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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넨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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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갸넨드라는 1947년 네팔 왕세자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1950년 정치적 혼란 속에 어린 나이에 국왕으로 선포되었으나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후 형 비렌드라 국왕이 살해된 네팔 왕실 학살 사건 이후 2001년 왕위에 올랐다. 갸넨드라는 입헌 군주제를 거부하고 전제적인 통치를 강화했으며, 2005년에는 친정을 선포하여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다. 2006년 국민의 압력으로 권력을 반환했으나, 2008년 공화제 채택으로 폐위되었으며, 현재는 왕정 복고를 주장하는 일부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퇴위 후에도 네팔 국내 왕정 복고 시위가 나타나면서 그의 동향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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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넨드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2년의 갸넨드라
2012년 촬영
군주호네팔 국왕
존칭폐하
전체 이름갸넨드라 비르 비크람 샤하 데브
네팔어 이름ज्ञानेन्द्र वीर विक्रम शाहदेव
로마자 표기Gyanendra Bir Bikram Shah Dev
출생일1947년 7월 7일
출생지나라얀히티 왕궁, 카트만두, 네팔
종교힌두교
통치 정보
즉위1950년 11월 7일 (첫 번째 통치)
퇴위1951년 1월 8일 (첫 번째 통치)
즉위2001년 6월 4일 (두 번째 통치)
퇴위2008년 5월 28일 (두 번째 통치, 왕정 폐지)
선임자트리부반 (첫 번째 통치)
후임자트리부반 (첫 번째 통치)
선임자디펜드라 (두 번째 통치)
후임자왕정 폐지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가 대통령 권한대행)
섭정
총리 (첫 번째 통치)모한 슘셰르 장 바하두르 라나
총리 (두 번째 통치)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로켄드라 바하두르 찬드
수르야 바하두르 타파
가족 관계
배우자코말 라자 락슈미 데비 샤흐 왕비 (1970년 결혼)
자녀파라스 샤흐
프레라나 샤흐 싱
왕조
왕가샤흐 왕조

2. 초기 생애와 첫 번째 즉위 (1947년 ~ 1951년)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와 갸넨드라 샤 (1976년)


갸넨드라는 1947년 7월 7일 카트만두의 나라야니티 왕궁에서 왕세자 마헨드라와 왕세자빈 인드라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갸넨드라의 탄생 후, 궁정 점성가는 아버지에게 불운을 가져올 것이라며 신생아를 보지 말라고 경고했고, 이에 갸넨드라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3]

1950년 11월, 정치적 혼란 속에 아버지와 할아버지 트리부반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인도로 피신했다. 이때 갸넨드라는 네팔에 남은 유일한 왕실 남자 구성원이었다.[3] 그는 라나 재상가의 수장인 모한 샴셰르 장 바하두르 라나에 의해 카트만두로 돌아와 1950년 11월 7일 국왕으로 선포되었다. 갸넨드라의 이름으로 주화가 발행되었고, 라나 총리는 국왕의 지출로 연간 300000INR의 예산을 제공했다.[3]

그러나 인도는 라나 총리의 세습 통치에 반대했고, 1951년 1월 합의가 이루어져 갸넨드라의 할아버지 트리부반 국왕이 네팔로 돌아와 왕위를 되찾았다.[4] 갸넨드라를 왕위에 올린 행위는 미국, 영국 등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51]

갸넨드라는 형인 비렌드라 국왕과 함께 인도 다르질링의 세인트 조셉 학교에서 공부했고, 1969년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대학교를 졸업했다.[10]

3. 왕제 시대 (1951년 ~ 2001년)

갸넨드라는 그의 형인 비렌드라 국왕과 함께 인도 다르질링의 세인트 조셉 학교에서 공부했고, 1969년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대학교를 졸업했다.[10] 1975년 그의 형 비렌드라 국왕의 대관식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열렬한 자연보호 운동가이며, 1982년부터 2001년 왕위에 복귀할 때까지 마헨드라 국왕 자연보호 신탁(이후 네팔 국립 자연보호 신탁으로 알려짐)의 위원장을 역임했다.[5]

