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카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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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카는 1954년 마드라스에서 태어난 배우로, 1973년 연극 배우로 데뷔하여 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1981년 내셔널 필름 어워드 여우주연상, 1980년과 1988년 필름페어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파드마 시리 훈장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하락세를 겪었지만,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에는 라지야 사바 국회의원으로 지명되어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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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카 (배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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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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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바누레카 가네산 |
다른 이름 | 레카 아가르왈 |
출생일 | 1954년 10월 10일 |
출생지 | 마드라스, 마드라스 주, 인도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58년–현재 |
개인사 | |
배우자 | 무케시 아가르왈 (1990년 결혼, 1990년 사망) |
아버지 | 제미니 가네산 |
어머니 | 푸슈파발리 |
친척 | 사비트리 (의붓 어머니) 카말라 셀바라지 (이복 자매) 테즈 사프루 (형부) 슈바 (사촌) 베단탐 라가바이야 (삼촌) |
가족 | 가네산 가문 |
수상 | |
수상 내역 | 전체 목록 |
훈장 | 파드마 슈리 (20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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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활동 | |
직책 | 라지야 사바 의원 |
선출 방식 | 지명 |
임기 시작 | 2012년 4월 27일 |
임기 종료 | 2018년 4월 26일 |
2. 이력
1973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다. 1981년 내셔널 필름 어워드 여우주연상, 필름페어상 여우주연상 2회(1980년, 1988년)를 수상했으며, 2010년 파드마 시리 훈장을 받았다.[14]
=== 아역 시절 (1966-1969) ===
1968년 말,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사업가 쿨지트 팔은 H. 라이더 해거드의 소설 ''솔로몬 왕의 보물''을 각색한 ''안자나 사파르''의 신인 배우를 찾던 중 제미니 스튜디오에서 레카를 발견하고 바니쉬리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팔은 레카에게 스크린 테스트를 위해 여러 문장을 힌디어로 받아쓰게 했고, 레카는 이것을 라틴 문자로 다시 적은 후 암기하여 완벽하게 말해 힌디어 원어민과 같은 목소리로 그를 감명시켰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형제 샤트루지트 팔이 각각 제작하는 4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5년 계약을 맺었다.
1969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로 이사하여 팔이 비용을 지불하는 주후 지역의 아잔타 호텔에 방을 임대했다. 같은 해, Dr. 라지쿠마르와 함께 출연한 칸나다어 영화 ''오퍼레이션 잭팟 낼리 C.I.D 999''가 성공적으로 개봉하며 대중과 언론에 데뷔했다.[14][28] 라자 나와테가 감독한 ''안자나 사파르''에서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숨겨진 보물을 찾아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야 하는 여자 수니타 역을 맡았으며, 이 작품에 대해 25,000 루피를 받았다.
당시 어머니가 아팠기 때문에 레카는 이모와 함께 촬영에 참여했고, 촬영은 그 해 8월 메부브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레카와 남성 주연 비스와지트 채터지가 출연하는 키스신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 나와테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레카는 나중에 그 장면에 속았다고 불평했다.[29] 이 영화는 검열 문제에 직면했고 1979년이 되어서야 ''두 시카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30] 키스신은 1970년 4월 ''라이프'' 잡지의 아시아판 표지에 실렸다.[31][32]
1969년 봄베이로 이사한 직후, 레카는 모한 세갈과 영화 ''사완 바돈''에 출연 계약을 맺었고, 10월 11일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녀를, 연인 (나빈 니숄)과 결혼하는 것을 부모에게 허락받지 못하는 시골 소녀 찬다 역으로 캐스팅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길고 숱이 많았지만, 세갈은 그녀에게 가발을 쓰도록 강요했다. 따라서 가발은 그녀의 머리에 맞지 않았고, 그녀의 헤어 디자이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의 삭발해야 했다. 그녀는 당시 힌디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영화 제작진의 대부분은 그녀가 남인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롱했다.
=== 초기 역할 및 주목 (1969-1977) ===
''두 시카리''는 흥행에 실패했다.[33] 그녀의 힌디어 데뷔작인 ''사완 바돈''은 1970년 9월에 개봉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했다.[34][35] 영화 평론가들은 그녀의 외모를 비웃었지만, 영화에서의 그녀의 자신감과 코믹한 타이밍을 칭찬했다.[16] 마노지 다스는 레카와 함께하는 모든 장면에서 니숄의 얼굴에 "당혹감"이 나타났다고 평가했고,[36] ''필름 월드'' 잡지는 이 영화의 성공이 그녀의 경력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언급했다.[37] 콜리 프라티야가트마 감독의 텔루구 드라마 ''아마 코삼''이 연말에 개봉되었고, 그녀는 이 영화를 어머니에게 헌정했다.[38][39]
이후 여러 제안을 받았지만, 역할이 대부분 화려한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것은 없었다.[40] 10년 동안 연평균 10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부분은 졸작으로 여겨졌고, 그녀의 경력을 발전시키지 못했다.[16] 람푸르 카 락슈만(1972), 카하니 키스마트 키(1973), 프란 자예 파르 바찬 나 자예(1974) 등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연기력은 인정받지 못했다.[14] 1975년, 전쟁 영화 아크라만에서 라케쉬 로샨의 아내인 시탈 역을 맡았는데, 쿠라툴라아인 하이더는 이 역할이 진부하다며 "옷걸이"라고 칭했다.[41] 란디르 카푸르의 다르람 카람은 불량배에 관한 드라마이며, 잡지 "링크(Link)"는 레카의 역할이 전체 출연진 중 가장 비참하다고 언급했다.[42] 마피아 영화 다르마아트마는 그녀가 그 해에 유일하게 재정적으로 성공한 작품이었다.[43][44] 페로즈 칸이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그녀는 칸의 어린 시절 소꿉친구인 아누 역을 맡았다.[45]
레카는 당시 자신이 인식되는 방식이 외모를 바꾸고 역할 선택을 개선하도록 자극했다고 회상한다. "어두운 피부색과 남인도적인 특징 때문에 힌두 영화의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불렸다... 나는 순전히 실력만으로 성공하겠다고 결심했다."[47] 1970년대 중반은 그녀의 외모 변신의 시작을 알렸다. 그녀는 메이크업과 옷차림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연기 기술을 향상시키고 힌두어 실력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노력했다.[48] 칼리드 모하메드에 따르면, "관객들은 그녀의 스크린 속 인물과 연기 스타일의 급격한 변화에 감탄했다."[49] 레카는 더욱 신중하게 영화 역할을 선택하기 시작했다.[16]
1976년 암리타 바찬의 야심적이고 탐욕스러운 아내로 도 안자네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요하는 역할을 맡았다.[50] (그들은 나마크 하람(1973)에서 함께 출연했지만, 레카는 라제쉬 칸나와 상대역을 맡았다.) 그녀의 역할은 배우가 된 바찬의 아내인 레카 로이이다. 니하르 란잔 굽타의 소설 "라트리르 야트리(Ratrir Yatri)"를 각색한 이 영화는 둘랄 구하가 감독하고 나벤두 고쉬가 각본을 썼으며,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인기를 얻었다.[14] "필름 월드(Film World)"는 그녀가 힌두 영화의 주연 배우임을 증명했으며, 영화 제작자들이 그녀에게 더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영화에 캐스팅하는 데 더 열심이 되었다고 썼다.[16]
1977년은 레카가 3년 연속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해였고, 액션 범죄 영화 쿤 파시나는 그 해에 여섯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인도 영화가 되었다.[51] 같은 해, 비노드 칸나와 나디라와 함께 코미디 드라마 아프 키 카티르에 출연했다. 가난한 소녀 역할을 맡은 그녀는 여러 영화 기자 협회로부터 상을 받았다.[52] 더 힌두의 회고적 리뷰에서, 비자이 로카팔리는 레카의 역할이 그녀에게 도전적이었고 칸나와의 케미를 높이 평가했다.[53] "필름 월드(Film World)"는 혼합된 비평을 받은 액션 영화 임만 다르람에서의 그녀의 연기에 대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수여했다.[16] 이 영화는 타밀족 노동자 드루가 역을 맡은 그녀가 도둑 모한 쿠마르-삭세나 (샤시 카푸르)에게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52][55]
=== 전환점과 스타덤 (1978-1984) ===
레카의 전환점은 1978년 사회 드라마 ''가르''에서 강간 피해자를 연기하면서 찾아왔다.[57] 그녀는 새로 결혼한 아르티 역을 맡았는데, 집단 강간을 당한 후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이 영화는 남편 (비노드 메흐라)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따라갔다.[58] 이 영화는 그녀의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이정표로 여겨졌으며,[21][59] 그녀의 연기는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21][59] 디네쉬 라헤자는 "''가르''는 성숙한 레카의 등장을 알렸다. 그녀의 전형적인 기쁨은 매우 현실적인 묘사로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30] 그녀는 Filmfare Awards에서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14] 같은 해에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무카드르 카 시칸다르''는 그 해의 가장 큰 흥행작이자 10년간 가장 큰 흥행작 중 하나가 되었으며, 레카는 이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60] 이 영화는 긍정적인 비평을 받았으며,[61] 조라바이 역을 맡아 잠시 출연한 레카는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14][62] ''The Tribune''의 M. L. 다완은 그녀의 "불타는 강렬함"을 언급했다.[58] 레카는 이 시기를 자기 발견의 시기로 회상했다. 그 해의 다른 영화로는 ''카르마요기''가 있다.[63]
