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가타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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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쓰다이라 가타오키는 아이즈번 5대 번주이다. 마쓰다이라 마사카타의 아홉 번째 아들인 마쓰다이라 가타사다의 장남으로, 1789년에 시종과 와카사노카미에 서임되었다. 1805년, 선대인 마쓰다이라 가타노부의 사망으로 번주 자리에 올랐으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뒤는 차남인 마쓰다이라 가타히로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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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이라 가타오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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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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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쓰다이라 가타오키 |
원어 이름 | 松平容住 |
추가 정보 | 40px |
관직 | |
직책 | 제6대 아이즈번 다이묘 |
통치 시작 | 1805년 |
통치 종료 | 1806년 |
이전 | 마쓰다이라 가타노부 |
이후 | 마쓰다이라 가타히로 |
섬긴 쇼군 | 도쿠가와 이에나리 |
출생과 사망 | |
출생 | 1779년 1월 7일 |
사망 | 1806년 2월 15일 |
가족 관계 | |
아버지 | 마쓰다이라 가타사다 |
배우자 | 이이 나오히데의 딸 겐히메, 이시카와 씨 (평민) |
일본어 정보 (기본 정보)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출생 | 안에이 7년 11월 20일 (1779년 1월 7일) |
사망 | 분카 2년 12월 27일 (1806년 2월 15일) |
어릴 적 이름 | 긴노스케 |
개명 | 가타오키 |
시호 | 데이쇼 레이진 |
묘소 |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시 히가시야마마치의 아이즈 번주 마쓰다이라 가문 묘소 |
관위 | 종4위하 시종 겸 와카사노카미, 히고노카미 |
막부 | 에도 막부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나리 |
번 | 무쓰 아이즈번 번주 |
씨족 | 아이즈 마쓰다이라 가문 |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가타아키라, 어머니: 스즈키 씨 |
형제 | 가타오키, 가타요리 |
처 | 정실: 이이 나오유키 딸 겐, 이시카와 씨 |
자녀 | 가타모리 등, 양자: 가타타카 |
한국어 정보 (관직) | |
직책 | 아이즈번 번주 (호시나 마쓰다이라 가문) |
대수 | 6대 |
임기 | 1805년 ~ 1806년 |
전임자 | 마쓰다이라 가타노부 |
후임자 | 마쓰다이라 가타히로 |
2. 생애
마쓰다이라 가타오키는 아이즈번 3대 다이묘 마쓰다이라 마사카타의 손자이자, 마쓰다이라 가타사다의 장남이다. 간세이 원년(1789년)에 시종 겸 와카사노카미에 서임되었으며, 분카 2년(1805년) 선대 번주 마쓰다이라 가타노부가 사망하자 그의 사후 양자 형태로 가독을 이어 아이즈번 6대 번주가 되었다.
번주 취임 후, 선대의 정책을 이어받아 다나카 겐사이를 등용하는 등 재정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취임한 지 불과 5개월 만인[1] 같은 해 12월에 2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 그의 뒤는 차남인 가타치카가 이었다.
2. 1. 출생과 가계
마쓰다이라 가타오키는 아이즈 3대 다이묘인 마쓰다이라 마사카타의 아홉 번째 아들 마쓰다이라 가타사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간세이 원년(1789년)에 시종 겸 와카사노카미에 서임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즈번 5대 다이묘인 마쓰다이라 가타노부의 양자였으나, 정식 양자 절차가 완료되기 전에 사망하였다. 이 때문에 가타오키는 분카 2년(1805년) 가타노부가 사망한 후 그의 사후 양자가 되어 가독을 이었다.그의 부인은 히코네번 번주 이 나오히데의 딸이었다.
2. 2. 번주 취임과 사망
아이즈 번 3대 번주 마쓰다이라 마사카타의 아홉째 아들인 마쓰다이라 가타사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간세이 원년(1789년)에 시종 겸 若狭守|와카사노카미일본어에 임명되었다.원래 아버지 가타사다가 5대 번주 마쓰다이라 가타노부의 양자였으나, 가독을 상속받기 전에 사망하였다. 이 때문에 분카 2년(1805년)에 가타노부가 사망하자, 가타오키가 사후 양자 형태로 번주 자리를 계승하게 되었다.
가타오키는 선대 번주 가타노부의 정책을 이어받아 다나카 겐사이를 등용하는 등 재정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취임한 지 불과 5개월 만인[1] 같은 해 12월에 2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1] 그의 뒤는 차남인 가타치카가 이었다.
정식 부인은 히코네번 번주 이 나오히데의 딸이었으나, 후계자인 가타치카는 측실인 이시카와 씨에게서 태어났다.
3. 가계
마쓰다이라 가타오키는 아이즈번 3대 다이묘 마쓰다이라 마사카타의 아홉 번째 아들인 마쓰다이라 가타사다의 장남이다.[1] 1789년, 아이즈번 5대 다이묘 마쓰다이라 가타노부가 정식 양자 절차를 마치기 전에 사망하자, 가타오키는 사후 양자가 되어 번주 자리를 계승했다.[1]
3. 1.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가타사다
- 어머니: 스즈키 씨 (측실)
3. 2. 정실과 측실
정실은 히코네번주 이이 나오히데의 딸인 켄이다. 측실로는 이시카와 씨와 시라사와 씨가 있었다. 둘째 아들이자 후계자인 마쓰다이라 가타히로는 측실 이시카와 씨에게서 태어났다.3. 3. 자녀
- 마쓰다이라 가타히로 (차남) - 생모는 측실 이시카와 씨.
3. 4. 양자
- 마쓰다이라 카타히로 - 공식적으로는 셋째 아들이지만, 실제로는 마쓰다이라 요시카즈의 셋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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