 전자레인지 등 인터넷 가전 제품을 세계 최초로 출시하며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브라질에 에어컨센터를 설립하고, 멕시코 몬테레이시에 생산법인을 설립하며 중남미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2002년 '트롬(TROMM)세탁기'를 출시하고, LG EI와 LG전자로 분할했다. DVD 드라이브 생산을 시작하고,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2003년에는 세계 최초로 동기.비동기 겸용 IMT-2000 휴대폰을 개발하고, 193cm(76inch) PDP TV를 개발하는 등 기술 리더십을 강화했다. 미국 CDMA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중국 난징에 TFT-LCD 공장을 준공하며 해외 생산 거점을 확대했다.
2004년 'Global Top 3' 비전을 선포하고, 차세대 DTV 전송기술 EVSB가 미국 ATSC 표준 규격으로 채택되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 최대 일체형 140cm(55inch) LCD TV와 180cm(71inch) PDP TV를 상용화하며 대형 TV 시장을 선도했다. 비즈니스위크는 LG전자를 '세계 최고 IT기업'으로 선정했다.
2005년 세계 최초로 DMB폰과 DMB 노트북을 출시하고, 타임머신 PDP TV를 선보였다. '초콜릿폰'을 출시하여 디자인 혁신을 주도했으며, 전 세계 CDMA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루자군 공장을 설립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유럽 통합콜센터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경영을 확대했다.
2006년 디자인 경영을 선포하고, 독일 Reddot 디자인 어워드에서 '올해의 디자인팀'으로 선정되었다. 세계 최초로 152cm(60inch) Single Scan PDP를 개발하고, PDP TV 300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러시아 디지털 가전 공장을 준공하고, 폴란드에 생산공장을 준공하는 등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2007년 남용 부회장이 취임하고, 차세대 듀얼포맷 플레이어(SMB)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3GSM World Congress 2007에서 3G LTE 상용 기술을 세계 최초로 시연하고, 가산 R&D 캠퍼스를 준공하며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했다. 2008년에는 우면동 통합 연구소를 준공하고, '비키니폰'을 출시했다.
3. 1. 1990년대 후반: 글로벌 시장 확대와 브랜드 강화
1995년 금성사에서 LG전자로 상호를 변경하고, 해외 시장 공략을 가속화했다. 같은 해, 중국 창사 공장 건설, 중국지주회사(LGECH) 설립, 미국 생산법인 LG인포컴 설립, 구미공장 내 TFT-LCD 공장 준공 등을 통해 글로벌 생산 기반을 다졌다. 또한 심포니2와 초고속 CD-ROM을 출시했다.
1996년에는 인도에 LG소프트센터와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영국에 종합가전공장 기공식을 가졌으며,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공장을 준공하는 등 해외 진출을 확대했다. 브라질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더불어, 96 고객감동서비스 실천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심포니 멀티 PC, 통돌이 세탁기, 크린캡 에어컨, 14.1인치 TFT-LCD 등을 개발, 출시했다.
1997년에는 웨일즈전자복합단지를 준공하고, 브라질 마나우스공장, 인도 공장, 영국 공장, 카자흐스탄 컬러TV공장, 경상북도 구미 PDP 공장, 중국 창사 TV공장 등을 설립하거나 준공하며 생산 거점을 확대했다. 또한, 대한민국 최초로 24배속 CD-ROM을 개발하고, 102cm(40inch) PDP TV를 독자 개발하는 등 기술 개발에도 힘썼다.
1998년에는 제니스 멕시코 컬러TV공장을 인수하고, LG소프트를 합병했다. 세계 최초 152cm(60inch) PDP TV를 개발하고, 초고속 광스토리지를 개발하는 등 기술 혁신을 이어갔다.
1999년에는 '디지털LG'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선포하고, 미국 제니스와 자회사를 출범시키며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LG전자서비스를 설립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40배속 CD-ROM과 광스토리지를 개발했다. 6시그마를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3. 2. 2000년대: 디지털 기술 혁신과 디자인 경영
LG전자는 2000년대에 들어서 디지털 기술 혁신과 디자인 경영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0년 대형 TV 엑스켄버스와 디오스 냉장고를 출시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48배속 CD-RDM을 개발했다. 같은 해 휘센 에어컨을 출시하고 에어컨 세계 1위를 달성했으며, LG정보통신을 합병했다. 미국 제니스의 자회사 및 서비스 부문 총괄법인을 통합하고, 터키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했다.
2001년에는 경상북도 구미에 초대형 LCD 공장을 설립하고, 중국 산둥성에 CDMA 가공공장을 준공하는 등 생산 기반을 확장했다. 또한, 인터넷 세탁기, 인터넷 에어컨, 인터넷 전자레인지 등 인터넷 가전 제품을 세계 최초로 출시하며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브라질에 에어컨센터를 설립하고, 멕시코 몬테레이시에 생산법인을 설립하며 중남미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2002년 '트롬(TROMM)세탁기'를 출시하고, LG EI와 LG전자로 분할했다. DVD 드라이브 생산을 시작하고,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2003년에는 세계 최초로 동기.비동기 겸용 IMT-2000 휴대폰을 개발하고, 193cm(76inch) PDP TV를 개발하는 등 기술 리더십을 강화했다. 미국 CDMA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중국 난징에 TFT-LCD 공장을 준공하며 해외 생산 거점을 확대했다.
2004년 'Global Top 3' 비전을 선포하고, 차세대 DTV 전송기술 EVSB가 미국 ATSC 표준 규격으로 채택되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 최대 일체형 140cm(55inch) LCD TV와 180cm(71inch) PDP TV를 상용화하며 대형 TV 시장을 선도했다. 비즈니스위크는 LG전자를 '세계 최고 IT기업'으로 선정했다.
2005년 세계 최초로 DMB폰과 DMB 노트북을 출시하고, 타임머신 PDP TV를 선보였다. '초콜릿폰'을 출시하여 디자인 혁신을 주도했으며, 전 세계 CDMA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루자군 공장을 설립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유럽 통합콜센터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경영을 확대했다.
2006년 디자인 경영을 선포하고, 독일 Reddot 디자인 어워드에서 '올해의 디자인팀'으로 선정되었다. 세계 최초로 152cm(60inch) Single Scan PDP를 개발하고, PDP TV 300만 대 판매를 돌파했다. 러시아 디지털 가전 공장을 준공하고, 폴란드에 생산공장을 준공하는 등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2007년 남용 부회장이 취임하고, 차세대 듀얼포맷 플레이어(SMB)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3GSM World Congress 2007에서 3G LTE 상용 기술을 세계 최초로 시연하고, 가산 R&D 캠퍼스를 준공하며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했다. 2008년에는 우면동 통합 연구소를 준공하고, '비키니폰'을 출시했다.
3. 3. 2010년대: 스마트 기술 선도와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
3. 4. 2020년대: 사업 재편과 미래 준비
2021년 MC사업본부(모바일 사업) 가 스마트폰 등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했다. 전장 사업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집중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2022년에는 2030 부산엑스포 공식 후원사로 지정되었다.
4. 주요 제품 및 기술
4. 1. 디스플레이
4. 2. 생활 가전
4. 3. 모바일 (사업 철수)
4. 4. 기타 사업
5. 사회 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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