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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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관은 한국에서 성씨와 함께 사용되는, 같은 조상을 가진 씨족 집단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발상지를 의미한다. 중국에서 유래하여 한국에 정착되었으며, 신라 말 고려 초에 시작되어 조선 시대에 가족 제도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본관은 단순히 출신지를 넘어 혈통과 신분을 파악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으며, 같은 본관끼리의 결혼을 금지하는 등 사회적 규범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법적 규정이 있으며,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전주 이씨 등이 주요 본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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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서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적자와 서자의 신분을 차별하는 제도로, 조선 시대에 강화되었으며, 정조 때 완화 시도가 있었지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고, 갑오경장 이후에도 사회적 차별이 잔존했다.
본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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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설명 | |
역사 | |
본관과 성씨 | |
본관의 종류 | |
참고 자료 | |
2. 유래
본관 제도는 중국에서 유래하였다.[111] 주나라 시대에 봉토를 제후에게 하사하고 사성정책을 시행하면서 "○○지역 ○○○"이라는 표식이 나타났다. 이는 시대에 따라 변천했지만, 사람이 태어난 곳을 나타내는 "○○지역 ○○○"이라는 표현 방식은 당나라 시대에도 유지되었으며, 한국의 한자 성씨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
본관 제도는 처음에는 그 사람의 출신지를 나타냈는데, 예를 들어 안동 김씨 ○○이라고 하면 안동 출신의 김○○였다.[111] 처음에는 출신지를 나타내던 본관이 점차 사람의 신분 및 집안을 나타내는 이름이 되었다. 즉, 본관이 씨족의 발상지뿐 아니라, 그 씨족(동본)의 집단적 신분까지 나타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는 같은 성씨가 너무 많고, 또 같은 성씨에서도 시조나 성씨의 탄생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하나의 성씨(金氏)가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나 되고, 몇 개의 성씨(金, 李, 朴, 崔, 鄭 등)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니, 성씨와 이름만으로는 각각의 개인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혈통 관계와 신분 질서의 징표로 성씨보다는 본관이나 족보의 중요성이 커져 갔다.
본관 제도는 씨족의 발상지뿐 아니라 고려 초의 통치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고려 태조는 고려 건국을 위해 지방 호족을 회유하고 연합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태조 23년(940년)경에 지방행정제도를 정비하면서 군현제 개편과 토성분정(土姓分定) 사업을 시행하였고, 광종 때 호족 정비책, 성종 때 지방제도 정비책을 시행하였다. 이처럼 태조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지방행정제도를 정비하면서 본관제도가 정착되었다고 여겨진다.[111] 지방 유력 토성(土姓)의 수장에게 행정 실무를 맡겼으며, 일부 군현은 지방의 토성이 '호장' 직을 세습하며 징세와 지방 행정 관리를 도맡아 처리하였다. 그리고 본관의 양민(백성)은 국가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는 거주지를 이전할 수 없었고, 이전했다가 발각되면 본관으로 되돌려졌다.[111]
본관제도는 고려의 지방행정 통치제도와 결합하였고, 중앙으로 진출한 상경귀족도 출신 지역과 연결되었으며, 출신 지역의 ‘토성’층은 중앙관료의 공급원 구실을 함으로써 거대 문벌귀족으로 지위를 굳혀갔다.[111] 상경귀족이 몰락하더라도 토성은 유지되어 씨족 전체의 생명력이 지속되었고, 씨족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 전기까지는 족외혼보다는 족내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예컨대, 선산 김씨 김종직의 선대를 보면 선산 김씨끼리 족내혼이 70%나 이뤄졌을 만큼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111]
본관 제도는 사람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신분과 집안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같은 성씨가 많고, 성씨의 기원이 다양하여 개인을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혈통과 신분을 나타내는 데 성씨보다 본관이나 족보가 중요해졌다.
일본에서는 대보령 제정과 함께 본관제가 도입되었다. 사람들은 본관지의 호적·계장에 기록되었고, 함부로 본관지를 떠나는 것은 유랑으로 간주되어 금지되었다.
이것이 한국에서는 사람의 출신지를 뜻하던 본관이 씨족의 발상지로 변화하였다. 이렇게 정착된 본관 제도는 성씨보다 더 중요한 구실을 하기도 한다. 특히, 하나의 성씨가 많은 인구를 가진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성씨는 수식어에 불과한 반면, 본관은 혈통과 신분을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성씨 제도에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본관 제도이다.
한반도에서 봉환(Bongwan) 제도는 신라의 토착화 정책의 결과로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1] 고려 태조는 증가하는 인구를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세수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낡은 골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봉환 제도를 장려했다.[1]
크고 작은 모든 규모와 지위의 지방 행정부 전반에 걸쳐 수많은 씨족(본관)이 생성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양민과 천민 계층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한국인은 봉환에 소속감을 느꼈다. 부유한 지역과 관련된 봉환은 개인적 자부심의 원천이었지만, 낮거나 빈곤한 봉환 출신 구성원들은 종종 자신의 족보상 지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1] 행정 구역의 변화는 다양한 씨족(본관)의 통합이나 생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1]
3. 특징
이러한 이유로 유래지인 중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본관이 한국에서는 널리 쓰이게 되었다. 고려 태조는 증가하는 인구를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세수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낡은 골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봉환 제도를 장려했다.[1]
크고 작은 모든 규모와 지위의 지방 행정부 전반에 걸쳐 수많은 씨족(본관)이 생성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양민과 천민 계층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한국인은 봉환에 소속감을 느꼈다. 부유한 지역과 관련된 봉환은 개인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겨졌지만, 낮거나 빈곤한 봉환 출신 구성원들은 종종 자신의 족보상 지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1] 행정 구역의 변화는 다양한 씨족(본관)의 통합이나 생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1]
전통적으로 같은 본관의 남녀는 결혼할 수 없었으므로, 남편의 본관과 성씨는 아내의 본관과 성씨와 달라야 했다. 1997년까지 이는 법으로 규정되었으나, 위헌 판결을 받았다.
