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경찰 (나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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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안경찰(Sicherheitspolizei, 지포)은 나치 독일 시기 게슈타포와 형사경찰을 통합한 조직으로, 하인리히 힘러가 독일 경찰청장으로 임명된 후 재편되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보안경찰 및 SD 장관을 겸임하며 제3제국의 정치 경찰력을 장악했다. 보안경찰은 SD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아인자츠그루펜을 지휘하며 점령지에서 학살을 자행했으며, 1939년 국가보안본부(RSHA)에 통합되어 그 기능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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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타포는 1933년 헤르만 괴링이 프로이센 비밀경찰을 재편성하여 나치 독일의 비밀 국가 경찰로 설립되었으며, 하인리히 힘러의 SS 보안국 하부 기관으로 편입 후 반체제 인사 탄압, 정치적 반대파 감시, 유대인 대량 학살 등에 관여하며 나치 공포 정치의 핵심 기관으로 활동,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범죄 조직으로 규정되었다.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 뵈멘-메렌 보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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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경찰 (나치 독일) - [정부기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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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현지어 표기 | 지허하이츠폴리차이 (Sicherheitspolizei) |
약칭 | 지포 (SiPo) |
![]() | |
설립일 | 1936년 6월 26일 |
해산일 | 1939년 9월 22일 |
전신 | 비밀 국가 경찰 형사 경찰 |
후신 | 국가 보안 본부 (RSHA) |
관할 | 독일 점령된 유럽 |
본부 | 베를린 프린츠-알브레히트-슈트라세 |
직원 | 245,000명 (1940년) |
종류 | 국가 보안 경찰 |
지휘 | |
명목상 권한 | 빌헬름 프리크 (1936년–1939년), 내무부 장관 |
책임자 | 하인리히 힘러 (1936년–1939년), 독일 경찰 총수 |
국장 | SS-그루펜퓌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1936년–1939년), 지포 및 게슈타포 국장 |
2. 역사적 배경
1936년 6월 17일 친위대 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러가 독일 경찰청장(Chef der Deutschen Polizei)에 임명되면서 독일 경찰 조직 개편이 시작되었다.[2] 힘러는 6월 26일 경찰 기구를 국가비밀경찰(게슈타포)와 형사경찰(크리포)를 통합한 보안경찰(정치 경찰)과 질서경찰(일반 경찰)로 재편했다.[3]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보안경찰 장관에 임명되었고,[1] 나치당 첩보조직 SD(친위대 보안부) 장관직도 겸임하며 제3제국의 정치 경찰력을 장악했다. 이후 "보안경찰 및 SD 장관"(Chef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약칭 CSSD)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4][5]
1936년 9월 20일, 각 군관구(Wehrkreise)에 보안경찰 및 SD 감찰관(Inspekteur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약칭 Ids)이 파견되어 지방 보안경찰 조직을 지휘했다.[1] 1937년 4월에는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에 보안경찰 간부 후보생 학교가 설립되었다. 입학 조건은 18개월 이상 대학 법률 세미나 수료 또는 보안경찰 임무 수행 경력이었으며, 게슈타포, 형사경찰, SD 간부 희망자들이 입학했다.[6]
1938년 6월 23일 정령에 따라 보안경찰 경찰관은 모두 친위대(SS) 대원이 되어야 했고,[7] 1939년 9월 27일 보안경찰과 SD는 국가보안본부(RSHA)로 통합되었다.[8] 이후에도 보안경찰은 게슈타포와 형사경찰을 합친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었다.[9] 보안경찰은 질서경찰과 달리 독자 제복이 없었고, 착용 시 SD 대원과 같은 제복을 착용했다. 1941년 9월 26일 RSHA 명령에 따라 보안경찰도 SD 소매장을 부착했다.[10]
