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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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신론은 기독교 신학에서 삼위일체 교리와 상반되는 이단으로 간주되며, 세 개의 개별적인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신념이다. 6세기부터 다양한 시기에 걸쳐 삼신론으로 비판받은 인물들이 있었으며, 특히 요한 필로포누스, 콩피에뉴의 로셀린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에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신관이 삼신론적 시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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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키온파는 144년경 마르키온에 의해 시작된 기독교 분파로,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의 가르침을 구분하고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했으며 신약성경 정경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 이단 - 기독교복음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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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은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신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설명하는 학문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드러나는 계시를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계시를 중심으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갈망, 삼위일체, 성사, 구원론, 사후 세계 등을 다루며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제시하고 다른 교파와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삼신론 | |
---|---|
개요 | |
유형 | 기독교 내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이단적 견해 |
설명 | 삼위일체를 세 개의 개별적인 신으로 간주하는 견해 |
역사적 배경 | |
기원 | 삼위일체론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려는 시도에서 발생 |
초기 기독교 |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 |
중세 시대 | 요안니스 필로포노스와 같은 철학자에 의해 발전된 삼신론적 주장 제기 |
종교 개혁 시대 | 일부 재세례파 그룹에서 삼신론적 견해가 나타남 |
주요 주장 | |
세 위격의 분리 | 성부, 성자, 성령을 본질적으로 분리된 세 개의 신적 존재로 봄 |
신성의 공유 부정 | 세 위격이 동일한 신성을 공유한다는 정통적 견해를 거부 |
위계 질서 강조 | 세 위격 간의 위계 질서를 강조하거나 주장 |
비판적 시각 | |
정통 기독교 |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으로 간주하며 이단으로 규정 |
교회 공동체 | 교회의 일치성을 해치고 신앙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비판 |
신학적 문제 | 단일신론적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 다신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
현대적 논쟁 | |
삼위일체론의 해석 | 현대 신학에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일부는 삼신론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 |
사회적 영향 | 특정 종교적 소수 집단에서 삼신론적 견해가 나타나 사회적 논쟁을 야기하기도 함 |
관련 용어 | |
삼위일체 | 기독교의 핵심 교리로,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느님이라는 신앙 |
양태론 | 하느님이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양태)으로 나타난다는 이단적 견해 |
아리우스주의 |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하는 이단적 견해 |
단일신론 | 오직 하나의 신만이 존재한다는 신앙 |
기타 | |
참고 문헌 | 다양한 신학 서적 및 온라인 자료 |
2. 삼신론의 개념과 주요 논쟁
삼위일체 교리를 둘러싼 논쟁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지속되었으며, 삼신론은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있는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삼신론은 성부, 성자, 성령을 세 개의 독립적인 신으로 보는 견해로, 주류 신학에서는 이단으로 간주된다.
6세기 후반, 단성론의 한 분파에서 삼신론적 경향이 나타났다. 이들은 에페소스의 요한, 포티우스, 레온티우스 등의 기록에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다.[7] 이 분파의 창시자는 안티오크의 소피스트 학교의 수장이었던 존 아스쿠네게스였다. 주요 인물로는 요한 필로포누스가 있으며, 지도자들은 타르수스의 코논과 이사우리아 셀레우키아의 유게니우스라는 두 명의 주교였다.
요한 필로포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삼위일체 안에 세 개의 분리된 본성, 실체, 신이 있다고 주장하여 삼신론 혐의를 받았다.[7] 그의 사상은 코논과 유게니우스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이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추방되어 팔레스타인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이들은 코린토스, 아테네 등 여러 지역에서 자신들의 종파를 전파하며 삼신론 논쟁을 이어갔다.
중세 시대에는 콩피에뉴의 로셀린이 요한 필로포누스와 유사한 주장을 펼치며 삼신론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1092-1093년 수아송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았지만, 그의 사상은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7]
가톨릭 작가 중 피에르 파이디트는 초기 교부들이 삼신론자였다고 주장하면서 삼신론 형태를 실천했다. 그는 순종하지 않아 1671년 오라토리에서 파리에서 추방되었고[7] 1709년에 사망했다. 프레몽트레 수도회의 아빠스 루이-샤를 위고는 ''Apologie du système des Saints Pères sur la Trinité''(룩셈부르크, 1699)에서 파이디트를 반박했다.