입양의 경우, 양부와 입양자는 본관과 성씨가 같아야 한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입양아의 복리를 위해 양부모는 입양아의 성씨를 변경할 수 있다. 이 경우, 양부모는 가정법원에 성씨 변경 허가를 요청해야 한다.[5]
4. 성립
이처럼 본관의 정착 시기가 주로 신라 말 고려 초이다 보니, 대부분의 본관이 신라와 고려의 국경(평양과 원산만) 이남에 존재하게 되었으며,[111] 평양과 원산(영흥) 이북에 발상지를 둔 본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111]
그러나 고려 태조가 940년 군현을 개편하면서 토성분정(土姓分定) 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은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개인 학설이므로, 이를 한국 성씨의 기원으로 삼는 것은 무리이다. 이 설은 이수건(李樹健, 1935 ~ 2006)이 1984년에 펴낸 저서 "한국중세사회사연구(韓國中世社會史硏究)"에서 처음 제기한 것이다.[112][113]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오는 각 지방의 토성이 "옛 문적과 지금의 본도(本道) 관록(關錄)에 의거한 것"이라 한 말을 빌미로 옛 문적이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단정하고 이런 주장을 한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다는 증거는 없다. 토성분정이 실제로 있었다면 대다수 성본이 940년에 일시에 생겨난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오는 다수 토성의 시조의 시대는 실제로는 고려 초부터 고려 말까지 긴 기간에 걸쳐있으므로, 토성분정이란 정책이 실제로 시행되어 대다수 성본이 고려 태조 때 생겨났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토성분정이 정말로 있었던 정책이라면 고려사에 한 귀절도 나오지 않을 리가 없고, 실제 성씨의 역사적 사례들과 맞지도 않으므로, 이런 정책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14] 토성(土姓)이라는 말 자체도 고려사 등 고려시대 문헌에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경상도지리지 (1425년, 세종 7)와 세종실록지리지 (1454 단종 2년)에서만 일시적으로 쓰이다 그 후 간행된 지리지들에서는 사라졌는데, 1984년에 이수건이 되살려낸 것이다.
봉환(Bongwan) 제도는 중국에서 유래했다. 신라의 토착화 정책의 결과로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1] 고려 태조는 증가하는 인구를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세수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낡은 골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봉환 제도를 장려했다.[1]
크고 작은 모든 규모와 지위의 지방 행정부 전반에 걸쳐 수많은 씨족(본관)이 생성되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양민과 천민 계층을 포함한 거의 모든 한국인은 봉환에 소속감을 느꼈다. 부유한 지역과 관련된 봉환은 개인적 자부심의 원천으로 여겨졌지만, 낮거나 빈곤한 봉환 출신 구성원들은 종종 자신의 족보상 지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1] 행정 구역의 변화는 다양한 씨족(본관)의 통합이나 생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1]
5. 변화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같은 씨족끼리 결혼하는 족내혼과 다른 씨족과 결혼하는 족외혼이 병존했다. 예맥이나 고구려는 족외혼이 주종을 이뤘고, 신라는 족내혼이 대부분이었다. 고려가 신라를 계승하게 됨으로써 족내혼이 일반화되었고, 족외혼은 예외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족내혼보다는 족외혼으로 관습이 바뀌게 되었으나, 조선 초기까지는 가문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경우(정략혼)를 제외하면 족내혼을 했다.[111]
하지만 고려 중기의 무신정권 시대와 몽골 침략 이후로 본관제도의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중앙정권의 변화 및 몽골의 침략으로 상경귀족과 토성층의 몰락이 비일비재하자 문벌의 기반도 약해졌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본관제도는 두 가지 문제 때문에 변화하게 된다. 하나는 조선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며 지방 토성의 분정을 허락지 않거나 격하시켰고, 그에 따라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은 중인계급(6방)으로 격하되거나 몰락하였다. 다른 하나는 족내혼보다는 족외혼이 강화되고, 또 거주지 이전이 쉬워졌다. 이에 따라 본관제도는 현실적 통치제도가 아닌 관념적인 혈연의식으로 전환되었다. 특히 족보의 발간으로 성관 통합이 이뤄지고, 또 군소 성관은 유력 본관을 따라 개관을 함으로써 집단적 신분질서로서의 본관제도가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본관은 다른 씨족과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그가 속한 부계친족 집단의 신분적 상징이 되었으며, 성씨만 가지고 신분을 구별할 수 없게 되자 본관을 중시하는 풍조가 널리 퍼졌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조선 후기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은 “풍속이 문벌을 중시하여 사족(士族)들은 반드시 원조(遠祖)의 출신지를 본관으로 삼았으며, 비록 자손들이 흩어져 살면서 100대가 지나도 본관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하였다.[111]
