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티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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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티모르는 남반구에 위치하며 인도네시아 동누사틍가라 주의 일부로, 티모르 섬의 서쪽 절반(동티모르의 오에쿠시 제외)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주요 도시로는 쿠팡이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동티모르 사이에 위치하여 인도네시아 무역에 전략적 요충지이다. 계절풍 기후로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며, 험준한 산악 지형이 특징이다. 역사는 네덜란드 식민 지배를 거쳐 1949년 인도네시아에 편입되었으며,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한다. 경제는 농업에 기반하며, 백단 오일 생산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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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티모르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서티모르 |
다른 이름 | Timor Barat (티모르바랏) 네덜란드령 티모르 인도네시아령 티모르 |
지역 구분 | 지역 |
![]() | |
행정 구역 | |
국가 | 인도네시아 |
주 | 동누사텡가라 주 |
중심 도시 | 쿠팡 |
하위 행정 구역 | 벨루 군 쿠팡 군 말라카 군 북중티모르 군 남중티모르 군 |
지리 | |
면적 | 14513.03 제곱킬로미터 |
최고 고도 | 2427 미터 |
최고 지점 | 무티스 산 |
인구 통계 | |
인구 (2023년 추정) | 2011269명 |
시간대 | |
시간대 | 인도네시아 중부 표준시 |
UTC 오프셋 | +8 |
식별 번호 | |
지역 번호 | (62)3xx |
차량 번호판 | DH |
기타 정보 | |
인간 개발 지수 | 증가 0.631 (중간) |
추가 정보 | |
각주 | 면적은 해안 섬을 제외한 14,513 제곱킬로미터임. |
2. 지리
서티모르는 남반구에 위치하며, 북쪽과 서쪽으로는 인도네시아, 동쪽으로는 동티모르, 남쪽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접하고 있다.
서티모르는 티모르섬의 서쪽 절반(동티모르에 속하는 오에쿠시 현 제외)을 포함하며, 인도네시아 동누사틍가라주에 속한다. 티모르 섬 서쪽 끝에 위치한 쿠팡은 서티모르 최대 도시이자 주요 항구이며, 동누사틍가라 주의 주도이다. 면적 14513km2[42]인 인도네시아령 티모르 섬 서쪽 지역은 쿠팡 시, 벨루 현(현청소재지: 아탐부아), 쿠팡 현(세마우섬 포함, 현청소재지: 쿠팡), 남중티모르 현(현청소재지: 소에), 북중티모르 현(티모르 텐가 우타라, 현청소재지: 케파메나누) 등의 행정구역(카부파텐, kabupaten)으로 나뉜다. 2012년 12월 14일, 남벨루는 말라카 현(현청소재지: 베툰)이라는 새로운 행정구역이 되었다.
북쪽 해안에 위치한 면적 817km2의 오에쿠시 현 지역은 동티모르에 속하며, 판테 마카사르가 특별행정구역의 수도이다.[43]
서티모르는 복잡한 지질학적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까운 거리 내에서 고도 차이가 큰 것이 특징이다. 지표면의 60% 이상은 험준한 저산맥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악 지역과 고원에서 흘러내리는 강과 개울은 깊은 V자 계곡을 형성한다. 서티모르의 최고봉은 무티스 산으로, 높이는 2427m이다.[44]
서티모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동티모르 사이에 위치하여 인도네시아 무역에 있어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2. 1. 기후