''도 안자네'' 이후, 그녀의 공동 출연자인 아미타브 밧찬과의 로맨스에 대한 추측이 나왔다.[16] 당시 영화 제작자들은 이 소문을 이용해서 영화를 홍보할 기회로 삼았고, 1979년작인 ''미스터 나트와랄''과 ''수하그''에서 그랬듯이, 관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캘커타를 배경으로 한 액션 로맨스인 ''미스터 나트와랄''에서 레카는 평범한 시골 여자 샤누 역을 맡아 좋은 평을 받았다.[64][65] ''수하그''는 ''무카드르 카 시칸다르''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창녀로 등장시켰으며, 그 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66]
다음 두 해는 더욱 성공적이었다. 1980년, 레카는 흐리시케쉬 무케르지의 코미디 영화 ''쿠브수랏''에 출연했다. 그녀를 위해 특별히 쓰여진 역할에서, 그녀는 최근에 결혼한 여동생을 방문하여 대가족에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하는 젊고 활기찬 여성 만주 다얄 역을 맡았고, 이는 가문의 가모에게 불만을 샀다. 레카는 자신의 캐릭터의 발랄한 성격에 쉽게 공감한다고 말하며, "나와 꽤 닮았다"고 말했다.[69] ''쿠브수랏''과 그 영화에서의 레카의 연기는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화는 재정적으로 성공했다.[50] Filmfare Awards에서 이 영화는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레카는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14] ''The Tribune''은 영화에 "자연스러운 활력"을 불어넣은 레카의 "활기찬 연기"를 칭찬했다.[70] T. 라마 라오가 연출한 ''마앙 바르로 사자나''와 ''주다이'', 그리고 사완 쿠마르 탁의 ''사잔 키 사헬리''는 그 해에 그녀에게 더 많은 비평적 관심을 가져다주었다.[71][72]
아미타브 밧찬과의 추정되는 로맨스에 대한 소문은 야쉬 초프라의 로맨틱 드라마 ''실실라''에서 함께 출연하면서 절정에 달했다.[73] 이 영화는 언론의 소문을 반영했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스캔들적이었다. 레카는 밧찬의 연인 역을, 밧찬의 실제 부인 자야 밧찬은 그의 부인 역을 맡았다.[74] 이 영화는 1980~1981년 비밀리에 촬영되었으며, 초프라는 언론의 촬영장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실실라''는 많은 언론인들에게 "캐스팅 쿠데타"로 여겨졌으며,[75][76] 이는 레카와 밧찬의 마지막 협업이었다.[73][77] 이 영화는 1981년 7월에 개봉하여 비평적, 상업적 실패를 겪었고, 초프라는 캐스팅 문제로 인해 관객의 관심이 플롯보다는 소문에 집중되었다고 느꼈다. ''인디아 투데이''의 수닐 세티는 레카가 "[아미타브 밧찬]의 지겨운 남성 우월주의만큼이나 인위적"이라고 말했다.[74] 그 해에 그녀가 출연한 다른 영화로는 라메쉬 털와르의 ''바세라''와 T. 라마 라오의 ''에크 히 불'' (1981년 타밀 영화 ''모우나 기탄갈''의 리메이크)이 있으며,[79]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그녀는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젊은 미혼 여성 역을 맡은 ''지반 다라'' (1982)로 또 다른 Filmfare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80]
이 시기에 레카는 주류 영화에서 주어진 역할 이상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했고, 인도 네오리얼리즘 예술 영화 운동인 병행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에는 ''칼류그'' (1981), ''움라오 잔'' (1981), ''비제타'' (1982), ''웃사브'' (1984) 및 ''이자자트'' (1987)가 있다. 미르자 하디 루스와의 우르두어 소설 ''움라오 잔 아다'' (1905)를 영화화한 ''움라오 잔''에서 레카는 1840년대 러크나우 출신의 시인이자 마음이 따뜻한 창녀인 제목 역할을 맡았다. 호화로운 제작 비용으로 제작되었으며,[81] 이 영화는 어린 시절 아미란이라는 소녀로 납치되어 사창가에 팔린 움라오의 삶의 이야기를, 수년 후 사랑과 다른 시련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인기 있는 창녀가 되는 과정을 따라갔다. 역할 준비를 위해 레카는 경력 초기에 힌디어를 하지 못했지만 우르두어의 미묘한 차이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82] 레카는 그녀의 연기에 대해 널리 찬사를 받았으며, 이후 그녀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인용되었다.[83] ''The Illustrated Weekly of India''의 발루 바라탄은 그녀의 "아직 탐구되지 않은 연기력"에 대해 썼다.[84]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또 다른 Filmfare Award 후보에 올랐으며, 이후 ''Filmfare''는 이를 볼리우드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연기 중 하나로 간주했다.[85][86] 그녀는 나중에 이 영화가 전환점이었다고 주장했다.[47]
그녀의 예술 영화 작업 중 샴 베네갈의 ''칼류그''는 라이벌 사업가들 사이의 전형적인 갈등으로 묘사된, 인도 신화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현대적 각색이다. 레카가 맡은 수프리야 역할은 드라우파디를 기반으로 한다. 베네갈은 ''쿠브수랏''에서의 그녀의 연기를 보고 그녀를 이 역할에 캐스팅했으며, 그녀가 "자신의 직업에 매우 열정적이고 진지하다"는 점에 주목했다.[87] 비평가이자 작가인 비제이 나이르는 그녀의 연기를 "현대 드라우파디의 숙련된 해석"이라고 묘사했다.[88] 마두 트레한은 그녀가 "지성, 강인함, 그리고 젊은 시동생에 대한 간신히 억제된 갈망을 가진 여성" 역할을 "흠잡을 데 없이" 연기한 것에 대해 칭찬했다.[89] 1982년 성장 이야기 영화 ''비제타''에서 그녀는 결혼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미래 계획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결국 인도 공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한 십 대 아들을 지원하려 노력하는 네리마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 역할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역할 중 하나로 묘사했다.[50]
기리쉬 카르나드의 에로틱 드라마 ''웃사브''에서, 기원전 4세기 슈드라카의 산스크리트어 연극 ''므르차카티카''를 기반으로, 그녀는 창녀 바산타세나를 연기했으며, 그녀의 연기로 벵골 영화 기자 협회로부터 최우수 여배우 (힌디어)로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그녀의 관능적인 장면으로 광범위한 보도를 받았고, 레카는 이를 당시의 여성 신인들과 경쟁하는 방법으로 여겼다. ''웃사브''는 시나리오와 연출로 관객과 영화 평론가 모두를 양극화시켰지만, 그녀의 연기와 의상은 호평을 받았다. ''아시아위크''의 리뷰는 레카가 "반짝이는 보석 외에는 거의 입지 않았다"고 언급했다.[91] 2003년, 마이틸리 라오는 "레카는 고대 힌두 인도든 19세기 무슬림 러크나우든 항상 창녀 역할에 대한 첫 번째 선택이었으며, 조각상 같은 관능성을 지녔다..."라고 썼다. 굴자르의 드라마 ''이자자트''에서 레카와 나시루딘 샤는 이혼한 부부로, 수년 동안 헤어진 후 기차역에서 예기치 않게 처음 만나 결혼 생활과 결국 이별하게 된 갈등을 함께 회상한다.[92]
=== 여성 중심 영화와 흥행 (1985-1989) ===
레카는 평행 영화 외에도 점점 더 모험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여성 중심의 복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초창기 여배우 중 한 명이었으며, 그 첫 번째 작품은 1988년의 쿤 바리 망이었다.[93] 라케쉬 로샨이 레카를 염두에 두고 특별히 제작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간교한 두 번째 남편의 살인 미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죽은 것으로 여겨진 후 숨겨진 신분으로 복수를 하는 부유하고 소박한 미망인 아르티 삭세나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두 번째 필름페어상을 수상했다. 레카는 ''쿤 바리 망''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고 이해한 유일한 영화"라고 묘사했다.[94] 트리뷴의 M.L. 다완은 1988년의 유명한 힌두 영화를 기록하면서 ''쿤 바리 망''이 "불사조처럼 일어선 레카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었고, 그녀의 대담함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고 언급했다.[95]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힌두 영화 백과사전''은 영화 속 그녀의 역할을 힌두 영화의 기억에 남는 여성 캐릭터 중 하나로 꼽으며, "영원히 용서하는 아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녀를 복수의 천사로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스크린'' 잡지의 비슷한 목록에서 이 역할은 "힌두 영화 여주인공을 자랑스럽게 만든 기억에 남는 10개의 역할"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96]
이후 인터뷰에서 레카는 이 역할로 필름페어상을 받은 것이 작은 휴식을 취하고 젊은 스타들에게 가려진 후 자신감을 얻고 인정받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영화계의 모든 갈채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고 내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열정을 느꼈고, 바로 그때 이것이 나의 소명, 내가 사람들의 삶에 나의 연기를 통해 변화를 주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97]
=== 흥행 부진과 재기 (1990-1999) ===
1990년대는 레카의 인기가 떨어진 시기였다. 레카가 출연한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고, 평론가들은 그녀의 역할에 대해 혹평했다. 하지만 헤마 말리니나 라키와 같이 어머니 역할에 머무른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레카는 젊은 배우들이 인기를 얻는 시기에도 여전히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82]
1990년, 레카는 ''메라 파티 시르프 메라 하이''와 ''아미리 가리비''를 포함한 4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인한 충격과 언론의 비난 속에서도, 레카는 K. C. 보카디아 감독의 영화 ''풀 바네 앙가레이''(1991)에서 남편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경찰이 되는 나타라 싱 역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레카는 Filmfare(필름페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Subhash K. Jha는 "카키색 제복이 이렇게 섹시해 보인 적은 없었다"라고 칭찬했다.[98][99] ''The Indian Express''는 레카가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풀''(꽃)이 되어 ''앙가레이''(불타는 석탄)가 되는 역할에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평가했다.[100]
