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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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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이지 얼스는 독일 출신의 배우로, 본명은 힐다 엠마 슈나이더이다. 1907년 독일에서 태어나 1932년 영화 《괴물》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다. 192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오빠, 여동생과 함께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으며,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먼치킨으로 출연했다. 1952년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 단역으로 출연한 후 은퇴하여 링링 브라더스 서커스 등에서 공연하다 1958년 은퇴했다. 198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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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얼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31년의 데이지 얼스
얼스, 1932년 영화 《괴물》 장면
본명힐다 엠마 슈나이더
출생1907년 4월 29일
출생지슈톨펜, 독일
사망1980년 3월 15일
사망지플로리다주 새러소타, 미국
직업배우 및 서커스 공연자
신장39인치
활동 기간1920년–1958년
관련 인물티니 얼스 (자매)
그레이시 얼스 (자매)
해리 얼스 (형제)
알려진 작품영화 《괴물》 및 《오즈의 마법사

2. 생애

데이지 얼스는 1907년 4월 29일, 독일 스톨펜에서 힐다 엠마 슈나이더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2] 그녀와 그녀의 형제들은 '뇌하수체 기능 저하'로 인한 소인증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권유로 연예계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1] 오빠 커트(해리), 여동생 프리다(그레이스), 엘리(타이니)와 함께 초기에는 매니저의 성을 딴 '얼스'로, 후에는 '돌(Doll)'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영화와 서커스 무대에 섰다.[1]

그녀는 1932년 영화 ''괴물''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졌으나, 이 영화는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다.[2][1][3] 이후 1939년에는 유명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형제들과 함께 먼치킨 중 한 명으로 출연했으며,[1][2] 1952년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도 작은 역할로 참여했다. 영화 활동 외에도 링링 브라더스 서커스와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 소속으로 오랫동안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1][4]

데이지 얼스는 ''지상 최대의 쇼'' 출연 이후인 1952년에 영화 배우 활동을 그만두었고, 형제들과 함께 1958년 서커스에서도 은퇴했다.[1][4] 은퇴 후에는 형제들과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에서 함께 살았다.[1] 그녀는 1980년 3월,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 그녀가 사망한 후, 데이지와 그녀의 형제들의 삶을 다룬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2]

2. 1. 초기 생애

얼스는 1907년 4월 29일, 독일 스톨펜에서 엠마 슈나이더와 구스타프 슈나이더 사이에서 힐다 엠마 슈나이더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2] 슈나이더 부부의 세 딸은 '뇌하수체 기능 저하'로 인한 소인증으로 평균 키보다 작았다. 아버지의 권유로 이들은 자신들의 신체적 특징을 살려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다.[1]

1916년, 힐다의 오빠 커트와 여동생 프리다는 버트 W. 얼스 부부를 만나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먼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얼스 부부의 관리 하에, 커트와 프리다는 '댄싱 돌 가족'과 함께 순회공연을 다니다가 영화계에 진출했다. 영화 활동을 시작하며 커트는 해리, 프리다는 그레이스로 예명을 정하고 매니저의 성을 따라 '얼스'를 사용했다.

해리와 그레이스는 버팔로 빌 쇼에서 헨젤과 그레텔 역으로 첫 공식 댄스 공연을 선보였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댄스 커플'로 불렸다. 1920년대 초, 힐다도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오빠, 언니와 합류했으며 '데이지 얼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26년에는 또 다른 여동생 엘리도 합류했으며, 작은 키 때문에 '타이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네 남매는 초기에 매니저의 성을 따라 '얼스'로 활동했지만, 매니저 얼스가 사망한 후에는 성을 '돌'로 변경했다.[1]

2. 2. 미국 이주와 연예계 활동

데이지 얼스는 1907년 4월 29일, 독일 스톨펜에서 힐다 엠마 슈나이더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2] 아버지 구스타프 슈나이더와 어머니 엠마 슈나이더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은 모두 평균보다 키가 작았다. 아버지는 딸들의 "뇌하수체 기능 저하"로 인한 작은 키를 활용하여 연예계에서 활동할 것을 권유했고,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했다.[1]

데이지의 오빠 커트와 여동생 프리다는 1916년경 먼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버트 W. 얼스와 그의 아내를 만나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얼스 부부의 관리 하에, 남매는 '댄싱 돌 패밀리'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다가 영화계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때 커트는 해리, 프리다는 그레이스로 예명을 바꾸고, 매니저의 성을 따라 '얼스'라는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첫 무대는 버팔로 빌 쇼에서 "헨젤과 그레텔" 역을 맡은 것이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댄싱 커플"로 소개되었다.

