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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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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는 1980년대 초 서울대학교 학생운동의 비공개 지도 조직으로, 1984년에 결성되었습니다. '깃발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내용:


  • 결성 배경: 1983년 말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 학생운동 진영은 민주적 총학생회 건설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근거지를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1984년 상반기부터 학생운동 내부에서는 한국사회의 모순 구조, 운동 주체 설정, 1980년대 이후 노동운동 흐름, 당면 과제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 결성 및 활동: 1984년 6월경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서 각각 전위적 기간조직을 건설하고 통일적으로 조직화할 것을 합의했습니다. 이후 팜플렛 '깃발'을 발간하여 동조자들을 규합하고, 10월 7일 '민주화추진위원회'(위원장 문용식)를 결성했습니다.
  • 조직: 산하에 노동문제투쟁위원회, 민주화투쟁위원회, 홍보위원회, 대학간 연락책 등 4개 기구를 두었습니다. 1985년 3월 삼민투쟁위원회(삼민투)를 결성, 5월의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등을 주도했습니다.
  • 이념: 민족민주혁명(NDR)을 기본 노선으로 설정하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각각의 개별적 부문운동이 아닌 전체 혁명운동의 한 주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사건: 1985년 10월 29일 검찰은 민추위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 26명을 구속했습니다(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깃발 사건).

추가 정보:

  • 민추위는 '깃발'을 통해 기존 학생운동 지도부를 대중추종주의로 비판하고 독자적 투쟁을 조직했습니다.
  • 1984년 11월 민투학련 소속 대학생 264명이 민정당 중앙당사를 점거하기도 했습니다.
  • 민추위의 조직 모형은 학생회(대중조직)-투쟁위원회(선도적 투쟁조직)-민추위(전위적 지도조직)라는 3단계 틀로 이루어졌습니다.
  • 2012년 영화 '남영동1985'는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부산 지역 대학에서는 1980년 초 학내 민주화를 위해 학원민주화(자율화)추진위원회가 설립되기도 했습니다.


민주화추진위원회
기본 정보
민주화추진위원회 로고
민주화추진위원회 로고
약칭민추위
결성일1984년 3월 29일
해산일1987년
유형재야 운동 단체
이념민주주의, 사회 정의
주요 활동민주화 운동 지원
정치범 석방 운동
노동 운동 지원
농민 운동 지원
학생 운동 지원
언론 자유 옹호
양심수 석방
조직
의장김상현
부의장문동환, 이문영, 홍성우
지도위원강희철, 계훈제, 김대중, 김동길, 박형규, 백기완, 송건호, 윤보선, 이병린, 장준하, 함석헌
상임위원강신철, 고은, 고정환, 곽태영, 김승훈, 김정수, 김택근, 남재희, 박석무, 박순경, 박영숙, 신홍범, 안병욱, 양성우, 오재식, 윤공희, 이영희, 임채정, 장을병, 정창렬, 최민화, 홍근수, 황명걸
관련 인물
주요 인물김상현
문동환
이문영
홍성우
김대중
윤보선
함석헌
기타
관련 단체민주통일국민회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영향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
해산 후민주화 운동의 다양한 흐름으로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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