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폰코크앤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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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폰코크앤엔지니어링은 1872년 미쓰이 그룹에 의해 설립된 일본의 기업으로, 미쓰이 재벌의 핵심 기업으로서 석탄, 광산 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1950년대 에너지 혁명에 대응하여 코크스, 기계 사업 등으로 다각화를 추진했으며, 1973년 석탄 채굴 부문을 미쓰이 석탄 광업으로 분리했다. 이후 본업 부진과 재무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2003년 산업재생기구의 관리 하에 놓였다. 현재 코크스 사업을 중심으로 신소재 사업 확장에 주력하고 있으며, 2016년 신용평가정보센터로부터 BBB 신용등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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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폰코크앤엔지니어링 - [회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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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회사명 | 일본 코크스 공업 주식회사 |
영문 회사명 | NIPPON COKE & ENGINEERING COMPANY,LIMITED |
약칭 | 일본 코크스 |
본사 우편번호 | 135-6007 |
본사 위치 | 서울특별시강남구삼성동 159 코엑스 |
본사 주소 | 서울특별시강남구삼성동 159 |
설립일 | 1969년 (쇼와 44년) 12월 1일 (창업: 1889년) |
업종 | 3300 |
사업 내용 | 에너지 사업, 분립체 기기 사업 외 |
대표자 | 마쓰오카 히로아키 (대표이사 사장) |
자본금 | 70억 엔 (2020년 3월 31일 현재) |
발행 주식 수 | 3억 234만 9449주 (2020년 3월 31일 현재) |
매출액 | 연결: 1,074억 800만 엔, 단독: 972억 7400만 엔 (2020년 3월기) |
영업 이익 | 연결: 16억 700만 엔, 단독: 7억 1500만 엔 (2020년 3월기) |
경상 이익 | 연결: 9억 8900만 엔, 단독: 2억 5700만 엔 (2020년 3월기) |
순이익 | 연결: 2800만 엔, 단독: △3억 7800만 엔 (2020년 3월기) |
순자산 | 연결: 471억 8800만 엔, 단독: 442억 8400만 엔 (2020년 3월 31일 현재) |
총자산 | 연결: 1,063억 400만 엔, 단독: 997억 400만 엔 (2020년 3월 31일 현재) |
종업원 수 | 연결: 1,032명, 단독: 515명 (2020년 3월 31일 현재) |
결산기 | 3월 31일 |
회계 감사인 | EY신일본유한책임감사법인 |
주요 주주 | 일본제철 22.55% 스미토모 상사 19.43% 일본마스터트러스트신탁은행 (신탁구) 3.12% 나스 이사오 1.80% INTERACTIVE BROKERS LLC 1.59% 일본트러스티・서비스신탁은행 (신탁구) 1.52% 미쓰이스미토모은행 1.29% 일본트러스티・서비스신탁은행 (신탁구5) 1.17% DFA INTL SMALL CAP VALUE PORTFOLIO 1.13% 닛테쓰광업 1.03% (2020년 3월 31일 현재) |
주요 자회사 | 미이케항 물류 100.0% 미미광업 100.0% 아리아케 기전공업 100.0% |
외부 링크 | 일본 코크스 공업 주식회사 공식 웹사이트 |
시장 정보 | |
상장 정보 | (동증) |
상장일 | 2004년 3월 10일 |
2. 역사
니폰코크앤엔지니어링의 역사는 19세기 후반 미쓰이 그룹이 가미오카 광산 경영권을 확보하고, 1889년 미쓰이물산이 정부로부터 미이케 탄광을 불하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설립된 미쓰이광산회사는 미쓰이 재벌의 핵심 기업으로 성장하며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국내외에서 다수의 광산을 운영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석탄 산업의 사양화와 에너지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코크스 및 기계 사업 등으로 다각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규모 인원 정리와 노동조합과의 극심한 갈등, 특히 1960년의 미이케 투쟁과 같은 사건을 겪으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1973년에는 결국 석탄 채굴 사업 부문을 미쓰이 석탄 광업으로 분리하였다.
석탄 사업 분리 이후에도 회사는 코크스 사업 부진과 신규 사업 실패 등으로 경영난을 겪었으며, 2003년에는 산업재생기구의 지원을 받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주력 사업인 코크스 분야를 강화하고 신소재 사업 등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한편, 1963년 발생한 미카와 탄광 폭발 사고와 같은 중대 산업 재해에 대해서는 50주년 추도식에서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6].
2. 1. 전전 (1872년 ~ 1945년)
1872년, 당시 미쓰이 그룹은 가미오카 광산의 광산주들에게 자금을 빌려주었으나, 2년 후 광산주들이 파산하면서 광산의 경영권을 넘겨받게 되었다. 이후 1886년에는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가미오카 지역의 모든 광산을 사들였다. 이어서 1889년에는 계열사인 미쓰이물산이 미이케 탄광을 정부로부터 불하받았다. 이에 따라 같은 해 미쓰이 재벌 소유의 광산과 탄광을 통합 관리하기 위해 미쓰이광산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1892년에 합자회사로, 1893년에는 합명회사로 조직 형태를 변경했다. 1909년에는 미쓰이합명회사와 합병되었으나, 1911년에 다시 분리되어 미쓰이광산 주식회사(구)로 새롭게 출범했다.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시기, 미쓰이광산은 미쓰이 재벌의 핵심 기업으로서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다수의 탄광과 여러 종류의 광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2. 2. 전후 (1945년 ~ 1973년)
1950년에는 고액의 퇴직금(30년 근속 시 100만엔)을 조건으로 희망 퇴직자를 모집하여 미이케, 타가와, 야마노의 3개 탄광에서 8,987명의 인원 정리를 실시했다.[3] 이어서 1953년 8월에 약 6,700명의 추가 인원 정리안을 발표했지만, 노동조합 측이 총평, 탄로의 지원을 받아 미이케, 스나가와, 비바이, 아시베쓰의 4개 탄광에서 반대 투쟁을 전개했다. 결국 같은 해 11월, 인원 정리안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4]1950년대 후반부터는 석탄에서 석유·천연 가스로 주력 에너지가 전환되는 에너지 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코크스와 기계 사업 등으로 진출하며 경영 다각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총자본 대 총노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격렬했던 미이케 투쟁 등이 발생하여 노사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의도했던 사업 구조 전환은 지연되었고, 경영 체질 개선에 어려움을 겪었다. 1973년에는 석탄 채굴 부문을 전액 출자 자회사인 '''미쓰이 석탄 광업'''(2006년 청산)으로 분리했다.
