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린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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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가렛 린제이는 미국의 배우이다. 1932년 영화 《오케이, 아메리카!》로 데뷔하여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쳐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다. 《캐벌케이드》, 《제저벨》, 《스칼렛 스트리트》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며, 1940년대에는 엘러리 퀸 시리즈에서 니키 포터 역을 맡았다. 1950년대 이후에는 텔레비전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으며, 1963년 영화 《태미 앤 더 닥터》를 마지막으로 배우 활동을 중단했다. 1981년 폐기종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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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린제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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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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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마가렛 키스 |
출생일 | 1910년 9월 19일 |
출생지 | 아이오와주 더뷰크 |
사망일 | 1981년 5월 9일 |
사망지 |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안장지 | 캘리포니아주 컬버시티 홀리 크로스 공동묘지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32년–1974년 |
파트너 | 메리 맥카티 |
친척 | 제인 길버트 (자매) |
2. 생애
마가렛 린제이는 설득력 있는 영국식 억양으로 인해 종종 영국인으로 오해받았다. 그녀는 연극 학교 동료였던 로버트 커밍스의 권유로 영국식 이름인 '마가렛 린제이'를 사용하게 되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린제이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1932년 영화 ''올드 다크 하우스'' 출연 계약을 맺었지만, 헐리우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글로리아 스튜어트가 그 역할에 캐스팅된 후였다.[1] 이후 린제이는 바바라 스탠윅이 출연한 ''크리스토퍼 스트롱''과 ''베이비 페이스''에서 단역을 맡은 후, 폭스 필름 코퍼레이션의 수상작 ''캐벌케이드''에 캐스팅되어 ''타이타닉호''에서 신혼여행을 보내는 비극적인 영국 신부 에디스 해리스 역을 연기했다.
린제이는 워너스 영화에서 베티 데이비스와 함께 ''프리스코 위의 안개''(1934), ''데인저러스''(1935), ''보더타운''(1935), ''제저벨''(1938) 등 총 4편의 영화에 공동 출연했다. 1940년대에는 콜럼비아의 『범죄 박사』 시리즈와 『엘러리 퀸』 시리즈 (1940–1942)에 출연하여 니키 포터 역을 맡았다. 작가 존 터스카는 엘러리 퀸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지만, 주연 배우 랄프 벨라미는 이 시리즈에 대해 당혹스러워했다.[4] 터스카는 『엘러리 퀸, 명탐정』 (1940)과 『엘러리 퀸의 펜트하우스 미스터리』 (1941)를 벨라미-린제이 조합의 최고작으로 꼽았다.[4]
1942년 영화 ''스포일러스''에서 말렌 디트리히, 존 웨인과 함께 조연으로 출연했고, 프리츠 랑의 ''스칼렛 스트리트''(1945)에서는 에드워드 G. 로빈슨, 조안 베넷과 함께 출연했다. 1940년대 후반에는 MGM 영화 ''카스 팀벌레인''(1948)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영화 경력은 쇠퇴하였다.[5]
1950년, 린제이는 진지함의 중요성[6]으로 텔레비전 데뷔를 하였고, 이후 텔레비전 작품에 더 많이 출연했다. 1950년대에는 4편, 1960년대에는 2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그녀의 마지막 장편 영화는 ''태미 앤 더 닥터''(1963)였다.
2. 1. 초기 생애
린제이는 아이오와주 두뷰크에서 1930년에 사망한 약사의 여섯 자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디모인 레지스터''의 톰 롱든에 따르면 "페그"는 "배나무를 타는 것을 좋아하고 롤러스케이트광"이었다.[3] 그녀는 1930년 두뷰크의 비지테이션 아카데미를 졸업했다.[3]2. 2. 경력
마가렛 린제이는 설득력 있는 영국식 억양으로 인해 종종 영국인으로 오해받았다. 그녀는 연극 학교 동료였던 로버트 커밍스의 권유로 영국식 이름인 '마가렛 린제이'를 사용하게 되었다.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린제이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1932년 영화 ''올드 다크 하우스'' 출연 계약을 맺었지만, 헐리우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글로리아 스튜어트가 그 역할에 캐스팅된 후였다.[1] 이후 린제이는 바바라 스탠윅이 출연한 ''크리스토퍼 스트롱''과 ''베이비 페이스''에서 단역을 맡은 후, 폭스 필름 코퍼레이션의 수상작 ''캐벌케이드''에 캐스팅되어 ''타이타닉호''에서 신혼여행을 보내는 비극적인 영국 신부 에디스 해리스 역을 연기했다.
린제이는 워너스 영화에서 베티 데이비스와 함께 ''프리스코 위의 안개''(1934), ''데인저러스''(1935), ''보더타운''(1935), ''제저벨''(1938) 등 총 4편의 영화에 공동 출연했다. 1940년대에는 콜럼비아의 『범죄 박사』 시리즈와 『엘러리 퀸』 시리즈 (1940–1942)에 출연하여 니키 포터 역을 맡았다. 작가 존 터스카는 엘러리 퀸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지만, 주연 배우 랄프 벨라미는 이 시리즈에 대해 당혹스러워했다.[4] 터스카는 『엘러리 퀸, 명탐정』 (1940)과 『엘러리 퀸의 펜트하우스 미스터리』 (1941)를 벨라미-린제이 조합의 최고작으로 꼽으며, 『엘러리 퀸의 펜트하우스 미스터리』에 대해 "『씬 맨』 시리즈의 영향이 역으로 나타났다"라고 평가했다.[4]
린제이는 1942년 영화 ''스포일러스''에서 말렌 디트리히, 존 웨인과 함께 조연으로 출연했고, 프리츠 랑의 ''스칼렛 스트리트''(1945)에서는 에드워드 G. 로빈슨, 조안 베넷과 함께 출연했다. 1940년대 후반에는 MGM 영화 ''카스 팀벌레인''(1948) 등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영화 경력은 쇠퇴하였다.[5]
1950년, 린제이는 진지함의 중요성[6]으로 텔레비전 데뷔를 하였고, 이후 텔레비전 작품에 더 많이 출연했다. 1950년대에는 4편, 1960년대에는 2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그녀의 마지막 장편 영화는 ''태미 앤 더 닥터''(1963)였다.