''풀 바네 앙가레이''와 ''쿤 바리 망''의 성공으로 인해,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레카에게 비슷한 역할들을 제안했다. 레카는 ''인사프 키 데비''(1992), ''압 인사프 호가''(1995), ''우다안''(1997) 등에서 "복수의 천사" 역할을 연이어 맡았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101] 레카는 샤크티 사만타 감독의 ''기탄잘리''에서 지텐드라와 함께 쌍둥이 자매를 연기했고, ''마담 X''에서는 여성 지하 세계 두목을 연기하기 위해 경찰에 고용된 젊은 여성 역을 맡았지만,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참패했다.[102]
1990년대 중반, 레카는 ''카마 수트라: 사랑의 이야기''와 ''킬라디오 카 킬라디''(1996)와 같은 논란이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하락세를 극복하려 했다. 미라 네어 감독의 ''카마 수트라''는 에로틱 드라마였고, 많은 사람들은 레카가 카마 수트라 교사 역할을 맡은 것이 그녀의 경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103] 그러나 레카는 비판에 굴하지 않았고, Variety의 토드 맥카시는 그녀의 연기를 "절묘하게 잘 표현했다"고 호평했다.[104] 우메쉬 메라 감독의 액션 영화 ''킬라디오 카 킬라디''는 그 해 인도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105] 이 영화에서 레카는 미국에서 불법 레슬링 경기를 운영하는 악랄한 갱스터 두목 마담 마야 역을 맡아 처음으로 악역을 연기했고, 영화 속에서 훨씬 젊은 악셰이 쿠마르와 로맨스를 펼쳤다. 레카는 이 작품으로 Filmfare Award for Best Supporting Actress(Filmfare 여우조연상)과 Star Screen Award for Best Villain(스타 스크린 어워드 악역상)을 수상했다. 팬들과 평론가들 모두 그녀의 연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레카는 자신의 연기가 개인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106][107]
당시 또 다른 논란이 된 영화는 바수 바타차르야 감독의 유작 ''아스타: 봄의 감옥에서''(1997)였다. 레카는 이 영화에서 주부이자 매춘부 역할을 맡았는데, 역할의 특성과 영화의 노골적인 정사 장면으로 인해 언론과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레카는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제 역할에 대해 할 말이 많았어요... 저는 어떤 역할도 연기하는 데 문제가 없어요. 저는 어떤 역할이든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어머니, 시누이 역할일 수도 있고, 부정적, 긍정적, 선정적이거나 어떤 역할이라도 가능해요."라고 해명했다.[108] 그녀의 연기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Star Screen Award(스타 스크린 어워드) 후보에 올랐고,[109] ''India Today''는 그녀의 연기를 "수년 동안 그녀의 최고의 연기"라고 극찬했다.[110][111] 이후 레카는 ''킬라''(1998)와 ''마더''(1999)에 출연했다.[112][113][114]
=== 다양한 캐릭터와 현재 (2000-현재) ===
2000년대에 레카는 비교적 적은 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T. 라마 라오가 감독한 ''불란디''로 2000년대를 시작했다. 다른 영화는 카리스마 카푸어와 마노지 바자페이가 출연하여 왕의 첫 번째 부인 마하라니 만디라 데비 역을 맡은 칼리드 무함마드의 주베이다였다.[115]
2001년, 레카는 라즈쿠마르 산토시의 페미니스트 드라마 ''라자''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2년 전 바와니푸르에서 여성 강간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앙상블 작품이었다.[116] 이 영화는 가출한 아내 (마니샤 코이랄라)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녀가 머무는 각 여성의 이야기를 세 개의 주요 장으로 펼쳐낸다. 레카는 영화의 영감이 돌아가는 마지막 장의 주인공으로, 강간의 피해자가 된 억압받는 달리트 마을 여성이며 사회 운동가인 람둘라리 역을 맡았다. 레카는 이 영화에 대해 "나는 라자이고 라자는 나다"라고 언급했다.[117] 그녀는 그녀의 연기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Filmfare 상과 국제 인도 영화 아카데미 상 (IIFA)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포함하여 그녀의 작품에 대한 여러 차례 후보 지명을 받았다.[118] 타란 아다르쉬는 "인도 영화에서 최근에 볼 수 있었던 최고의 연기 중 하나를 보여주며 영광을 가져가는 것은 레카"라고 썼다.[119][120][121]
라케쉬 로샨의 SF 영화 ''코이... 밀 가야''에서 레카는 지적 장애가 있는 젊은이의 싱글맘인 소니아 메흐라 역을 맡았고, 이 역은 리틱 로샨이 연기했다. 이 영화는 재정적으로, 비평적으로 성공했고 그 해 가장 인기 있는 영화가 되었으며, Filmfare 최우수 영화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122] 레카는 할리드 모하메드가 "예리하게 절제된"이라고 묘사한 그녀의 연기로 또 다른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123]
2005년, 레카는 프라딥 사르카르의 "파리니타"에서 "카이시 파헬리 진다가니"라는 노래와 관련하여 특별 출연했다. ''바츠케 레흐나 레 바바''(2005)에서 레카는 조카와 함께 남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계획을 사용하는 사기꾼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비평적으로 큰 실패였다.[124] ''미드데이''는 "레카가 왜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하며 그녀가 "나쁜 대사, 끔찍한 화장, 조잡한 스타일링으로 뒤덮였다"고 지적했다.[125] 이어서
2. 1. 초기 생애 (1954-1968)
레카는 1954년 10월 10일 마드라스에서 배우 제미니 가네산과 푸쉬파발리 사이에서 바누레카 가네산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1][2]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생아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 아버지 가네산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12][13][14] 가네산은 푸쉬파발리와의 두 자녀를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푸쉬파발리는 이후 촬영 감독 K. 프라카쉬와 결혼했다.[15] 당시 어머니의 바쁜 연기 일정으로 인해 레카는 종종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16]
가네산은 T. R. "보비마" 알라멜루와 이미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고,[3][4] 배우 사비트리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더 두었다.[4][5] 푸쉬파발리는 이전 결혼에서 두 자녀를 두었고,[6] 가네산과 푸쉬파발리 사이에서 또 다른 딸 라다(1955년 출생)가 태어났다.[7] 타밀인 아버지와 텔루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레카는 텔루구어를 모국어로 유창하게 구사하며,[9] 영어, 타밀어, 힌디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11]
레카는 한 살 때 텔루구어 드라마 ''Inti Guttu''(1958)에 작은 역할로 출연했고,[19] 세 살 때 유치원에 등록했으며, 청소년기에 Presentation Convent School에 다녔다.[21] 학교에서 소아 비만을 겪었고, '로타'( "사생아"를 뜻하는 타밀어)라고 놀림을 받았다.[21] 1966년에는 푸쉬파발리와 라다가 공동 출연한 ''Rangula Ratnam''에 출연했다.[24][25]
1968년 가족의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푸쉬파발리의 권유로 13~14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16]
2. 2. 연기 경력 (1966-현재)
1973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다. 1981년 내셔널 필름 어워드 여우주연상, 필름페어상 여우주연상 2회(1980년, 1988년)를 수상했으며, 2010년 파드마 시리 훈장을 받았다.[14]=== 아역 시절 (1966-1969) ===
1968년 말,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사업가 쿨지트 팔은 제미니 스튜디오에서 H. 라이더 해거드의 소설 ''솔로몬 왕의 보물(King Solomon's Mines)''을 각색한 ''안자나 사파르(Anjana Safar)''의 신인 배우를 찾던 중 레카를 발견하고 바니쉬리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팔은 렉하에게 스크린 테스트를 위해 여러 문장을 힌디어로 받아쓰게 했고, 렉하는 이것을 라틴 문자로 다시 적은 후 암기하여 완벽하게 말해 힌디어 원어민과 같은 목소리로 그를 감명시켰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형제 샤트루지트 팔이 각각 제작하는 4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5년 계약을 맺었다.
1969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로 이사하여 팔이 비용을 지불하는 주후 지역의 아잔타 호텔에 방을 임대했다. 같은 해, Dr. 라지쿠마르와 함께 출연한 칸나다어 영화 ''오퍼레이션 잭팟 낼리 C.I.D 999''가 성공적으로 개봉하며 대중과 언론에 데뷔했다.[14][28] 라자 나와테가 감독한 ''안자나 사파르''에서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숨겨진 보물을 찾아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야 하는 여자 수니타 역을 맡았으며, 이 작품에 대해 25,000 루피를 받았다.
당시 어머니가 아팠기 때문에 렉하는 이모와 함께 촬영에 참여했고, 촬영은 그 해 8월 메부브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렉하와 남성 주연 비스와지트 채터지가 출연하는 키스신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 나와테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렉하는 나중에 그 장면에 속았다고 불평했다.[29] 이 영화는 검열 문제에 직면했고 1979년이 되어서야 ''두 시카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30] 키스신은 1970년 4월 ''라이프'' 잡지의 아시아판 표지에 실렸다.[31][32]
1969년 봄베이로 이사한 직후, 렉하는 모한 세갈과 영화 ''사완 바돈''에 출연 계약을 맺었고, 10월 11일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녀를, 연인 (나빈 니숄)과 결혼하는 것을 부모에게 허락받지 못하는 시골 소녀 찬다 역으로 캐스팅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길고 숱이 많았지만, 세갈은 그녀에게 가발을 쓰도록 강요했다. 따라서 가발은 그녀의 머리에 맞지 않았고, 그녀의 헤어 디자이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의 삭발해야 했다. 그녀는 당시 힌디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영화 제작진의 대부분은 그녀가 남인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롱했다.
