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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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들섬은 한강대교 부근에 위치한 섬으로, 과거에는 중지도, 제1중지도 등으로 불리다가 1987년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백로가 놀던 돌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노량진 일대를 가리킨다. 조선시대에는 신초리라는 마을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토지 수탈의 아픔을 겪었다. 1917년 한강인도교 건설로 섬의 형태를 갖추었고, 1973년 제방 정비로 하중도가 되었다. 1989년 개발 계획 이후 시민공원 조성 계획이 무산되었으나, 2019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현재는 이원등 동상과 한강 결빙 관측 장소 표지석이 있으며, 다양한 문화 행사와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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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노들섬 |
로마자 표기 | Nodeulseom |
위치 | 한강 |
국가 | 대한민국 |
행정 구역 | 서울특별시 |
자치구 | 용산구 |
기타 | |
추가 정보 | 달빛 노들, 한강 물결과 조화를 이루는 노들섬 인공 달 서울 노들섬에서 밤이 빛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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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칭
한강대교(개통 당시 이름은 인도교)가 건설된 1917년 당시 다리의 중앙에 있던 모래언덕에 둑을 쌓으면서 중지도(中之島, 나까노시마/なかのしま일본어)로 이름을 붙였다. 해방 이후에도 중지도라는 이름이 이어져오다가 1987년 노들섬으로 개칭하였다.[9][10] 노들의 의미는 '백로(鷺)가 놀던 돌(梁)'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노량진 주변을 이야기한다. 이 근처에 있던 나루터를 노들나루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바꾼 것이 바로 노량진(鷺梁津)이다.[9]
노들섬은 구한말까지 육지에 모래밭으로 붙어있어 하중도의 모습을 갖추지 않았다.[11] 노들섬이 위치하던 지역에는 신초리(新草里)라는 마을이 존재했는데, 비변사등록 등 조선시대 사료에 처음 등장한다. 1683년에는 나룻배를 제작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12][13] 갑오개혁 이후 기록에 다시 등장하며, 구한말에는 신초리가 상동과 하동으로 나뉘어 있었다.[14]
3. 역사
1913년에는 이해창이 신초리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주민들의 동의 없이 조선총독부에 판매하였고, 신초리 주민들은 이장 김윤석을 중심으로 항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강제로 퇴거당했다.[12][14]
1913년, 일본 제국 후작 이해창이 신초리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주민들의 동의 없이 조선총독부에 판매하였다.[12][14] 신초리 주민들은 이장 김윤석을 중심으로 86명의 성인남성의 서명을 받아 정식으로 항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강제로 퇴거당했다.[12][14][3] 이는 일제의 토지 수탈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1917년 한강인도교를 개통할 때 한강소교와 한강교를 잇는 사이의 '''중지도'''가 되었다.[11]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며 중지도 부근이 완전히 물에 잠기고, 신초리 역시 완전히 수몰되었다.[15] 1930년대에 한강인도교를 증축하면서 1938년 중지도에 공원을 조성하였다.[15]
해방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을 겪기도 한다.[11] 1950년 당시까지만 해도 중지도는 모래밭으로 용산과 연결되어 하중도가 아니었으나,[11] 김현옥 시장 하에서 1968년 한강종합개발계획으로 인해 모래밭의 모래를 사용하고, 1973년에 제방을 정비해 섬의 부지를 굳히면서 완전히 하중도로 바뀐다.[11] 이 다리는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의 이용을 막기 위해 미군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나중에 재건되었다.[4]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가 지어진 이후에는 선유도와 구분을 위해 '''제1중지도'''로 이름을 바꾼다.[11] 1987년에는 과거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름인 중지도를 고유어인 '''노들섬'''으로 개칭한다. 이 때 제2중지도도 선유도로, 중앙청역도 경복궁역으로 바꾼다.[10] 1970년대와 19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 이 섬에서 더 많은 모래가 채취되었다.[3]
1989년의 개발계획에 따라 한강대교 이서에는 테니스 연습장이 조성되었다.[16] 한때 대규모 시민공원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무산되고 오랫동안 빈 땅으로 남았다. 이후 오세훈 시장 시절,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었으나,[17] 취소되고 주말 농장으로 바뀌면서[18] 오세훈 시장의 정책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논의를 거친 끝에 2017년 10월에 소규모 공연예술센터가 착공에 들어갔고,[19] 2019년 9월 28일 개장함으로써[8][1][2] 노들섬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19]
3. 1. 조선 시대와 구한말
노들섬은 구한말까지 육지에 모래밭으로 붙어있어 하중도의 모습을 갖추지 않았다.[11] 노들섬이 위치하던 지역에는 신초리(新草里)라는 마을이 존재했는데, 비변사등록 등 조선시대 사료에 처음 등장한다. 1683년에는 나룻배를 제작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12][13] 갑오개혁 이후 기록에 다시 등장하며, 구한말에는 신초리가 상동과 하동으로 나뉘어 있었다.[14]
1913년에는 이해창이 신초리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주민들의 동의 없이 조선총독부에 판매하였고, 신초리 주민들은 이장 김윤석을 중심으로 항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강제로 퇴거당했다.[12][14]
3. 2. 일제강점기
1913년, 일본 제국 후작 이해창이 신초리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주민들의 동의 없이 조선총독부에 판매하였다.[12][14] 신초리 주민들은 이장 김윤석을 중심으로 86명의 성인남성의 서명을 받아 정식으로 항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강제로 퇴거당했다.[12][14][3] 이는 일제의 토지 수탈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1917년 한강인도교를 개통할 때 한강소교와 한강교를 잇는 사이의 '''중지도'''가 되었다.[11]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며 중지도 부근이 완전히 물에 잠기고, 신초리 역시 완전히 수몰되었다.[15] 1930년대에 한강인도교를 증축하면서 1938년 중지도에 공원을 조성하였다.[15]
3. 3. 해방 이후
해방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을 겪기도 한다.[11] 1950년 당시까지만 해도 중지도는 모래밭으로 용산과 연결되어 하중도가 아니었으나,[11] 김현옥 시장 하에서 1968년 한강종합개발계획으로 인해 모래밭의 모래를 사용하고, 1973년에 제방을 정비해 섬의 부지를 굳히면서 완전히 하중도로 바뀐다.[11] 이 다리는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의 이용을 막기 위해 미군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나중에 재건되었다.[4]
