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미콜라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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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 미콜라 대성당은 19세기 말 키이우 폴란드인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 건설된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브와디스와프 호로데츠키가 최종 설계를 맡았으며, 1899년부터 1909년까지 기부금으로 건설되어 성 니콜라스에게 봉헌되었다. 소련 시대에는 폐쇄되어 기술적 용도로 사용되다가, 1979-1980년 복원되어 우크라이나 국립 오르간 및 실내악의 집으로 사용되었다. 1992년 가톨릭 미사가 재개되었으며, 현재는 키이우 시 문화부에 속해 있다. 2021년 화재로 오르간이 소실되고 내부가 손상되었으며, 202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스테인드 글라스가 파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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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콜라 대성당 | |
---|---|
기본 정보 | |
![]() | |
종교 | 가톨릭 교회 |
소속 | 라틴 교회 |
위치 | 페체르스크 라이온, 키이우, vulytsia Velyka Vasylkivska |
건축 | |
건축 양식 | 고딕 리바이벌 |
완공 년도 | 1909년 |
건축가 | Władysław Horodecki |
정면 방향 | 서쪽 |
첨탑 수 | 2 |
최대 높이 | 60m |
기타 정보 | |
기능 상태 | 사용 중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우크라이나어 명칭 | Костел Св. Миколая (Kostel Sv. Mykolaya) |
폴란드어 명칭 | Kościół Świętego Mikołaja w Kijowie (코시치우 스비엥테고 미코와야 프 키요비에) |
2. 역사
이 교회는 1897년부터 1909년 사이에 키이우 내 폴란드인 공동체가 확장됨에 따라 건설되었다.[2] 1909년에 성 니콜라스의 이름으로 축성되었으나, 건설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1938년 소련 당국은 교회를 폐쇄하고, 기술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KGB 건물로 사용했다.[5] 1979년부터 1980년까지 복원된 후에는 우크라이나 국립 오르간 및 실내악의 집으로 사용되었다.
1992년부터 가톨릭 미사와 콘서트가 다시 열리고 있다. 현재 건물은 키이우 시 문화부 소유이지만, 라틴 가톨릭 교회는 교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1]
2021년 9월 3일 밤, 교회에 화재가 발생하여 크게 손상되었다. 2024년 12월 20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파손되었다.[11]
2. 1. 건설 배경 및 초기 역사 (1897-1909)


19세기 말, 키이우 내 폴란드인 공동체가 커짐에 따라 새로운 가톨릭 교회 건립 필요성이 제기되었다.[2] 브라니츠키 백작의 노력으로 건물 허가를 얻었다.[3]
1898년 설계 공모전에서 스타니스와프 보워프스키가 60 높이의 두 개의 탑이 있는 고딕 양식의 구조를 출품하여 선정되었다. 최종 설계 및 관리는 폴란드 건축가 브와디스와프 호로데츠키가 맡았다.[1][4] 에밀리오 살라가 인공 석재를 사용하여 조각 장식을 만들었다.[1]
키이우의 고르지 못한 지반에서 구조물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안톤 슈트라우스가 새롭게 도입한 발명품인 구멍을 뚫고 채우는 말뚝으로 보강했다.[1] 건설 작업은 1899년부터 1909년까지 10년 동안 전적으로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이루어졌다.
1909년, 성 미콜라 대성당은 성 니콜라스의 이름으로 축성되었지만, 건설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고딕 양식의 3층 집은 교구 성직자들을 위해 교회 왼쪽에 지어졌다.
