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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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클리스는 6.25 전쟁에 참전한 군마로, 1952년 미국 해병대에 구매되기 전 한국에서 경주마로 활동했으며, 한국어 이름은 '아침해' 또는 '여명'이었다. 미 해병대에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의미로 '레클리스'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탄약과 포탄을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두 번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혁혁한 공을 세워 상병으로 진급했다. 1954년에는 상사로 진급했으며, 여러 훈장을 받았다. 레클리스는 1968년 사망했으며, 미국 역대 영웅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국립 해병대 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곳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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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클리스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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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종 | 몽골 |
역할 | 짐말 |
복무 기간 | 1952년–1960년 |
성별 | 암말 |
사망일 | 1968년 5월 13일 |
출생 국가 | 대한민국 |
털색 | 밤색 |
소유주 | 김혁문 |
소유주 2 | 미국 해병대 |
기타 정보 | 4마리의 자녀가 있음 |
군 복무 정보 | |
소속 | 미국 해병대 |
복무 기간 | 1952년–1960년 |
계급 | 상사 |
참전 전투 | 아웃포스트 베가스 전투 |
수훈 | 디킨 메달 퍼플 하트 훈장 (2회) 해군 대통령 부대 표창 (2회) 해군 부대 표창 미 해병대 선행 훈장 국방 종군 훈장 한국 전쟁 종군 훈장 (4회) 유엔 한국 종군 메달 전쟁과 평화 속의 동물 용기 메달 |
추가 정보 |
2. 명칭
레클리스는 1952년 10월부터 미국 제1해병사단에서 군마로 활약하기 전에는 '아침해' 혹은 '여명(黎明)'이라는 한국어 이름을 가진 경주마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문헌이나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 한국 언론 등에서는 레클리스를 소개할 때, 미군 측 기록에 "Morning Flame" 혹은 "Flame-of-the-Morning"이었다는 내용을 번역하여 '아침해' 혹은 '여명'이라는 이름을 추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레클리스는 주로 탄약 운반 임무를 수행했지만, 전화선 설치 등 다른 임무도 수행했다. 철사를 감은 릴을 싣고 걸어가면서 풀어서 12명의 보병과 같은 양의 철사를 연결할 수 있었다.[1]
미국 제1해병사단에서 군마로 활약하면서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임무를 완수하여 미 해병대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이에 미 해병대원들이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의미의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레클리스는 밤색 털에 얼룩과 흰색 다리 3개를 가지고 있었다.[3]
3. 군 복무 (Military service)
제5 해병대가 캠프 케이시에서 인천으로 이동하여 상륙 작전에 참여할 계획을 세웠을 때, 레클리스는 해병대에서 상륙 작전에 참여한 최초의 말이 되었다.[11] 수송 부대 지휘관은 처음에는 레클리스를 자신의 깨끗한 배에 태우는 것을 거부했지만, 해병대가 제시한 하역 계획에 레클리스와 그녀의 장비가 명시적으로 포함된 것을 확인한 후 승선이 허용되었다.
랜돌프 M. 페이트 제1해병사단장은 1954년 4월 10일, 한국 전쟁이 끝난 후 몇 달 뒤에 레클리스를 상병에서 중사로 진급시켰다. 1959년 8월 31일에는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서 다시 상사(E-6)로 진급했다. 페이트 장군이 직접 주관한 진급 행사에서 레클리스는 19발의 예포와 1,700명의 사열을 받았다. 레클리스는 미국 군대에서 공식 계급을 가진 동물의 초기 사례 중 하나였다.