고려 태조는 증가하는 인구를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세수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낡은 골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봉환 제도를 장려했다.[1] 행정 구역의 변화는 다양한 씨족(본관)의 통합이나 생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1]
6. 영향
이러한 이유로 중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본관이 널리 쓰였다. 고려 시대에는 지방행정 제도와 결합하여 문벌 귀족의 지위를 강화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111] 또한, 씨족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 초기까지 족외혼보다 족내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산 김씨 김종직의 선대는 족내혼 비율이 70%에 달했다.[111]
삼국시대에는 족내혼과 족외혼이 함께 존재했다. 고구려는 족외혼이, 신라는 족내혼이 주를 이루었다. 고려는 신라를 계승하여 족내혼이 일반화되었으나, 조선 시대에는 족외혼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가문의 고유성을 위해 족내혼을 하기도 했다.[111]
고려 중기 무신정권과 몽골 침략 이후, 본관 제도는 변화를 겪었다. 중앙정권 변화와 몽골 침략으로 문벌 기반이 약화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중앙집권 강화로 지방 토성의 분정이 제한되거나 격하되었고, 족외혼 강화와 거주지 이전으로 본관 제도는 관념적인 혈연 의식으로 바뀌었다. 족보 발간으로 성관 통합이 이루어지고, 유력 본관을 따라 개관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본관은 다른 씨족과의 구별 기준이자 부계 친족 집단의 신분적 상징이 되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은 사족들이 출신지를 본관으로 삼고, 100대가 지나도 바꾸지 않는다고 기록했다.[111] 이처럼 본관은 성씨보다 더 강력한 혈연 의식의 뿌리가 되었다.[111]
본관 제도는 한국의 성씨 제도와 관습에 큰 영향을 미쳤다.[111] 호주제 폐지 이전까지 지속된 동성동본 금혼 제도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또한, 부계 친족 중심의 혈연 의식은 장자승계와 남존여비 풍조를 강화시켰다. 1909년 일제의 민적법 시행 이후 변화를 겪었지만, 2008년 호주제 폐지까지 본관 제도의 영향은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성씨에 따른 제도적, 관념적 신분 질서가 약화되면서 유력 성관에 가계를 이어붙이거나 독자적인 성과 본을 만드는 일이 많아졌다. 2008년 호주제 폐지로 모계 성씨 승계도 가능해져 부계 중심의 친족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장자 승계와 남존여비 의식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며, 본관 제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111]
전통적으로 같은 본관의 남녀는 결혼할 수 없었으나, 1997년 위헌 판결을 받았다. 입양의 경우 양부와 입양자는 본관과 성씨가 같아야 하지만, 입양아의 복리를 위해 성씨 변경이 가능하다.[5]
7. 일본의 본관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 겐지, 헤이케, 후지와라씨, 타치바나씨 등 동성끼리 번영하였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는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성 대신 점차 각자가 일소전력으로 지키는 소령지의 지명(명田)을 가명(미요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일본의 주요 본관지는 다음과 같다. 아래 괄호 안에 제시된 것은 수 세기에 걸친 통폐합을 거친 현재의 유칭지(遺稱地)이며, 당시 제시된 범위와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7. 1. 율령제에서의 본관
일본에서는 대보령 제정과 함께 본관제가 도입되었다. 사람들은 본관지의 호적·계장에 기록되어 함부로 본관지를 떠나는 것은 유랑으로 금지되었다. 도망친 호는 3년, 호구는 6년이 지나면 호적·계장에서 제외되어 절관(본관을 가지지 않은 자)이 되었다. 그 후, 도망자가 발견되면 도망친 곳의 호적에 편입시키는 '당소편부' 또는 원래의 본관지로 강제송환시키는 '본관환부' 조치가 취해졌다. 무쓰국·데와국의 본관자에게는 '본관환부'가 정해져 있었다. 양로 4년(720년) 이후에는 도망자의 자발적 귀환('주환')을 촉구하기 위해 주환한 자의 과역을 1년간 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학료의 학생이 제적된 경우에는 본관에 통고(학령)하고, 징발된 노역자가 귀환 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본관에 통고(부역령)하며, 본주가 사망한 장내·자인은 본관으로 송환(선서령)하고, 병이 나서 쓰러진 방인은 본관으로 송환(군방령)하는 등의 규정이 존재했다.
7. 2. 가마쿠라 시대 이후의 본관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 겐지, 헤이케, 후지와라씨, 타치바나씨 등 동성끼리 번영하였기 때문에, 가마쿠라 시대 이후 서로를 구별할 때 성 대신 점차 각자가 「일소전력」으로 지키는 소령지의 지명(명田)을 가명(미요지・묘지)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미요지를 관(冠)하는 것은 소령의 상속권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요지의 발상지인 「일소전력」의 땅을 「혼칸(本貫)」、「혼칸의 땅」이라 칭하고, 혼칸지에서 모시는 신을 「우부스나가미」라 칭하며, 본관(本貫)이라고 쓰고 (우부스나)라고 읽으며, 점차 「우지가미」와 동의어가 되어 혼합되어 신성시되었다.