2. 2. 1. 1930년대
그녀는 설득력 있는 영국식 억양 때문에 종종 영국인으로 오해받았다. 그녀의 동료 연극 학교 학생인 로버트 커밍스는 당시 영국인 "블레이드 스탠호프 콘웨이"로 위장하고 있었고, 마가렛 키스에게 그의 방식을 따라 새로운 영국식 정체성, 즉 마가렛 린제이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그녀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깊은 인상을 주어 1932년판 영화 ''올드 다크 하우스''에 출연 계약을 맺었다. 제임스 로버트 패리시와 윌리엄 T. 레너드는 ''헐리우드 플레이어: 30년대'' (알링턴 하우스, 1976)에서 린제이가 미국으로 돌아와 헐리우드에 도착했을 때 글로리아 스튜어트가 영화에서 그녀의 역할에 캐스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썼다. 바바라 스탠윅이 출연한 프리코드 영화인 ''크리스토퍼 스트롱''과 혁신적인 ''베이비 페이스''에서 몇몇 단역을 맡은 후, 린제이는 폭스 필름 코퍼레이션의 수상작인 ''캐벌케이드''에 캐스팅되었다. 린제이는 비극적인 영국 신부로, 그녀의 신혼여행이 ''타이타닉호''에서 이루어지는 에디스 해리스 역을 맡았다.
린제이는 워너스 영화에서 베티 데이비스와 함께 4편의 영화에 공동 출연했다. ''프리스코 위의 안개'' (1934)에서 데이비스의 여동생으로, 데이비스가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데인저러스'' (1935)에서, 폴 무니와 함께 한 ''보더타운''에서, 그리고 ''제저벨'' (1938)에서 헨리 폰다의 애정을 놓고 데이비스의 라이벌로 출연했다.
2. 2. 2. 1940년대
보리스 칼로프와 함께 출연한 영국 정보 (1940) 사진은 다음과 같다.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린제이는 콜럼비아의 첫 번째 『범죄 박사』 시리즈와 콜럼비아의 『엘러리 퀸』 시리즈 (1940–1942)에 출연하여 니키 포터 역을 계속 맡았다. 작가 존 터스카는 엘러리 퀸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보였지만, 주연 배우인 랄프 벨라미는 당황스러워했다.[4]
존 터스카는 『엘러리 퀸, 명탐정』 (1940)과 『엘러리 퀸의 펜트하우스 미스터리』 (1941)를 벨라미-린제이 조합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터스카는 『엘러리 퀸의 펜트하우스 미스터리』에 대해 "『씬 맨』 시리즈의 영향이 역으로 나타났다"라고 언급했다. "엘러리와 니키는 미혼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이 분명하다. 아마 가장 큰 미스터리는... 엘러리가 어떻게 책을 쓰느냐는 것이다. 니키는 매력적이고 몸매를 과시하는 데 거리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퀸의 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조사를 하는 데 열중한다"라고 터스카는 평했다.[4]
린제이는 1942년 영화 『스포일러스』에서 말렌 디트리히와 존 웨인과 함께 조연으로 출연했고, 프리츠 랑의 『스칼렛 스트리트』 (1945)에는 에드워드 G. 로빈슨과 조안 베넷과 함께 출연했다. 1940년대 후반에는 MGM 영화, 예를 들어 스펜서 트레이시와 라나 터너가 출연한 『카스 팀벌레인』 (1948)에서 조연을 맡기도 했지만, 그녀의 영화 경력은 쇠퇴하였다.[5]
2. 2. 3. 1950년대 ~ 1960년대
1950년 린제이는 진지함의 중요성[6]에서 텔레비전 데뷔를 하여, 그녀의 잘 다듬어진 영국식 억양을 뽐낼 수 있었다. 이후 텔레비전 작품에 더 출연했다. 린제이는 1950년대에 단 4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1960년대에는 2편에 출연했다. 그녀의 마지막 장편 영화는 태미 앤 더 닥터(1963)였다.3. 사생활
린제이는 초창기에 언니 헬렌과 함께 할리우드에서 살았다. 말년에는 막내 여동생 미키와 함께 살았다. 린제이는 결혼한 적이 없다.
전기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윌리엄 J. 맨에 따르면, 린제이는 뮤지컬, 영화, 텔레비전 배우 메리 맥카티의 동반자였다.[7][8] 그녀는 세자르 로메로, 리처드 디콘, 리버라치와 같은 스타들과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9][10] 또한 재닛 게이노어와도 관계가 있었다.[11][12][13][14]
4. 사망
린제이는 1981년 로스앤젤레스의 굿 사마리탄 병원에서 70세의 나이로 폐기종으로 사망했다.[15] 그녀는 캘리포니아주 컬버 시티에 있는 홀리 크로스 묘지에 묻혔다.[16]
5. 필모그래피
마가렛 린제이는 다양한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 영화 ===
=== TV ===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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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 채드윅 가족 | 엘리(Elly) | TV 영화 |
- 권총의 맹세
- 스칼렛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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