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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애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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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애황후는 전한 선제의 황후로, 곽광의 딸 곽성군을 황후로 만들려는 세력의 음모로 인해 독살되었다. 그녀는 평민 출신으로 선제가 즉위하기 전부터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아들 유석(후의 원제)을 낳았다. 곽씨 세력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황후로 책봉되었으나, 곽씨 일족의 계략으로 임신 중 독살당했다. 사후 공애황후로 추존되었으며, 곽씨 일족의 몰락과 원제의 시대 전한의 쇠퇴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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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애황후
기본 정보
허평군
이름허평군
다른 이름공애황후
재위
기간기원전 74년 9월 10일 - 기원전 71년 3월 1일
유형재임
이전효소황후
이후효선황후
생애
출생기원전 89년
사망기원전 71년 3월 1일 (18세)
가족 관계
아버지허광한, 평은대후
배우자한나라 선제
자녀한나라 원제
칭호
시호공애황후 (恭哀皇后)
존호효선황후 (孝宣皇后)
묘호현 (顯)

2. 생애

선제는 즉위하면서 조강지처인 허씨를 황후로 책봉하려 했지만, 대신들은 선제가 즉위하는데 공이 컸던 곽광의 딸 곽성군을 황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선제는 외척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여 대신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허씨를 황후에 책립하였다.

곽광의 아내 곽현(顯)은 자신의 딸 곽성군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기원전 71년, 허황후가 임신 중이었을 때, 곽현은 여의(女醫) 순우연(淳于衍)을 매수해 투구꽃을 이용, 허황후를 독살했다.[6][7] 허황후는 출산 직후 사망했다. 이 일로 순우연이 죽고 순우연의 친구이자 효원황후의 모친인 왕아조가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하지만 후에 곽성군과 현아가 허씨의 소생인 원제를 죽이려고 계획한 일이 탄로나 현아는 처형되고 곽성군은 폐위된 후 자결하였다. 허씨는 공애황후(恭哀皇后)에 추존되었다.

2. 1. 출신 배경

허황후는 평은후 허광한의 딸이다.[2] 허광한은 젊은 시절 창읍왕의 보좌관이었으며, 황제의 시종으로도 일했다. 그러나 무제를 수행하던 중 실수로 다른 시종의 안장을 가져갔다가 절도죄로 기소되어 궁형(거세형)을 선고받았다.[2] 이후 궁궐의 환관이 되어 작은 관료로 일했다. 그는 창읍왕 유굉을 섬기던 하급 관리였으나, 죄를 지어 궁형에 처해져 환관으로서 후궁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허황후는 성장하여 내자령(후궁의 의상 담당 환관)의 아들인 구후씨와 혼담이 오갔지만, 혼례 전에 구후씨가 죽고 말았다. 이 무렵, 무고의 화로 인해 서인이 되어 민간에서 자란 무제의 증손자 유병이(후의 선제)와 혼담이 이루어졌다. 유병이가 가난했기에 허광한의 아내는 반대했지만, 결국 혼담은 성사되어 허황후는 유병이에게 시집갔다.

2. 2. 유병의와의 결혼

훗날 선제가 되는 유병의무제의 증손이자, 반역을 꾀하다 실패한 戾태자 유거의 유일한 생존 후손이었다. 그는 목숨은 건졌지만 평민으로 전락했고, 고아가 되어 할아버지의 옛 부하인 장하에게 의탁해 살았다. 장하는 태자 유거의 부하였던 죄로 무제에게 궁형을 당해 환관이 되었다.[1]

기원전 76년경, 장하는 자신의 손녀를 유병의와 결혼시키려 했으나, 당시 중요한 관리였던 그의 형 장안세는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길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반대했다. 대신 장하는 그의 부하인 허광한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여 그의 딸 허평군(허황후)과 결혼하도록 설득했다. 허광한의 아내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분노하며 거절했지만, 장하가 허광한의 상사였기 때문에 허광한은 약속을 어길 수 없었고, 유병의와 허평군은 장하가 모든 비용을 지불하여 결혼식을 올렸다(유병의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장하는 또한 지참금을 지불했다. 결혼 후, 유병의는 아내의 가족에게 의존하여 생활했다.[1] 기원전 75년, 허평군은 아들 유석을 낳았다.[1]

이 혼담에 관해서는 평군의 아버지 허광한이 죄를 지어 환관이 된 신분, 유병이는 태자의 손자라는 점 등, 둘 다 적지 않게 꺼려지는 출신이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3]

2. 3. 황후 책봉

선제는 즉위하면서 조강지처인 허씨를 황후로 책봉하려 했지만, 대신들은 선제가 즉위하는데 공이 컸던 곽광의 딸 곽성군을 황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 그러나 선제는 외척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여 대신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선제가 평민 시절에 소유했던 칼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자, 관리들은 이 뜻을 알아채고 허씨를 황후로 추천했고, 기원전 74년 12월 31일에 황후로 책봉되었다.[3]

황후가 된 후에도 허평군은 검소한 생활을 하고 상관 황태후를 존경하며 예절을 지켜 현명하다는 평판을 얻었다.

