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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게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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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베르 게랭은 프랑스의 언론인이자 스포츠 행정가로, 국제 축구 연맹(FIFA)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며, FIFA 창립에 기여하여 1904년 FIFA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게랭의 임기 동안 FIFA는 여러 국가의 협회를 가맹시켰으나, 1906년 세계 선수권 대회 개최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후 FIFA는 지역 협회 승인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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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게랭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06년의 게랭
1906년의 게랭
직책
FIFA 회장제1대
임기 시작1904년 5월 23일
임기 종료1906년 6월 4일
전임직책 신설
후임다니엘 벌리 울폴
개인 정보
본명클레망 오귀스트 모리스 로베르
출생일1876년 4월 28일
사망일1952년 3월 19일 (만 75세)
국적프랑스
직업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2. 일생과 경력

로베르 게랭은 프랑스 신문 르 마탱의 기자였으며, USFSA의 축구부 총무를 맡아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국제 축구 연맹 창단 활동과 첫 규정 동의를 위해 파리에서 열린 논의에 7개 나라 대표자와 함께 참여하였다. 1904년 5월 22일 국제 축구 연맹 회의에서 회장에 당선되었으며, 이후 2년 동안 잉글랜드 축구 협회를 포함한 8개 협회가 추가로 합류하는 데 기여했다.

2. 1. 언론인 및 스포츠 행정가 활동

프랑스 신문 르 마탱의 기자로 일했으며, USFSA의 축구부 총무를 맡아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국제 축구 연맹 창단 활동 계약과 국제 축구 연맹의 첫 규정 동의를 위해 파리에서 열린 논의에 국제 축구 연맹의 첫 구성원이었던 7개 나라 대표자와 함께 참여하였다. 1904년 5월 22일 국제 축구 연맹 회의에서 회장에 당선되었으며, 잉글랜드 축구 협회를 포함한 8개 협회가 추가로 합류할 때까지 2년 동안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2. 2. FIFA 창립 주도

1904년 5월 21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스페인 7개국이 프랑스 수도 파리에 모여 국제 축구 연맹(FIFA) 설립 회의를 개최했다.[4] 이 회의는 같은 해 5월 23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되었으며, 조직명을 "국제 축구 연맹(약칭: FIFA)"로 결정했다. 당시 28세였던 로베르 게랭은 프랑스 스포츠 통괄 단체 USFSA의 축구 위원회 간사이자 프랑스 신문 '르 마탱'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FIFA 총회에서 초대 FIFA 회장으로 선출되었다.[3]

게랭의 임기는 2년이었지만, 그 사이에 영국 본토 4개 협회,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를 포함한 8개의 국가 및 지역 협회가 1905년에 FIFA에 가맹했다.

하지만,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FIFA는 실행력과 자금이 부족하여 파리 중심가의 건물 한 칸에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4] 1905년 제2회 FIFA 파리 총회에서 1906년에 유럽에서 축구 단독의 제1회 세계 선수권 대회 (후의 FIFA 월드컵)를 개최하기로 결정했지만, 당시 교통 기관 미비, 경비 부담, 각국 축구 협회 미확립 등의 문제로 참가국이 모이지 않아 대회가 무산되었다. 결국 게랭은 책임을 지고 1905년 FIFA 회장직을 사임했다.[5]

2. 3. FIFA 초대 회장 재임

1904년 5월 22일 국제 축구 연맹 회의에서 로베르 게랭이 회장에 당선되었으며, 잉글랜드 축구 협회를 포함한 8개의 협회가 추가로 합류할 때까지 2년 동안 회장으로 활동하였다.[3]

로베르 게랭은 프랑스 신문인 르 마탱(Le Matin)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한편, 프랑스 스포츠 통괄 단체 USFSA(Union des Sociétés Françaises de Sports Athlétiques, 프랑스 체육 연맹)의 축구 위원회 간사(프랑스 체육 연맹 서기장)를 맡고 있었다.