"계몽주의"의 교리에 영향을 받은 트리어의 가톨릭 사제 옘스는[7] 삼위일체 안에 세 개의 유사한 본성이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교부들에게 귀속시키며, 하나님의 수적인 통일성을 스콜라 철학자들의 발명이라고 불렀다. 그의 저서 ''Opuscula de Deo Uno et Trino''(마인츠, 1789)는 1804년 7월 14일 교황 비오 7세의 회칙에서 정죄되었다.
러시아 구교도의 저명한 이데올로그이자 작가인 아브바쿰 (1682년 사망)은 그의 서신의 일부 구절을 근거로 공식 정교회와 동료 구교도에 의해 삼신론 혐의를 받았다.
보헤미아의 예수회 철학자 안톤 귄터 역시 삼신론 혐의를 받았고, 그의 저작은 결국 금서 목록에 올랐다.
개신교 신자 중에는 단치히와 엘빙의 교수였던 하인리히 니콜라이(1660년 사망)[7](사랑의 가족의 창시자와 혼동하지 말 것)가 인용된다.
성공회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세인트폴 대성당의 교구 참사인 윌리엄 셜록이다.[7] 그는 ''Vindication of the Doctrine of the Holy and ever Blessed Trinity''(런던, 1690)에서 소치니주의자를 반대하며, 세 신적 인격이 "세 개의 뚜렷한 무한한 정신" 또는 "세 개의 지적인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로버트 사우스에 의해 ''Animadversions on Dr. Sherlock's Vindication''(1693)에서 공격받았다.
"Antiquities"의 저자인 조셉 빙엄은 1695년 옥스퍼드에서 설교했는데,[7] 이 설교는 교부들을 삼신론자로 묘사한 것으로 여겨졌고, 옥스퍼드 대학의 Hebdomadal Council에 의해 ''falsa, impia et haeretica''(거짓되고 불경하며 이단적)로 정죄되었으며, 이 학자는 옥스퍼드에서 쫓겨났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신자들은 스스로 삼신론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몰몬교의 일부 비평가들은 신격이 세 개의 뚜렷한 신들의 협의회이며, 완벽하게 ''목적, 연합 및 사명에서 하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존재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삼신론적 또는 다신론적이라고 말한다.[8][9]
일부 사람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아버지, 아들, 성령에 대한 삼신론적 견해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들의 단일성을 하나의 존재로 구성된 신격으로 보지 않고 세 개의 개별적인 존재가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10]
2. 1. 초기 기독교 시대의 삼신론 논쟁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했고, 그중 일부는 주류 신학에서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경향 중 하나가 삼신론인데, 삼위, 즉 성부, 성자, 성령을 세 개의 독립적인 신으로 보는 견해이다.6세기 후반, 단성론의 한 분파에서 삼신론적 경향이 나타났다. 이들은 에페소스의 요한, 포티우스, 레온티우스 등의 기록에 단편적으로만 남아있다.[7] 이 분파의 창시자는 안티오크의 소피스트 학교의 수장이었던 존 아스쿠네게스였다. 주요 저술가로는 요한 필로포누스가 있었으며, 지도자들은 타르수스의 코논과 이사우리아 셀레우키아의 유게니우스라는 두 명의 주교였다. 이들은 동료 주교들에게 폐위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했고, 황후 테오도라의 손자인 수도사 아타나시우스의 보호를 받았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필로포누스에게 그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늙은 철학자는 병을 핑계로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코논과 유게니우스는 유스티누스 2세 통치 기간(565-78)에 가톨릭 총대주교 요한 스콜라스티쿠스 (565-77) 앞에서 온건한 단성론파였던 스테판, 바울과 논쟁을 벌였다. 삼신론 주교들은 필로포누스를 저주하지 않았고, 그가 세베루스와 테오도시우스에 동의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추방되었고, 필로포누스는 요한 스콜라스티쿠스를 반대하는 책을 썼다. 코논과 유게니우스는 아그노타이의 창시자인 테미스투스와 협력하여 필로포누스를 반대하는 논문을 썼고, 그의 견해가 비기독교적이라고 선언했다.