서티모르는 말레이 제도의 일반적인 기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티모르섬의 서쪽은 전형적인 계절풍 기후를 보인다. 10월부터 5월까지 서 계절풍 시기에는 폭우가 쏟아지며, 나머지 기간에는 동 계절풍의 영향으로 극심한 건조기를 겪는다. 이러한 기후 특성으로 인해 서티모르에는 광활한 사바나가 펼쳐져 있으며, 강수량이 적어 비교적 건조한 기온을 유지한다. 집중호우가 내릴 때는 강이 급류로 변하여 교통과 통신에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과거에는 고립된 고원과 산악 지형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자치적인 영토가 등장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1]3. 역사
16세기부터 인도네시아와 같이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949년에 인도네시아와 독립하였는데, 이때 인도네시아에 자동으로 편입되었다.[1]
1640년 네덜란드는 쿠팡 근처 티모르섬에 최초의 요새를 건설하면서 섬의 정치적 분할이 시작되었다. 쿠팡 만(Kupang Regency)은 섬 전체에서 가장 좋은 천연 항구로 여겨졌다. 1642년부터 간단한 요새가 포르투갈 주둔지를 보호했으나, 1644년 네덜란드의 두 차례 공격은 실패했다. 안토니오 드 상 자코인토 지휘하의 도미니크 수도회는 1647년 새로운 요새를 건설했지만, 1653년 네덜란드는 포르투갈 주둔지를 파괴하고 1656년 1월 27일 아놀드 드 블라미히 반 아우트쇼른 장군 지휘하의 강력한 병력으로 정복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쿠팡 밖의 토파세를 따르다가 큰 손실을 입어 요새에서 즉시 철수해야 했다. 당시 네덜란드의 영향권은 1667년 네덜란드에 함락된 마우바라를 제외하고 티모르 섬의 이 지역으로 제한되었다. 1688년 쿠팡 만에 있는 포르투갈 요새를 최종적으로 정복할 때까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는 "다섯 명의 충성스러운 동맹국"(손바이 케칠, 헬롱, 아마비 (1665년), 암포안 (1683년), 타에베누 (1688년))과 조약을 체결했다.[18]
18세기 중반, 티모르는 포르투갈 관점에서 두 부분, 즉 서쪽의 세르비아오(Servião) 주(16개 지역 왕국, 토파세 통제)와 동쪽의 벨루(Belu (province)) 주(46개 왕국)로 나뉘었다.[19][20] 토파세는 세 차례 티모르에서 네덜란드를 축출하려 했으나, 1749년 포르투갈과 토파세의 쿠팡 공격이 실패하면서 서티모르 지배는 붕괴되었다. 펜푸이 전투(엘 타리 국제공항 위치)에서 가스파르 다 코스타를 비롯한 많은 토파세 지도자들이 사망했고, 토파세와 동맹국 전사 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755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는 존 앤드류 파라비치니를 파견하여 소순다 열도의 여러 통치자들과 조약을 협상하게 했다. 1756년 솔로르, 로티섬, 사우섬, 숨바섬 그리고 서티모르 대부분 지역의 48명의 소왕들이 VOC와 동맹을 맺으면서 현재 인도네시아 서티모르의 네덜란드 지배가 시작되었다. 베위쿠-웨할레의 왕이자 벨루의 대공이었던 하신토 코레아도 중앙 티모르에 종속된 27개 지역을 대표하여 파라비치니 조약에 서명했다.[24] 그러나 웨할레는 모든 지역 통치자들을 네덜란드 편으로 끌어들일 만큼 강력하지 않았기에, 웨할레의 동쪽 옛 봉신들은 포르투갈 깃발 아래 남았고 웨할레 자신은 네덜란드 지배하에 놓였다.[25]
1790년 손바이와 마우바라의 반란이 네덜란드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식민지는 19세기까지 어려움을 겪었고, 네덜란드는 섬 내륙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파산 후 네덜란드 정부가 서티모르 통치를 인수했지만, 경제적으로 흥미롭지 않고 먼 쿠팡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무역은 주로 중국인이 담당했다.
