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랜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이클 랜던은 1936년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배우, 프로듀서, 감독, 각본가이다. 그는 1950년대부터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배역을 소화했다.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서부극 《보난자》에서 리틀 조 카트라이트 역으로 출연하여 스타덤에 올랐고, 1974년부터 1983년까지는 《초원의 집》에서 찰스 잉걸스 역을 맡아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또한, 《천사의 고속도로》에서 주연, 제작, 각본, 연출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1991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뉴욕 출신 가수 - 해리 벨라폰테
해리 벨라폰테는 "데이-오 (바나나 보트 송)"으로 유명한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 사회 운동가로, 칼립소 앨범 성공과 더불어 흑인 민권 운동 참여, 에미상, 토니상, 그래미상 수상 등 예술과 사회 공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뉴욕 출신 가수 - 토니 베넷
앤서니 도미닉 베네데토라는 본명으로도 알려진 미국의 가수 토니 베넷은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와 같은 대표곡을 통해 스탠더드 팝을 고수하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았고, 레이디 가가와의 협업 등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며 화가로도 활동했다. - 퀸스 출신 - 앤드루 쿠오모
앤드루 쿠오모는 뉴욕 주지사를 역임한 미국 민주당 정치인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요양원 사망자 은폐 의혹 및 성추행 혐의로 논란이 되었다. - 퀸스 출신 - 레이 커즈와일
레이 커즈와일은 광학 문자 인식, 음성 합성, 음악 합성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기술적 특이점 이론으로 알려진 미래학자이자 발명가, 작가, 기업가이다. -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듀서 - J. J. 에이브럼스
J.J. 에이브럼스는 《펠리시티》, 《로스트》 등의 TV 드라마와 《미션 임파서블 3》, 《스타워즈》 시리즈 등의 영화를 감독한 미국의 영화 및 텔레비전 감독이자 제작자, 각본가이며, 배드 로봇을 설립하여 복잡한 플롯과 미스터리 요소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하다. -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듀서 - 댄 슈나이더
댄 슈나이더는 1966년생 미국의 배우, 작가, 프로듀서로, 니켈로디언에서 다수의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2018년 계약 종료 후 아동 성 학대 의혹으로 논란이 일었다.
마이클 랜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유진 모리스 오로위츠 |
출생일 | 1936년 10월 31일 |
출생지 | 미국 뉴욕 시 |
사망일 | 1991년 7월 1일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말리부 |
묘지 | 힐사이드 메모리얼 파크 묘지 |
직업 | 배우, 작가, 프로듀서, 감독, 가수 |
활동 기간 | 1955년–1991년 |
배우자 | Dodie Levy-Fraser (1956년 결혼, 1962년 이혼) Marjorie Lynn Noe (1963년 결혼, 1982년 이혼) Cindy Clerico (1983년 결혼) |
자녀 | 마크, 레슬리, 마이클 주니어, 크리스토퍼, 제니퍼 포함 9명 |
친척 | 레이첼 매튜스 (손녀) |
주요 작품 | Bonanza 초원의 집 Highway to Heaven |
기타 정보 | |
영어 이름 | Michael Landon |
로마자 표기 | Maikeul Laendeon |
2. 어린 시절
마이클 랜던은 유진 모리스 오로위츠(Eugene Maurice Orowitz)라는 이름으로 1936년 10월 31일 뉴욕 퀸스의 포레스트 힐스에서 태어났다.[2][28] 그의 아버지 엘리 모리스 오로위츠는 유대인이었고 극장 주인이었으며, 어머니 캐슬린 "페기" 오닐은 아일랜드계 로마 가톨릭 신자로 댄서이자 코미디언이었다. 랜던에게는 1933년에 태어난 누나 에블린이 있었다. 1941년, 랜던이 네 살 때 가족은 뉴저지주 콜링스우드로 이사했다. 그는 그곳의 템플 베스 숄롬에서 유대교 성인식인 ''바르 미츠바''를 치렀다. 랜던은 바르 미츠바를 위해 히브리어를 읽고 기도를 외우는 법을 배우려고 매일 근처 마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고 회상했다.[3]
운동선수의 길을 걷다가 부상으로 인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워너 연극 학교를 거쳐 1956년 영화에 데뷔했고, 이듬해부터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저예산 B급 작품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어린 시절 랜던은 어머니의 반복적인 자살 시도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해했다. 한 가족 해변 휴가에서는 어머니가 물에 빠져 목숨을 끊으려 했고, 랜던이 그녀를 구해야 했다. 그는 이 사건 직후 어머니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으며, 자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토했다고 회상하며 이를 인생 최악의 경험으로 꼽았다.[4] 이러한 극심한 스트레스는 랜던이 야뇨증을 겪는 원인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밤새 적신 시트를 창문 밖에 널어 다른 사람들이 보도록 했고, 랜던은 학교 친구들이 보기 전에 시트를 걷기 위해 매일 집으로 달려가야 했다.[5] 이 경험은 훗날 랜던이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 연출한 자전적 TV 영화 《가장 외로운 러너》(The Loneliest Runner)의 소재가 되었다.