7. 3. 주요 본관지 목록
본관 | 인구수 | 성씨 | 동성 인구의 과반수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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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 4,456,700 | 김 | 금관가야(가락국)의 왕족을 뿌리로 하는 성씨. 가야 초대왕 수로왕의 자손이라고 칭한다. 같은 이름의 본관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항복 장수 사가(金忠善)를 시조로 하는 것이 있지만 별본관으로 취급한다. 구분할 경우 전자를 가락, 후자를 우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 |
밀양 박씨 | 3,103,942 | 박 | ○ | 신라 경명왕의 장남인 박언심을 뿌리로 하는 성씨.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를 시조라고 칭한다. 밀성 박씨와 같은 계열이다. |
전주 이씨 | 2,631,643 | 이 | 신라의 고관 이한을 시조라고 칭한다. 공식적으로 조선의 초대왕 이성계는 이 성씨 출신으로 여겨진다. | |
경주 김씨 | 1,800,853 | 김 | 신라 왕족을 뿌리로 하는 성씨. 김씨 신라왕의 조상인 김알지를 시조라고 칭한다. | |
경주 이씨 | 1,391,867 | 이 | 신라 초기의 호족을 뿌리로 한다. 시조를 이열평이라고 칭하며, 신라 건국 당시 6촌(신라 육부) 중 하나인 급량부의 촌장이었다. | |
진주 강씨 | 968,109 | 강 | ○ | 고구려 계열. 진양 강씨와 같은 계열이다. |
경주 최씨 | 945,005 | 최 | 경주 이씨와 마찬가지로, 신라 건국 당시 신라 육부 중 하나인 사량부의 촌장이었던 소벌도리(崔淵源)를 시조라고 칭한다. | |
광산 김씨 | 926,316 | 김 | ||
파평 윤씨 | 770,932 | 윤 | ○ | 파주 윤씨와 같은 계열이다. |
청주 한씨 | 752,689 | 한 | ○ | 시조는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의 세 아들 중 하나인 한란이다. |
안동 권씨 | 696,317 | 권 | ○ | |
인동 장씨 | 666,652 | 장 | ○ | |
평산 신씨 | 563,375 | 신 | ○ | |
순흥 안씨 | 520,384 | 안 | ○ | |
안동 김씨 | 519,719 | 김 | ||
남양 홍씨 | 487,488 | 홍 | ○ | 고려의 공신 홍유(洪殷悅)가 시조이다. 신라의 선덕여왕 시대에 당나라에서 건너왔다. |
동래 정씨 | 474,506 | 정 | 지백호의 자손으로, 고려의 안의호장인 정회문이 시조이다(정회문의 선계는 옛날 탈해왕 때 고구려 계열의 다파나국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 | |
해주 오씨 | 462,704 | 오 | ○ | 시조는 고려에 송나라에서 건너온 오인유이다. |
전주 최씨 | 458,191 | 최 | ||
남평 문씨 | 445,946 | 문 | ○ | |
달성 서씨 | 407,431 | 서 | ○ | |
창녕 조씨 | 366,798 | 조 | ○ | "창녕조씨"로 표기. |
수원 백씨 | 354,428 | 백 | ○ | 신라 무열왕 시대에 당나라에서 건너온 백우경을 조상으로 한다. |
경주 정씨 | 350,587 | 정 | 신라 건국 당시 신라 육부 중 하나인 본피부의 촌장이었던 지백호를 시조라고 칭한다. 유리 이사금 때 정씨 성을 사성 받았다고 한다. 42대손인 정진후를 중조로 하여 본관을 경주 정씨로 했다. 지백호를 조상으로 하는 정씨의 본가 격이다. | |
한양 조씨 | 332,580 | 조 | 시조는 고려 시대의 조지수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다. 조광조 등을 배출했다. | |
제주 고씨 | 310,542 | 고 | ○ | |
남원 양씨 | 307,724 | 양 | ○ | |
밀양 손씨 | 306,895 | 손 | ○ | |
여산 송씨 | 294,788 | 송 | ||
김녕 김씨 | 290,092 | 김 | "김녕김씨"로 표기. | |
금녕 김씨 | 287,701 | 김 | "금녕김씨"로 표기. | |
의성 김씨 | 287,469 | 김 | ||
연일 정씨 | 284,290 | 정 | 지백호의 자손으로, 신라의 간의대부인 정종은이 시조이다. 영일 정씨, 오천 정씨라고도 한다. 지주사공파, 감무공파, 양숙공파로 나뉜다. | |
함안 조씨 | 282,890 | 조 | 시조는 조정이다. 오대십국의 후당에서 신라로 건너왔다. | |
나주 임씨 | 277,699 | 임 | ||
창원 황씨 | 271,986 | 황 | 시조는 황석기, 황충준, 황량충이다. 후한의 광무제 시대 건무 4년에 신라로 건너온 황락의 후손이다. | |
청송 심씨 | 240,768 | 심 | ○ | |
문화 유씨 | 237,314 | 유 | "문화유씨"로 표기. 시조는 고려 건국의 공신 유차달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다. | |
강릉 유씨 | 236,871 | 유 | ○ | 시조는 유승비이다. 유방을 조상으로 한다. 송나라에서 고려 문종 36년에 망명했다. 한양 유씨와 같은 계열이다. |
은진 송씨 | 226,050 | 송 | ||
