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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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은 무등산에 위치한 주상절리 지형과 너덜 지대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역사적, 학술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규봉은 약 100여 개의 돌기둥과 수림, 사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며, 조선시대 문헌에는 규봉의 각 돌기둥 이름과 이곳의 풍경을 묘사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지공너덜은 주상절리의 풍화로 생성된 지형으로, 인도 승려 지공대사의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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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개요 | |
| 이름 |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
| 영문 이름 | Gyubong Columnar Joint and Jigong Block Stream in Mudeungsan Mountain |
| 지정 유형 | 명승 |
| 지정 번호 | 114 |
| 지정일 | 2018년 12월 20일 |
| 위치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산88-1 일원 |
| 면적 | 350,000m2 (4필지) |
| 관리 | 화순군 |
2. 지형 형성
무등산의 주상절리는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졌고, 지공너덜은 이렇게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거치며 깨어져 산 능선을 따라 쌓이면서 형성되었다.[2]
2. 1. 주상절리
무등산의 입석대·서석대와 규봉은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냉각·수축되어 형성된 주상절리로 유명하다. 규봉은 하늘과 맞닿을 듯 깎아지른 약 100여 개의 돌기둥 사이로 자라고 있는 울창한 수림과 규봉암의 사찰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조선시대 고문헌에 기록된 규봉과 지공너덜은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높은 명승이다.[2]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광산현(光山縣)편에는 "규봉은 열 개의 대(臺)가 있는데, 송하(送下)ㆍ광석(廣石)ㆍ풍혈(風穴)ㆍ장추(藏秋)ㆍ청학(靑鶴)ㆍ송광(松廣)ㆍ능엄(楞嚴)ㆍ법화(法華)ㆍ설법(說法)ㆍ은신(隱身)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하여 각각의 돌기둥에 이름을 붙였다. 김극기의 시에는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을 붙이기 어렵더니, 올라와 보니 만상(萬像)이 공평하구나. 돌 모양은 비단으로 말라낸 듯하고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하다. 명승을 밝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跏趺)하고 앉아 무생(無生)을 배우노라."하여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칭송하기도 하였다.[2]
2. 2. 지공너덜
지공너덜은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깨어져 산 능선을 따라 모여진 것이다. 주상절리와 초기 형성과정을 같이한다. 인도 승려인 지공대사가 이곳에 석실(石室)을 만들고 좌선하며 수도하면서,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온다.[2]3. 역사적 기록 및 전설
무등산의 입석대·서석대와 규봉은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냉각·수축되어 형성된 주상절리로 유명하다. 규봉은 하늘과 맞닿을 듯 깎아지른 약 100여 개의 돌기둥 사이로 울창한 수림과 규봉암의 사찰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조선시대 고문헌에 기록된 규봉과 지공너덜은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높다.[2]
지공너덜은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깨어져 산 능선을 타고 모여진 산물로, 주상절리와 초기 형성 과정을 같이한다.[2]
3. 1.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광산현(光山縣) 편에는 "규봉은 열 개의 대(臺)가 있는데, 송하(送下)ㆍ광석(廣石)ㆍ풍혈(風穴)ㆍ장추(藏秋)ㆍ청학(靑鶴)ㆍ송광(松廣)ㆍ능엄(楞嚴)ㆍ법화(法華)ㆍ설법(說法)ㆍ은신(隱身)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하여 각각의 돌기둥에 이름을 붙였다.[2] 김극기는 시에서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을 붙이기 어렵더니, 올라와 보니 만상(萬像)이 공평하구나. 돌 모양은 비단으로 말라낸 듯하고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하다. 명승을 밝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跏趺)하고 앉아 무생(無生)을 배우노라."하여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2]3. 2. 기타 문헌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광산현(光山縣)편에는 "규봉은 열 개의 대(臺)가 있는데, 송하(送下)ㆍ광석(廣石)ㆍ풍혈(風穴)ㆍ장추(藏秋)ㆍ청학(靑鶴)ㆍ송광(松廣)ㆍ능엄(楞嚴)ㆍ법화(法華)ㆍ설법(說法)ㆍ은신(隱身)이라고 이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각각의 돌기둥에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김극기의 시에는 규봉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칭송하며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을 붙이기 어렵더니, 올라와 보니 만상(萬像)이 공평하구나. 돌 모양은 비단으로 말라낸 듯하고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하다. 명승을 밝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跏趺)하고 앉아 무생(無生)을 배우노라."[2]3. 3. 지공대사 전설