1797년 영국은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점령한 후 이곳에 정착할 수 있다는 우려로 쿠팡 점령을 시도했으나, 지역 주민과 노예의 도움을 받은 네덜란드 사령관에 의해 쫓겨났다. 1799년 회사 붕괴로 이 지역은 네덜란드의 공식 통치로 돌아왔다. 나폴레옹 전쟁 중인 1811년 영국이 쿠팡을 점령했고, 1812년에는 영국 통치가 네덜란드 서티모르 전체로 확대되었다. 오라녜-나사우 왕가가 네덜란드 왕위에 복귀한 1816년 10월 7일에야 네덜란드는 티모르 소유지를 공식적으로 되찾았다.[31][15]
1851년 포르투갈 총독 조제 조아킴 로페스 드 리마는 리스본 승인 없이 외쿠시(Oe-Cusse Ambeno)를 제외한 서쪽 지역을 네덜란드에 할양하는 합의에 도달했다.[32] 리스본이 조약을 알게 되자 총독은 폐위되었지만, 조약은 1854년 재협상되어 1859년 리스본 조약으로 비준될 때까지 무효화될 수 없었다. 이 조약으로 티모르의 여러 작은 왕국들이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권위 아래 분할되었으나, 바다 접근이 불가능한 외딴 지역, 티모르 왕국의 불분명한 경계 등 약점이 존재했다.[33]
1893년, 1904년, 1913년 세 차례 협상 끝에 동티모르-인도네시아 국경의 최종 국경 문제가 해결되었다. 1916년 8월 17일 헤이그에서 동티모르와 서티모르 사이의 국경을 정의하는 조약이 체결되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34]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초, 일본이 티모르섬을 점령했다. 1945년 8월 17일 일본 항복 3일 후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네덜란드는 서티모르를 다시 영유하려 했으나, 인도네시아와의 게릴라전 끝에 1950년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서티모르를 동누사 틍가라 주의 일부로 선포했다.
3. 1. 선사 시대
티모르는 이 지역의 일반적인 정착의 일부로서 섬에 정착했다. 인류학자들은 세 차례의 이주 물결의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추측하며, 이는 티모르의 다양한 민족 문화적 다양성을 설명하기도 한다.[8] 최후 빙하기 동안 약 기원전 4만 년에서 2만 년 사이에 북쪽과 서쪽에서 오스트랄로-파푸아인들이 티모르에 도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티모르를 지배하는 아토인 메토족은 이 첫 번째 정착민들의 후손으로 여겨지지만, 그들의 언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한다. 헬롱족도 마찬가지인데, 원래 쿠팡 주변 지역에 거주했지만 아토인 메토족에 의해 섬의 서쪽 끝으로 밀려났다.[9] 기원전 3000년경, 두 번째 이주 물결로 멜라네시아인들이 서쪽에서 와서 타원형 석도끼 문화를 티모르에 전파했다. 동티모르와의 국경 지대에 있는 부낙족은 그들의 후손 중 하나이다. 선사 시대에 티모르로 이주한 마지막 민족은 말레이인이었다. 말레이인이 티모르에 한 번의 물결로 도착했는지, 두 번의 물결로 도착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징후가 있다. 남중국과 북부 인도차이나 출신의 원말레이인들은 기원전 2500년경에 티모르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동아시아인들의 확장으로 인한 압력 아래에서 군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아마도 서기 500년경에는, 더 발전된 농업 기술과 새로운 금속 지식을 갖춘 철기 시대 오스트로네시아인에서 출현한 제2말레이인들이 군도 전체에서 우세한 인구가 되었고 티모르에도 도착했다. 서티모르 동부의 테툼족은 동티모르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을 형성하며 말레이 이주민의 후손이고, 국경 지역에 사는 케막족도 마찬가지이다.3. 2. 식민지 시대
16세기에 티모르섬에 대한 유럽의 식민 지배가 시작되었다. 1512년(다른 자료에는 1509년 또는 1511년) 포르투갈 항해사 안토니우 드 아브레우(António de Abreu)가 향신료 제도(Spice Islands)를 찾던 중 티모르 섬을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10][11]최초의 포르투갈인들이 티모르에 도착했을 때, 섬은 여러 작은 왕국들로 나뉘어 있었다. 섬의 중앙부는 베할리(Wehale) 왕국(Wehali)이 테툼, 부낙, 케막 등 여러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지배하고 있었다. 테툼족이 왕국의 핵심을 이루었고, 오늘날 서티모르 지역에 위치한 수도 라란(Laran) 마을(Laran (indonesia))은 당시 섬 전체의 정신적 중심지였다.[12] 베할리 왕국을 모델로 하여 서티모르에 손바이(Sonbai) 왕국(Sonba'i)이라는 또 다른 왕국이 생겨났다.[13]
1556년, 도미니크 수도회(Dominican Order)는 오늘날 판테 마카사르(Pante Macassar)에서 서쪽으로 6km 떨어진 리파우(Lifau) 마을을 설립하여[14] 향나무 무역을 확보했다. 포르투갈은 초기 티모르에 소수의 주둔지와 무역 기지를 설립했고, 네덜란드의 위협이 커지자 점령지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1568년에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처음으로 티모르에 도착했다.