1904년 5월 21일,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스페인 7개국이 모여 FIFA 설립 회의를 개최했다.[4] 5월 23일까지 3일 동안 조직명을 "국제 축구 연맹(약칭: FIFA)"로 결정했다. 당시 28명의 FIFA 총회(FIFA Congress)는 USFSA의 축구 위원회 간사인 로베르 게랭을 초대 FIFA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때 게랭은 28세였다. 임기는 2년이었지만, 그 사이에 영국 본토 4개 협회,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를 포함한 8개의 국가 및 지역 협회가 1905년에 가맹했다.

탄생한 지 얼마 안 된 FIFA는 실행력과 자금이 부족하여 파리 중심가의 건물 한 칸에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4] 1905년, 제2회 FIFA 파리 총회에서 축구 단독의 제1회 세계 선수권 대회 (후의 FIFA 월드컵)를 1906년에 유럽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교통 기관이 미발달한 상황이었고, 경비 부담을 포함하여 대표팀 구성도 어려운 국가가 많았다. 또한 각국의 축구 협회도 확립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참가국이 모이지 않아 게랭은 책임을 지고 1905년 FIFA 회장직을 사임했다.[5]

게랭은 FIFA 회장 취임 전부터 국제 규칙 제정 등에 힘썼다. 그러나 임기 중반부터는 업무를 부하에게 대행시키는 일이 많아졌고, 차기 회장 결정 등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2. 4. FIFA 회장 사임과 그 이후

로베르 게랭은 1906년 유럽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1회 세계 선수권 대회가 참가국 부족으로 무산되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FIFA 회장직에서 사임했다.[5] 당시 교통 기관이 발달하지 않았고, 경비 부담 등의 문제로 각국 대표팀 구성이 어려웠으며, 축구 협회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국가도 많았다.[5]

게랭은 FIFA 회장 취임 전부터 국제 규칙 제정 등에 힘썼으나, 임기 중반부터는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대행시키는 일이 잦았고, 차기 회장 결정 등에도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 퇴임 후에는 스포츠계에서 멀어졌다.[5]

3. 지역 협회 승인

이후 FIFA는 일정 자치를 하고 있는 지역 협회도 공인하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8년 4월 18일 시점에서, 총 211개 협회가 FIFA로부터 인가받고 있다.[8]

3. 1. 영국 본토 4개 협회 승인 배경

게랭을 비롯한 FIFA 임원은 처음에는 1국가 1협회 1대표팀을 원칙으로 했지만, 다음과 같은 경위를 거쳐 지역 협회 및 대표팀도 인가하게 되었다. FIFA 창설 다음 해인 1905년 잉글랜드가 참가하기 전까지, "(근대) 축구의 종주국(The home of Football: FIFA 공식 호칭[6])"으로서의 우위성과 영국 이외의 국가와의 현격한 실력 차이를 주장한 영국은 FIFA에 참가하지 않았다.[4][7]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우위성은 다음과 같다.

  • 근대 축구는 1863년 잉글랜드 축구 협회(FA)와 런던의 12개 클럽에 의한 통일 규칙 제정으로 탄생하여 영국 본토로 퍼졌다. 이후 "대영 제국(지금의 영국)"의 선원·철도 기술자·수병 등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7]
  • 1882년 영국 본토 4개 협회는 국제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통일 규칙을 만드는 단체인 국제 축구 평의회를 조직했다.
  • 1883년부터 영국 본토 4개 협회가 참가하는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당초에는 홈 인터내셔널 챔피언십(홈 국제 선수권))이라고 불리는 세계 최초의 축구 단독 국제 대회를 매년 개최하게 되었다.


이처럼 영국 본토 4개 협회는 FIFA 설립 이전부터 각각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영국 이외의 국가와의 현격한 실력 차란, 당시 이미 프로 리그가 있었던 잉글랜드의 “아마추어”팀이 네덜란드나 프랑스로 원정 경기를 가도, 상대 팀에게 두 자릿수 점수를 기록할 정도의 실력 차이를 말한다.[4] 따라서 영국에는, 영국 본토 4개 협회 이외의 국가와 국제 경기를 할 필요가 없으므로, 다른 국가와 국제 경기를 하기 위해 FIFA와 같은 조직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4]

원래 축구 단독의 세계 선수권 대회(후의 FIFA 월드컵)를 개최하는 것이 당초부터의 목적 중 하나였던 FIFA(게랭 및 FIFA 임원)는, 축구의 국제 규칙을 제정한 근대 축구의 종주국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당시 축구 최강국인 영국[4]을 FIFA에 가맹시키기 위해, 영국 협회로서 포괄적으로가 아닌, 영국 본토 4개 협회를 개별적으로 승인했다.