=== 초기 역할 및 주목 (1969-1977) ===
1968년 말,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사업가 쿨지트 팔은 제미니 스튜디오에서 H. 라이더 해거드의 1885년 소설 ''솔로몬 왕의 보물(King Solomon's Mines)''을 각색한 ''안자나 사파르(Anjana Safar)''의 신인 배우를 찾던 중 렉하를 발견하고 바니쉬리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팔은 렉하에게 스크린 테스트를 위해 여러 문장을 힌디어로 받아쓰게 했고, 렉하는 이것을 라틴 문자로 다시 적은 후 암기하여 완벽하게 말해 힌디어 원어민과 같은 목소리로 그를 감명시켰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형제 샤트루지트 팔이 각각 제작하는 4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5년 계약을 맺었다.[16]
렉하는 1969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로 이사하여 팔이 비용을 지불하는 주후 지역의 아잔타 호텔에 방을 임대했다.[16] 같은 해, Dr. 라지쿠마르와 함께 출연한 칸나다어 영화 ''오퍼레이션 잭팟 낼리 C.I.D 999''가 성공적으로 개봉하며 대중과 언론에 데뷔했다.[14][28] 라자 나와테가 감독한 ''안자나 사파르''에서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숨겨진 보물을 찾아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야 하는 여자 수니타 역을 맡았다.[16]
당시 어머니가 아팠기 때문에 렉하는 이모와 함께 촬영에 참여했고, 촬영은 그 해 8월 메부브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렉하와 남성 주연 비스와지트 채터지가 출연하는 키스신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 나와테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16] 렉하는 나중에 그 장면에 속았다고 불평했다.[29] 이 영화는 검열 문제에 직면했고 1979년이 되어서야 ''두 시카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30] 키스신은 1970년 4월 ''라이프'' 잡지의 아시아판 표지에 실렸다.[31][32] ''두 시카리''는 흥행에 실패했다.[33]
1969년 봄베이로 이사한 직후, 렉하는 ''사완 바돈''에 출연 계약을 맺었고, 10월 11일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녀를, 연인 (나빈 니숄)과 결혼하는 것을 부모에게 허락받지 못하는 시골 소녀 찬다 역으로 캐스팅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길고 숱이 많았지만, 세갈은 그녀에게 가발을 쓰도록 강요했다. 그녀는 당시 힌디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영화 제작진의 대부분은 그녀가 남인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롱했다.[16] 그녀의 힌디어 데뷔작인 ''사완 바돈''은 1970년 9월에 개봉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했다.[34][35] 영화 평론가들은 그녀의 외모를 비웃었지만, 영화에서의 그녀의 자신감과 코믹한 타이밍을 칭찬했다.[16] 마노지 다스는 렉하와 함께하는 모든 장면에서 니숄의 얼굴에 "당혹감"이 나타났다고 평가했고,[36] ''필름 월드'' 잡지는 이 영화의 성공이 그녀의 경력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언급했다.[37] 콜리 프라티야가트마 감독의 텔루구 드라마 ''아마 코삼''이 연말에 개봉되었고, 그녀는 이 영화를 어머니에게 헌정했다.[38][39]
이후 여러 제안을 받았지만, 역할이 대부분 화려한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것은 없었다.[40] 10년 동안 연평균 10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부분은 졸작으로 여겨졌고, 그녀의 경력을 발전시키지 못했다.[16] 람푸르 카 락슈만(1972), 카하니 키스마트 키(1973), 프란 자예 파르 바찬 나 자예(1974) 등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연기력은 인정받지 못했다.[14] 1975년, 전쟁 영화 아크라만에서 라케쉬 로샨의 아내인 시탈 역을 맡았는데, 쿠라툴라아인 하이더는 이 역할이 진부하다며 "옷걸이"라고 칭했다.[41] 란디르 카푸르의 다르람 카람은 불량배에 관한 드라마이며, 잡지 "링크(Link)"는 레카의 역할이 전체 출연진 중 가장 비참하다고 언급했다.[42] 마피아 영화 다르마아트마는 그녀가 그 해에 유일하게 재정적으로 성공한 작품이었다.[43][44] 페로즈 칸이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그녀는 칸의 어린 시절 소꿉친구인 아누 역을 맡았다.[45]
레카는 당시 자신이 인식되는 방식이 외모를 바꾸고 역할 선택을 개선하도록 자극했다고 회상한다. "어두운 피부색과 남인도적인 특징 때문에 힌두 영화의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불렸다... 나는 순전히 실력만으로 성공하겠다고 결심했다."[47] 1970년대 중반은 그녀의 외모 변신의 시작을 알렸다. 그녀는 메이크업과 옷차림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연기 기술을 향상시키고 힌두어 실력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노력했다.[48] 칼리드 모하메드에 따르면, "관객들은 그녀의 스크린 속 인물과 연기 스타일의 급격한 변화에 감탄했다."[49] 레카는 더욱 신중하게 영화 역할을 선택하기 시작했다.[16]
1976년 암리타 바찬의 야심적이고 탐욕스러운 아내로 도 안자네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요하는 역할을 맡았다.[50] (그들은 나마크 하람(1973)에서 함께 출연했지만, 레카는 라제쉬 칸나와 상대역을 맡았다.) 그녀의 역할은 배우가 된 바찬의 아내인 레카 로이이다. 니하르 란잔 굽타의 소설 "라트리르 야트리(Ratrir Yatri)"를 각색한 이 영화는 둘랄 구하가 감독하고 나벤두 고쉬가 각본을 썼으며,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인기를 얻었다.[14] "필름 월드(Film World)"는 그녀가 힌두 영화의 주연 배우임을 증명했으며, 영화 제작자들이 그녀에게 더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영화에 캐스팅하는 데 더 열심이 되었다고 썼다.[16]
1977년은 레카가 3년 연속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해였고, 액션 범죄 영화 쿤 파시나는 그 해에 여섯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인도 영화가 되었다.[51] 같은 해, 비노드 칸나와 나디라와 함께 코미디 드라마 아프 키 카티르에 출연했다. 가난한 소녀 역할을 맡은 그녀는 여러 영화 기자 협회로부터 상을 받았다.[52] 더 힌두의 회고적 리뷰에서, 비자이 로카팔리는 레카의 역할이 그녀에게 도전적이었고 칸나와의 케미를 높이 평가했다.[53] "필름 월드(Film World)"는 혼합된 비평을 받은 액션 영화 임만 다르람에서의 그녀의 연기에 대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수여했다.[16] 이 영화는 타밀족 노동자 드루가 역을 맡은 그녀가 도둑 모한 쿠마르-삭세나 (샤시 카푸르)에게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52][55]
=== 전환점과 스타덤 (1978-1984) ===
레카의 전환점은 1978년 사회 드라마 ''가르''에서 강간 피해자를 연기하면서 찾아왔다.[57] 그녀는 새로 결혼한 아르티 역을 맡았는데, 집단 강간을 당한 후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이 영화는 남편 (비노드 메흐라)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따라갔다.[58] 이 영화는 그녀의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이정표로 여겨졌으며,[21][59] 그녀의 연기는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21][59] 디네쉬 라헤자는 "''가르''는 성숙한 레카의 등장을 알렸다. 그녀의 전형적인 기쁨은 매우 현실적인 묘사로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30] 그녀는 Filmfare Awards에서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14] 같은 해에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무카드르 카 시칸다르''는 그 해의 가장 큰 흥행작이자 10년간 가장 큰 흥행작 중 하나가 되었으며, 레카는 이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60] 이 영화는 긍정적인 비평을 받았으며,[61] 조라바이 역을 맡아 잠시 출연한 레카는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14][62] ''The Tribune''의 M. L. 다완은 그녀의 "불타는 강렬함"을 언급했다.[58] 레카는 이 시기를 자기 발견의 시기로 회상했다. 그 해의 다른 영화로는 ''카르마요기''가 있다.[63]
''도 안자네'' 이후, 그녀의 공동 출연자인 아미타브 밧찬과의 로맨스에 대한 추측이 나왔다.[16] 당시 영화 제작자들은 이 소문을 이용해서 영화를 홍보할 기회로 삼았고, 1979년작인 ''미스터 나트와랄''과 ''수하그''에서 그랬듯이, 관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캘커타를 배경으로 한 액션 로맨스인 ''미스터 나트와랄''에서 레카는 평범한 시골 여자 샤누 역을 맡아 좋은 평을 받았다.[64][65] ''수하그''는 ''무카드르 카 시칸다르''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창녀로 등장시켰으며, 그 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66]
다음 두 해는 더욱 성공적이었다. 1980년, 레카는 흐리시케쉬 무케르지의 코미디 영화 ''쿠브수랏''에 출연했다. 그녀를 위해 특별히 쓰여진 역할에서, 그녀는 최근에 결혼한 여동생을 방문하여 대가족에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하는 젊고 활기찬 여성 만주 다얄 역을 맡았고, 이는 가문의 가모에게 불만을 샀다. 레카는 자신의 캐릭터의 발랄한 성격에 쉽게 공감한다고 말하며, "나와 꽤 닮았다"고 말했다.[69] ''쿠브수랏''과 그 영화에서의 레카의 연기는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화는 재정적으로 성공했다.[50] Filmfare Awards에서 이 영화는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레카는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14] ''The Tribune''은 영화에 "자연스러운 활력"을 불어넣은 레카의 "활기찬 연기"를 칭찬했다.[70] T. 라마 라오가 연출한 ''마앙 바르로 사자나''와 ''주다이'', 그리고 사완 쿠마르 탁의 ''사잔 키 사헬리''는 그 해에 그녀에게 더 많은 비평적 관심을 가져다주었다.[71][72]
아미타브 밧찬과의 추정되는 로맨스에 대한 소문은 야쉬 초프라의 로맨틱 드라마 ''실실라''에서 함께 출연하면서 절정에 달했다.[73] 이 영화는 언론의 소문을 반영했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스캔들적이었다. 레카는 밧찬의 연인 역을, 밧찬의 실제 부인 자야 밧찬은 그의 부인 역을 맡았다.[74] 이 영화는 1980~1981년 비밀리에 촬영되었으며, 초프라는 언론의 촬영장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실실라''는 많은 언론인들에게 "캐스팅 쿠데타"로 여겨졌으며,[75][76] 이는 레카와 밧찬의 마지막 협업이었다.[73][77] 이 영화는 1981년 7월에 개봉하여 비평적, 상업적 실패를 겪었고, 초프라는 캐스팅 문제로 인해 관객의 관심이 플롯보다는 소문에 집중되었다고 느꼈다. ''인디아 투데이''의 수닐 세티는 레카가 "[아미타브 밧찬]의 지겨운 남성 우월주의만큼이나 인위적"이라고 말했다.[74] 그 해에 그녀가 출연한 다른 영화로는 라메쉬 털와르의 ''바세라''와 T. 라마 라오의 ''에크 히 불'' (1981년 타밀 영화 ''모우나 기탄갈''의 리메이크)이 있으며,[79]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그녀는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젊은 미혼 여성 역을 맡은 ''지반 다라'' (1982)로 또 다른 Filmfare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80]