3. 1. 훈련
1952년 10월, 에릭 페더슨 중령은 자신의 소대에서 사용할 말을 구매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1] 산악 지형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페더슨은 제5해병연대 무반동총 소대에서 사용하는 무반동총에 필요한 탄약(최대 9개의 24파운드)을 운반할 짐말이 필요했다.[1][2][3] 허가를 받은 다음 날, 페더슨은 부사관들과 함께 서울 경마장으로 가서 말을 구입했고,[2] 자신의 돈으로 말을 샀다.[4] 해병대는 말의 이름을 "레클리스"라고 지었다.[5]
레클리스의 주된 훈련병은 조셉 레이텀 포병 중사였고,[6] 일등병 몬로 콜먼이 주된 관리자였다.[1] 페더슨, 레이텀, 콜먼 외에도 빌 라일리 중위와 엘머 라이블리 상사도 훈련과 관리에 참여했다.[7][1][8] 페더슨은 레클리스가 짐을 더 잘 운반할 수 있도록 짐 얹는 안장을 마련했다.[9] 무반동총 소대에는 자체 의무병인 조지 "닥" 미첼이 있었고, 그는 레클리스에게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10]
해병대, 특히 레이텀은 레클리스에게 철조망을 피하는 법, 사격 시 엎드리는 법 등 전장 생존 기술을 가르쳤다.[7] 레클리스는 "포탄 접근!"이라는 외침을 들으면 벙커로 달려가는 법을 배웠다.[1] 소대는 이를 "발굽 훈련"과 "발굽 캠프"라고 불렀다. 레클리스는 온순한 성격으로 병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자유롭게 캠프를 돌아다녔고, 텐트에서 함께 자거나 스토브 옆에 눕기도 했다.[1][11] 스크램블 에그, 코카콜라, 맥주 등 다양한 음식을 즐겼으며,[11] 음식 외에도 말 담요나 포커 칩을 먹기도 했다.[3][1][11]
레클리스가 처음 포화를 겪은 곳은 창단과 곽천 마을 근처였다.[12] 처음에는 M20 무반동총 발사 소리에 놀랐지만, 콜먼의 도움으로 진정했고, 임무가 끝날 무렵에는 헬멧 라이너를 먹으려 할 정도로 침착해졌다.[1] 새로운 이동 경로를 몇 번만 안내받으면 혼자서 이동할 수 있었다. 레클리스를 타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1952년 12월 초에 누군가 이 명령을 어기고 지뢰밭을 질주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레클리스는 부상을 입지 않았다.
1953년 3월 판문점-베가스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51번의 단독 여행으로 386발의 무반동탄(9,000파운드 이상)을 운반하며 35마일 이상을 이동했다.[7][1][11] 이 전투에서 두 번 부상을 입었지만,[3] 뛰어난 공을 세워 상병으로 진급했다.
전선에 없을 때 레클리스는 전화선 설치 등 다른 물품 운반에도 유용했다.[1] 제5 해병대가 캠프 케이시에서 인천으로 이동하여 상륙 작전에 참여할 계획을 세웠을 때, 해병대에서 상륙 작전에 참여한 최초의 말이 되었다.[11] 수송선 지휘관의 반대를 극복하고 해병대가 제시한 하역 계획 덕분에 승선할 수 있었다. 항해 초반에는 배멀미를 했지만, 곧 적응하여 문제가 없었다.[1] 제1해병사단은 휴식 구역으로 이동했고, 일부 소대원들은 레클리스와 함께 네이티브 댄서 경주에 도전하는 표지판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패디 더비", "업산 다운스"라고 불린 이 경주는 1.5마일 논과 언덕 위, 192파운드 탄약 운반, 기수 없음 등의 조건을 제시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1954년 4월, 랜돌프 M. 페이트 제1해병사단장은 레클리스를 상병에서 중사로 진급시켰다. 1959년 8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서 다시 상사(E-6)로 진급했다. 레클리스는 미국 군대에서 공식 계급을 가진 동물의 초기 사례였다.
3. 2. 베가스 전초 전투 (판문점-베가스 전초 기지 전투)
연천군 장남면 매현리 부근의 네바다 전초 (베가스 전초, 레노 전초, 카슨 전초로 구성) 전투 중 베가스 전초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하룻동안 51회 고지를 왕복하며 탄약과 포탄 4ton을 운반하는 큰 활약을 했다.[12] 1953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 동안 벌어진 판문점-베가스 전투(베가스 전초 기지/베가스 언덕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51번의 단독 운행으로 총 386발의 무반동탄(총 약 4082.33kg 이상, 매번 4~8개의 24파운드 포탄)을 운반하며 약 56.33km 이상을 이동했다. 레클리스는 전투 중 두 번 부상을 입었는데, 한 번은 왼쪽 눈 위로 파편을 맞았고, 다른 한 번은 왼쪽 측면에 부상을 입었다. 베가스 언덕 전투에서의 공로로 레클리스는 상병으로 진급했다.