1970년 5월 1일, 갸넨드라는 카트만두에서 그의 사촌인 코말 라자 락슈미 데비(Komal Rajya Lakhsmi Devi) 왕비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름출생일
파라스 비르 비크람 샤 데브(Paras Bir Bikram Shah Dev) 왕자1971년 12월 30일
프레라나 라자 락슈미 데비 싱(Prerana Rajya Lakshmi Devi Singh) 공주1978년 2월 20일



1972년, 아버지 마헨드라가 서거하고 형 비렌드라가 국왕에 즉위하자 왕족으로서 형을 대신하여 여러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1989년 2월, 갸넨드라는 국왕을 대표하여 쇼와 천황의 대례에 참석했다.

4. 두 번째 즉위와 통치 (2001년 ~ 2008년)

2001년 네팔 왕실 학살 사건으로 비렌드라 국왕이 사망하고, 의식불명 상태였던 디펜드라 왕세자가 며칠 후 사망하면서, 갸넨드라는 섭정을 거쳐 2001년 6월 4일 국왕으로 즉위했다.[54]

사건 당일 갸넨드라가 부재했고, 그의 가족들은 사건 현장에 있었음에도 무사했기 때문에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다.[58] 일각에서는 갸넨드라가 미국과 인도의 지원을 받아 친중파였던 비렌드라와 디펜드라를 제거했다는 주장도 있었다.[58] 그러나 갸넨드라는 이후 반인도 정책을 펼치고, 티베트 독립파를 탄압하는 등 상반된 행보를 보였다.[59]

갸넨드라는 형 비렌드라와 달리 국민들의 인기가 없었다.[62]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권위적인 통치를 이어갔으며, 네팔 공산당 마오쩌둥주의파(마오이스트)에게도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59][60][61]

4. 1. 네팔 왕실 학살 사건과 즉위 (2001년)

2001년 6월 1일, 네팔 왕실 학살 사건으로 비렌드라 국왕을 포함한 다수의 왕족이 사망했다. 딥엔드라 왕세자가 범인으로 지목되었으나, 그 역시 중태에 빠져 며칠 후 사망했다. 갸넨드라는 섭정을 거쳐 2001년 6월 4일 국왕으로 즉위했다.[8][9]

이 사건과 관련하여 갸넨드라가 임명한 케샤브 프라사드 우파드야(당시 대법원장)와 타라나트 라나바트(당시 하원의장)로 구성된 조사팀이 일주일간 조사를 실시했다.[6] 조사팀은 목격자, 궁정 관계자, 경비원 및 직원 등 100명 이상을 인터뷰하여 딥엔드라 왕세자가 학살을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렸다.[7]

사건 당시 갸넨드라가 현장에 없었고, 그의 가족들이 사건 현장에 있었음에도 모두 무사했던 점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다.[58] 일각에서는 갸넨드라가 미국과 인도의 지원을 받아 친중파인 비렌드라와 딥엔드라를 제거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58]

4. 2. 권위주의 통치와 민주화 운동 (2002년 ~ 2006년)

갸넨드라는 입헌군주제를 부정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등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강화했다. 2002년 5월, 갸넨드라는 1999년에 선출된 의회를 해산했고,[10] 같은 해 10월에는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총리를 해임하고 권력을 강화했다.[10]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갸넨드라는 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반군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지 못했다는 이유로 세 명의 총리를 임명했다가 해임했다.[10]

2005년 2월 1일, 갸넨드라는 내전 중이던 마오이스트 반군 문제와 의회 선거 준비 실패를 이유로 데우바 총리를 다시 해임하고 직접 통치를 선언하며 절대 권력을 장악했다.[11] 그는 3년 안에 "평화와 효과적인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12] 이 기간 동안 반대 세력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다.[13] 국제 기구들은 갸넨드라가 언론의 자유, 검열에 대한 헌법적 보호, 예방 구금에 대한 권리 등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언론인의 안전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14]