이 두 주교와 폐위된 테오나스 주교는 그들의 종파를 위해 주교 서임을 진행했다. 그 종파는 코린토스, 아테네, 로마, 북아프리카 및 서부 총대주교구에 설립되었으며, 동쪽에서는 요원들이 시리아와 킬리키아, 이사우리아 및 카파도키아를 여행하며 사제와 부제를 서임했다. 유게니우스는 팜필리아에서 사망했고, 코논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갔다.
레온티우스는 필로포누스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그로 하여금 삼위일체 안에 세 개의 부분적 실체(''merikai ousiai, ikikai theotetes, idiai physeis'')와 하나의 공통 실체가 있다고 가르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2. 1. 1. 요한 필로포누스
요한 필로포누스는 6세기 중반경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자 단성론자였다. 그는 삼위일체 안에 신적 인격의 수에 따라 세 개의 분리된 본성, 실체 및 신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삼신론 혐의를 받았다. 그는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종'', ''유형'', ''개체'' 범주로 정당화하려 했다.[7]2. 2. 중세 시대의 삼신론 논쟁
요한 필로포누스는 6세기 중반경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자 단성론자였다. 그는 삼위일체 안에 신적 인격의 수에 따라 세 개의 분리된 본성, 실체 및 신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삼신론 혐의를 받았다. 그는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인 ''종'', ''유형'', ''개체''로 정당화하려 했다.[7]필로포누스의 사상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한 타르수스의 코논과 이사우리아의 셀레우키아의 유게니우스 등의 주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수도사 아타나시우스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가톨릭 총대주교 요한 스콜라스티쿠스와의 논쟁에서 패배하고 팔레스타인으로 추방되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코린토스와 아테네, 로마, 북아프리카 및 서부 총대주교구에, 동쪽에서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이사우리아 및 카파도키아를 여행하며 자신들의 종파를 전파하였다.
레온티우스는 필로포누스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그로 하여금 삼위일체 안에 세 개의 부분적 실체(''merikai ousiai, ikikai theotetes, idiai physeis'')와 하나의 공통 실체가 있다고 가르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2. 2. 1. 콩피에뉴의 로셀린
중세 시대 명목론의 창시자인 콩피에뉴의 로셀린은 요한 필로포누스와 마찬가지로 삼위의 인격이 ''tres res''(세 개의 대상)가 아니라면 전체 삼위일체가 화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7] 그는 1092-1093년 수아송 공의회에서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받았는데, 이 공의회는 랭스 대주교 르노 뒤 벨레가 주재했다. 란프랑과 안셀름의 권위에 호소하려 한 로셀린은 안셀름에게 ''그리스도가 왜 사람이 되었는가''와 그의 견해를 반박하는 신적 본성에 대한 다른 논문을 쓰도록 촉구했다.[7] 로셀린은 공개적으로 철회했고,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에서 추방된 후 교회와 화해했지만, 그의 이전 논증 형태로 돌아갔다.3. 삼신론 혐의를 받은 주요 인물들
요한 필로포누스를 비롯한 단성론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이 6세기 후반에 삼신론적 경향을 보이며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에페소스의 요한, 포티우스, 레온티우스 등에 의해 이단으로 비판받았다.[7]
주요 인물과 그들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인물 | 활동 및 주장 | 비고 |
---|---|---|
요한 아스쿠네게스 | 안티오크의 소피스트 학교의 수장이었으며, 삼신론자들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 |
요한 필로포누스 | 아리스토텔레스 주석가로, 삼위일체 안에 세 개의 부분적 실체가 있다고 가르쳤다. 부활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소환을 받았으나 병으로 변명했다. |
코논과 유게니우스 | 타르수스와 셀레우키아의 주교였으나, 동료 주교들에게 폐위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피신했다. | 황후 테오도라의 손자인 수도사 아타나시우스의 보호를 받았다. |
옘스 | 트리어의 가톨릭 사제로, 삼위일체 안에 세 개의 유사한 본성이 있다는 견해를 주장했다. | 그의 저서 Opuscula de Deo Uno et Trino(마인츠, 1789)는 1804년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정죄되었다. |
아브바쿰 | 러시아 구교도의 이데올로그이자 작가로, 그의 서신 일부 구절을 근거로 삼신론 혐의를 받았다. | |
하인리히 니콜라이 | 단치히와 엘빙의 교수로, 개신교 신자 중 삼신론자로 언급된다. | 사랑의 가족 창시자와는 다른 인물이다. |
이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추방되기도 했지만, 코린토스, 아테네, 로마, 북아프리카 등지에 그들의 종파를 설립하고, 동쪽으로는 시리아, 킬리키아, 이사우리아, 카파도키아 등지에서 활동하며 세력을 확장했다.[7]
3. 1. 서양 기독교