평택 임씨 | 225,872 | 임 | 시조는 임언수, 임세춘이다. 은나라 주왕 시대의 비간을 기원으로 한다. 팽성 임씨와 같은 계열이다. | |
성주 이씨 | 203,703 | 이 | ||
해주 최씨 | 201,625 | 최 | ||
이천 서씨 | 199,792 | 서 | 시조는 서신일이다. 신라의 효공왕 시대에 당나라에서 건너왔다. | |
진주 정씨 | 197,242 | 정 | 진양 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진양 강씨 | 193,217 | 강 | 고구려 계열. 진주 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단양 우씨 | 191,287 | 우 | ○ | 시조는 우현이다. 중국에서 고려로 건너와 1014년의 과거에 합격했다. |
하동 정씨 | 187,152 | 정 | 같은 본관이지만, 지백호의 자손인 정도정을 시조로 하는 파와, 정손위를 시조로 하는 파, 정응을 시조로 하는 파가 있다. | |
연안 차씨 | 184,731 | 차 | ○ | |
창녕 성씨 | 182,377 | 성 | ○ | |
광주 이씨 | 181,377 | 이 | ||
강릉 김씨 | 179,593 | 김 | ||
천안 전씨 | 176,239 | 전 | ||
월성 이씨 | 173,127 | 이 | ||
장수 황씨 | 170,988 | 황 | 시조는 황경이다. 후한의 광무제 시대 건무 4년에 신라로 건너온 황락의 후손이다. | |
평해 황씨 | 168,374 | 황 | 시조는 황온인이다. 후한의 광무제 시대 건무 4년에 신라로 건너온 황락의 후손이다. | |
정선 전씨 | 166,965 | 전 | ||
현풍 곽씨 | 166,608 | 곽 | ○ | 시조는 곽경이다. 송나라 홍농군 출신이다. 1133년에 고려로 건너왔다. |
전의 이씨 | 164,189 | 이 | ||
연안 이씨 | 164,036 | 이 | 시조는 이무이다. 당나라 고종 시대 백제 침략 당시 당나라 장군이었다. 후에 신라에 귀화했다. | |
함양 박씨 | 163,610 | 박 | ||
의령 남씨 | 162,729 | 남 | ○ | |
반남 박씨 | 160,964 | 박 | ||
진주 하씨 | 160,307 | 하 | ○ | |
여흥 민씨 | 159,522 | 민 | ○ | 시조는 민칭도이다. 공자의 제자인 민자건의 후손이다. 경기도 여주에 토착하여 조선의 왕후를 여러 명 배출했다. |
한산 이씨 | 156,861 | 이 | ||
담양 전씨 | 155,018 | 전 | ○ | |
양천 허씨 | 149,505 | 허 | ||
신안 주씨 | 148,207 | 주 | ○ | 시조는 주잠이다. 주희의 후손이다. 남송의 주잠이 몽골 침입 당시 고려로 망명했다. |
강릉 최씨 | 145,335 | 최 | ||
풍천 임씨 | 143,881 | 임 | ○ | 시조는 임온이다. 중국 소흥부 자계현 사람이다. 1275년 충렬왕비가 입비하면서 건너왔다. |
충주 지씨 | 148,144 | 지 | ○ | 시조는 지경이다. 960년 송나라에서 고려로 건너왔다. |
제주 양씨 | 142,211 | 양 | ||
영월 엄씨 | 139,681 | 엄 | ○ | 시조 엄림의. 신라 경덕왕 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다. 영산 신씨, 영월 신씨 시조와 함께 건너왔다. |
기계 유씨 | 139,073 | 유 | ○ | |
선산 김씨 | 138,819 | 김 | 신라 왕족을 뿌리로 하는 성씨. 신라 왕족 김선궁을 시조로 한다. 일선 김씨와 같은 계열이다. | |
함평 이씨 | 138,550 | 이 | ||
영천 이씨 | 135,612 | 이 | ||
김해 허씨 | 134,068 | 허 | 금관가야의 수로왕의 자손으로, 김해 김씨와 동본관으로 취급한다. 이는 수로왕과 왕비 허황옥 사이에 10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중 2명에게 허씨 성을 갖게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 |
고령 신씨 | 129,718 | 신 | ||
진양 정씨 | 127,279 | 정 | 진주 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원주 원씨 | 126,677 | 원 | ○ | |
나주 정씨 | 125,088 | 정 | ○ | |
풍양 조씨 | 124,262 | 조 | ||
합천 이씨 | 121,416 | 이 | ||
성산 이씨 | 113,087 | 이 | ||
청풍 김씨 | 110,815 | 김 | ||
여양 진씨 | 110,403 | 진 | ○ | 시조는 진첨후이다. 고려시대 관료이다. 송나라 휘종 시대의 귀화인 진수를 조상으로 한다. |
벽진 이씨 | 109,267 | 이 | ||
양성 구씨 | 108,209 | 구 | ○ | |
순천 박씨 | 105,208 | 박 | ||
초계 정씨 | 104,155 | 정 | ||
영양 천씨 | 100,014 | 천 | ○ | |
영산 신씨 | 98,759 | 신 | ○ | 시조는 신라 경덕왕 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신경이다. 영월 엄씨 시조와 함께 건너왔다. |
대구 서씨 | 97,866 | 서 | ||
나주 나씨 | 96,018 | 나 | ○ | "나주나씨"로 표기. 시조는 나부이다. 중국 예장군에서 고려로 건너왔다. 정의대부, 감문위상장군을 역임하고 나주에 살았다. |
연안 김씨 | 93,382 | 김 | ||
삼척 김씨 | 92,671 | 김 | ||
상산 김씨 | 91,558 | 김 | ||