2006년 4월, 7개 정당 연합과 당시 금지되었던 CPN 마오이스트 당은 카트만두에서 갸넨드라의 직접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와 파업을 벌였다. 왕실 정부는 통금령을 선포하고 실탄과 최루탄을 사용하여 시위를 진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23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10] 2006년 4월 21일, 갸넨드라는 국민의 압력에 굴복하여 정당이 선택한 새로운 총리에게 행정권을 양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러 당 지도자들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국왕에게 군주제의 미래 정치적 역할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할 것을 요구했다. 인도 여당인 국민회의의 감독 하에 정당 간에 군주제가 새로운 헌법에 자리를 갖게 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가 임시 총리로 임명되었다. 2006년 4월 24일, 갸넨드라는 전국적으로 방송된 연설에서 이전 의회를 복원했다.[10]

4. 3.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 (2007년 ~ 2008년)

2008년 4월 9일, 갸넨드라는 외국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4월 10일 구성의회 선거 이후 임시 의회가 왕정 폐지를 결정한 것에 대해 "국민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라며 불만을 표했다.[26][27] 그러나 그는 국민에게 왕정의 운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갸넨드라는 국가의 치안 악화와 임시 정부의 통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최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9%가 어떤 형태로든 왕정 유지를 찬성했다는 점을 들어 "대다수의 국민이 왕정 제도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모든 구름 속에는 은빛 안감이 있습니다. 희망을 갖읍시다."라고 주장했다. 2008년 2월 7일 BBC는 갸넨드라가 일본 기자들에게 "네팔 국민 스스로가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 나아가는 방향, 그리고 왜 혼란스러워지는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28]

2007년 1월 15일, 네팔 공산당(마오이스트)이 포함된 임시 의회가 설립되었고, 2007년 4월 1일에는 네팔 공산당이 참여한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다. 2007년 12월 28일, 네팔 임시 의회는 네팔이 연방 민주 공화국이 된다는 조항을 담은 1990년 헌법 개정 법안을 승인했다.

2008년 5월 28일, 네팔 제헌 의회는 공화제 채택과 왕정 폐지를 공식적으로 확정했다.[69] 이로써 갸넨드라는 폐위되었고 네팔 왕국은 멸망했다.

그 후, 정부는 갸넨드라에게 카트만두의 나라야니티 왕궁을 떠날 것을 요구했고, 갸넨드라는 6월 11일 밤 아내와 함께 왕궁을 떠났다.[71] 갸넨드라는 TV 연설을 통해 "국민의 판단을 존중하며 왕정 폐지를 받아들인다. 망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71]

이후 갸넨드라는 정부가 제공한 카트만두 분지 북서쪽 숲에 있는 나가르주나 별궁에 머물고 있다.

5. 퇴위 이후 (2008년 ~ 현재)

갸넨드라는 퇴위 후에도 왕정 복고를 주장하는 일부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 2012년 뉴스24 TV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특정 시점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왕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정치인이 아니라고 말하며, 군주제 부활에 대한 국민투표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제 폐지를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2][33] 갸넨드라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권력을 정치인들에게 넘기고 해산했던 의회를 복원했을 때 헌법 군주제가 복귀될 것이라는 정치인들과의 서면 합의가 있었다고 말했다.[32]

2012년 파르바트 지구 방문 소식이 알려지자, 10개 정당이 항의 집회를 열고 갸넨드라에게 방문 중단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갸넨드라는 포카라로 떠났고, 첫날에는 시민들과 함께 1km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그러나 여러 정당의 반대로 미야그디 방문 일정은 취소되었다.[36]

두바르마르그의 트리사라 레스토랑에서 열린 사적인 파티에서 갸넨드라가 춤추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프라찬다 총리와 케이피 샤르마 올리 전 총리 등이 비판했지만, 비평가들과 시민들은 전직 국왕의 사생활을 비판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비난했다.[37]

2019년 7월 8일, 갸넨드라의 생일을 기념하여 수천 명의 네팔 국민들이 그의 사저인 니르말 니와스 궁전으로 행진했다. 그러나 갸넨드라는 친척의 사망으로 인해 군중을 만나지 않고, 방문객들은 방명록에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38]

2019년 7월, 갸넨드라는 정치 분석가 수렌드라 케이시와 만나 국가의 정치 환경에 대해 논의했다. 케이시는 갸넨드라가 왕위나 정치 복귀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지만, 네팔 국민들의 상황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39]