이 시기에 레카는 주류 영화에서 주어진 역할 이상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했고, 인도 네오리얼리즘 예술 영화 운동인 병행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에는 ''칼류그'' (1981), ''움라오 잔'' (1981), ''비제타'' (1982), ''웃사브'' (1984) 및 ''이자자트'' (1987)가 있다. 미르자 하디 루스와의 우르두어 소설 ''움라오 잔 아다'' (1905)를 영화화한 ''움라오 잔''에서 레카는 1840년대 러크나우 출신의 시인이자 마음이 따뜻한 창녀인 제목 역할을 맡았다. 호화로운 제작 비용으로 제작되었으며,[81] 이 영화는 어린 시절 아미란이라는 소녀로 납치되어 사창가에 팔린 움라오의 삶의 이야기를, 수년 후 사랑과 다른 시련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인기 있는 창녀가 되는 과정을 따라갔다. 역할 준비를 위해 레카는 경력 초기에 힌디어를 하지 못했지만 우르두어의 미묘한 차이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82] 레카는 그녀의 연기에 대해 널리 찬사를 받았으며, 이후 그녀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인용되었다.[83] ''The Illustrated Weekly of India''의 발루 바라탄은 그녀의 "아직 탐구되지 않은 연기력"에 대해 썼다.[84]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또 다른 Filmfare Award 후보에 올랐으며, 이후 ''Filmfare''는 이를 볼리우드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연기 중 하나로 간주했다.[85][86] 그녀는 나중에 이 영화가 전환점이었다고 주장했다.[47]
그녀의 예술 영화 작업 중 샴 베네갈의 ''칼류그''는 라이벌 사업가들 사이의 전형적인 갈등으로 묘사된, 인도 신화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현대적 각색이다. 레카가 맡은 수프리야 역할은 드라우파디를 기반으로 한다. 베네갈은 ''쿠브수랏''에서의 그녀의 연기를 보고 그녀를 이 역할에 캐스팅했으며, 그녀가 "자신의 직업에 매우 열정적이고 진지하다"는 점에 주목했다.[87] 비평가이자 작가인 비제이 나이르는 그녀의 연기를 "현대 드라우파디의 숙련된 해석"이라고 묘사했다.[88] 마두 트레한은 그녀가 "지성, 강인함, 그리고 젊은 시동생에 대한 간신히 억제된 갈망을 가진 여성" 역할을 "흠잡을 데 없이" 연기한 것에 대해 칭찬했다.[89] 1982년 성장 이야기 영화 ''비제타''에서 그녀는 결혼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미래 계획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결국 인도 공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한 십 대 아들을 지원하려 노력하는 네리마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 역할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역할 중 하나로 묘사했다.[50]
기리쉬 카르나드의 에로틱 드라마 ''웃사브''에서, 기원전 4세기 슈드라카의 산스크리트어 연극 ''므르차카티카''를 기반으로, 그녀는 창녀 바산타세나를 연기했으며, 그녀의 연기로 벵골 영화 기자 협회로부터 최우수 여배우 (힌디어)로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그녀의 관능적인 장면으로 광범위한 보도를 받았고, 레카는 이를 당시의 여성 신인들과 경쟁하는 방법으로 여겼다. ''웃사브''는 시나리오와 연출로 관객과 영화 평론가 모두를 양극화시켰지만, 그녀의 연기와 의상은 호평을 받았다. ''아시아위크''의 리뷰는 레카가 "반짝이는 보석 외에는 거의 입지 않았다"고 언급했다.[91] 2003년, 마이틸리 라오는 "레카는 고대 힌두 인도든 19세기 무슬림 러크나우든 항상 창녀 역할에 대한 첫 번째 선택이었으며, 조각상 같은 관능성을 지녔다..."라고 썼다. 굴자르의 드라마 ''이자자트''에서 레카와 나시루딘 샤는 이혼한 부부로, 수년 동안 헤어진 후 기차역에서 예기치 않게 처음 만나 결혼 생활과 결국 이별하게 된 갈등을 함께 회상한다.[92]
=== 여성 중심 영화와 흥행 (1985-1989) ===
레카는 평행 영화 외에도 점점 더 모험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여성 중심의 복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초창기 여배우 중 한 명이었으며, 그 첫 번째 작품은 1988년의 쿤 바리 망이었다.[93] 라케쉬 로샨이 레카를 염두에 두고 특별히 제작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간교한 두 번째 남편의 살인 미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죽은 것으로 여겨진 후 숨겨진 신분으로 복수를 하는 부유하고 소박한 미망인 아르티 삭세나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두 번째 필름페어상을 수상했다. 레카는 ''쿤 바리 망''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고 이해한 유일한 영화"라고 묘사했다.[94] 트리뷴의 M.L. 다완은 1988년의 유명한 힌두 영화를 기록하면서 ''쿤 바리 망''이 "불사조처럼 일어선 레카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었고, 그녀의 대담함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고 언급했다.[95]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힌두 영화 백과사전''은 영화 속 그녀의 역할을 힌두 영화의 기억에 남는 여성 캐릭터 중 하나로 꼽으며, "영원히 용서하는 아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녀를 복수의 천사로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스크린'' 잡지의 비슷한 목록에서 이 역할은 "힌두 영화 여주인공을 자랑스럽게 만든 기억에 남는 10개의 역할"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96]
이후 인터뷰에서 레카는 이 역할로 필름페어상을 받은 것이 작은 휴식을 취하고 젊은 스타들에게 가려진 후 자신감을 얻고 인정받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영화계의 모든 갈채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고 내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열정을 느꼈고, 바로 그때 이것이 나의 소명, 내가 사람들의 삶에 나의 연기를 통해 변화를 주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97]
=== 흥행 부진과 재기 (1990-1999) ===
1990년대는 레카의 인기가 떨어진 시기였다. 레카가 출연한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고, 평론가들은 그녀의 역할에 대해 혹평했다. 하지만 헤마 말리니나 라키와 같이 어머니 역할에 머무른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레카는 젊은 배우들이 인기를 얻는 시기에도 여전히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82]
1990년, 레카는 ''메라 파티 시르프 메라 하이''와 ''아미리 가리비''를 포함한 4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인한 충격과 언론의 비난 속에서도, 레카는 K. C. 보카디아 감독의 영화 ''풀 바네 앙가레이''(1991)에서 남편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경찰이 되는 나타라 싱 역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레카는 Filmfare(필름페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Subhash K. Jha는 "카키색 제복이 이렇게 섹시해 보인 적은 없었다"라고 칭찬했다.[98][99] ''The Indian Express''는 레카가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풀''(꽃)이 되어 ''앙가레이''(불타는 석탄)가 되는 역할에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평가했다.[100]
''풀 바네 앙가레이''와 ''쿤 바리 망''의 성공으로 인해,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레카에게 비슷한 역할들을 제안했다. 레카는 ''인사프 키 데비''(1992), ''압 인사프 호가''(1995), ''우다안''(1997) 등에서 "복수의 천사" 역할을 연이어 맡았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101] 레카는 샤크티 사만타 감독의 ''기탄잘리''에서 지텐드라와 함께 쌍둥이 자매를 연기했고, ''마담 X''에서는 여성 지하 세계 두목을 연기하기 위해 경찰에 고용된 젊은 여성 역을 맡았지만,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참패했다.[102]
1990년대 중반, 레카는 ''카마 수트라: 사랑의 이야기''와 ''킬라디오 카 킬라디''(1996)와 같은 논란이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하락세를 극복하려 했다. 미라 네어 감독의 ''카마 수트라''는 에로틱 드라마였고, 많은 사람들은 레카가 카마 수트라 교사 역할을 맡은 것이 그녀의 경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103] 그러나 레카는 비판에 굴하지 않았고, Variety의 토드 맥카시는 그녀의 연기를 "절묘하게 잘 표현했다"고 호평했다.[104] 우메쉬 메라 감독의 액션 영화 ''킬라디오 카 킬라디''는 그 해 인도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105] 이 영화에서 레카는 미국에서 불법 레슬링 경기를 운영하는 악랄한 갱스터 두목 마담 마야 역을 맡아 처음으로 악역을 연기했고, 영화 속에서 훨씬 젊은 악셰이 쿠마르와 로맨스를 펼쳤다. 레카는 이 작품으로 Filmfare Award for Best Supporting Actress(Filmfare 여우조연상)과 Star Screen Award for Best Villain(스타 스크린 어워드 악역상)을 수상했다. 팬들과 평론가들 모두 그녀의 연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레카는 자신의 연기가 개인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106][107]
당시 또 다른 논란이 된 영화는 바수 바타차르야 감독의 유작 ''아스타: 봄의 감옥에서''(1997)였다. 레카는 이 영화에서 주부이자 매춘부 역할을 맡았는데, 역할의 특성과 영화의 노골적인 정사 장면으로 인해 언론과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레카는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제 역할에 대해 할 말이 많았어요... 저는 어떤 역할도 연기하는 데 문제가 없어요. 저는 어떤 역할이든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어머니, 시누이 역할일 수도 있고, 부정적, 긍정적, 선정적이거나 어떤 역할이라도 가능해요."라고 해명했다.[108] 그녀의 연기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Star Screen Award(스타 스크린 어워드) 후보에 올랐고,[109] ''India Today''는 그녀의 연기를 "수년 동안 그녀의 최고의 연기"라고 극찬했다.[110][111] 이후 레카는 ''킬라''(1998)와 ''마더''(1999)에 출연했다.[112][113][114]
=== 다양한 캐릭터와 현재 (2000-현재) ===
2000년대에 레카는 비교적 적은 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T. 라마 라오가 감독한 ''
2. 2. 1. 아역 시절 (1966-1969)
1968년 말,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사업가 쿨지트 팔은 신인 배우를 찾기 위해 제미니 스튜디오를 방문, H. 라이더 해거드의 1885년 소설 ''솔로몬 왕의 보물(King Solomon's Mines)''을 각색한 자신의 새 프로젝트 ''안자나 사파르(Anjana Safar)''를 구상했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렉하를 발견하고 바니쉬리에 이어 영화의 두 번째 여성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팔은 렉하에게 스크린 테스트를 위해 푸쉬파발리의 집으로 가서 여러 문장을 힌디어로 받아쓰게 했고, 렉하는 이것을 라틴 문자로 다시 적은 후 암기하도록 했다. 잠시 후, 렉하는 그 문장들을 완벽하게 말했고, 팔은 그녀의 힌디어 원어민과 같은 목소리에 감명받았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형제 샤트루지트 팔이 각각 제작하는 4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5년 계약을 맺었다.렉하는 1969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로 이사하여 팔이 비용을 지불하고 도시의 주후 지역에 있는 아잔타 호텔에 방을 임대했다. 또한 그 해에 그녀는 대중과 언론에 데뷔를 알렸고, 그녀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성공적인 칸나다어 영화 ''오퍼레이션 잭팟 낼리 C.I.D 999''가 Dr. 라지쿠마르와 함께 개봉했다. [14][28] 라자 나와테가 감독한 ''안자나 사파르''에서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숨겨진 보물을 찾아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야 하는 여자 수니타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 작품에 대해 를 받았다.