1642년 포르투갈은 프란시스쿠 페르난데스(Francisco Fernandes (commander)) 지휘하에 섬 내륙으로 지배력을 확장하기 위한 대규모 침략을 시작했다. 이 침략은 해안 지역의 기독교화된 통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전의 기독교 전파는 포르투갈의 신속하고 잔혹한 승리에 도움이 되었다. 페르난데스는 먼저 손바이 지역을 지나 빠르게 섬의 종교 및 정치 중심지로 여겨졌던 베할리 왕국을 정복했다.[15]
승리 후, 토파스(Topasses)의 이주가 계속 증가했다. 토파스는 솔로르(Solor)와 플로레스(Flores) 섬 주민들과 포르투갈인의 후손인 혼혈인들이었다. 토파스의 중심지는 티모르의 주요 포르투갈 기지였던 리파우가 되었다. 나중에 토파스는 오늘날의 케파메나누(Kefamenanu)와 니키니키(Niki-Niki) 마을의 내륙에도 정착했다. 그들은 지역 통치자들로부터 토지를 받았고, 곧 노이무티(Noimuti)와 같은 자체 왕국을 형성하여 섬의 강대국이 되었다.[16] '호르나이(Hornay)'와 '코스타(Costa)' 두 부족은 때때로 티모르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으며, 그들 사이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17]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초, 일본이 티모르섬을 점령했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지 불과 3일 후인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네덜란드는 다시 서티모르를 영유하려 했으나, 인도네시아와의 게릴라전에 돌입하여 결국 1950년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서티모르를 동누사 틍가라 주의 일부로 선포했다.
3. 2. 1.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시대
16세기부터 인도네시아와 같이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다가 1949년에 인도네시아와 독립을 하였는데, 이때 인도네시아에 자동으로 편입되었다.[1] 1520년 포르투갈인이 티모르섬의 영유를 선포했지만, 1640년 네덜란드인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의 지배하에 서티모르에 정착을 시작하여 포르투갈인들을 몰아냈다.[1]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해산된 후에도 그대로 네덜란드령이 되었다.[1] 이후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조약(1859년 서명, 1893년 수정)에 따라 1916년까지 동서 티모르의 경계선이 결정되었다.[1]3. 2. 2. 나폴레옹 전쟁 시기
16세기부터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다.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해산된 후에도 네덜란드령으로 남았다.[1] 이후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조약(1859년 서명, 1893년 수정)에 따라 1916년까지 동서 티모르의 경계선이 결정되었다.[1]3. 3.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
16세기 포르투갈이 티모르섬을 지배했지만, 1640년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통해 서티모르에 정착하면서 포르투갈인들을 몰아냈다.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해산된 후에도 네덜란드령으로 남았고, 이후 1859년과 1893년 두 차례 조약을 통해 1916년까지 동서 티모르의 경계선이 확정되었다.[1]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 초, 일본이 티모르섬을 점령했다. 1945년 8월 17일, 일본 항복 3일 후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네덜란드는 서티모르를 다시 영유하려 했으나, 인도네시아와의 게릴라전 끝에 1950년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서티모르를 동누사틍가라주의 일부로 선포했다.[1]
3. 3. 1. 페르메스타 운동
16세기부터 인도네시아와 같이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다가 1949년에 인도네시아와 함께 독립하였는데, 이때 인도네시아에 자동으로 편입되었다.3. 3. 2. 동티모르 분쟁
16세기부터 인도네시아와 같이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다가 1949년에 인도네시아와 함께 독립하였는데, 이때 인도네시아에 자동으로 편입되었다.4. 주민
서티모르에는 2005년 기준으로 약 195만 명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은 오스트로네시아계, 파푸아계, 폴리네시아계 민족이다. 화교(중국계)도 소수 거주한다.[47]
이 지역의 인구는 다양한 부족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다. 주요 부족은 원주민인 아토니(Atoni) 부족이지만, 누사 텅가라의 여러 섬 출신의 티모르인, 로테인 등 이주 부족들도 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서티모르 인구는 약 200만 명이며, 인구 중심지는 동누사틍가라주의 주도이기도 한 쿠팡시이다.[47] 서티모르 인구는 대부분 농부, 목축업자, 어부, 상인이다. 그러나 도시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 및 산업 부문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도시로 이주했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동티모르(Timor Leste)와 인접한 서티모르의 지리적 위치는 이 지역과의 오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유대 관계를 의미한다.