제2한강교인 양화대교가 지어진 이후에는 선유도와 구분을 위해 '''제1중지도'''로 이름을 바꾼다.[11] 1987년에는 과거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름인 중지도를 고유어인 '''노들섬'''으로 개칭한다. 이 때 제2중지도도 선유도로, 중앙청역도 경복궁역으로 바꾼다.[10] 1970년대와 19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절, 이 섬에서 더 많은 모래가 채취되었다.[3]
1989년의 개발계획에 따라 한강대교 이서에는 테니스 연습장을 조성했다.[16] 그러나 대규모 시민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은 무산되고, 오랫동안 빈 땅으로 남는다.[16] 이후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었으나,[17] 취소되고 주말 농장으로 바뀌었다.[18] 이후 논의를 거친 끝에 2017년 10월에 소규모 공연예술센터가 착공에 들어갔고,[19] 2019년 9월 28일 개장함으로써 노들섬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19]
3. 4. 개발과 복합문화공간 조성
1989년의 개발계획에 따라 한강대교 이서에는 테니스 연습장이 조성되었다.[16] 한때 대규모 시민공원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무산되고 오랫동안 빈 땅으로 남았다. 이후 오세훈 시장 시절,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는 계획이 진행 중이었으나,[17] 취소되고 주말 농장으로 바뀌면서[18] 오세훈 시장의 정책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논의를 거친 끝에 2017년 10월에 소규모 공연예술센터가 착공에 들어갔고,[19] 2019년 9월 28일 개장함으로써[8][1][2] 노들섬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19]
4. 기타
노들섬의 한강대교 변에는 1966년 낙하 훈련 중 순직한 육군 상사 이원등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동년 6월 9일에 설립한 것이다.[20]
노들섬 남단에는 한강 결빙 관측장소 표지석이 있다. 이 장소는 1906년 이래 정부에서 한강의 결빙상태를 확인하는 곳이다. 이 장소에서 바라봤을 때 한강대교의 노량진 쪽에서 두 번째, 네 번째 교각 사이 상류쪽 100미터 부근 공간이 남북간 띠 모양으로 완전히 얼었을 때를 결빙되었다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21]
2021년 1월 4일 부터, 약 한 달간 옛 선착장 자리에 보름달 모형 "달빛노들"이 설치됐다.[22]
참조
[1]
웹사이트
Moonlight Nodeul, An Artificial Moon on Nodeulseom Island in Harmony with Waves of the Hangang River -
http://english.seoul[...]
2021-01-07
[2]
웹사이트
[Eye Plus] Nights shine bright on Seoul’s Nodeulseom
http://www.koreahera[...]
2021-06-03
[3]
웹사이트
한강변 마을 '신초리'는 어떻게 사라졌나
https://h21.hani.co.[...]
2020-05-02
[4]
웹사이트
The Korea Times
https://web.archive.[...]
[5]
웹사이트
한강 노들섬에 市民公園(시민공원) 조성
https://newslibrary.[...]
1989-05-09
[6]
웹사이트
디자인 입는 노들섬…'한국판 오페라하우스' 들어선다
https://www.hankyung[...]
2023-04-2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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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한강공원… 노들섬… 도시농업 본격화
https://www.khan.co.[...]
2012-02-28
[8]
웹사이트
"그섬에 가고싶다"…노들섬, 음악 가득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https://www.yna.co.k[...]
2019-09-06
[9]
뉴스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우리 곁에 돌아온 ‘노들섬’
http://www.hankyung.[...]
한국경제
2009-04-17
[10]
뉴스
驛-거리-지명 이름 7곳 우리말로 고쳐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1987-02-2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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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시재생 포털
https://uri.seoul.go[...]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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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 [서해성의 박학다설] 한강다리 100년, 노들섬은 섬이 아니었다
http://nodeul.org/tb[...]
2021-01-20
[13]
웹인용
同知事 李翊相이 입시하여 숫자 외의 배를 더 제조한 監官 李枝華에게 상을 줄 것에 대해 논의함
http://db.history.go[...]
2021-01-2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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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36-07-05
[16]
뉴스
한강 노들섬에 市民公園 조성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1989-05-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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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들섬 예술센터 건립계획
http://www.seoul.go.[...]
[18]
웹사이트
서울시, 한강공원… 노들섬… 도시농업 본격화
http://news.khan.co.[...]
[19]
뉴스
"그섬에 가고싶다"…노들섬, 음악 가득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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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20-07-2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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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李源登上士 銅像除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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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66-06-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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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 포토뉴스: 한강 첫 결빙
http://web.kma.go.kr[...]
2013-01-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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