당시 어머니가 아프셨기 때문에, 렉하는 이모와 함께 촬영에 참여했고, 촬영은 그 해 8월 메부브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렉하와 남성 주연 비스와지트 채터지가 출연하는 키스신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 나와테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렉하는 나중에 그 장면에 속았다고 불평했다.[29] 이 영화는 검열 문제에 직면했고 1979년이 되어서야 ''두 시카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30] 키스신은 1970년 4월 ''라이프'' 잡지의 아시아판 표지에 실렸다.[31][32]
1969년 봄베이로 이사한 직후, 렉하는 프로듀서 겸 감독 모한 세갈과 그의 영화 ''사완 바돈''에 출연 계약을 맺었고, 10월 11일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녀를, 연인 (나빈 니숄)과 결혼하는 것을 부모에게 허락받지 못하는 시골 소녀 찬다 역으로 캐스팅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길고 숱이 많았지만, 세갈은 그녀에게 가발을 쓰도록 강요했다. 따라서 가발은 그녀의 머리에 맞지 않았고, 그녀의 헤어 디자이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의 삭발해야 했다. 그녀는 당시 힌디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영화 제작진의 대부분은 그녀가 남인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롱했다.
2. 2. 2. 초기 역할 및 주목 (1969-1977)
1968년 말,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사업가 쿨지트 팔은 제미니 스튜디오에서 H. 라이더 해거드의 1885년 소설 ''솔로몬 왕의 보물(King Solomon's Mines)''을 각색한 ''안자나 사파르(Anjana Safar)''의 신인 배우를 찾던 중 렉하를 발견하고 바니쉬리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팔은 렉하에게 스크린 테스트를 위해 여러 문장을 힌디어로 받아쓰게 했고, 렉하는 이것을 라틴 문자로 다시 적은 후 암기하여 완벽하게 말해 힌디어 원어민과 같은 목소리로 그를 감명시켰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형제 샤트루지트 팔이 각각 제작하는 4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5년 계약을 맺었다.[16]렉하는 1969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로 이사하여 팔이 비용을 지불하는 주후 지역의 아잔타 호텔에 방을 임대했다.[16] 같은 해, Dr. 라지쿠마르와 함께 출연한 칸나다어 영화 ''오퍼레이션 잭팟 낼리 C.I.D 999''가 성공적으로 개봉하며 대중과 언론에 데뷔했다.[14][28] 라자 나와테가 감독한 ''안자나 사파르''에서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숨겨진 보물을 찾아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야 하는 여자 수니타 역을 맡았다.[16]
당시 어머니가 아팠기 때문에 렉하는 이모와 함께 촬영에 참여했고, 촬영은 그 해 8월 메부브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렉하와 남성 주연 비스와지트 채터지가 출연하는 키스신에 대한 논란이 일었는데, 나와테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16] 렉하는 나중에 그 장면에 속았다고 불평했다.[29] 이 영화는 검열 문제에 직면했고 1979년이 되어서야 ''두 시카리''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30] 키스신은 1970년 4월 ''라이프'' 잡지의 아시아판 표지에 실렸다.[31][32] ''두 시카리''는 흥행에 실패했다.[33]
1969년 봄베이로 이사한 직후, 렉하는 ''사완 바돈''에 출연 계약을 맺었고, 10월 11일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녀를, 연인 (나빈 니숄)과 결혼하는 것을 부모에게 허락받지 못하는 시골 소녀 찬다 역으로 캐스팅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이미 길고 숱이 많았지만, 세갈은 그녀에게 가발을 쓰도록 강요했다. 그녀는 당시 힌디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고 영화 제작진의 대부분은 그녀가 남인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조롱했다.[16] 그녀의 힌디어 데뷔작인 ''사완 바돈''은 1970년 9월에 개봉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했다.[34][35] 영화 평론가들은 그녀의 외모를 비웃었지만, 영화에서의 그녀의 자신감과 코믹한 타이밍을 칭찬했다.[16] 마노지 다스는 렉하와 함께하는 모든 장면에서 니숄의 얼굴에 "당혹감"이 나타났다고 평가했고,[36] ''필름 월드'' 잡지는 이 영화의 성공이 그녀의 경력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언급했다.[37] 콜리 프라티야가트마 감독의 텔루구 드라마 ''아마 코삼''이 연말에 개봉되었고, 그녀는 이 영화를 어머니에게 헌정했다.[38][39]
이후 여러 제안을 받았지만, 역할이 대부분 화려한 여성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것은 없었다.[40] 10년 동안 연평균 10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부분은 졸작으로 여겨졌고, 그녀의 경력을 발전시키지 못했다.[16] 람푸르 카 락슈만(Raampur Ka Lakshman, 1972), 카하니 키스마트 키(Kahani Kismat Ki, 1973), 프란 자예 파르 바찬 나 자예(Pran Jaye Par Vachan Na Jaye, 1974) 등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연기력은 인정받지 못했다.[14] 1975년, 전쟁 영화 아크라만(Aakraman)에서 라케쉬 로샨(Rakesh Roshan)의 아내인 시탈 역을 맡았는데, 쿠라툴라아인 하이더(Qurratulain Hyder)는 이 역할이 진부하다며 "옷걸이"라고 칭했다.[41] 란디르 카푸르(Randhir Kapoor)의 다르람 카람(Dharam Karam)은 불량배에 관한 드라마이며, 잡지 "링크(Link)"는 레카의 역할이 전체 출연진 중 가장 비참하다고 언급했다.[42] 마피아 영화 다르마아트마(Dharmatma)는 그녀가 그 해에 유일하게 재정적으로 성공한 작품이었다.[43][44] 페로즈 칸(Feroz Khan (actor))이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그녀는 칸의 어린 시절 소꿉친구인 아누 역을 맡았다.[45]
레카는 당시 자신이 인식되는 방식이 외모를 바꾸고 역할 선택을 개선하도록 자극했다고 회상한다. "어두운 피부색과 남인도적인 특징 때문에 힌두 영화의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불렸다... 나는 순전히 실력만으로 성공하겠다고 결심했다."[47] 1970년대 중반은 그녀의 외모 변신의 시작을 알렸다. 그녀는 메이크업과 옷차림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연기 기술을 향상시키고 힌두어 실력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노력했다.[48] 칼리드 모하메드(Khalid Mohamed)에 따르면, "관객들은 그녀의 스크린 속 인물과 연기 스타일의 급격한 변화에 감탄했다."[49] 레카는 더욱 신중하게 영화 역할을 선택하기 시작했다.[16]
1976년 암리타 바찬(Amitabh Bachchan)의 야심적이고 탐욕스러운 아내로 도 안자네(Do Anjaane)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요하는 역할을 맡았다.[50] (그들은 나마크 하람(Namak Haraam, 1973)에서 함께 출연했지만, 레카는 라제쉬 칸나(Rajesh Khanna)와 상대역을 맡았다.) 그녀의 역할은 배우가 된 바찬의 아내인 레카 로이이다. 니하르 란잔 굽타(Nihar Ranjan Gupta)의 소설 "라트리르 야트리(Ratrir Yatri)"를 각색한 이 영화는 둘랄 구하(Dulal Guha)가 감독하고 나벤두 고쉬(Nabendu Ghosh)가 각본을 썼으며,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인기를 얻었다.[14] "필름 월드(Film World)"는 그녀가 힌두 영화의 주연 배우임을 증명했으며, 영화 제작자들이 그녀에게 더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영화에 캐스팅하는 데 더 열심이 되었다고 썼다.[16]
1977년은 레카가 3년 연속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해였고, 액션 범죄 영화 쿤 파시나(Khoon Pasina)는 그 해에 여섯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인도 영화가 되었다.[51] 같은 해, 비노드 칸나(Vinod Khanna)와 나디라와 함께 코미디 드라마 아프 키 카티르에 출연했다. 가난한 소녀 역할을 맡은 그녀는 여러 영화 기자 협회로부터 상을 받았다.[52] 더 힌두(The Hindu)의 회고적 리뷰에서, 비자이 로카팔리(Vijay Lokapally)는 레카의 역할이 그녀에게 도전적이었고 칸나와의 케미를 높이 평가했다.[53] "필름 월드(Film World)"는 혼합된 비평을 받은 액션 영화 임만 다르람(Immaan Dharam)에서의 그녀의 연기에 대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수여했다.[16] 이 영화는 타밀족 노동자 드루가 역을 맡은 그녀가 도둑 모한 쿠마르-삭세나 (샤시 카푸르(Shashi Kapoor))에게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52][55]
2. 2. 3. 전환점과 스타덤 (1978-1984)
레카의 전환점은 1978년 사회 드라마 ''가르''에서 강간 피해자를 연기하면서 찾아왔다.[57] 그녀는 새로 결혼한 아르티 역을 맡았는데, 집단 강간을 당한 후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이 영화는 남편 (비노드 메흐라)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따라갔다.[58] 이 영화는 그녀의 첫 번째 주목할 만한 이정표로 여겨졌으며,[21][59] 그녀의 연기는 비평가와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21][59] 디네쉬 라헤자는 "''가르''는 성숙한 레카의 등장을 알렸다. 그녀의 전형적인 기쁨은 매우 현실적인 묘사로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30] 그녀는 Filmfare Awards에서 처음으로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14] 같은 해에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무카드르 카 시칸다르''는 그 해의 가장 큰 흥행작이자 10년간 가장 큰 흥행작 중 하나가 되었으며, 레카는 이 시대의 가장 성공적인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60] 이 영화는 긍정적인 비평을 받았으며,[61] 조라바이 역을 맡아 잠시 출연한 레카는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었다.[14][62] ''The Tribune''의 M. L. 다완은 그녀의 "불타는 강렬함"을 언급했다.[58] 레카는 이 시기를 자기 발견의 시기로 회상했다. 그 해의 다른 영화로는 ''카르마요기''가 있다.[63]''도 안자네'' 이후, 그녀의 공동 출연자인 아미타브 밧찬과의 로맨스에 대한 추측이 나왔다.[16] 당시 영화 제작자들은 이 소문을 이용해서 영화를 홍보할 기회로 삼았고, 1979년작인 ''미스터 나트와랄''과 ''수하그''에서 그랬듯이, 관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캘커타를 배경으로 한 액션 로맨스인 ''미스터 나트와랄''에서 레카는 평범한 시골 여자 샤누 역을 맡아 좋은 평을 받았다.[64][65] ''수하그''는 ''무카드르 카 시칸다르''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창녀로 등장시켰으며, 그 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66]