4. 1. 종교
서티모르의 주요 종교는 가톨릭(56%), 개신교(35%), 이슬람교(8%), 힌두교와 불교(0.4%)이다.[49] 서티모르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인이 주로 거주하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동티모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서티모르 주민 대다수(94.8%)의 종교이며, 54.1%가 개신교, 40.7%가 가톨릭이다. 이슬람교는 5%가 따르고 있다. 나머지 0.2%는 힌두교도와 불교도를 포함한다.[50]원래 티모르 사람들은 샤머니즘 신앙을 가졌다. 15세기부터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이슬람의 영향은 티모르에 미치지 못했다. 최초의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들이 1556년에 정착하여 리파우를 세웠다. 도미니코 수사 안토니오 타베이라는 티모르의 선교 활동을 장려했다. 16세기 후반, 그는 북쪽과 남쪽 해안의 왕국에 집중했다. 1640년까지 소수의 사제들이 이미 티모르에 10개의 선교부와 22개의 교회를 설립했다. 그러나 기독교로 개종한 소수는 얼마 남지 않았다. 조상 숭배와 정령에 대한 믿음은 널리 퍼져 있었다.

대규모 가톨릭 선교 프로그램이 현지인들 사이에서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였지만, 16명의 현지 왕자들이 개종하면서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나중에 서티모르에 이어졌다. 오늘날 서티모르 주민의 약 95%는 기독교인(개신교 54%, 가톨릭 41%)이고, 5%는 무슬림이다. 실제 기독교인 수는 약 80~85%로 매우 높다. 그러나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70% 이상이 여전히 조상 숭배와 정령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티모르 동부(벨루, 말라카, 북중앙 티모르 레젠시)에서는 가톨릭 신자의 비율이 훨씬 높다. 예를 들어, 아탐부아 교구의 거의 50만 명에 달하는 인구 중 96.5%가 가톨릭 신자이다. 가톨릭 선교 단체인 네덜란드 티모르 사도좌구에서 쿠팡 대교구와 그 산하인 아탐부아 교구가 생겨났다. 외쿠시암베누는 동티모르 딜리 대교구에 속한다.
4. 2. 언어
서티모르에서는 국가 언어인 인도네시아어 외에도 오스트로네시아어족(서오스트로네시아어군 동인도네시아어 아군)의 파브로닉어족에 속하는 여러 토착어가 사용된다. 서티모르에서는 서오스트로네시아어군에 속하는 언어들이 사용되고, 동티모르에서는 다른 언어들이 사용된다. 이러한 언어에는 우압 메토어, 테툼어, 음다오네스어, 로티네스어, 헬롱어가 포함된다. 인도네시아어 계열이 아닌 언어들(특히 동쪽 지역)은 일반적으로 파푸아어족으로 분류된다. 아토인 메토족의 언어인 우압 메토어는 테툼어와 케막어와 마찬가지로 서오스트로네시아어에 속하는 반면, 부낙어는 파푸아어족으로 분류된다.[48]
아토인 메토어와 관련된 헬롱어와 로티네스어는 섬의 서쪽에서 사용된다. 헬롱어는 원래 쿠팡의 언어였지만, 인도네시아어에 의해 대부분 대체되었으며, 동해안을 따라 도시 남쪽의 몇몇 마을과 세마우섬에서만 사용된다. 로티섬의 언어인 로티네스어는 많은 방언으로 나뉜다. 19세기 네덜란드의 재정착 프로그램으로 인해 로티네스어는 서티모르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된다.
네덜란드어(식민지 언어)에 대한 지식은 현재 노년층에 국한된다.
5. 행정 구역
(설립 연도
포함)
(km2)
인구조사
인구조사
추산치
2022년 추산치
(Timor Tengah Selatan)
(Timor Tengah Ut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