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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수영성 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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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좌수영성 남문은 조선시대 수군영성 남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홍예와 홍예기석, 그리고 좌우 10m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으며, 수영공원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성문 양쪽에는 박견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왜구를 감시하던 경상좌수영성의 임무를 상징한다. 이러한 박견 형태의 석물 배치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이며, 1993년에 해체 및 보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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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수영성 남문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경상좌수영성 남문
경상좌수영성 남문
이름경상좌수영성 남문
한자 표기慶尙左水營城 南門
국가부산광역시
유형유형문화재
번호17
지정일1972년 6월 26일
주소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 (수영동)
시대18년
소유수영구
관리수영구
참고해당사항 없음
면적해당사항 없음
수량1기, 보호구역 5필지 553m2
전승지해당사항 없음
전승자해당사항 없음
지도대한민국
꼬리표부산 수영동
너비해당사항 없음
대체지도해당사항 없음
설명해당사항 없음
웹사이트해당사항 없음
문화재청 ID21,00170000,21

2. 역사

2. 1. 일제강점기와 이후

3. 구조

현재 앞뒤의 홍예(虹霓, 성문, 수문, 다리 등을 무지개 모양으로 쌓은 것)와 홍예기석(虹霓基石, 홍예석을 쌓기 위해 가장자리에 기둥처럼 놓은 돌)이 남아 있고, 홍예기석과 같은 높이의 성벽이 좌우 10m 정도 남아 있다.[2]

전면 홍예기석 앞에는 같은 크기의 사각형 돌기둥 위에 박견(拍犬) 한 쌍이 양쪽에 나란히 서있다. 이러한 박견 형태의 석물이 성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다른 지역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독특하다. 전면 좌측에는 수령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오랜 세월에 홍예석이 조금씩 침하되어 붕괴될 우려가 있어 1993년 8월 해체․보수하였다.[2]

3. 1. 박견

박견(拍犬)은 성문 양쪽에 배치된 개 조각상 한 쌍이다. 사각형 돌기둥 위에 나란히 서 있는 박견은 왜구를 감시하던 경상좌수영성의 임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2] 성문 옆에 이러한 형태의 석물을 배치한 것은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이다.[2] 전면 좌측에는 수령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2]

4. 의의

경상좌수영성 남문은 조선시대 수군영성 남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2] 특히 박견(拍犬)은 다른 지역 성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조형물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2] 좌수영지에 따르면 4개의 문 중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5. 현황

경상좌수영성 남문은 현재 수영공원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다. 1993년에 보수되었다. 무지개 모양으로 쌓은 문(홍예문) 양쪽 옆에는 개 조각상인 '박견(拍犬)'이 있는데, 이는 왜구를 감시하던 성의 임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좌수영지』에 따르면 4개의 문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성문 옆에 조각상을 배치한 것은 다른 지방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조

[1] 간행물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명칭 변경 고시 부산광역시장 2015-03-18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3] 문서 원래는 갈마봉성이였으나 임진왜란에 석축을 헐어낸 후 일본식으로 재구축 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성북왜성 영토로 변했다.
[4] 웹사이트 당감동 성지 2차 발굴조사 https://museum.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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