다음 두 해는 더욱 성공적이었다. 1980년, 레카는 흐리시케쉬 무케르지의 코미디 영화 ''쿠브수랏''에 출연했다. 그녀를 위해 특별히 쓰여진 역할에서, 그녀는 최근에 결혼한 여동생을 방문하여 대가족에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하는 젊고 활기찬 여성 만주 다얄 역을 맡았고, 이는 가문의 가모에게 불만을 샀다. 레카는 자신의 캐릭터의 발랄한 성격에 쉽게 공감한다고 말하며, "나와 꽤 닮았다"고 말했다.[69] ''쿠브수랏''과 그 영화에서의 레카의 연기는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화는 재정적으로 성공했다.[50] Filmfare Awards에서 이 영화는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레카는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14] ''The Tribune''은 영화에 "자연스러운 활력"을 불어넣은 레카의 "활기찬 연기"를 칭찬했다.[70] T. 라마 라오가 연출한 ''마앙 바르로 사자나''와 ''주다이'', 그리고 사완 쿠마르 탁의 ''사잔 키 사헬리''는 그 해에 그녀에게 더 많은 비평적 관심을 가져다주었다.[71][72]
아미타브 밧찬과의 추정되는 로맨스에 대한 소문은 야쉬 초프라의 로맨틱 드라마 ''실실라''에서 함께 출연하면서 절정에 달했다.[73] 이 영화는 언론의 소문을 반영했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출연한 영화 중 가장 스캔들적이었다. 레카는 밧찬의 연인 역을, 밧찬의 실제 부인 자야 밧찬은 그의 부인 역을 맡았다.[74] 이 영화는 1980~1981년 비밀리에 촬영되었으며, 초프라는 언론의 촬영장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실실라''는 많은 언론인들에게 "캐스팅 쿠데타"로 여겨졌으며,[75][76] 이는 레카와 밧찬의 마지막 협업이었다.[73][77] 이 영화는 1981년 7월에 개봉하여 비평적, 상업적 실패를 겪었고, 초프라는 캐스팅 문제로 인해 관객의 관심이 플롯보다는 소문에 집중되었다고 느꼈다. ''인디아 투데이''의 수닐 세티는 레카가 "[아미타브 밧찬]의 지겨운 남성 우월주의만큼이나 인위적"이라고 말했다.[74] 그 해에 그녀가 출연한 다른 영화로는 라메쉬 털와르의 ''바세라''와 T. 라마 라오의 ''에크 히 불'' (1981년 타밀 영화 ''모우나 기탄갈''의 리메이크)이 있으며,[79]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그녀는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젊은 미혼 여성 역을 맡은 ''지반 다라'' (1982)로 또 다른 Filmfare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80]
이 시기에 레카는 주류 영화에서 주어진 역할 이상의 범위를 확장하고자 했고, 인도 네오리얼리즘 예술 영화 운동인 병행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에는 ''칼류그'' (1981), ''움라오 잔'' (1981), ''비제타'' (1982), ''웃사브'' (1984) 및 ''이자자트'' (1987)가 있다. 미르자 하디 루스와의 우르두어 소설 ''움라오 잔 아다'' (1905)를 영화화한 ''움라오 잔''에서 레카는 1840년대 러크나우 출신의 시인이자 마음이 따뜻한 창녀인 제목 역할을 맡았다. 호화로운 제작 비용으로 제작되었으며,[81] 이 영화는 어린 시절 아미란이라는 소녀로 납치되어 사창가에 팔린 움라오의 삶의 이야기를, 수년 후 사랑과 다른 시련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인기 있는 창녀가 되는 과정을 따라갔다. 역할 준비를 위해 레카는 경력 초기에 힌디어를 하지 못했지만 우르두어의 미묘한 차이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82] 레카는 그녀의 연기에 대해 널리 찬사를 받았으며, 이후 그녀의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인용되었다.[83] ''The Illustrated Weekly of India''의 발루 바라탄은 그녀의 "아직 탐구되지 않은 연기력"에 대해 썼다.[84] 그녀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또 다른 Filmfare Award 후보에 올랐으며, 이후 ''Filmfare''는 이를 볼리우드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연기 중 하나로 간주했다.[85][86] 그녀는 나중에 이 영화가 전환점이었다고 주장했다.[47]
그녀의 예술 영화 작업 중 샴 베네갈의 ''칼류그''는 라이벌 사업가들 사이의 전형적인 갈등으로 묘사된, 인도 신화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현대적 각색이다. 레카가 맡은 수프리야 역할은 드라우파디를 기반으로 한다. 베네갈은 ''쿠브수랏''에서의 그녀의 연기를 보고 그녀를 이 역할에 캐스팅했으며, 그녀가 "자신의 직업에 매우 열정적이고 진지하다"는 점에 주목했다.[87] 비평가이자 작가인 비제이 나이르는 그녀의 연기를 "현대 드라우파디의 숙련된 해석"이라고 묘사했다.[88] 마두 트레한은 그녀가 "지성, 강인함, 그리고 젊은 시동생에 대한 간신히 억제된 갈망을 가진 여성" 역할을 "흠잡을 데 없이" 연기한 것에 대해 칭찬했다.[89] 1982년 성장 이야기 영화 ''비제타''에서 그녀는 결혼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미래 계획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결국 인도 공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한 십 대 아들을 지원하려 노력하는 네리마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 역할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역할 중 하나로 묘사했다.[50]
기리쉬 카르나드의 에로틱 드라마 ''웃사브''에서, 기원전 4세기 슈드라카의 산스크리트어 연극 ''므르차카티카''를 기반으로, 그녀는 창녀 바산타세나를 연기했으며, 그녀의 연기로 벵골 영화 기자 협회로부터 최우수 여배우 (힌디어)로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그녀의 관능적인 장면으로 광범위한 보도를 받았고, 레카는 이를 당시의 여성 신인들과 경쟁하는 방법으로 여겼다. ''웃사브''는 시나리오와 연출로 관객과 영화 평론가 모두를 양극화시켰지만, 그녀의 연기와 의상은 호평을 받았다. ''아시아위크''의 리뷰는 레카가 "반짝이는 보석 외에는 거의 입지 않았다"고 언급했다.[91] 2003년, 마이틸리 라오는 "레카는 고대 힌두 인도든 19세기 무슬림 러크나우든 항상 창녀 역할에 대한 첫 번째 선택이었으며, 조각상 같은 관능성을 지녔다..."라고 썼다. 굴자르의 드라마 ''이자자트''에서 레카와 나시루딘 샤는 이혼한 부부로, 수년 동안 헤어진 후 기차역에서 예기치 않게 처음 만나 결혼 생활과 결국 이별하게 된 갈등을 함께 회상한다.[92]
2. 2. 4. 여성 중심 영화와 흥행 (1985-1989)
레카는 평행 영화 외에도 점점 더 모험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여성 중심의 복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초창기 여배우 중 한 명이었으며, 그 첫 번째 작품은 1988년의 쿤 바리 망이었다.[93] 라케쉬 로샨이 레카를 염두에 두고 특별히 제작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간교한 두 번째 남편의 살인 미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죽은 것으로 여겨진 후 숨겨진 신분으로 복수를 하는 부유하고 소박한 미망인 아르티 삭세나 역을 맡았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두 번째 필름페어상을 수상했다. 레카는 ''쿤 바리 망''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고 이해한 유일한 영화"라고 묘사했다.[94] 트리뷴의 M.L. 다완은 1988년의 유명한 힌두 영화를 기록하면서 ''쿤 바리 망''이 "불사조처럼 일어선 레카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었고, 그녀의 대담함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고 언급했다.[95]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힌두 영화 백과사전''은 영화 속 그녀의 역할을 힌두 영화의 기억에 남는 여성 캐릭터 중 하나로 꼽으며, "영원히 용서하는 아내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그녀를 복수의 천사로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스크린'' 잡지의 비슷한 목록에서 이 역할은 "힌두 영화 여주인공을 자랑스럽게 만든 기억에 남는 10개의 역할" 중 하나로 포함되었다.[96]이후 인터뷰에서 레카는 이 역할로 필름페어상을 받은 것이 작은 휴식을 취하고 젊은 스타들에게 가려진 후 자신감을 얻고 인정받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영화계의 모든 갈채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고 내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 열정을 느꼈고, 바로 그때 이것이 나의 소명, 내가 사람들의 삶에 나의 연기를 통해 변화를 주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97]
2. 2. 5. 흥행 부진과 재기 (1990-1999)
1990년대는 레카의 인기가 떨어진 시기였다. 레카가 출연한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고, 평론가들은 그녀의 역할에 대해 혹평했다. 하지만 헤마 말리니나 라키와 같이 어머니 역할에 머무른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레카는 젊은 배우들이 인기를 얻는 시기에도 여전히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82]1990년, 레카는 ''메라 파티 시르프 메라 하이''와 ''아미리 가리비''를 포함한 4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인한 충격과 언론의 비난 속에서도, 레카는 K. C. 보카디아 감독의 영화 ''풀 바네 앙가레이''(1991)에서 남편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경찰이 되는 나타라 싱 역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레카는 Filmfare(필름페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Subhash K. Jha는 "카키색 제복이 이렇게 섹시해 보인 적은 없었다"라고 칭찬했다.[98][99] ''The Indian Express''는 레카가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풀''(꽃)이 되어 ''앙가레이''(불타는 석탄)가 되는 역할에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평가했다.[100]
''풀 바네 앙가레이''와 ''쿤 바리 망''의 성공으로 인해,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레카에게 비슷한 역할들을 제안했다. 레카는 ''인사프 키 데비''(1992), ''압 인사프 호가''(1995), ''우다안''(1997) 등에서 "복수의 천사" 역할을 연이어 맡았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101] 레카는 샤크티 사만타 감독의 ''기탄잘리''에서 지텐드라와 함께 쌍둥이 자매를 연기했고, ''마담 X''에서는 여성 지하 세계 두목을 연기하기 위해 경찰에 고용된 젊은 여성 역을 맡았지만,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참패했다.[102]
1990년대 중반, 레카는 ''카마 수트라: 사랑의 이야기''와 ''킬라디오 카 킬라디''(1996)와 같은 논란이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하락세를 극복하려 했다. 미라 네어 감독의 ''카마 수트라''는 에로틱 드라마였고, 많은 사람들은 레카가 카마 수트라 교사 역할을 맡은 것이 그녀의 경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103] 그러나 레카는 비판에 굴하지 않았고, Variety의 토드 맥카시는 그녀의 연기를 "절묘하게 잘 표현했다"고 호평했다.[104] 우메쉬 메라 감독의 액션 영화 ''킬라디오 카 킬라디''는 그 해 인도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105] 이 영화에서 레카는 미국에서 불법 레슬링 경기를 운영하는 악랄한 갱스터 두목 마담 마야 역을 맡아 처음으로 악역을 연기했고, 영화 속에서 훨씬 젊은 악셰이 쿠마르와 로맨스를 펼쳤다. 레카는 이 작품으로 Filmfare Award for Best Supporting Actress(Filmfare 여우조연상)과 Star Screen Award for Best Villain(스타 스크린 어워드 악역상)을 수상했다. 팬들과 평론가들 모두 그녀의 연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레카는 자신의 연기가 개인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106][107]