2023년 2월, 갸넨드라는 네팔을 힌두 왕국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 행사에 참석하여 수천 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했다.[40]

6. 유산과 논란

갸넨드라는 네팔의 마지막 국왕으로, 그의 통치 기간은 민주주의를 향한 네팔 국민들의 열망과 투쟁으로 점철된 시기로 평가된다. 특히 2001년 네팔 왕실 학살 사건은 네팔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갸넨드라의 연루 의혹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다.[58]

갸넨드라는 사건 당시 현장에 없었고, 그의 가족들은 무사했다는 점 때문에 의혹이 제기되었다.[58] 일각에서는 "친인도파인 갸넨드라가 미국과 인도의 지원을 받아 친중파인 비렌드라디펜드라를 제거한 궁정 쿠데타"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58] 그러나 갸넨드라는 이후 반인도 정책을 펼치고 티베트 난민을 탄압하는 등 친중 행보를 보였다.[59]

갸넨드라는 형 비렌드라가 추진했던 민주화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고수했다.[59] 또한, 마오쩌둥주의파(마오이스트) 반군에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국군 투입도 고려했다.[60][61]

갸넨드라는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었으며, 그의 아들 파라스 왕세자 역시 여러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의 미움을 받았다.[62]

2012년 뉴스24 TV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갸넨드라는 왕정 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국민투표의 필요성은 일축했다.[32][33] 그는 과거 의회를 해산하고 권력을 이양했을 때 정치인들과 헌법 군주제 복귀에 대한 서면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32]

2019년 7월, 갸넨드라의 생일을 맞아 수천 명의 네팔 국민들이 그의 사저로 행진했지만, 그는 친척의 사망을 이유로 군중을 만나지 않았다.[38]

2023년 2월, 갸넨드라는 네팔을 세속 국가에서 힌두 왕국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 행사에 참석하여 수천 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했다.[40]

7. 재산

갸넨드라는 즉위 전부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유지했다. 국가와 관련된 사업가였던 그는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고, 투자를 통해 많은 수익성 있는 사업을 운영하며 수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1]

2008년, 수르야 타파 기자는 갸넨드라 국왕이 네팔 전역의 35개 기업에 최소 2억달러를 투자했으며, 해외에도 더 많은 투자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의 솔티 호텔 투자는 2008년 기준으로 지분 47%를 보유한 약 1억달러로 추산되었다.[42]

또한, 갸넨드라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사업체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3]

사업 분야회사명지분
호텔안나푸르나 호텔(고모인 헬렌 공주로부터 상속)
차(茶) 회사히말라야 굿리케 차 회사54%
담배 회사수르야 네팔 담배 회사39%
대규모 차 농장이타하리 소재
발전 회사히말 인터내셔널 파워 코퍼레이션
방적 공장비르군즈의 조티 방적 공장
양조장나라얀가트 양조장
자동차 대리점도요타와 타타 자동차 대리점
락슈미 로진 터펜타인 사(Laxmi Rosin Turpentine Pvt Ltd)
발전 회사보테코시 발전 회사
시프라디 트레이딩 사(Sipradi Trading Pvt Ltd)
고르카 로리 사(Gorkha Lawrie Pvt Ltd)
아마라바티 사(Amaravati Pvt Ltd)
몰디브
석유나이지리아



뿐만 아니라, 갸넨드라는 네팔 전역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또한 마하라즈군즈의 요지에 위치한 약 36 로파니 면적의 개인 거주지인 니르말 니와스 궁전을 포함한 광범위한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44] 그는 샤와 라나 왕조의 가보, 귀중한 보석과 예술품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45]