청도 김씨 | 91,293 | 김 | ||
무안 박씨 | 90,785 | 박 | ||
문화 류씨 | 90,313 | 유 | ○ | "문화류씨"로 표기. 시조는 고려 건국의 공신 유차달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귀화인이다. |
탐진 최씨 | 89,943 | 최 | ||
곡부 공씨 | 89,331 | 공 | ○ | |
고성 이씨 | 88,587 | 이 | ||
월성 김씨 | 87,268 | 김 | ||
원주 이씨 | 85,562 | 이 | ||
영월 신씨 | 84,905 | 신 | ||
평강 채씨 | 84,877 | 채 | ○ | |
여주 이씨 | 84,389 | 이 | ||
인천 이씨 | 83,855 | 이 | ||
성주 배씨 | 83,620 | 배 | ||
경주 최씨 | 82,843 | 최 | ||
영양 남씨 | 82,272 | 남 | ||
평창 이씨 | 80,607 | 이 | ||
온양 방씨 | 80,445 | 방 | ○ | |
죽산 안씨 | 77,026 | 안 | ||
부안 임씨 | 76,154 | 임 | ||
백천 조씨 | 75,978 | 조 | ||
장흥 고씨 | 75,517 | 고 | ||
동복 오씨 | 72,394 | 오 | ||
보성 오씨 | 71,162 | 오 | ||
진주 유씨 | 68,901 | 유 | "진주유씨"로 표기. | |
경주 손씨 | 68,486 | 손 | 신라 건국 당시 신라 육부 중 하나인 점량부의 촌장이었던 구례마를 시조라고 칭한다. | |
예천 임씨 | 66,492 | 임 | ||
해남 윤씨 | 66,394 | 윤 | ||
영일 정씨 | 65,991 | 정 | 연일 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진양 하씨 | 65,836 | 하 | ||
칠원 윤씨 | 65,098 | 윤 | ||
성산 배씨 | 65,052 | 배 | ||
밀성 박씨 | 64,142 | 박 | 신라 경명왕의 장남인 박언심을 뿌리로 하는 성씨.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를 시조라고 칭한다. 밀양 박씨와 같은 계열이다. | |
죽산 박씨 | 63,179 | 박 | ||
순천 김씨 | 62,916 | 김 | ||
능주 구씨 | 62,574 | 구 | ||
전주 유씨 | 62,189 | 유 | "전주유씨"로 표기. | |
광주 노씨 | 61,809 | 노 |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노개의 아들 노수가 광산백에 봉해진 것을 조상으로 한다. 광산 노씨와 같은 계열이다. | |
교하 노씨 | 61,747 | 노 | 당나라의 한림학사 노수가 신라로 건너왔다. 그의 차남 노우가 신라의 교하백에 봉해진 것을 조상으로 한다. | |
수성 최씨 | 61,231 | 최 | ||
강릉 함씨 | 59,705 | 함 | ○ | |
덕수 이씨 | 58,513 | 이 | ||
파주 염씨 | 57,531 | 염 | ○ | |
전주 김씨 | 56,989 | 김 | 신라 말기 제56대 경순왕의 제4왕자 김은설의 8세손인 김태서가 몽골의 침략으로 전주로 이주하여 시조가 된다. | |
연주 현씨 | 56,047 | 현 | ○ | |
양성 이씨 | 55,246 | 이 | ||
재령 이씨 | 54,166 | 이 | ||
초계 변씨 | 53,860 | 변 | ○ | |
옥천 조씨 | 53,406 | 조 | ||
김해 배씨 | 53,222 | 배 | ||
성주 도씨 | 53,066 | 도 | ○ | |
신천 강씨 | 52,945 | 강 | ○ | |
언양 김씨 | 52,652 | 김 | ||
진성 이씨 | 52,538 | 이 | ||
고흥 유씨 | 52,221 | 유 | "고흥유씨"로 표기. | |
금성 나씨 | 51,966 | 나 | ||
삭녕 최씨 | 51,525 | 최 | ||
거창 신씨 | 51,153 | 신 | ○ | |
나주 김씨 | 51,060 | 김 | ||
평양 조씨 | 50,480 | 조 | ||
부안 김씨 | 48,961 | 김 | ||
진주 소씨 | 48,836 | 소 | ○ | |
분성 배씨 | 48,427 | 배 | ||
광주 안씨 | 48,033 | 안 | ||
원주 변씨 | 47,804 | 변 | ○ | |
옥천 전씨 | 47,681 | 전 |
8. 중국의 본관
주나라 시대에 봉토를 제후에게 하사하고 사성정책을 쓰면서 “○○지역 ○○○”이라는 표식이 나타났다.[111]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이 태어난 곳에 따라 “○○지역 ○○○”이라는 식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당나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당나라는 한국의 한자 성씨 정착에 영향을 미쳤다.
서진 시대에 혼란을 겪은 이후, 본관은 그 인물의 출신지와는 달라져 시조의 출신을 보이는 계보상의 의미가 되었고, 귀족 사회에서 동일한 종족 집단에 속함을 나타냈다.
- 여남 원씨
- 랑야 왕씨
- 영천 진씨
- 홍농 양씨
- 태원 왕씨
- 진군 사씨
화교·화인 사이에서는 중국에서의 조상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본관이라는 말이 사용된다(본적·원적).
9. 조선의 주요 본관
성씨 | 문장 | 영어 | 한글 | 한자 | 시조 | 대한민국 인구 (2015)[4] | 참고자료 |
---|---|---|---|---|---|---|---|