당시 또 다른 논란이 된 영화는 바수 바타차르야 감독의 유작 ''아스타: 봄의 감옥에서''(1997)였다. 레카는 이 영화에서 주부이자 매춘부 역할을 맡았는데, 역할의 특성과 영화의 노골적인 정사 장면으로 인해 언론과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레카는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제 역할에 대해 할 말이 많았어요... 저는 어떤 역할도 연기하는 데 문제가 없어요. 저는 어떤 역할이든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어요. 어머니, 시누이 역할일 수도 있고, 부정적, 긍정적, 선정적이거나 어떤 역할이라도 가능해요."라고 해명했다.[108] 그녀의 연기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Star Screen Award(스타 스크린 어워드) 후보에 올랐고,[109] ''India Today''는 그녀의 연기를 "수년 동안 그녀의 최고의 연기"라고 극찬했다.[110][111] 이후 레카는 ''킬라''(1998)와 ''마더''(1999)에 출연했다.[112][113][114]
2. 2. 6. 다양한 캐릭터와 현재 (2000-현재)
2000년대에 레카는 비교적 적은 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T. 라마 라오가 감독한 ''불란디''로 2000년대를 시작했다. 다른 영화는 카리스마 카푸어와 마노지 바자페이가 출연하여 왕의 첫 번째 부인 마하라니 만디라 데비 역을 맡은 칼리드 무함마드의 주베이다였다.[115]2001년, 레카는 라즈쿠마르 산토시의 페미니스트 드라마 ''라자''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2년 전 바와니푸르에서 여성 강간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앙상블 작품이었다.[116] 이 영화는 가출한 아내 (마니샤 코이랄라)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녀가 머무는 각 여성의 이야기를 세 개의 주요 장으로 펼쳐낸다. 레카는 영화의 영감이 돌아가는 마지막 장의 주인공으로, 강간의 피해자가 된 억압받는 달리트 마을 여성이며 사회 운동가인 람둘라리 역을 맡았다. 레카는 이 영화에 대해 "나는 라자이고 라자는 나다"라고 언급했다.[117] 그녀는 그녀의 연기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Filmfare 상과 국제 인도 영화 아카데미 상 (IIFA)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포함하여 그녀의 작품에 대한 여러 차례 후보 지명을 받았다.[118] 타란 아다르쉬는 "인도 영화에서 최근에 볼 수 있었던 최고의 연기 중 하나를 보여주며 영광을 가져가는 것은 레카"라고 썼다.[119][120][121]
라케쉬 로샨의 SF 영화 ''코이... 밀 가야''에서 레카는 지적 장애가 있는 젊은이의 싱글맘인 소니아 메흐라 역을 맡았고, 이 역은 리틱 로샨이 연기했다. 이 영화는 재정적으로, 비평적으로 성공했고 그 해 가장 인기 있는 영화가 되었으며, Filmfare 최우수 영화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122] 레카는 할리드 모하메드가 "예리하게 절제된"이라고 묘사한 그녀의 연기로 또 다른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123]
2005년, 레카는 프라딥 사르카르의 "파리니타"에서 "카이시 파헬리 진다가니"라는 노래와 관련하여 특별 출연했다. ''바츠케 레흐나 레 바바''(2005)에서 레카는 조카와 함께 남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계획을 사용하는 사기꾼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비평적으로 큰 실패였다.[124] ''미드데이''는 "레카가 왜 이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하며 그녀가 "나쁜 대사, 끔찍한 화장, 조잡한 스타일링으로 뒤덮였다"고 지적했다.[125] 이어서 2006년에는 네 명의 여성 친구와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한 섹스 코미디인 ''쿠디용 카 하이 자마나''가 나왔다. 인두 미라니는 신랄한 리뷰에서 "레카는 다른 영화를 다시는 찍지 않을 것처럼 험악하게 굴었다"고 언급했다.[126] 2007년 데일리 뉴스 앤 애널리시스의 기사에서 비평가 디파 가할럿은 레카에게 충고했다. "부디 영화를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바치 케 레흐나 레 바바''와 ''쿠디용 카 하이 자마나''와 같은 영화가 하나 더 나오면 디바의 지위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127]
2006년, 그녀는 ''코이... 밀 가야''의 속편인 라케쉬 로샨의 ''크리쉬''에서 소니아 메흐라 역할을 다시 맡았다. 이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이야기는 20년 후로 옮겨가 소니아의 손자 크리슈나 (다시 리틱 로샨이 연기)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아들 로히트가 죽은 후 그를 홀로 키웠고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다. ''크리쉬''는 그 해 두 번째로 높은 흥행 수입을 올렸고, 전편과 마찬가지로 블록버스터로 선언되었다.[128]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레카의 연기는 그녀에게 또 다른 Filmfare 조연상 후보 지명을 안겨주었다. 버라이어티의 로니 쉐이프는 그녀가 "그녀의 역할에 양육하는 할머니로서 깊이를 더했다"고 언급했다.[129]

2007년, 그녀는 다시 한번 Goutam Ghose의 영화 ''Yatra''에서 매춘부 역할을 연기했다. 그녀의 경력 초기에 이러한 역할을 연기하며 겪었던 초기 성공과는 달리, 이번에는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 2010년, 레카는 인도 정부가 수여하는 4번째로 높은 민간 훈장인 파드마 슈리 훈장을 수여받았다.
레카는 2010년 영화 ''Sadiyaan''에서 Hema Malini, Rishi Kapoor와 함께 출연했다. 이 영화는 Shatrughan Sinha의 아들 Luv Sinha의 데뷔작이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2014년, 레카는 Abhishek Kapoor의 영화 ''Fitoor''에 출연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영화에서 하차했고, 이후 Tabu가 그녀를 대신하여 캐스팅되었다. 2014년 그녀는 또한 디왈리(10월 24일)에 개봉한 ''Super Nani''에 출연했다. 슈퍼 나니는 가족 드라마로, 할머니(레카)가 자녀들과 남편 Randhir Kapoor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그녀의 손자 Sharman Joshi는 그녀에게 변화를 설득하고, 할머니는 화려한 모델로 '변신'한다.
2015년, 그녀는 R. Balki의 Shamitabh에 출연하여 본인 역을 연기했다.
3. 수상 내역
1973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으며, 2010년 파드마 시리를 서훈받았다. 1981년 내셔널 필름 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필름페어상 여우주연상을 1980년과 1988년 2회 수상하였다.
4. 사회 활동
레카는 1990년 델리에 거주하는 사업가 무케시 아가르왈과 결혼했다.[130] 아가르왈은 주방용품 브랜드 Hotline의 소유주였으며,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130] 레카는 결혼 후에 그의 정신 건강 상태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130] 그는 레카에게 "아무도 탓하지 마세요"라는 메모를 남기고 자살했다.[130] 당시 그녀는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한 기자는 이 시기를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깊은 수렁"이라고 표현했다.[131]
2012년, 레카는 라지야 사바의 국회의원으로 지명되었다.[141][142] 그녀는 인도 대통령 프라티바 파틸에 의해 인도 총리 만모한 싱의 추천을 받아 예술 분야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임명되었다.[141][143] 그녀의 임기는 2012년 4월 27일에 시작되어 2018년 같은 날에 종료되었다.[144] 그녀는 소비자 문제, 식량 및 공공 배급 위원회에 참여했지만, 낮은 출석률과 하원에서의 최소한의 참여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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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mance contin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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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Rekha: Sindoor to rumoured affair with Amitabh Bachchan, 5 shocking controversies from he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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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kha's biography reveals shocking details about her relationship with Amitabh Bachchan and Jaya Bach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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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fare - 80 Iconic Performances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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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 Choice: The Greatest Actresses of al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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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yes have it: Hindi cinema's best actre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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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vishing Rek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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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kha: A Timeless Enigma, Full of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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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kha was honest about everything and Bollywood tried to tame her': biographer Yasser U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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