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 앳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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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멘 앳 워크는 1979년 결성된 오스트레일리아의 밴드이다. 1981년 데뷔 앨범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을 발매하고, "후 캔 잇 비 나우?"와 "다운 언더"의 성공으로 1982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83년 그래미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멤버 교체와 해체를 거쳐 1996년 재결합하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했다. 2012년 멤버 그렉 햄이 사망한 후, 콜린 헤이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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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 앳 워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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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출신지 |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 멜버른 |
장르 | 뉴 웨이브 팝 록 레게 록 |
활동 기간 | 1978년 ~ 1986년 1996년 ~ 2002년 1|주 1]] 2019년 ~ 현재 |
레이블 | |
레이블 | 컬럼비아 레코드 에픽 레코드 |
관련 활동 | |
관련 활동 | 더 블랙 소로우 |
웹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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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멤버 | |
현재 멤버 | 콜린 헤이 |
이전 멤버 | |
이전 멤버 | 그렉 햄 제리 스페이서 론 스트라이커트 존 리스 |
주석 | |
주 1 | 2012년까지 일시적인 활동 재개가 여러 차례 있었다. |
2. 역사
멘 앳 워크는 1979년 콜린 헤이와 론 스트라이커트가 어쿠스틱 듀오로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30] 이후 제리 스페이서, 그렉 햄, 존 리스가 합류하며 밴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30] 1981년 앨범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을 발매하고 호주에서 큰 인기를 얻은 멘 앳 워크는 1982년 세계 시장으로 진출했다. "후 캔 잇 비 나우?"와 "다운 언더" 두 곡이 연이어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래미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특히, "다운 언더"는 세계지도의 아래쪽에 위치한 호주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유머와 콜린 헤이의 느긋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큰 인기를 얻었으며, 호주 록 음악을 "오지 록(Oz Rock)"이라 부를 정도로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도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이 오리콘 해외 앨범 차트에서 1983년 3월 28일부터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얻었다.[35] 1983년 4월에는 나카노 선플라자와 시부야 공회당에서 첫 일본 공연을 가졌다.
후속 앨범 《카고》 역시 히트를 기록했지만, 멤버들의 탈퇴 등으로 인해 활동이 점차 뜸해졌고, 결국 1986년 활동을 중단했다.[30] 콜린 헤이는 솔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96년에 재결성하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36]을 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지만, 2002년에 다시 해산했다. 이후 콜린 헤이와 그렉 햄을 중심으로 게스트 멤버들과 함께 불규칙하게 라이브 활동을 이어갔으나,[37] 2012년 그렉 햄이 58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37][38] 밴드의 활동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2019년, 콜린 헤이는 새로운 백 밴드를 이끌고 멘 앳 워크라는 이름으로 투어를 재개했다.[39]
2. 1. 결성 및 초기 (1979-1981)
멘 앳 워크는 1979년 6월경 멜버른에서 콜린 헤이(리드 보컬, 기타), 론 스트라이커트(베이스 기타), 제리 스파이저(드럼)를 핵심 멤버로 결성되었다. 이후 그렉 햄(플루트, 색소폰, 키보드)과 존 리스(베이스 기타)가 합류하면서 스트라이커트는 리드 기타로 포지션을 변경했다.헤이는 1967년 가족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호주로 이민 왔으며, 1978년 스트라이커트와 어쿠스틱 듀오를 결성했다. 1979년 중반 스파이저가 합류하면서 밴드의 규모가 커졌다. 같은 시기, 스파이저의 전 밴드 동료였던 그렉 스네던은 부수적인 프로젝트로 스파이저, 헤이, 스트라이커트와 함께 저예산 무대 뮤지컬 "리프래프(Riff Raff)"의 음악을 연주하고 녹음했다.
헤이는 햄에게 밴드 합류를 제안했지만, 햄은 음악 학위를 마치는 중이라 망설였다. 결국 1979년 10월 햄이 합류를 결정했고, 얼마 후 제리의 친구인 존 리스도 밴드에 합류했다. 밴드 이름은 리치먼드의 크리케터스 암스 호텔 칠판에 쓸 이름이 필요했을 때 콜린 헤이가 "멘 앳 워크"를 제안했고, 스트라이커트가 동의하면서 결정되었다. 이들은 펍 록 밴드로서 "풀뿌리" 명성을 쌓았다.