참조

[1] 웹사이트 ज्ञानेन्द्र शाह : नेपालको इतिहासमा दुई पटक राजा हुन पाए https://www.reporter[...] 2022-07-31
[2] 서적 Inside Knowledge: Streetwise in Asia https://books.google[...] Springer 2005-06-16
[3] 뉴스 Monarchy in Nepal http://www.hinduonne[...] 2001-07-27
[4] 간행물 Homeward Bound http://www.time.com/[...] 1951-01-22
[5] 웹사이트 Royal Biography of Nepal http://meronepal-com[...] MeroNepal.com.np
[6] 웹사이트 Nepal massacre inquiry begins, at long last http://edition.cnn.c[...] 2008-12-11
[7] 뉴스 Prince blamed for Nepal massacre http://news.bbc.co.u[...] 2001-06-14
[8] 뉴스 Nepal mourns slain king http://news.bbc.co.u[...] 2001-06-02
[9] 웹사이트 Unrest as Nepal crowns new king http://www.theguardi[...] 2001-06-04
[10] 뉴스 Troubled times saw king's rise http://www.cnn.com/2[...] 2006-04-20
[11] 뉴스 Nepal's king declares emergency http://news.bbc.co.u[...] 2005-02-01
[12] 뉴스 Nepal's king sacks government http://www.cnn.com/2[...] 2005-02-01
[13] 뉴스 Nepal's king acts against dissent http://news.bbc.co.u[...] 2005-02-03
[14] 웹사이트 State of Emergency Imperils Information Flow http://www.ifex.org/[...]
[15] 뉴스 Nepal's king is made to cut staff http://news.bbc.co.u[...] 2007-03-15
[16] 뉴스 King urged to let boy, 5, be Nepal's saviour http://www.timesonli[...] 2007-06-24
[17] 뉴스 Nepal nationalises royal palaces http://news.bbc.co.u[...] 2007-08-23
[18] 뉴스 Nepalese monarchy to be abolished http://news.bbc.co.u[...] BBC 2007-12-24
[19] 뉴스 Vote to abolish Nepal's monarchy http://news.bbc.co.u[...] 2007-12-28
[20] 웹사이트 Nepal King allowed 15 days to vacate http://telegraphnepa[...] Telegraph Nepal
[21] 뉴스 Nepal becomes a federal democratic republic http://www.nepalnews[...] Nepalnews 2008-05-28
[22] 뉴스 Ex-King Gyanendra says he accepts CA decision; prepares to leave Narayanhiti http://www.nepalnews[...] Nepalnews 2008-06-02
[23] 뉴스 Govt decides to give Nagarjuna palace to ex-King https://www.oneindia[...] Oneindia 2008-06-04
[24] 뉴스 BBC NEWS, Former Nepal king to leave palace http://news.bbc.co.u[...] 2008-06-11
[25] 웹사이트 thaindian.com, Former King Gyanendra prepares to leave Narayanhiti Palace http://www.thaindian[...] Thaindian.com 2008-06-11
[26] 뉴스 Nepal king, facing ouster, urges people to vote http://In.reuters.co[...] 2008-04-09
[27] 뉴스 Nepali king slams decision to abolish the monarchy http://english.peopl[...] 2008-02-08
[28] 뉴스 Nepal king criticises parliament http://news.bbc.co.u[...] BBC 2008-02-07
[29] 웹사이트 Solidifying National Integrity: Nepal's Urgent Need! – Telegraph Nepal http://telegraphnepa[...]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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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뉴스 Ex-king's Myagdi visit cancelled over protest http://www.thehimala[...] 201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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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웹사이트 Former King Gyanendra's birthday observed https://www.peoplesr[...] 2019-07-08
[39] 웹사이트 Dr Surendra KC met Ex-King Gyanendra? http://www.ecanad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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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웹사이트 Nepal's ex-king 'has millions stashed' https://amp.smh.com.[...] 200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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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웹사이트 Bilateral relations https://web.archive.[...]
[49] 웹사이트 Boletín Oficial del Estado http://www.boe.es/bo[...]
[50] 서적 世界歴史叢書 ネパール全史
[51] 서적 世界歴史叢書 ネパール全史
[52] 서적 世界歴史叢書 ネパール全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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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뉴스 ネパール最後の国王、ギャネンドラ元国王の寂しい生活、APF通信 https://www.afpbb.co[...] AFPBB News 2015-09-08
[73] 웹사이트 共産党支配のネパールでなぜ 「王制復古」求めるデモ相次ぐ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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