2. 4. 죽음

곽광의 아내 곽현(顯)은 자신의 딸 곽성군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4][5] 기원전 71년, 허황후가 임신 중이었을 때, 곽현은 여의(女醫) 순우연(淳于衍)을 매수해 투구꽃을 이용, 허황후를 독살했다.[6][7] 허황후는 출산 직후 사망했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황후를 제대로 간호했는지 조사하기 위해 체포되었으나, 곽현이 곽광에게 사실을 알리고 곽광이 순우연의 석방에 서명하면서 사건은 묻혔다.

허황후는 황제의 예우를 갖춰 두릉에 묻혔다. 훗날 원제가 된 그녀의 아들 유석은 곽황후에게 암살될 뻔했으나 살아남았다. 곽씨 일족은 기원전 66년에 멸족되었다.

3. 사후

허황후 사후, 곽성군이 궁에 들어와 선제의 황후가 되었고, 곽씨 일족도 외척으로서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곽광이 사망하자 선제는 차츰 곽씨 일족의 실권을 깎아내렸고, 궁지에 몰린 그들이 반란을 꾀하자 숙청했다.[1]

선제 재위 중, 황태자가 된 유석(원제)은 유교에 치우쳐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를 추구했다. 선제는 폐태자를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신하들의 반대와 허씨에 대한 추모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선제의 우려대로, 원제 시대부터 전한은 쇠퇴의 길을 걸었고, 결국 왕망의 찬탈로 멸망했다.[1]

허씨는 사후, 선제의 능묘인 두릉에 묻혔고, 후에 선제와 합장되었다.[1]

4. 가족

관계이름비고
아버지허광한평은후(平恩侯)
숙부허연수낙성후(樂成侯), 대사마거기장군
아들유석(원제)전한의 황제
(이름 미상)요절했을 가능성 높음


5. 평가

허황후는 미천한 신분에서 황후가 되었지만, 검소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현명하게 행동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권력욕에 눈이 먼 곽광의 딸 곽성군의 모친 현아(顯兒)의 음모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1] 허황후의 죽음은 전한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며, 권력 암투의 희생양이 된 비운의 황후로 기억된다.

6.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 카토 시키의 『아가씨와 나 - 뜻밖의 중국 연애 그림 두루마리』에서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활력 넘치는 수전노이자 하층 귀족의 딸로, 하인 청년 백옥을 부려먹었지만, 그가 황족임이 밝혀지자 욕심에 눈이 멀어 결혼한다. 당시 무일푼에 가까웠던 백옥과의 수혈주택 생활을 나름대로 즐기거나, 황후가 된 후에도 후궁을 휘젓는 등 밝고 사람을 좋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1]
  • 시라이 에리코의 『어둠의 궁궐 여명의 별』(『마경의 문 비접의 검』 수록)에서는 주인공들이 방문한 한 왕실에 사는 마음씨 착하고 아름다운 비로 등장한다. 황제와는 평민 시절부터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이미 임신까지 했지만, 밤에 방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인물에 의해 참살당한다.[2]
  • 2013년 중국 텔레비전 드라마 『운중가 ~사랑을 연주하다~』에서는 수 칭이 연기했다.[3]
  • 아오키 토모의 만화 『천공의 옥좌』에서는 주요 인물로 선제와 그의 아내 허평군을 모델로 한 캐릭터가 등장한다.[4]

참조

[1] 문서 guihai day of the 1st month of the 3rd year of the Ben'shi era, per vol.24 of Zizhi Tongjian
[2] 서적 Representations of childhood and youth in early China https://books.google[...]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1-01-09
[3] 문서 renzi day of the 11th month of the 1st year of the Yuan'ping era, per vol.24 of Zizhi Tongjian
[4] 서적 Healing with Poisons: Potent Medicines in Medieval China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2021-06-22
[5] 간행물 Supplementing History: Xiyou bu as a 17th-Century Meta-Xiaoshuo https://brill.com/vi[...] 2024-04-28
[6] 간행물 Chapter 30 - Poisonous Medicine in Ancient China https://www.scienced[...] Academic Press 2024-01-25
[7] 간행물 Supplementing History: Xiyou bu as a 17th-Century Meta-Xiaoshuo https://brill.com/vi[...] 202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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