김 | 김해 김씨 | 김해 김씨 | 金海 金氏 | 수로왕 | 4,456,700 | [6] | |
경주 김씨 | 경주 김씨 | 慶州 金氏 | 김알지 | 1,800,853 | [7] | ||
광산 김씨 | 광산 김씨 | 光山 金氏 | 김흥광 | 926,316 | [8] | ||
안동 김씨 | 안동 김씨 | 安東 金氏 | 김숙성, 김선평 | 519,719 | [9] | ||
김녕 김씨|金寧 金氏한국어 | 김녕 김씨 | 金寧 金氏 | 김시흥 | 577,793 | [10] | ||
의성 김씨|義城 金氏한국어 | 의성 김씨 | 義城 金氏 | 김석 | 287,469 | [11] | ||
강릉 김씨 | 강릉 김씨 | 江陵 金氏 | 김주원 | 179,593 | [12] | ||
선산 김씨|善山 金氏한국어 | 선산 김씨 | 善山 金氏 | 김선궁|金宣弓한국어 | 138,819 | [13] | ||
청풍 김씨|淸風金氏한국어 | 청풍 김씨 | 淸風金氏 | 김태유 | 110,815 | [14] | ||
연안 김씨|延安 金氏한국어 | 연안 김씨 | 延安 金氏 | 김섬한 | 93,382 | [15] | ||
삼척 김씨|三陟 金氏한국어 | 삼척 김씨 | 三陟 金氏 | 김추 | 92,671 | [16] | ||
상산 김씨|商山 金氏한국어 | 상산 김씨 | 商山 金氏 | 김수 | 91,558 | [17] | ||
![]() | 청도 김씨|淸道 金氏한국어 | 청도 김씨 | 淸道 金氏 | 김지대|金之岱한국어 | 91,293 | [18] | |
이 | 전주 이씨 | 전주 이씨 | 全州 李氏 | 이한|李翰한국어 | 2,631,643 | [19] | |
경주 이씨|慶州 李氏한국어 | 경주 이씨 | 慶州 李氏 | 알평|謁平한국어 | 1,391,867 | [20] | ||
성주 이씨|星州 李氏한국어 | 성주 이씨 | 星州 李氏 | 이순유 | 203,703 | [21] | ||
광주 이씨|廣州 李氏한국어 | 광주 이씨 | 廣州 李氏 | 이차성 | 181,377 | [22] | ||
전의 이씨|全義 李氏한국어 | 전의 이씨 | 全義 李氏 | 이도 | 164,189 | [23] | ||
연안 이씨|延安 李氏한국어 | 연안 이씨 | 延安 李氏 | 이무 | 164,036 | [24] | ||
한산 이씨|韓山 李氏한국어 | 한산 이씨 | 韓山 李氏 | 이윤경 | 156,861 | [25] | ||
함평 이씨|咸平 李氏한국어 | 함평 이씨 | 咸平 李氏 | 이언 | 138,550 | [26] | ||
영천 이씨|寧川 李氏한국어 | 영천 이씨 | 寧川 李氏 | 이문한 | 135,612 | [27] | ||
합천 이씨|陜川 李氏한국어 | 합천 이씨 | 陜川 李氏 | 이개 | 121,416 | [28] | ||
성산 이씨|星山 李氏한국어 | 성산 이씨 | 星山 李氏 | 이능일 | 113,087 | [29] | ||
벽진 이씨|碧珍 李氏한국어 | 벽진 이씨 | 碧珍 李氏 | 이총언|李총언한국어 | 109,267 | [30] | ||
덕수 이씨|德水 李氏한국어 | 덕수 이씨 | 德水 李氏 | 이돈수 | 58,513 | [31] | ||
박 | 밀양 박씨 | 밀양 박씨 | 密陽 朴氏 | 박언침 | 3,103,942 | [32] | |
함양 박씨|咸陽 朴氏한국어 | 함양 박씨 | 咸陽 朴氏 | 박언신 | 163,610 | [33] | ||
반남 박씨|潘南 朴氏한국어 | 반남 박씨 | 潘南 朴氏 | 박응추 | 160,964 | [34] | ||
순천 박씨|順天 朴氏한국어 | 순천 박씨 | 順天 朴氏 | 박영규 | 105,208 | [35] | ||
최 | 경주 최씨 | 경주 최씨 | 慶州 崔氏 | 최치원 | 945,005 | [36] | |
전주 최씨|全州 崔氏한국어 | 전주 최씨 | 全州 崔氏 | 최순작, 최균, 최군옥, 최아 | 458,191 | [38][39] | ||
해주 최씨|海州 崔氏한국어 | 해주 최씨 | 海州 崔氏 | 최온 | 201,625 | [40] | ||
강릉 최씨 | 강릉 최씨 | 江陵 崔氏 | 최흔봉, 최필달, 최문한 | 145,335 | [41] | ||
정 | 동래 정씨|東萊 鄭氏한국어 | 동래 정씨 | 東萊 鄭氏 | 정회문 | 474,506 | [42] | |
경주 정씨|慶州 鄭氏한국어 | 경주 정씨 | 慶州 鄭氏 | 지백호|智伯虎한국어 | 350,587 | [43] | ||
연일 정씨|延日 鄭氏한국어 | 연일 정씨 | 延日 鄭氏 | 정종운 | 284,290 | [44] | ||
진주 정씨|晉州 鄭氏한국어 | 진주 정씨 | 晉州 鄭氏 | 정예, 정자우, 정장, 정헌 | 324,521 | [45] | ||
하동 정씨|河東 鄭氏한국어 | 하동 정씨 | 河東 鄭氏 | 정도정 | 187,152 | [46] | ||
초계 정씨|草溪 鄭氏한국어 | 초계 정씨 | 草溪 鄭氏 | 정백걸 | 104,155 | [47] | ||
해주 정씨|海州 鄭氏한국어 | 해주 정씨 | 海州 鄭氏 | 정석 | 45,101 | [48] | ||
강 | 진주 강씨|晉州 姜氏한국어 | 진주 강씨 | 晉州 姜氏 | 강이식 | 1,161,326 | [49] | |
조 | 창녕 조씨|昌寧 曺氏한국어 | 창녕 조씨 | 昌寧 曺氏 | 조계룡 | 366,798 | [50] | |
한양 조씨|漢陽 趙氏한국어 | 한양 조씨 | 漢陽 趙氏 | 조지수 | 332,580 | [51] | ||
함안 조씨 | 함안 조씨 | 咸安 趙氏 | 조정 | 282,890 | [52] | ||
풍양 조씨 | 풍양 조씨 | 豐壤 趙氏 | 조맹 | 124,262 | [53] | ||
윤 | 파평 윤씨|坡平 尹氏한국어 | 파평 윤씨 | 坡平 尹氏 | 윤신달 | 770,932 | [54] | |