3. 2. FIFA의 지역 협회 승인 확대

게랭을 비롯한 FIFA 임원은 처음에는 1국가 1협회 1대표팀을 원칙으로 했지만, 다음과 같은 경위를 거쳐 지역 협회 및 대표팀도 인가하게 되었다. FIFA 창설 다음 해인 1905년 잉글랜드가 참가하기 전까지, "(근대) 축구의 종주국(The home of Football: FIFA 공식 호칭[6])"으로서의 우위성과 영국 이외의 국가와의 현격한 실력 차이를 주장하며 FIFA에 참가하지 않았다.[4][7]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우위성은, 세계에 앞서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을 말한다.

  • 근대 축구는 1863년 잉글랜드 축구 협회(FA)와 런던의 12개 클럽에 의한 통일 규칙 제정으로 탄생하여 영국 본토로 퍼졌다. 이후 "대영 제국(지금의 영국)"의 선원·철도 기술자·수병 등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7]
  • 1882년 영국 본토 4개 협회는 국제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통일 규칙을 만드는 단체인 국제 축구 평의회를 조직했다.
  • 1883년부터 영국 본토 4개 협회가 참가하는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당초에는 홈 인터내셔널 챔피언십(홈 국제 선수권))이라고 불리는 세계 최초의 축구 단독 국제 대회를 매년 개최하게 되었다.


이처럼 영국 본토 4개 협회는 FIFA 설립 이전부터 각각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영국 이외의 국가와의 현격한 실력 차이란, 당시 이미 프로 리그가 있었던 잉글랜드의 “아마추어”팀이 네덜란드나 프랑스로 원정 경기를 가도, 상대 팀에게 두 자릿수 점수를 기록할 정도의 실력 차이를 말한다.[4] 따라서 영국에는, 영국 본토 4개 협회 이외의 국가와 국제 경기를 할 필요가 없으므로, 다른 국가와 국제 경기를 하기 위해 FIFA와 같은 조직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4]

원래 축구 단독의 세계 선수권 대회(후의 FIFA 월드컵)를 개최하는 것이 당초부터의 목적 중 하나였던 FIFA(게랭 및 FIFA 임원)는, 축구의 국제 규칙을 제정한 근대 축구의 종주국(The home of Football)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당시 축구 최강국인 영국[4]을 FIFA에 가맹시키기 위해, 영국 협회로서 포괄적으로가 아닌, 영국 본토 4개 협회를 개별적으로 승인했다.

이후 FIFA는 일정 자치를 하고 있는 지역 협회도 공인하게 되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8년 4월 18일 시점에서, 총 211개 협회가 FIFA로부터 인가받고 있다.[8]

참조

[1] 웹사이트 The mystery of Robert Guérin, the man who founded FIFA https://www.scottish[...]
[2] 웹사이트 The mystery of Robert Guérin, the man who founded FIFA http://www.scottishs[...] 2023-01-29
[3] 웹사이트 歴代FIFA会長ページRobert Guerin http://www.fifa.com/[...] FIFA公式HP
[4] 웹사이트 No.1024 FIFA 111回目の誕生日(2015年5月20日)-サッカーの話をしよう大住良之公式オフィシャルアーカイブサイト http://www.soccertal[...]
[5] 서적 ワールドカップの国際政治学 朝日新聞(朝日選書497) 1994
[6] 웹사이트 History of Football - Britain, the home of Football http://www.fifa.com/[...] FIFA公式HP
[7] 서적 新・サッカーへの招待 岩波書店 1998
[8] 웹사이트 Associations http://www.fifa.com/[...] FIFA公式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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