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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동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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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손수는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군으로, 아버지 손태가 사망한 후 전장군 겸 하구독이 되었다. 손호의 의심을 받아 서진으로 망명하여 표기장군에 임명되었으나, 오나라 멸망 후 복파장군으로 강등되었다. 그는 오나라 멸망을 슬퍼하며, 강남 출신으로 강북 사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주처의 일화에 등장하며, 영녕 원년에 사망하여 표기장군으로 추증되었다. 부부 사이가 좋았으나, 아내의 욕설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2. 생애

234년 손권을 따라 신성(新城)을 공격하던 아버지 손태(孫泰)가 위나라 군대가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하자, 손수는 전장군(前將軍) 겸 하구독(夏口督)이 되었다.[2] 손수는 황족 중에서도 인망이 두터웠고, 전장군으로서 위와의 최전선인 하구를 지키며 군부 내에서의 영향력도 강했기 때문에, 원흥 원년(264년)에 즉위한 사촌 손호에게 의심을 받았다. 270년 손호는 손수가 병권을 가진 것을 두려워하여 측근 하정(何定)을 보내 하구 일대를 약탈하게 했다.[2] 이 때문에 해를 입을까 두려워한 손수는 가족들과 함께 진나라로 달아났다. 사마염(司馬炎)은 그해 12월에 손수를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임명하고 회계공(會稽公)으로 봉했다.

280년 오나라가 멸망하자, 손수는 사마염에게 축하를 드리지 않고 남쪽을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원래 진나라에서 손수에게 높은 벼슬을 내린 것은 오나라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는데, 오나라가 멸망했으므로 더는 쓸모가 없어졌다 여기고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 강등시켰다.

서진의 사마염(무제)은 손수를 후하게 맞이하여 표기장군에 임명하고 봉록까지 지급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외사촌인 괴씨를 하사했다. 함녕 6년(280년), 오가 진에 의해 멸망하자, 손수는 "원종(손호)은, 어찌 이리 어리석은 군주인가", "아, 하늘이시여, 이것은 누구의 죄인가"라며 크게 슬퍼했다. 오의 멸망과 동시에 복파장군으로 강등되었지만, 장군부의 권한은 계속 허용되었다. 그러나 강남에서 온 항복자인 손수에게 강북의 사람들이 따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강남에서 인재를 구해야만 했다. 손수의 부하가 된 인물 중 한 명으로 도간이 있다.

원강 6년(296년), 반란을 일으킨 제만년의 토벌에 참가한 주처는 상관과 동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주처에게 노모를 간호한다는 핑계로 출전을 사퇴하도록 권유한 인물로서, 복파장군인 손수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주처는 충고를 따르지 않았고, 결국 상관인 사마동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영녕 원년(301년)에 사망하였고, 다시 표기장군으로 추증되었다. 조왕 사마륜의 측근에 동명이인이 있었는데, 이쪽은 사마륜이 실권을 잡았을 때 표기장군에 임명되었다.

2. 1. 오나라에서의 활동

234년 손권을 따라 신성(新城)을 공격하던 아버지 손태(孫泰)가 위나라 군대가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하자, 손수는 전장군(前將軍) 겸 하구독(夏口督)이 되었다.[2] 270년 손호는 손수가 병권을 가진 것을 두려워하여 측근 하정(何定)을 보내 하구 일대를 약탈하게 했다.[2] 이 때문에 해를 입을까 두려워한 손수는 가족들과 함께 진나라로 달아났다.

손수는 황족 중에서도 인망이 두터웠고, 전장군으로서 위와의 최전선인 하구를 지키며 군부 내에서의 영향력도 강했기 때문에, 원흥 원년(264년)에 즉위한 사촌 손호에게 의심을 받았다. 후에 주살당할 뻔했기에 건형 2년(270년)에 일족을 이끌고 서진으로 망명했다.

2. 2. 서진으로의 망명과 활동

270년 손호(孫皓)는 손수가 병권을 가진 것을 두려워하여 측근 하정(何定)을 보내 하구 일대를 약탈하게 했다.[2] 이 때문에 해를 입을까 두려워한 손수는 가족들과 함께 진나라로 달아났다. 사마염(司馬炎)은 그해 12월에 손수를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임명하고 회계공(會稽公)으로 봉했다.

280년 오나라가 멸망하자, 손수는 사마염에게 축하를 드리지 않고 남쪽을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원래 진나라에서 손수에게 높은 벼슬을 내린 것은 오나라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는데, 오나라가 멸망했으므로 더는 쓸모가 없어졌다 여기고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 강등시켰다.

3. 일화

손수 부부는 부부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딱 한 번, 쾌씨는 손수에게 "너구리 새끼[1]"라고 욕한 적이 있었다. 손수는 그 후 한동안 화를 내며 그녀를 피하고 상대하지 않았다. 그 후, 아내는 후회하여 사마염에게 부부 화해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며칠 후, 사마염은 궁중에 백관을 소집했을 때, 종료 후에 단독으로 그만을 남겨두고 "나는 얼마 전 대사령을 실행했다. 그대는 쾌부인을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타이르자, 이에 손수는 반성하고 머리를 벗고 아내에게 사과했다. 부부는 화해할 수 있었고, 부부의 금실은 더욱 좋아졌다고 한다 (『세설신어』).

4. 평가

손수는 전장군으로서 위나라와의 최전선인 하구를 지키고 있었다. 황족 중에서도 인망이 두터웠고, 장군으로서 군부 내에서의 영향력도 강했기 때문에, 원흥 원년(264년)에 즉위한 사촌 손호에게 의심을 받았다. 후에 주살당할 뻔했기에 건형 2년(270년)에 일족을 이끌고 서진으로 망명했다.

사마염(무제)은 손수를 후하게 맞이하여 표기장군에 임명하고 봉록까지 지급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의 외사촌인 괴씨를 하사했다. 함녕 6년(280년), 오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손수는 "원종(손호)은, 어찌 이리 어리석은 군주인가", "아, 하늘이시여, 이것은 누구의 죄인가"라며 크게 슬퍼했다.

오나라의 멸망과 동시에 복파장군으로 강등되었지만, 장군부의 권한은 계속 허용되었다. 그러나 강남에서 온 항복자인 손수에게 강북의 사람들이 따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강남에서 인재를 구해야만 했다. 손수의 부하가 된 인물 중 한 명으로 도간이 있다.

원강 6년(296년), 반란을 일으킨 제만년의 토벌에 참가한 주처는 상관과 동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주처에게 노모를 간호한다는 핑계로, 출전을 사퇴하도록 권유한 인물로서, 복파장군인 손수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주처는 충고를 따르지 않았고, 결국 상관인 사마동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영녕 원년(301년)에 사망하였고, 다시 표기장군으로 추증되었다.

조왕 사마륜의 측근에 동명이인이 있었는데, 이쪽은 사마륜이 실권을 잡았을 때 표기장군에 임명되었다.

참조

[1] 문서 狢の仔
[2] 문서 자치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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