장 | 인동 장씨 | 인동 장씨 | 仁同 張氏 | 장금용 | 666,652 | [55] | |
임 | ![]() | 나주 임씨|羅州 林氏한국어 | 나주 임씨 | 羅州 林氏 | 임비|林庇한국어 | 277,699 | [56] |
평택 임씨 | 평택 임씨 | 平澤 林氏 | 임팔급 | 225,872 | [57] | ||
풍천 임씨 | 풍천 임씨 | 豊川 任氏 | 임온 | 143,881 | [58] | ||
한 | 청주 한씨 | 청주 한씨 | 淸州 韓氏 | 한란 | 752,689 | [59] | |
오 | 해주 오씨 | 해주 오씨 | 海州 吳氏 | 오인유 | 462,704 | [60] | |
서 | 달성 서씨|達城 徐氏한국어 | 달성 서씨 | 達城 徐氏 | 서진 | 407,431 | [61] | |
이천 서씨 | 이천 서씨 | 利川 徐氏 | 서신일 | 199,792 | [62] | ||
![]() | 대구 서씨|大丘 徐氏한국어 | 대구 서씨 | 大丘 徐氏 | 서한 | 97,866 | [63] | |
신 | 평산 신씨 | 평산 신씨 | 平山申氏 | 신숭겸 | 563,375 | [64] | |
고령 신씨|高靈 申氏한국어 | 고령 신씨 | 高靈 申氏 | 신성용 | 129,718 | [65] | ||
영산 신씨 | 영산 신씨 | 靈山 辛氏 | 신경 | 98,759 | [66] | ||
권 | ![]() | 안동 권씨|安東 權氏한국어 | 안동 권씨 | 安東 權氏 | 권행|權幸한국어 | 696,317 | [67] |
황 | 창원 황씨 | 창원 황씨 | 昌原 黃氏 | 황석주 | 271,986 | ||
장수 황씨 | 장수 황씨 | 長水 黃氏 | 황경 | 170,988 | [68] | ||
평해 황씨 | 평해 황씨 | 平海 黃氏 | 황온인 | 168,374 | [69] | ||
안 | 순흥 안씨 | 순흥 안씨 | 順興 安氏 | 안자미 | 520,384 | [70] | |
송 | 여산 송씨 | 여산 송씨 | 礪山 宋氏 | 송유익 | 294,788 | [71] | |
은진 송씨 | 은진 송씨 | 恩津 宋氏 | 송대원 | 226,050 | [72] | ||
전 | 천안 전씨|天安 全氏한국어 | 천안 전씨 | 天安 全氏 | 전섭, 전낙 | 176,239 | [73] | |
정선 전씨|旌善 全氏한국어 | 정선 전씨 | 旌善 全氏 | 전섭, 전선 | 166,965 | [74] | ||
담양 전씨|潭陽 田氏한국어 | 담양 전씨 | 潭陽 田氏 | 전득시 | 155,018 | [75] | ||
홍 | 남양 홍씨 | 남양 홍씨 | 南陽 洪氏 | 홍천하, 홍선행 | 487,488 | [76] | |
고 | 제주 고씨|濟州 髙氏한국어 | 제주 고씨 | 濟州 髙氏 | 고을나|高乙那한국어 | 310,542 | [77] | |
문 | 남평 문씨|南平 文氏한국어 | 남평 문씨 | 南平 文氏 | 문다성 | 445,946 | [78] | |
양 | 남원 양씨|南原 梁氏한국어 | 남원 양씨 | 南原 梁氏 | 양우량 | 307,724 | [79][80] | |
제주 양씨|濟州 梁氏한국어 | 제주 양씨 | 濟州 梁氏 | 양을나|梁乙那한국어 | 142,211 | [81] | ||
청주 양씨 | 청주 양씨 | 淸州 楊氏 | 양기 | 38,161 | [82] | ||
손 | 밀양 손씨|密陽 孫氏한국어 | 밀양 손씨 | 密陽 孫氏 | 손순 | 306,895 | [83] | |
경주 손씨|慶州 孫氏한국어 | 경주 손씨 | 慶州 孫氏 | 손순 | 68,486 | [84] | ||
배 | 성주 배씨|星州 裵氏한국어 | 성주 배씨 | 星州 裵氏 | 배위준 | 148,672 | [85] | |
백 | 수원 백씨 | 수원 백씨 | 水原 白氏 | 백우경 | 354,428 | [86] | |
허 | 양천 허씨 | 양천 허씨 | 陽川 許氏 | 허선문 | 149,505 | [87] | |
남 | 영양 남씨 | 영양 남씨 | 英陽 南氏 | 김충 | 82,272 | [88] | |
곽 | 현풍 곽씨 | 현풍 곽씨 | 玄風 郭氏 | 곽경 | 166,608 | [89] | |
민 | 여흥 민씨 | 여흥 민씨 | 驪興 閔氏 | 민칭도 | 139,073 | [90] | |
유/류 | 문화 류씨 | 문화 류씨 | 文化 柳氏 | 유차달 | 237,314 | [91] | |
강릉 유씨 | 강릉 유씨 | 江陵 劉氏 | 유전, 유승비 | 236,871 | [92] | ||
기계 유씨|杞溪 兪氏한국어 | 기계 유씨 | 杞溪 兪氏 | 유삼재 | 139,073 | [93] | ||
진 | 여양 진씨 | 여양 진씨 | 驪陽 陳氏 | 진총후 | 110,403 | [94] | |
모 | 함평 모씨 | 함평 모씨 | 咸平 牟氏 | 모경 | 20,644 | [95] | |
경 | 청주 경씨|淸州 慶氏한국어 | 청주 경씨 | 淸州 慶氏 | 경진|慶珍한국어 | 12,474 | [96] | |
복 | 면천 복씨|沔川 卜氏한국어 | 면천 복씨 | 沔川 卜氏 | 복지겸 | 9,538 | [97] | |
견 | 황간 견씨|黃澗 甄氏한국어 | 황간 견씨 | 黃澗 甄氏 | 아자개 | 1,251 | [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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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최씨 - 디지털영암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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