랜던은 콜링스우드 고등학교에 다녔으며,[2] 뛰어난 창 던지기 선수였다. 1954년 그가 기록한 약 58.83m는 그해 미국 고등학생 중 가장 멀리 던진 기록이었다.[6] 이 덕분에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에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했지만, 어깨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대학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7]
3. 배우 경력
3. 1. 초기
원래 운동선수로서 경력을 쌓으려 했으나, 대학 재학 중 부상을 입어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중퇴했다.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연극에서 활로를 찾아 워너 연극 학교를 거쳐 1956년에 연기를 시작했다.
같은 해, 랜던은 텔레비전 시리즈 전화 시간의 에피소드 "카스파 하우저의 미스터리"에서 주인공 카스파 하우저 역을 맡으며 처음으로 주연으로 데뷔했다. 초기에는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B급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 이후 영화 나는 10대 늑대인간이었다(1957), 마라카이보(1958), 고등학교 기밀(1958), 신의 작은 땅(1958), 톰 둘리의 전설(1959) 등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 시기 텔레비전에서도 많은 역할을 맡았다. 예를 들어 크로스로드(3개 에피소드), 더 레스트리스 건(파일럿 에피소드는 ''슐리츠 플레이하우스 오브 스타''에서 방영), ''코치스 보안관''("인간 폭탄" 에피소드), ''U.S. 마샬''(돈 세이어스 역, "챔프" 에피소드), ''크루세이더'', 프론티어 닥터, 라이플맨("젊은 총잡이의 종말" 에피소드, 1958), 짐 보위의 모험, 조니 스타카토, 와이어 서비스, 제너럴 일렉트릭 극장, 최후의 법정, 주 순경(2개 에피소드), 웰스 파고 이야기(3개 에피소드), 텍산("대마 나무" 에피소드, 1958), 키 큰 남자, 툼스톤 테리토리(존 캐러딘과 함께 한 "브루스터 출신 남자" 에피소드[8]와 캐슬린 놀란과 함께 한 "리오 브라보의 장미" 에피소드), 트랙다운(2개 에피소드, 1958), 스티브 맥퀸 주연의 원티드 데드 오어 얼라이브("마틴 포스터" 에피소드, 1958; "전설" 에피소드, 1959) 등에 출연했다. 또한 ''딕 파월의 자인 그레이 극장''의 최소 2개 에피소드("총잡이의 선물", 1957; "삶은 외로운 것", 1959)와 ABC/워너 브라더스의 텔레비전 시리즈 샤이엔("결정" 에피소드에서 기병대 병사 역, 1956; "백색 전사" 에피소드에서 화이트 호크 역, 1958)에도 출연했다.