2. 1.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1919년 ~ 1933년)
이 용어는 1919년 8월, 국방군이 폭동이나 파업 발생 시 조치를 취하기 위해 군사화된 경찰력인 '지허하이츠베어'(Sicherheitswehr)를 설치하면서 유래했다. 군 병력 수의 제한으로 인해, 주목을 피하기 위해 Sicherheitspolizei|지허하이츠폴리차이|보안경찰de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들은 녹색 제복을 착용했으며, 때때로 "녹색 경찰"이라고 불렸다. 이들은 주로 구 자유군단에서 모집되었으며, 구 독일 제국군의 부사관과 장교로 구성된 군사 조직이었다.[1]2. 2. 나치 독일 시기 (1933년 ~ 1945년)
1933년 나치가 국가 권력을 잡았을 때, 독일은 연방 국가로서 여러 지역 및 중앙 경찰 기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종종 조정되지 않아 관할권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인리히 힘러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계획은 모든 경찰 및 보안 기구를 ''친위대''(SS)의 구조에 완전히 흡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힘러는 먼저 게슈타포 (이것은 프로이센 비밀 경찰에서 발전했다)의 지휘권을 잡았다. 그 후 1936년 6월 17일, 아돌프 히틀러가 힘러를 ''Chef der Deutschen Polizei''(독일 경찰청장)로 임명함에 따라 독일 전역의 모든 경찰 병력이 통합되었다.[1] 그 결과 그는 표면적으로는 내무부 장관 빌헬름 프리크에게 종속되었지만, 실제로는 힘러는 히틀러에게만 보고했다.[2]힘러는 즉시 경찰을 재조직했으며, 국가 기관은 법적으로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즉, 국가 제복 경찰과 시 경찰로 구성된 ''질서 경찰''(Ordnungspolizei, 오르포)과 형사 경찰(Kripo)과 게슈타포로 구성된 보안 경찰de(Sicherheitspolizei, 지포)였다.[3] 하이드리히는 지포의 수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미 당의 ''보안국''(Sicherheitsdienst, SD)과 게슈타포의 수장이었다.[4][5] 두 경찰 부서는 각각 오르포와 지포(형사 경찰과 게슈타포를 합친 것)로 널리 알려졌다.[3]
이 아이디어는 당 기관(SD)과 국가 기관(지포)을 완전히 식별하고 통합하는 것이었다.[6] 대부분의 지포 구성원은 SS의 회원이 되도록 권장되거나 자원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두 조직에서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SD와 게슈타포 사이에 관할권 중복과 작전상의 갈등이 있었다.[7] 형사 경찰은 그 구조가 더 오래 전에 확립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했다.[8] 힘러는 하이드리히의 지포 전체 지휘 하에 중앙 집중화된 본부를 만들기 위해 ''보안 경찰 본부''를 설립했다.[7]
''Einsatzgruppen''(특수임무부대)은 하이드리히의 지시에 따라 조직되었으며, 지포와 SD의 지휘 하에 SS에 의해 운영되었다.[9][10] ''Einsatzgruppen''은 1938년 3월 오스트리아에서 ''안슐루스'' 이후 정부 건물과 문서를 확보하기 위해 하이드리히가 조직한 임시 ''Einsatzkommando''(특수임무대)에서 유래되었다.[11] 원래 지포의 일부였던 두 개의 ''Einsatzgruppen'' 부대가 1938년 10월 수데텐란트에 배치되었다. 뮌헨 협정으로 인해 군사 행동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Einsatzgruppen''은 정부 서류와 경찰 문서를 압수하도록 배정되었다. 그들은 또한 정부 건물을 확보하고, 고위 공무원을 심문했으며, 최대 10,000명의 체코 공산주의자와 독일 시민을 체포했다.[12]
1939년 9월, 국가보안본부(''Reichssicherheitshauptamt''; RSHA)가 설립되면서, 기능하는 국가 기관으로서의 보안경찰de(Sicherheitspolizei)은 RSHA에 통합되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RSHA는 그 시점부터 ''Einsatzgruppen'' 부대에 대한 전반적인 지휘권을 얻었다. 이 시점의 ''Einsatzgruppen'' 부대원들은 SS, SD 및 경찰에서 차출되었다. 그들은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 국민을 강제로 정치화 해제하고 폴란드 국가 정체성과 가장 명확하게 연관된 집단, 즉 지식인, 성직자, 교사, 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데 사용되었다. 1941년 소련 침공 직전에 부대가 재편성되었을 때, ''Einsatzgruppen''의 구성원들은 SD, 게슈타포, 크리포, 오르포 및 무장친위대에서 모집되었다. 이 이동식 학살 부대는 나치 군대에 의해 점령된 영토에서 최종 해결을 실행하는 데 활발하게 활동했다.