힐다(데이지)는 1920년대 초에 오빠와 언니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합류하여 '데이지 얼스'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또 다른 여동생 엘리는 1926년에 합류했는데, 작은 외모 때문에 '타이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네 남매는 모두 '얼스'라는 성을 사용했으나, 매니저 얼스가 사망한 후에는 성을 '돌(Doll)'로 바꾸었다.[1]

데이지 얼스는 1932년 영화 ''괴물''에 출연하며 가장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끔찍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미국에서는 많은 장면이 삭제되었고, 영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캐나다에서는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2][1][3]

그녀는 1928년 영화 ''쓰리-링 매리지''(Three-Ring Marriageeng)에도 출연했다.[2] 1939년에는 유명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형제 해리, 그레이스, 타이니와 함께 먼치킨 중 한 명으로 등장하여 노란 벽돌 길을 따라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을 연기했다. 영화 크레딧에는 '돌 패밀리'이라는 이름 대신 '싱어 미지츠(The Singer Midgets)'로 표기되었으며, 개별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후 1952년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 작은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데이지는 ''지상 최대의 쇼'' 출연을 마지막으로 1952년에 영화 배우 활동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녀와 형제들은 링링 브라더스 서커스와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에서 계속 활동하며, 약 30 시즌 동안 사이드 쇼의 퍼레이드 공연자로 출연했다. 네 남매는 모두 1958년에 서커스 활동에서도 은퇴했다.[1][4]

은퇴 후, 데이지는 세 형제와 함께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에서 조용히 살았다.[1] 그녀는 1980년 3월,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사망한 후, 데이지와 그녀의 형제들의 삶을 다룬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되었다: ''Freaks Uncensored!''(1999), ''Ce nain que je ne saurais voir!''(2015, TV 영화), ''Schlitzie: One of Us''(2015).[2]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아프리카너 출신 프란츠 타이보쉬가 데이지에게 반했다는 일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지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그녀의 남편은 가족의 운전사 겸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구애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2. 3. 주요 출연작


  • 3링 결혼 (1928년)[2]
  • 괴물 (1932년): 데이지 얼스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개봉 당시 끔찍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미국에서는 많은 장면이 삭제되었으며, 영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고, 캐나다에서는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2][1][3]
  • 오즈의 마법사 (1939년): 형제인 타이니, 그레이스, 해리와 함께 노란 벽돌 길을 따라 노래하고 춤추는 "먼치킨"으로 출연했다. 영화 크레딧에는 개별 이름 대신 "싱어 미지츠"로 등재되었으나, 실제로는 "돌 가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1][2]
  • 지상 최대의 쇼 (1952년): 작은 역할로 출연했으며,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배우 활동을 은퇴했다.[1][4]

2. 4. 은퇴와 말년

데이지 얼스는 1952년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서 작은 역할을 맡은 후 영화 배우 생활에서 은퇴했다.[1] 그녀와 그녀의 형제들은 영화계 은퇴 후에도 링링 브라더스 서커스와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에서 계속 일했으며, "30 시즌 동안 사이드 쇼"에서 "퍼레이드 공연자"로 출연했다.[1][4] 그들은 모두 1958년에 서커스에서도 완전히 은퇴했다.[1][4]

은퇴 후, 데이지는 세 형제와 함께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에서 살았다.[1] 1980년 3월, 데이지는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 그녀가 사망한 후, 그녀와 그녀의 형제들을 다룬 세 편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었다. 이들은 ''괴물 언컷!''(1999), ''Ce nain que je ne saurais voir!''(2015, TV 영화), ''Schlitzie: One of Us''(2015)이다.[2]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아프리카너인 프란츠 타이보쉬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으나, 당시 데이지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고 그녀의 남편은 가족의 운전사이자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이보쉬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언급되었다.

참조

[1] 뉴스 Tiny Doll https://www.telegrap[...] 2016-06-14
[2] 웹사이트 Daisy Earles (1907–1980) https://www.imdb.com[...] Internet Movie Data base(OMDb) 2016-06-02
[3] 웹사이트 Daisy Earles http://www.tcm.com/t[...] Turner Classic Movies 2016-06-02
[4] 웹사이트 Daisy Earles Biography http://www.setcelebs[...] setcelebs.com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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