3. 2. 《보난자》 (1959-1973)
1959년, NBC의 서부극 드라마 보난자에서 카트라이트 가문의 '''셋째 아들 조'''(리틀 조 카트라이트) 역을 맡았다. 그는 이 역할과 외모로 주목받으며 배우로서 첫 번째 성공을 거두었다. 랜던은 연기뿐만 아니라 일부 에피소드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담당하며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이는 이후 그가 제작자 및 연출가로서 활동하는 기반이 되었다.
3. 3. 《초원의 집》 (1974-1983)
보난자가 종영된 이듬해, 마이클 랜던은 NBC에서 또 다른 성공적인 텔레비전 시리즈가 된 초원의 작은 집의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찰스 잉걸스 역으로 출연하며 새로운 대표작을 만났다. 이 시리즈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가 1935년에 쓴 동명의 소설 초원의 작은 집을 원작으로 했다. 랜던 외에도 당시 9살이었던 멜리사 길버트가 주인공 로라 잉걸스 와일더 역을 맡았고, 장녀 메리 잉걸스 역의 멜리사 수 앤더슨, 아내 캐롤라인 잉걸스 역의 캐런 그래슬 등 신인 배우들이 함께 출연했다.
랜던은 단순히 주연 배우에 머무르지 않고, 《초원의 작은 집》의 총괄 프로듀서, 작가, 감독을 겸하며 작품 제작 전반을 이끌었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드라마는 8시즌 동안 큰 인기를 누렸으며, 여러 차례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르는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랜던이 연기한 지적이고 따뜻하며 믿음직한 가장 찰스 잉걸스 역은 전 세계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얻었으며, 이는 랜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작품은 종영 후에도 꾸준히 재방송되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8개의 시즌이 방영된 후, 《초원의 작은 집》은 1982년 NBC에 의해 초원의 작은 집: 새로운 시작으로 개편되었다. 이 시리즈는 와일더 가족과 월넛 그로브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으며, 랜던은 쇼의 총괄 프로듀서, 감독 및 작가로 계속 참여했지만, 찰스와 캐롤라인 잉걸스 부부는 등장하지 않았다. 《새로운 시작》은 사실상 《초원의 작은 집》의 마지막 시즌이었으며, 1983년에 시리즈가 종료되었다. 이듬해에는 3편의 텔레비전 영화가 방영되었다.[10]
함께 출연했던 멜리사 길버트는 2015년 인터뷰에서 랜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는 제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 머릿속에 새겨진 가장 중요한 생각은 '가족과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성공, 경력, 업적, 성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정말,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우리는 '세상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한 번의 텔레비전 에피소드씩, 그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며, 더 중요한 일들이 있고... 그리고 즐거워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 말입니다."[11] 이는 랜던이 작품 활동 속에서도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3. 4. 《천사의 고속도로》 (1984-1989)
《초원의 집》과 이후 TV 시리즈 《파더 머피》를 제작한 후, 랜던은 또 다른 성공적인 프로그램인 《천사의 고속도로》(Highway to Heaveneng)에 출연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자신을 조나단 스미스라고 칭하는 수습 천사 역을 맡았는데, 천사의 날개를 얻기 위해 지상에서 사람들을 돕는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이었다. 그의 파트너 역할은 《초원의 집》에서도 함께 했던 빅터 프렌치가 맡았으며, 전직 경찰 마크 고든을 연기했다. 랜던은 이 작품에서 총괄 프로듀서, 작가, 감독을 겸임했으며, 이는 그의 오랜 텔레비전 경력 중 유일하게 완전히 소유권을 가졌던 프로그램이었다.
1985년에는 아들 마이클 랜던 주니어를 카메라 팀의 일원으로 고용했으며, 촬영 현장에 실제 암 환자나 장애인을 초대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정은 몇몇 장애가 있는 성인 작가들을 고용하여 《천사의 고속도로》의 에피소드를 쓰도록 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었다.