지공너덜은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깨어져 산 능선을 타고 모여진 것이다. 주상절리와 초기 형성 과정을 같이하며, 인도 승려인 지공대사가 이곳에 석실(石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온다.[2]4. 지정 가치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자연경관이 뛰어난 산악"으로 인정받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2]
4. 1. 경관적 가치
무등산의 입석대·서석대와 규봉은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냉각·수축되어 형성된 주상절리로 유명하다. 규봉은 하늘과 맞닿을 듯 깎아지른 약 100여 개의 돌기둥 사이로 자라고 있는 울창한 수림과 규봉암의 사찰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조선시대 고문헌에 기록된 규봉과 지공너덜은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높은 명승이다.[2]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광산현(光山縣) 편에는 "규봉은 열 개의 대(臺)가 있는데, 송하(送下)ㆍ광석(廣石)ㆍ풍혈(風穴)ㆍ장추(藏秋)ㆍ청학(靑鶴)ㆍ송광(松廣)ㆍ능엄(楞嚴)ㆍ법화(法華)ㆍ설법(說法)ㆍ은신(隱身)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하여 각각의 돌기둥에 이름을 붙였다. 김극기의 시에는 "이상한 모양이라 이름을 붙이기 어렵더니, 올라와 보니 만상(萬像)이 공평하구나. 돌 모양은 비단으로 말라낸 듯하고 봉우리 형세는 옥을 다듬어 이룬 듯하다. 명승을 밝으니 속세의 자취가 막히고, 그윽한 곳에 사니 진리에 대한 정서가 더해지누나. 어떻게 속세의 인연을 끊을까, 가부(跏趺)하고 앉아 무생(無生)을 배우노라."하여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칭송하기도 하였다.[2]
지공너덜은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깨어져 산능선을 타고 모여진 산물로 주상절리와 초기 형성과정을 같이한다. 인도 승려인 지공대사가 이곳에 석실(石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온다.[2]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산악'(문화재보호법 제11조 제1항 관련 국가지정문화재(명승)의 지정기준 1)에 해당된다.[2]
4. 2. 학술적 가치
무등산의 입석대·서석대와 규봉은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냉각·수축되어 형성된 주상절리로 유명하다. 규봉은 약 100여 개의 돌기둥, 울창한 수림, 규봉암의 사찰이 어우러져 동양화 같으며, 조선 시대 고문헌에 기록된 규봉과 지공너덜은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높다.[2]조선 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광산현(光山縣) 편에는 규봉의 10개 돌기둥에 대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김극기의 시에는 이곳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2]
지공너덜은 주상절리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깨어져 산능선을 타고 모인 것으로, 주상절리와 초기 형성 과정을 같이 한다. 인도 승려 지공대사가 이곳에 석실(石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며 법력으로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진다.[2]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산악'으로,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지정 기준에 해당한다.[2]
4. 3. 문화적 가치
무등산의 규봉은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공너덜과 관련된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규봉의 돌기둥들에 대한 묘사가 있으며, 김극기의 시에는 이곳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 담겨 있다.[2] 지공너덜은 인도 승려 지공대사가 석실(石室)을 만들고 좌선 수도하면서 법력으로 돌을 깔았다는 유래가 전해진다.[2]
참조
[1]
간행물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지정 예고
http://gwanbo.mois.g[...]
문화재청공고제2018-300호,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국가지정문화재〈명승〉 지정 예고》], 제19348호 / 관보(정호)
2018-10-01
[2]
간행물
문화재청고시제2019-114호(명승 제114호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및 천연기념물제465호 무등산 주상절리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등에 관한 허용기준)
http://gwanbo.mois.g[...]
문화재청고시제2019-114호(명승 제114호 무등산 규봉 주상절리와 지공너덜 및 천연기념물제465호 무등산 주상절리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등에 관한 허용기준)], 제19582호 / 관보(정호)
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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