1936년 6월 17일 친위대 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러는 '''독일 경찰청장'''(Chef der Deutschen Polizei)에 임명되었고[2], 6월 26일, 힘러는 경찰 기구 개혁을 실시하여 독일 경찰을 보안경찰(정치 경찰 업무)과 질서경찰 (일반 경찰 업무)로 재편했다.[3]
보안경찰(지포)은 국가비밀경찰(게슈타포)와 형사경찰(크리포)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 장관에는 힘러의 측근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임명되었다.[1] 하이드리히는 나치당 내 첩보조직 SD(친위대 보안부)의 장관이기도 했으며, 국가 조직인 보안경찰의 장관도 겸임하면서 제3제국의 정치 경찰력을 한 손에 쥐게 되었다. 이후 하이드리히는 "'''보안경찰 및 SD 장관'''(Chef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약칭 CSSD)"이라는 직함을 사용하게 되었다.
1936년 9월 20일에는 보안경찰 및 SD 감찰관(Inspekteur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약칭 Ids)이 각 군관구(Wehrkreise)에 파견되어 지방 보안경찰 조직을 지휘했다.[1] 1937년 4월에는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에 보안경찰 간부 후보생 학교가 창설되었다. 18개월 이상 대학에서 법률 세미나를 수료했거나 보안경찰에서 임무를 수행한 경력이 입학 조건이었으며, 게슈타포나 형사경찰, SD에서 간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자들이 입학했다.
친위대와 보안경찰의 일체화가 추진되어, 1938년 6월 23일의 정령으로 보안경찰의 경찰관은 모두 친위대(SS)의 대원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1939년 9월 27일에는 보안경찰과 SD가 통합되어 친위대 본부 중 하나인 국가보안본부(RSHA)로 개편되었다. 이후에도 보안경찰이라는 호칭은 게슈타포와 형사경찰을 합친 카테고리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보안경찰은 질서경찰과 달리 독자적인 제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착용할 경우에는 SD 대원과 같은 제복을 착용하게 되어 있었다. 1941년 9월 26일의 RSHA 명령에 따라 보안경찰도 SD 소매장을 부착하게 되었다.
3. 주요 활동 및 범죄 행위
보안경찰은 나치 독일 정권의 주요 억압 도구 중 하나로서, 다양한 범죄 행위에 관여했다. 특히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지시에 따라 아인자츠그루펜(특수임무부대)이 조직되었으며, 이들은 보안 경찰과 보안국(SD)의 지휘 하에 친위대(SS)에 의해 운영되었다.[1]
3. 1. 아인자츠그루펜 (Einsatzgruppen)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특수임무부대)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지시에 따라 조직되었으며, 보안 경찰(지포)과 보안국(SD)의 지휘 하에 친위대(SS)에 의해 운영되었다.[1] ''아인자츠그루펜''은 1938년 3월 오스트리아 안슐루스 이후 정부 건물과 문서를 확보하기 위해 하이드리히가 조직한 임시 ''아인자츠코만도(Einsatzkommando)''(특수임무대)에서 유래되었다.[2] 원래 지포의 일부였던 두 개의 ''아인자츠그루펜'' 부대가 1938년 10월 주데텐란트에 배치되었다. 뮌헨 협정으로 인해 군사 행동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아인자츠그루펜''은 정부 서류와 경찰 문서를 압수하도록 배정되었다. 그들은 또한 정부 건물을 확보하고, 고위 공무원을 심문했으며, 최대 10,000명의 체코 공산주의자와 독일 시민을 체포했다.[3]1939년 9월, 국가보안본부(RSHA)가 설립되면서 기능하는 국가 기관으로서의 보안경찰은 RSHA에 통합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4] RSHA는 ''아인자츠그루펜'' 부대에 대한 전반적인 지휘권을 얻었다. 이 시점의 ''아인자츠그루펜'' 부대원들은 SS, SD 및 경찰에서 차출되었다.[5] 그들은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 국민을 강제로 정치화 해제하고 폴란드 국가 정체성과 가장 명확하게 연관된 집단, 즉 지식인, 성직자, 교사, 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데 사용되었다.[5] 1941년 소련 침공 직전에 부대가 재편성되었을 때, ''아인자츠그루펜''의 구성원들은 SD, 게슈타포, 형사경찰(크리포), 질서경찰(오르포) 및 무장친위대에서 모집되었다.[6] 이 이동식 학살 부대는 나치 군대에 의해 점령된 영토에서 최종 해결을 실행하는 데 활발하게 활동했다.[7]
4. 조직 구조
1936년 6월 17일 친위대 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러는 '독일 경찰청장'에 임명되었다.[2] 6월 26일, 힘러는 경찰 기구 개혁을 실시하여 독일 경찰을 보안경찰(정치 경찰 업무)과 질서경찰(일반 경찰 업무)로 재편했다.[3]