서양 기독교 역사에서 삼신론으로 간주되거나 비판받은 여러 사례는 다음과 같다.- 6세기 단성론자들: 요한 필로포누스를 중심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삼위 안에 세 개의 개별적인 본성, 실체, 신이 있다고 주장했다.[7] 이들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 활동하며 콘스탄티노폴리스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요한 스콜라스티쿠스 등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 중세 명목론자 콩피에뉴의 로셀린: 삼위의 인격이 'tres res'(3개의 대상)가 아니면 삼위일체가 모두 성육신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수아송 공의회(1092-1093)에서 정죄받았다.[7]
- 피에르 파이디트: 초기 교부들이 삼신론자였다고 주장하여 비판받았다.[7]
- 안톤 귄터: 삼신론 혐의를 받고 저작이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 윌리엄 셜록: 성공회 신학자로, 세 신적 인격이 "세 개의 뚜렷한 무한한 정신"이라고 주장하여 로버트 사우스 등에게 비판받았다.[7]
- 조셉 빙엄: 교부들을 삼신론자로 묘사하여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쫓겨났다.[7]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 일부 비평가들은 신격을 세 개의 뚜렷한 신들의 협의회로 가르치는 몰몬교를 삼신론적이라고 비판한다.[8][9]
-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일부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을 세 개의 개별적인 존재로 구성된 하나의 그룹으로 보는 삼신론적 견해를 가졌다고 주장한다.[10]
3. 2. 동방 기독교
요한 필로포누스는 6세기 중반경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이자 단성론자였으며, 삼위일체 안에 신적 인격의 수에 따라 세 개의 분리된 본성, 실체 및 신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삼신론 혐의를 받았다. 그는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인 ''종'', ''유형'', ''개체''로 정당화하려 했다.[7]4. 현대의 삼신론 논쟁
현대의 삼신론 논쟁은 주로 주류 신학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경향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6세기 후반, 단성론의 한 분파였던 요한 필로포누스는 삼위 안에 세 개의 분리된 본성, 실체, 신이 있다고 보아 삼신론 혐의를 받았다.[7]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인 '종', '유형', '개체'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 했다.
중세 시대에는 콩피에뉴의 로셀린이 명목론의 창시자로서 필로포누스와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가 1092-1093년 수아송 공의회에서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받았다.[7] 안셀름은 로셀린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피에르 파이디트는 초기 교부들이 삼신론자였다고 주장하며 삼신론 형태를 실천했고,[7] 러시아 구교도의 아브바쿰도 삼신론 혐의를 받았다. 트리어의 가톨릭 사제 옘스는 삼위일체 안에 세 개의 유사한 본성이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가 비오 7세에 의해 정죄되었다.[7] 안톤 귄터 역시 삼신론 혐의로 저작이 금서 목록에 올랐다.
개신교에서는 하인리히 니콜라이가 삼신론과 관련된 인물로 언급된다.[7] 성공회에서는 윌리엄 셜록이 세 신적 인격을 "세 개의 뚜렷한 무한한 정신"으로 묘사하여 논쟁을 일으켰다.[7] 조셉 빙엄은 교부들을 삼신론자로 묘사한 설교로 인해 옥스퍼드 대학에서 쫓겨났다.[7]
4. 1. 몰몬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자들은 스스로 삼신론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몰몬교의 신격이 세 개의 뚜렷한 신들의 협의회이며, 완벽하게 *목적, 연합 및 사명에서 하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존재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삼신론적 또는 다신론적이라고 말한다.[8][9]4. 2.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일부 사람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아버지, 아들, 성령에 대한 삼신론적 견해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들의 단일성을 하나의 존재로 구성된 신격으로 보지 않고 세 개의 개별적인 존재가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10]5. 한국 개신교와 삼신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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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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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es Seventh-day Adventism Teach the Trinity?
http://www.cultor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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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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