3. 3. 기타 임무
레클리스는 연천군 장남면 매현리 부근의 네바다 전초(베가스 전초, 레노 전초, 카슨 전초로 구성) 전투 중 베가스 전초 전투에서 하룻동안 51회 고지를 왕복하며 탄약과 포탄 4t을 운반하며 큰 활약을 했다.[12] 특히 1953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의 판문점-베가스 전투에서 51번의 단독 여행을 통해 총 386발의 무반동탄(총 약 4082.33kg)을 운반하며 35마일 이상을 이동했다. 이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왼쪽 눈 위와 측면에 파편을 맞아 두 번 부상을 입었지만, 뛰어난 활약으로 상병으로 진급했다.[12]
레클리스는 주로 탄약 운반 임무를 수행했지만, 전선에 있지 않을 때는 소대를 위해 전화선을 연결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철사를 감은 릴을 싣고 걸어가면서 풀어서 12명의 보병과 같은 양의 철사를 연결할 수 있었다.[12] 또한, 레클리스는 해병대에서 상륙 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말이 되었다. 제5 해병대가 캠프 케이시에서 인천으로 이동하여 상륙 작전에 참여할 계획을 세웠을 때, 수송 부대 지휘관은 레클리스를 자신의 깨끗한 배에 태우는 것을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해병대가 제시한 하역 계획에 레클리스와 그녀의 장비가 명시적으로 포함된 것을 확인한 후 승선이 허용되었다.[12]
전쟁이 끝난 후, 레클리스는 1954년 4월 10일 랜돌프 M. 페이트 제1해병사단 사령관에 의해 공식 행사에서 상병에서 중사로 진급했으며, 1959년 8월 31일에는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서 다시 상사(E-6)로 진급했다. 페이트 장군이 직접 주관한 진급 행사에서 레클리스는 19발의 예포와 1,700명의 사열을 받았다. 레클리스는 미국 군대에서 공식 계급을 가진 동물의 초기 사례 중 하나였다.[12]
4. 전역
레클리스는 해병대 복무 중 뛰어난 공로를 인정받아 다음과 같은 훈장들을 받았다.
훈장 종류 | 내용 |
---|---|
퍼플 하트 훈장 2개 | 베가스 전투에서 입은 부상 |
해병대 굿 컨덕트 메달 | |
미국 대통령 부대 표창 (청동 별 포함) | |
국가 방위 복무 메달 | |
한국 전쟁 참전 용사 메달 | |
유엔 한국 메달 | |
해군 부대 표창 | |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 |
레클리스는 이 훈장들을 자신의 말 담요에 착용했으며, 5연대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획득한 프랑스 포라제르도 착용했다.
1954년 4월 17일, ''The Saturday Evening Post''에 레클리스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서 미국 후원자들이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Pacific Transport Lines의 임원 스탠 코펠은 레클리스가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자사 선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레클리스는 제1해병 항공단 수송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간 후, 1954년 10월 22일 요코하마에서 ''SS Pacific Transport''를 타고 11월 5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태풍으로 인해 도착이 11월 9일 저녁까지 지연되었고, 레클리스는 폭풍우 동안 배에서 아팠으며, 우리에서 갑판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레클리스의 미국 입국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 세관 및 국경 보호국 통과는 문제가 없었지만, 미국 농무부는 건강 검진과 실험실 검사를 요구했고, 이로 인해 해병대 연회에 늦게 도착하게 되었다. 해병대는 워싱턴 D.C.의 농무부 관계자에게 연락하여 혈액 채취 및 검사 후 하선을 허가받았으며, 말역 또는 도린병 감염 시 안락사 또는 일본 송환 조건이 있었다. 많은 해병들은 도린병이 말의 성병이라는 것을 알고 레클리스의 명예에 대한 모욕이라며 분개했다. 레클리스는 도착 전날 밤 담요를 먹어 새 담요를 만들어야 했다. 1954년 11월 10일, 해병대 창설 기념일에 레클리스는 페더슨 중위의 인도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땅을 밟았고, 해병대 생일 무도회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케이크와 꽃 장식을 먹기도 했다.