보안경찰(지포)은 국가비밀경찰(게슈타포)와 형사경찰(크리포)를 통합한 조직으로, 장관에는 힘러의 측근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임명되었다.[1] 하이드리히는 나치당 내 첩보조직 SD(친위대 보안부)의 장관이기도 했으며, 국가 조직인 보안경찰의 장관도 겸임하면서 제3제국의 정치 경찰력을 한 손에 쥐게 되었다. 이후 하이드리히는 "보안경찰 및 SD 장관"(Chef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약칭 CSSD)이라는 직함을 사용하게 되었다.[4][5]
1936년 9월 20일에는 보안경찰 및 SD 감찰관(Inspekteur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약칭 Ids)이 각 군관구(Wehrkreise)에 파견되어 지방 보안경찰 조직을 지휘했다.[1]
1937년 4월에는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에 보안경찰 간부 후보생 학교가 창설되었다. 18개월 이상 대학에서 법률 세미나를 수료했거나 보안경찰에서 임무를 수행한 경력이 입학 조건이었으며, 게슈타포나 형사경찰, SD에서 간부가 되기를 희망하는 자들이 입학했다.[6]
친위대와 보안경찰의 일체화가 추진되어, 1938년 6월 23일의 정령으로 보안경찰의 경찰관은 모두 친위대(SS)의 대원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7] 1939년 9월 27일에는 보안경찰과 SD가 통합되어 친위대 본부 중 하나인 국가보안본부(RSHA)로 개편되었다.[8] 이후에도 보안경찰이라는 호칭은 게슈타포와 형사경찰을 합친 카테고리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었다.[9]
보안경찰은 질서경찰과 달리 독자적인 제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착용할 경우에는 SD 대원과 같은 제복을 착용하게 되어 있었다. 1941년 9월 26일의 RSHA 명령에 따라 보안경찰도 SD 소매장을 부착하게 되었다.[10]
보안 경찰의 조직은 장관을 필두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었다.[11]
- 보안 경찰 장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 * 행정·법정국장: 베르너 베스트
- * 정치 경찰 국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 ** I부 (행정·법제): 베르너 베스트
- ** II부 (국내 정치 경찰): 하인리히 뮐러
- ** III부 (방첩 경찰): 베르너 베스트
- * 형사 경찰 국: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국장 대리 아르투어 네베
정치경찰청(Amt Politische Polizei)의 하부조직은 다음과 같다.
정치경찰청 (Amt Politische Polize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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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II A – 공산주의 및 기타 마르크스주의 단체 |
PP II B – 교회, 종파, 망명자, 유대인, 로지 |
PP II C – 반동, 반대, 오스트리아 문제 |
PP II D – 예방 구금, 강제 수용소 |
PP II E – 경제, 농업 및 사회 문제, 단체 |
PP II G – 무선 감시 |
PP II H – 당, 그 부서 및 관련 협회의 문제 |
PP II J – 외국 정치 경찰 |
PP II Ber. – 상황 보고 |
PP II P – 언론 |
PP II S – 동성애 및 낙태 퇴치 |
PP III – 방첩 경찰 |
5. 연관 인물
- 하인리히 힘러: 1936년 6월 17일 독일 경찰청장에 임명되어 경찰 기구 개혁을 실시, 보안경찰을 창설했다.[2][3]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힘러의 측근으로 보안경찰 장관에 임명되었으며, 나치당 내 첩보조직 SD(친위대 보안부)의 장관을 겸임했다.[1] "보안경찰 및 SD 장관(Chef der Sicherheitspolizei und des SD, 약칭 CSSD)"이라는 직함을 사용했다.[4][5]
- 베르너 베스트: 보안경찰 장관 예하 행정·법정국장 및 정치경찰국 I부(행정·법제)와 III부(방첩 경찰) 책임자였다.[11][12]
- 하인리히 뮐러: 정치경찰국 II부(국내 정치 경찰) 책임자였다.[12]
- 아르투어 네베: 형사경찰국장 대리였다.[12]
참조
[1]
서적
クランクショウ(1972)
[2]
서적
クランクショウ(1972)
[3]
서적
クランクショウ(1972)
[4]
서적
芝(2008)
[5]
서적
山下(2010)
[6]
서적
芝(2008)
[7]
서적
クランクショウ(1972)
[8]
서적
大野(2001)
[9]
서적
山下(2010)
[10]
서적
山下(2010)
[11]
서적
大野(2001)
[12]
서적
ヘーネ(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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