1980년, 밴드는 헤이와 스트라이커트가 공동 작곡한 "키펀치 오퍼레이터(Keypunch Operator)"와 "다운 언더(Down Under)"가 수록된 데뷔 싱글을 자체 자금으로 제작하여 독립 레이블인 M. A. W.를 통해 발매했다. 호주 음악학자 이안 맥퍼레인은 A면 곡을 "깔끔한 사운드와 기발한 리듬을 가진 빠른 템포의 컨트리 스타일 록"이라고 평가했다. 이 싱글은 켄트 뮤직 리포트 싱글 차트 100위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 해 말까지 밴드는 "가장 인기 있고 고액을 받는 계약되지 않은 밴드"로 성장했다.
2. 2. 국제적 성공 (1981-1983)
1981년 초, 멘 앳 워크는 CBS 레코드 인터내셔널의 호주 지사인 CBS 레코드와 계약했다. 그룹의 첫 싱글 "누가 그럴 수 있을까?(Who Can It Be Now?)"는 1981년 6월에 발매되어 호주 차트 2위에 올랐고 24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다. 이 곡은 미국 출신 피터 매키언이 프로듀싱했으며, 그는 그들의 데뷔 앨범 "비즈니스 어슈얼"도 프로듀싱했다.매키언은 밴드와 함께 "비즈니스 어슈얼"의 모든 곡을 편곡했다. 그들의 다음 싱글은 "다운 언더(Down Under)"의 재편곡 버전이었다. 이 곡은 1981년 10월에 발매되어 11월에 호주 차트 1위에 올랐고 6주 동안 정상을 지켰다. "비즈니스 어슈얼"은 1981년 10월에 발매되어 호주 켄트 뮤직 리포트 앨범 차트에서 9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캔버라 타임스(The Canberra Times)의 개리 라파엘레는 이 앨범에 대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짜임새 있고 경쾌하다... 이 음악에는 섬세함이 있다"고 평했다.
1982년 2월까지 "다운 언더"와 "비즈니스 어슈얼"은 모두 뉴질랜드 공식 뮤직 차트(Official New Zealand Music Chart)에서 1위를 차지했다. "비즈니스 어슈얼"은 뉴질랜드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호주 앨범이었다. 미국 프로듀서(매키언)를 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어슈얼"은 콜롬비아의 미국 모회사에서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 러셀 데펠러와 카핀의 끈기 덕분에, 앨범은 1982년 4월, 호주 발매 6개월 후 미국과 영국에서 발매되었다. 1982년 4월 호주에서 발매된 싱글 "착한 아이가 되어라 조니(Be Good Johnny)"는 호주에서 8위, 뉴질랜드에서 3위를 기록했다.
멘 앳 워크는 1982년 5월 캐나다 서부에서 "누가 그럴 수 있을까?"가 위니펙(Winnipeg) 라디오 방송국에서 톱 10에 오르면서 북미 시장에 진출했다. 7월에는 캐나다 RPM 톱 싱글 차트에서 8위에 올랐다. 8월에는 앨범과 관련 싱글을 홍보하기 위해 캐나다와 미국을 순회하며 플릿우드 맥(Fleetwood Mac)을 지원했다. 1982년 10월, "누가 그럴 수 있을까?"는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 1위에 올랐고, 캐나다에서는 "다운 언더"가 같은 달 차트 정상에 올랐다. 다음 달 "비즈니스 어슈얼"은 빌보드 200에서 15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누가 그럴 수 있을까?"가 미국에서 톱 10에 머물고 있을 때, "다운 언더"가 미국 시장에 발매되었다. 미국 차트에 79위로 진입한 후 10주 후에 1위에 올랐다. 1983년 1월까지 멘 앳 워크는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앨범과 싱글 모두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이전에 어떤 호주 아티스트도 달성하지 못했던 기록이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라 조니"는 미국에서 중간 정도의 방송을 받았고, 캐나다에서는 톱 20에 들었다.