2. 2. 소련 시대 (1938-1991)
1938년, 소련 당국은 로마 가톨릭 사제가 소련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 2년 동안 "부재" 상태가 되자 교회를 폐쇄했다.[5] 폐쇄 후 얼마 동안 이 건물은 징벌 기관에서 기술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어느 시점에서는 KGB 서비스 건물로 사용되었다.[5] 1979-1980년에 우크라이나 SSR 장관 회의의 의뢰를 받아 건축가 O. 그라우지스 및 I. 투칼레프스키가 복원한 후 교회는 우크라이나 국립 오르간 및 실내악의 집(Національний будинок органної та камерної музики України|나치오날니 부디노크 오르한노이 타 카메르노이 무지키 우크라이니uk)으로 바뀌었다.[1] 심하게 손상된 교회의 재건과 복원을 위해 건물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발트 3국에서 제작되었고, 가구는 리비우에서 제작되었으며, 고품질 나무 바닥은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에서 생산되었다.[1]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주데텐란트)에 있던 회사인 ''리에거–클로스''는 교회를 위해 오르간을 제작했다. 제작자는 오르간을 건물 자체와 건축적으로 연결하려고 노력했다.2. 3. 독립 우크라이나 시대 (1991-현재)
1992년부터 가톨릭 미사와 콘서트가 이곳에서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얀 푸르빈스키 주교는 교회를 축성했고, 1992년 1월 4일에 미사가 거행되었다.[1] 현재 성 미콜라 대성당 건물은 키이우 시 문화부 소유이지만, 라틴 가톨릭 교회는 건물을 돌려받기를 원하고 있다.[1] 키이우 시 당국은 오르간 음악의 집 이전을 위한 장소가 해결되기 전에는 건물을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6] 2009년부터 건물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었으나,[7] 오르간 음악의 집 이전 문제와 얽혀 해결이 지연되었다. 2020년 우크라이나 문화부는 2023년까지 오르간 음악의 집을 위한 새 건물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8]종교 의식은 마리아 무염시태 선교 수도회 사제들이 주관한다. 미사는 주로 우크라이나어로 진행되지만, 폴란드어, 라틴어, 스페인어로도 진행된다.[9]
2. 3. 1. 2021년 화재
2021년 9월 3일 밤, 성 미콜라 대성당에서 오르간 리허설 도중 화재가 발생했다.[10] 이 화재로 오르간이 소실되고, 커다란 샹들리에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등 성당 내부가 크게 손상되었다.[10]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성당 건물과 특히 오르간의 복구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10]2. 3. 2. 2024년 러시아 미사일 공격
2024년 12월 20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성 미콜라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손상되었다.[11]3. 건축
이 교회는 60m 높이의 두 개의 첨탑을 가진 고딕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1898년에 열린 설계 공모전에서 스타니스와프 보워프스키가 선정되었으나, 최종 수정 및 관리는 브와디스와프 호로데츠키가 맡았다.[1][4] 에밀리오 살라는 인공 석재를 사용하여 조각 장식을 추가했다.[1]
키이우의 불안정한 지반 때문에 안톤 슈트라우스가 고안한 새로운 공법인 구멍을 뚫고 채우는 말뚝으로 건물을 보강했다.[1] 건설은 1899년부터 1909년까지 10년간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진행되었다.
1979-1980년 복원 당시, 스테인드 글라스는 발트 3국에서, 가구는 리비우에서, 나무 바닥은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에서 제작하는 등 우크라이나 각 지역의 재료들을 활용했다.[1] 체코슬로바키아의 ''리에거–클로스''사에서 제작한 오르간은 건물과 건축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다.
2021년 9월 3일 화재로 오르간이 파괴되고 내부가 손상되었으며,[10] 2024년 12월 20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스테인드 글라스가 손상되었다.[11]
4. 현재 상황 및 과제
1992년부터 성 미콜라 대성당에서는 가톨릭 미사와 콘서트가 함께 열리고 있다. 얀 푸르빈스키 주교가 성당을 축성하고 1992년 1월 4일에 첫 미사가 거행되었다.[1] 현재 성당 건물은 키이우 시 문화부 소유이지만, 가톨릭 교회는 건물을 현지 라틴 가톨릭 공동체에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1] 그러나 키이우 시 당국은 오르간 음악의 집 이전을 위한 공간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건물을 넘겨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6] 2009년부터 건물은 긴급한 보수가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7] 2020년 우크라이나 문화부는 2023년까지 오르간 음악의 집을 위한 새 건물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8]
종교 전례는 마리아 무염시태 선교 수도회 사제들이 집전한다. 대부분의 전례는 우크라이나어로 진행되지만, 폴란드어, 라틴어,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날도 있다.[9]
2021년 9월 3일 밤, 성당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화재로 오르간이 파괴되고 성당 내부가 손상되었으며, 큰 샹들리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문화 정보 정책부는 오르간 음악 리허설 도중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당시 성당은 우크라이나 로마 가톨릭 교회와 우크라이나 국립 오르간 및 실내악 홀이 함께 사용하고 있었는데, 건물 자체는 심각한 피해를 피했지만 오르간은 완전히 소실되었다.[10]
2024년 12월 20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11]
참조
[1]
서적
guidebook: Touring Kyiv
Baltia Druk
[2]
서적
Kiev: A Portrait, 1800–1917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6
[3]
서적
Biblioteka Branickich i Tarnowskich w Suchej
BTSK
1986
[4]
서적
History of Ukraine: The Land and Its Peoples
University of Toronto Press
2010
[5]
서적
Kyiv and Kyivans
Kurch
[6]
웹사이트
Костел – у заручниках
https://day.kyiv.ua/[...]
[7]
웹사이트
Руйнується костел святого Миколая у Києві
https://gazeta.ua/ar[...]
[8]
웹사이트
У Києві до кінця 2023 року побудують «Будинок музики»
https://www.kmu.gov.[...]
[9]
웹사이트
St. Nicolas Cathedral
http://nicolasparish[...]
2020-02-20
[10]
뉴스
Fire damages St. Nicholas Cathedral in Kyiv, destroys its organ
https://www.kyivpost[...]
2021-09-04
[11]
뉴스
Fire, casualties reported in Kyiv amid Russian missile attack
https://kyivindepend[...]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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