《천사의 고속도로》는 시즌 4에 접어들면서 닐슨 시청률 상위 3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1988년 6월 NBC는 이 시리즈가 단축된 다섯 번째 시즌을 마지막으로 종영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지막 에피소드들은 1988년 가을부터 1989년 3월까지 촬영되었으며, 1989년 6월부터 8월까지 금요일에 방영되었다. 랜던의 오랜 파트너였던 빅터 프렌치는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두 달 만인 1989년 6월 15일에 사망하여, 시리즈의 마지막 방송을 보지 못했다. 랜던은 마지막 에피소드에 막내딸인 제니퍼 랜던을 출연시키기도 했다.
3. 5. 기타 작품 활동
1972년, 랜던은 데이비드 윈터스의 뮤지컬 텔레비전 특집 프로그램 ''The Special London Bridge Special''에 톰 존스와 제니퍼 오닐과 함께 출연했다.[12]
1973년에는 단명한 NBC 로맨스 앤솔로지 시리즈 ''러브 스토리''의 한 에피소드를 직접 감독하고 각본을 썼다. 1976년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텔레비전 영화 ''The Loneliest Runner''에서 주연뿐만 아니라 감독과 각본도 맡았다.
1982년에는 NBC의 실화 기반 텔레비전 영화 ''러브 이즈 포에버''를 공동 제작하고 직접 주연을 맡았다.[13] 이 영화는 1977년 호주 사진 작가 존 에버링햄이 공산주의 치하의 라오스에서 연인을 구하기 위해 메콩강 아래로 스쿠버 다이빙을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로라 젬서(모이라 첸 역)가 함께 출연했다. 실제 에버링햄은 엑스트라로 출연했고, 프리실라 프레슬리의 연기 데뷔작이기도 했다. 1983년에는 로맨스 어드벤처 영화 《컴백》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84년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장 영화 ''샘의 아들''의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했다. 이 영화에는 티모시 패트릭 머피, 엘리 왈라치, 앤 잭슨, 할리 토드, 제임스 카렌 등이 출연했다. 제임스 카렌은 이전에 텔레비전 영화 ''초원의 집: 마지막 작별''에서도 랜던과 함께 작업한 바 있다.
''천사의 손길'' 종영 후, 랜던은 1990년 텔레플레이 ''비둘기가 죽을 때''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아트 카니가 출연했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두 개의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랜던은 PBS의 텔레비전 시리즈 ''더 일렉트릭 컴퍼니''에도 게스트로 출연한 경력이 있다.
NBC와의 오랜 관계를 정리하고 CBS로 이적한 후, 1991년 ''우리''라는 2시간짜리 파일럿에 출연하며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했으나, 췌장암 진단으로 인해 파일럿 이후의 시리즈 제작은 무산되었다. 또한 1990-1991 시즌 동안 실종 아동 문제를 다룬 CBS 스페셜 ''미국 실종 아동''의 호스트를 맡기도 했는데, 이 스페셜 역시 새로운 시리즈의 파일럿으로 고려되었다.[15] 그는 CBS에서 방영된 ''매치 게임'' 첫 주에 유명인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랜던은 배우 활동 외에도 십대 우상 스타일의 가수로서 활동하기도 했다.[16] 1957년, 영화 ''나는 십대 늑대인간이었다'' 출연으로 인기를 얻자 Candlelight Records는 랜던의 싱글 "Gimme a Little Kiss (Will "Ya" Huh)" / "Be Patient With Me"를 발매했다. 일부 음반에는 아티스트 이름 대신 "십대 늑대인간"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1962년에는 이 싱글은 Fono-Graf 레이블을 통해 재발매되었는데, 당시 랜던이 출연 중이던 ''보난자''의 리틀 조 카트라이트 역할 사진이 담긴 슬리브와 함께였다. 1964년 3월에는 RCA 빅터 레코드에서 또 다른 싱글 "Linda Is Lonesome" / "Without You"를 발매했다. 랜던의 모든 싱글은 이후 Bear Family Records에서 발매한 ''보난자'' 컴필레이션 앨범에 포함되어 CD로 출시되었다.[17]
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딘 마틴 쇼''[18]나 ''헐라벌루''[19][20] 등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연극 무대에서도 라이브 공연을 펼쳤다.[21][22]