레클리스는 캠프 펜들턴의 제5해병대, 제1해병사단에 영구 주둔하기 전 페더슨 가족의 보살핌을 받았다. 1955년 10월 22일 ''The Saturday Evening Post''에 레클리스에 대한 두 번째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들과 책 ''Reckless: Pride of the Marines''(1955)는 앤드루 지어 중령이 썼다. 레클리스는 아트 링클레터의 ''하우스 파티'' 등 여러 행사에 출연했지만, 태풍으로 ''에드 설리번 쇼'' 출연은 취소되었다. 레클리스는 캠프 펜들턴에서 VIP 대우를 받았으며, 해병대는 그녀가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레클리스는 캠프 펜들턴에서 네 마리의 망아지를 낳았다.
- 수망아지: Fearless (1957년)
- 수망아지: Dauntless (1959년)
- 수망아지: Chesty (1964년)
- 암망아지: 1965~1966년경 출생, 한 달 만에 사망하여 이름 없음.
Chesty는 레클리스를 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해병 중 한 명인 체스티 풀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풀러는 해병대 중장이자 역대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미국 해병이었다. 레클리스는 1960년 11월 10일 캠프 펜들턴에서 군사적 명예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급여 대신 무료 숙소와 먹이를 제공받았다.
레클리스는 나이가 들면서 등에 관절염이 생겼고, 1968년 5월 13일 가시 철사 울타리에 넘어져 부상당한 후 진정제를 투여받고 사망했다. 사망 당시 19세 또는 20세로 추정된다. 캠프 펜들턴 마구간에는 그녀를 기리는 현판과 사진이 있다. 1989년 11월 10일, 뉴욕 아쿠에덕트 경마장의 첫 번째 경주는 "Sgt 레클리스"로 지정되었다. 1997년, ''LIFE'' 잡지는 레클리스를 미국 역대 영웅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5. 서훈 내역
레클리스는 퍼플 하트 훈장을 비롯하여 미국 국방부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8]
훈장 | 내용 |
---|---|
퍼플 하트 훈장 (Purple Heart) | 별 1개 |
해군 대통령 부대 표창 (Navy Presidential Unit Citation) | 별 1개 |
해군 부대 표창 (Navy Unit Commendation) | |
해병대 모범 훈장 (Marine Corps Good Conduct Medal) | |
프랑스 푸르가르 (Fourragère) | |
국방 복무 훈장 (National Defense Service Medal) | |
한국 참전 기념장 (Korean Service Medal) | 청동 별 3개 |
한국 유엔군 훈장 (United Nations Service Medal Korea) |
레클리스는 베가스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두 개의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고, 해병대 굿 컨덕트 메달, 청동 별이 있는 미국 대통령 부대 표창, 국가 방위 복무 메달, 한국 전쟁 참전 용사 메달, 유엔 한국 메달, 해군 부대 표창을 받았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5연대가 획득한 프랑스 포라제르도 착용했다.[8]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 있으나, 행정안전부 상훈담당관실은 '''“군마 레클리스의 대통령표창 수여기록이 없음”'''을 확인했다.[8] 관련 언론 기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상징적인 공로훈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 역시 잘못된 정보이다.[8]
행정안전부 상훈관리실은 동물에게 대한민국 훈장이 수여된 사실이 없으며, 군견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됐다는 정보는 잘못되었다고 밝혔다.[8]
2016년 7월 28일, 레클리스 하사에게는 1952년에서 1953년 사이의 복무에 대한 공로로 사후에 딕킨 메달 (Dickin Medal)이 수여되었다.[9] 2019년 11월에는 딕킨 메달의 미국판인 전쟁 및 평화 용감한 동물 메달 (Animals in War & Peace Medal of Bravery)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다.[10]
6. 기념물
조각가 조슬린 러셀(Jocelyn Russell)이 제작한, 탄약 포탄과 기타 전투 장비를 운반하는 레클리스(Reckless)의 기념비가 6.25 전쟁 60주년을 하루 앞둔 2013년 7월 26일 국립 해병대 박물관의 셈퍼 피델리스 기념 공원에서 공개되었다. 동상 기단에는 그녀의 꼬리털 한 움큼이 보관되어 있다.[4] 동상의 명판에는 레클리스와 함께 전투에 참전했던 해병 하사관 해롤드 웨들리(Harold Wadley)의 다음과 같은 인용문이 새겨져 있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외로움과 충성의 정신은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결연했고, 외로웠습니다. 그것이 제가 제 머리와 마음에 영원히 새겨진 모습입니다."[4]
조슬린 러셀(Jocelyn Russell) 작가의 작품으로, 전국에 레클리스 하사관을 기리는 5개의 기념비가 더 있다.