"다운 언더"는 1983년 9월 호주가 아메리카스컵(America's Cup) 요트 트로피에 도전하는 모습이 TV로 방영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는데, 성공적인 "오스트레일리아 II(Australia II)"의 승무원들이 이 곡을 주제가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1983년 4월, 멘 앳 워크는 두 번째 앨범 "카고(Cargo)"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호주 차트에서 2주 동안 1위에 올랐다. 뉴질랜드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카고"는 1982년 중반에 완성되었지만, "비즈니스 어슈얼"의 국제적인 성공 때문에 발매가 연기되었다. "카고"는 빌보드 200에서 3위, 영국에서는 8위에 올랐다. 리드 싱글 "닥터 헤키얼 앤드 미스터 자이브"는 1982년 10월 호주에서 발매되어 6위를 차지했고, 1983년 미국에서 28위에 올랐다. "오버킬"은 1983년 3월에 발매되어 호주에서 5위, 미국에서 3위를 기록했다. "이것은 실수야(It's a Mistake)"는 미국에서 6위에 올랐다. 밴드는 1983년에 세계 순회 공연을 했다.
2. 3. 쇠퇴와 해체 (1984-1986)
멘 앳 워크는 1986년에 활동을 중단했다.[30] 이후 콜린 헤이는 솔로 활동으로 전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2. 4. 재결합과 그렉 햄의 죽음 (1996-2012)
1996년에 재결성되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폐막식에서 공연[36]을 선보였지만, 2002년에 다시 해산했다. 이후 콜린 헤이와 그렉 햄 두 사람은 게스트 및 세션 멤버들을 맞이하여 불규칙적으로 라이브 활동을 이어갔다.[37]2010년 2월, 래리킨 뮤직 퍼블리싱은 헤이와 스트라이커트, 그들의 레코드 레이블(소니 BMG 뮤직 엔터테인먼트(Sony BMG Music Entertainment)) 및 음악 출판사(EMI 송스 오스트레일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12] 이는 멘 앳 워크의 노래 "다운 언더(Down Under)"의 플루트 선율이 쿠카부라의 멜로디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였다.[12] 2009년 초, 오스트레일리아의 음악 퀴즈 프로그램 "스픽스 앤드 스펙스"에서 "다운 언더"에 "쿠카부라"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질문이 제기된 바 있다.[13]
래리킨은 "쿠카부라"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지난 6년간 수익의 40%에서 60%를 요구했다.[14] 2010년 2월, 판사는 "다운 언더"에 "쿠카부라"를 기반으로 한 플루트 리프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후렴구이거나 히트곡의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판결했다.[15] 2010년 7월, 판사는 래리킨이 과거(2002년 이후) 및 미래의 이익의 5%를 지급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햄은 이 판결에 특히 힘들어했는데, 소송의 중심에 있는 플루트 리프를 연주한 것에 대한 책임을 느꼈고 다른 사람의 음악을 표절한 것으로만 기억될까 봐 걱정했다.[16] 이로 인해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렸다.[17] 햄은 2012년 4월 19일, 58세의 나이로 빅토리아주 칼턴 노스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6][38]
2. 5. 콜린 헤이 중심의 활동 (2019-현재)
2019년 6월, 콜린 헤이는 로스앤젤레스 출신 세션 뮤지션들로 구성된 그룹과 함께 '멘 앳 워크'라는 이름으로 유럽 투어를 가졌다. 이 라인업에는 원래 밴드 멤버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라인업은 헤이(보컬, 기타), 셰일라 곤잘레스(색소폰, 키보드, 보컬, 플루트), 산 미구엘 페레스(기타, 백킹 보컬), 요스멜 몬테호(베이스, 백킹 보컬), 지미 브랜리(드럼, 퍼커션), 세실리아 노엘(백킹 보컬)로 구성되었다.[18]2021년, 호주 프로듀서 크리스티안 '루드' 벤슨(타스마니아 출신 테크 하우스 듀오 춤바 출신)[19][20][21]은 "다운 언더"를 드럼 앤 베이스 트랙으로 리믹스했는데, 이 곡은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었다. 헤이는 공식 발매를 위해 보컬을 다시 녹음했고,[22] 루드 피처링 콜린 헤이로 크레딧이 표기된 이 곡은 2022년 1월 7일 영국 싱글 차트 32위에 올랐고,[23] 2022년 1월 10일자 ARIA Top 50 Singles 차트에서는 호주에서 48위를 기록했다.[24]
3. 구성원
콜린 헤이는 멘 앳 워크의 모든 구성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활동한 멤버이다.
3. 1. 현재 구성원
(Colin Hay영어)리듬 기타
베이스 기타
1996년~2002년
(2012년까지 여러 차례의 임시 재결합)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