4. 사생활
랜던은 세 번 결혼했으며, 9명의 자녀를 두었다(이 중 3명은 입양):
배우자 | 결혼 기간 | 자녀 |
---|---|---|
도디 레비-프레이저 | 1956년–1962년 | |
마조리 린 노에 | 1963년–1982년 | |
신디 클레리코 | 1983년–사망 시까지 |
1959년 2월, 랜던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2] 1973년, 그의 장녀 체릴과 다른 세 명은 체릴이 애리조나 대학교 학생이었을 때 애리조나주 투손 외곽에서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체릴 랜던은 유일한 생존자였고, 심각한 부상으로 입원하여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2] 랜던의 어머니 페기는 1981년 3월에 사망했다.[2]
랜던은 자신이 연쇄 흡연자였으며, 술을 많이 마셨다고 인정했다.[2] 사생활에서도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여 드라마 속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알려졌으나, 음주와 흡연을 즐겨 건강 관리는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랜던은 "나는 신을 믿고, 가족을 믿고, 사람들 사이의 진실을 믿으며, 사랑의 힘을 믿고, 우리가 정말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우리 모두에게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2]
《초원의 집》 시즌 7 촬영 중, 제작진의 여성과의 불륜 관계가 발각되었다. 이 일로 당시 출연하던 광고에서 모두 하차했고, 두 번째 아내 린 노에와 이혼했으며 이사를 가야 했다. 또한, 멜리사 수 앤더슨을 포함한 여러 출연자가 《초원의 집》 시즌 7 최종회를 끝으로 하차하는 사태로 이어졌다.[40]
《초원의 집》에서 차녀 로라 잉걸스 역을 맡았던 멜리사 길버트는 사적으로도 랜던을 아버지처럼 따랐으며, 자신의 아들 이름을 마이클이라고 지었다.[2] 아들 중 한 명인 마이클 랜던 주니어는 배우가 되었고, 아버지의 출세작인 《보난자》의 속편 《보난자 리턴즈》(1994년)에 출연하기도 했다.
5. 투병과 죽음
1990년대 들어 건강이 악화된 랜던은 유타에서 스키 여행 중 심한 두통을 겪었다.[26] 이후 1991년 4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는데, 이때는 이미 암이 췌장 주변 조직과 혈관까지 퍼져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 질환 상태였다.[26] 랜던은 자신의 병이 흡연과 음주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동료 배우 빅터 프렌치가 폐암으로 사망한 뒤 금연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랜던은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알리고, 자신과 아내가 아이를 가지려 한다는 등 선정적인 보도를 하는 타블로이드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조니 카슨''에 출연했다. 방송에서 그는 병마와 싸울 것을 다짐하며 팬들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항암 치료 대신 자연 요법으로 암을 이겨내겠다고 선언했다. '투나잇 쇼' 출연 12일 후, 생명을 위협하던 왼쪽 다리의 혈전을 제거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27] 1991년 6월에는 ''라이프'' 잡지 표지에 등장해 자신의 삶과 가족, 암 투병 과정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1991년 7월 1일 오후 1시 20분, 랜던은 캘리포니아 말리부 자택에서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8] 그는 캘리포니아 컬버 시티의 힐사이드 메모리얼 파크 묘지 내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그는 기쁨으로 삶을 움켜쥐었고, 삶에 아낌없이 베풀었으며, 사랑과 웃음의 유산을 남겼다."라고 새겨져 있다. 2009년 5월 사망한 그의 양아들 마크도 같은 곳에 안장되었다.[29]
6. 수상 및 영예
(로언 그린, 댄 블로커, 페르넬 로버츠와 공동 수상)
(감독, 프로듀서, 출연진과 공동 수상)
"May We Make Them Pro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