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토도로프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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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게오르기 토도로프는 1858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불가리아의 군인이다. 그는 러시아-튀르크 전쟁,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에 참전했으며,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사단장 및 군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중 마케도니아 전선과 도브루자 전선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불가리아군 최고사령관 대행을 역임했다. 그는 불가리아 및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다양한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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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토도로프 (군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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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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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게오르기 스토야노프 토도로프 |
출생일 | 1858년 8월 10일 |
출생지 | 볼흐라드, 몰다비아 공국 |
사망일 | 1934년 11월 16일 |
사망 장소 | 소피아, 불가리아 |
안장 장소 | 알려지지 않음 |
군사 경력 | |
소속 | 불가리아 육군 |
복무 기간 | 1877년–1919년 |
최종 계급 | 장군 |
참전 전투 | 러시아-튀르크 전쟁 (1877년~1878년)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 발칸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
주요 전투 | |
지휘 | |
지휘 부대 | 제7 리라 보병 사단 제2 불가리아군 제3 불가리아군 총사령관 |
훈장 | |
훈장 | Order of Bravery Order of St Alexander Order of Military Merit (Bulgaria) Pour le Mérite Iron Cross Iron Cross Lyakat Medal |
2. 생애
게오르기 토도로프는 19세에 러시아-튀르크 전쟁에 참전하여 불가리아 군단(오팔첸치)에 자원 입대했다. 불가리아 해방 이후 소피아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군사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불가리아 통일을 위해 귀국하여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에 참여했다.[1] 전쟁 후 알렉산더 1세 폐위에 가담했다가 군에서 해임되기도 했지만, 곧 복귀하여 군 경력을 이어갔다.[1] 이후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주요 지휘관으로 활약했다.
2. 1.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19세의 나이에 러시아-튀르크 전쟁에 참전하여 불가리아 군단(오팔첸치)에서 복무했다. 불가리아 해방 후, 1879년 소피아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8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군사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1885년 불가리아 통일을 위해 귀국하여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졸업하지 못했다.[1] 이 전쟁에서 비딘과 쿨라 지역 방어 부대를 지휘하여 성공적인 전투를 이끌었다.[1]전쟁 후, 알렉산더 1세 폐위에 가담했다가 1886년 군에서 해임되었으나, 1년 만에 복귀했다.[1] 1887년 8월 13일 소령으로 진급했고, 1896년 1월 1일 대령이 되었다.[1] 육군 사관학교에서 복무했으며, 세블리에보 수비대 지휘관을 역임했다.[1] 1910년 1월 1일 소장으로 진급하여 제7 릴라 보병 사단의 사령관이 되었다.[1]
2. 2. 발칸 전쟁
제1차 발칸 전쟁 (1912-1913) 동안 제7 릴라 보병 사단 사령관으로서 테살로니키로 진격했고, 1913년 1월 26일 불가리아군이 불레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했다.[1]제2차 발칸 전쟁 (1913) 동안에는 칼리만치 전투에서 세르비아군을 격파했다.[1]
2. 3.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에 불가리아가 동맹국으로 참전한 후, 토도로프는 제2군을 지휘했다. 그는 마케도니아 작전을 이끌었고, 이 작전은 오브체 폴레 전투에서 세르비아군의 패배로 끝났다. 이 성공으로 불가리아군은 세르비아군과 영국-프랑스군이 테살로니키에 상륙하는 것을 막았다.[1] 1917년 2월, 제3군을 지휘하며 도브루자에서 루마니아군을 격파했다.[1] 1918년 9월 8일부터 니콜라 제코프 장군의 병환으로 불가리아군 최고사령관 대행을 맡았다.[1] 그는 1918년 세르비아의 결정적인 승리였던 도브로 폴레 전투에 참여했다.[1] 1919년에 군에서 해임되었다.[1]3. 서훈
훈장 | 국가 | 등급 | 비고 |
---|---|---|---|
무공 훈장 | 불가리아 왕국 | 2, 3, 4급 | |
성 알렉산더 훈장 | 불가리아 왕국 | 칼이 있는 1급, 칼이 없는 4, 5급 | |
군공 훈장 | 불가리아 왕국 | 1급 | |
스타라 플라니나 훈장 | 불가리아 | 칼이 있는 1등급 | 2012년 12월 20일 사후 수여[2] |
푸르 르 메리트 | 독일 제국 | ||
철십자 훈장 | 독일 제국 | 1, 2급 | |
리야카트 메달 | 오스만 제국 |
참조
[1]
서적
World War I: The Definitive Encyclopedia and Document Collection
ABC-CLIO
2014
[2]
간행물
Указ № 436 от 20 декември 2012 г. за награждаване посмъртно с орден „Стара планина“ първа степен с мечове на генерал-лейтенант Михаил Попов Савов
http://dv.parliament[...]
Държавен вестник
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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