2. 3. 광산 분리 이후 (1973년 ~ 현재)
1973년 석탄 채굴 부문이 미쓰이 석탄 광업 (2006년 청산)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미쓰이 석탄 광업의 경영 위기는 계속되었고, 이는 1997년 미쓰이 미이케 광산 폐쇄로 이어졌다. 본업인 코크스 사업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회사는 파인 세라믹스나 극세 탄소 섬유 등 신규 사업으로 활로를 모색했지만, 재무 체질과 기술력의 한계로 인해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쇼와 말기에는 구 미쓰이 시멘트(당시 자회사)와의 합병 문제와 관련하여, 합병에 반대하던 개인 주주 토구리 토루가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일이 발생했다(매수). 니폰코크앤엔지니어링은 이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한 뒤 다시 자회사에 인수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져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금을 부과받았다.
2003년 3월기, 자회사인 미쓰이 석탄 광업이 보유한 토지 평가 재검토로 회사는 채무 초과 상태에 빠졌다. 같은 해 가을, 결국 산업재생기구의 관리 하에 들어가게 되었고[5], 2006년까지 사실상 국유화 상태에서 구조 전환을 꾀했다. 이 기간 동안 경영진 쇄신, 재무 체질 강화, 유휴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주력 사업인 코크스 분야에서는 기타큐슈 사업소의 휴지 코크스 로를 재가동하고 신일본제철 (현 일본제철)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공급을 실현했으며, 신소재 사업에서는 나노 알루미나 파일럿 플랜트를 준공하고, 도레이 등과 협력하여 재생 탄소 섬유 사업을 시작하는 등 본업 파생 사업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경영 자원을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2007년에는 석유 도매 사업에서 철수할 것을 표명했다.
2013년, 오무타시 주최로 미카와갱 폭발 사고 50주년 추도식을 실시하게 되었지만, 니폰 코크 앤 엔지니어링은 "희생자를 추도하는 식전으로서 조의를 표하고 싶지만, 당사가 사죄하는 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6].
3. 파생 기업
- KM알루미늄: 서일본 시티 은행의 융자 계열사로, 모체인 구 미쓰이 알루미늄은 구 미쓰이 광산 계열이었다.
- 미쓰이 미이케 제작소: 미쓰이 조선 등 미쓰이 그룹 계열사들과 공동으로 출자하여 설립되었다.
- 도시바 및 시바우라 메카트로닉스: 두 회사 모두 전신인 구 시바우라 제작소가 구 미쓰이 광산 계열이었다.
- 미쓰이 화학: 전신인 구 미쓰이 화학과 구 도요 고압 공업이 구 미쓰이 광산 계열이었다.
- 미쓰이 금속 광업: 구 가미오카 광산을 포함한 비철금속 관련 사업 부문을 가미오카 광업(현재의 미쓰이 금속 광업)으로 분리하여 설립되었다.
- 미쓰이 석유 개발: 미쓰이 그룹 소속 17개 회사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주요 사업 중 하나인 타이 해상 가스 사업은 구 미쓰이 광산이 현물 출자한 광구의 권익에서 비롯되었다.
- 그린랜드 리조트 그룹: 원래 이름은 미쓰이 그린랜드였다. 구 미쓰이 광산이 주도하여 구 미쓰이 동압 화학, 미쓰이 금속, 전기 화학 공업(현 덴카), 세이부 가스 그룹, 큐덴 그룹 등 미쓰이 그룹 관련 회사 및 지역 경제계의 협력을 받아 설립된 테마파크(유원지)이다. 그러나 구 미쓰이 광산의 경영 위기로 인해 핵심이 아닌 사업(논코어 사업)을 정리할 필요성이 생겼고, 2005년 중에 세이부 가스와 그 부동산 관련 자회사에 지분 대부분을 매각했다. 이로 인해 미쓰이 그룹과의 관계가 약해지면서 회사 이름과 시설 이름에서 “미쓰이”를 빼게 되었다. 참고로, 구 미쓰이 광산을 대신해 지배 주주가 된 세이부 가스의 의결권 기준 출자 비율은 20%를 넘는다.
- 태평양흥발
4. 신용 등급
참조
[1]
간행물
第17期(2019年4月1日 - 2020年3月31日)有価証券報告書
2020-06-26
[2]
문서
日本コークス工業株式会社 定款 第1章第1条
[3]
뉴스
退職金の最高百万円
日本経済新聞
1950-12-17
[4]
서적
現代世相風俗史年表:1945-2008
河出書房新社
[5]
웹사이트
債務超過で産業再生機構送りに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23-07-17
[6]
웹사이트
三川坑爆発事故:発生50年、大牟田市が初の追悼式実施へ
https://archive.is/2[...]
毎日新聞
2018-09-02
[7]
웹사이트
当社の格付け維持に関するお知らせ
http://v4.eir-parts.[...]
日本コークス工業
2016-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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