위치 | 건립일 |
---|---|
미 해병대 펜들턴 기지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 | 2016년 10월 26일 |
켄터키 호스 파크 (켄터키주 렉싱턴) | 2018년 5월 12일 |
국립 카우걸 박물관 및 명예의 전당 (텍사스주 포트워스) | 2019년 11월 13일 |
배링턴 힐스 농장 (일리노이주) | 2019년 9월 |
세계 승마 센터 (플로리다주 오칼라) | 2020년 12월 |
[5][6] 이 기념비들은 국립 해병대 박물관에 있는 기념비와 유사하다.[6]
2018년에는 연천군고랑포구 역사공원(베가스 고지 전투 인근)에 레클리스 하사관 기념비가 건립되었다.[7]
7. 대중문화 속 레클리스
- ''레클리스 1953'': 한국마사회의 말 뮤지컬 쇼.[11]
- ''브루클린 나인-나인'': 시즌 1 에피소드 13에 등장하는 레프테넌트 피넛버터는 레클리스에게서 영감을 받았다.[11]
- "서전트 레클리스와 테리 구글"은 기술적 어려움의 게임 쇼 ''Citaded'' 시즌 3 에피소드 3의 제목이자 주제이다.[11]
참조
[1]
웹사이트
Sergeant Reckless Korean War horse statue going to KY Horse Park
https://www.kentucky[...]
2018-04-16
[2]
웹사이트
Statue of heroic Korean War horse Sgt. Reckless to be dedicated at Kentucky Horse Park on May 12
http://www.kyforward[...]
2018-05-01
[3]
웹사이트
A War Horse Earns Her Sergeant's Stripes: 1953
http://www.saturdaye[...]
2012-01-14
[4]
웹사이트
Operation Reckless Dedication
http://www.koreanwar[...]
2013-07-26
[5]
웹사이트
Memorial dedication for Marine Pack Horse, Staff Sgt. Reckless
http://www.marines.m[...]
2016-10-24
[6]
뉴스
Staff Sgt. Reckless wasn't just a horse, she was a Marine who served in Korean War
http://www.ocregiste[...]
2016-09-02
[7]
웹사이트
전쟁으로 사라진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으로 살아나다
https://news.naver.c[...]
2019-10-03
[8]
문서
Operation Reckless Dedication
https://web.archive.[...]
[9]
뉴스
U.S. Marine Horse 'Sgt Reckless' Awarded Posthumous Medal Of Valor
http://www.inquisitr[...]
2016-07-28
[10]
뉴스
New animal bravery medal honors heroic dogs, pigeons and horse
https://www.washingt[...]
2019-11-18
[11]
Youtube
Sergeant Reckless and Terry Google: Citati
https://www.youtube.[...]
[12]
문서
연천 매향리 '네바다 전초전투' 탄약운반 유공 '아침해'
http://www.kyeongin.[...]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전쟁 영웅' 제주마…훈장 받은 미 해병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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