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렌드라나트 다스굽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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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렌드라나트 다스굽타는 1885년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인도의 철학자이자 산스크리트 학자이다. 그는 캘커타 대학교에서 서양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두 번 받았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스굽타는 인도 철학 연구에 헌신하여,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프라크리트어 원전을 바탕으로 인도 사상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인도 철학사》를 5권으로 집필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강사, 파리 국제 철학 학술 회의 대표, 인도 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왕립 문학 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다스굽타는 1952년 사망하기 전까지 《인도 철학사》 집필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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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렌드라나트 다스굽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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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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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887년 10월 18일 |
출생지 | 인도 제국 쿠슈티아 |
사망일 | 1952년 12월 18일 |
사망지 | 인도 러크나우 |
국적 | 인도 |
배우자 | 히마니 데비 |
자녀 | 6명 (그 중 마이트레이 센) |
학력 | |
교육 | 산스크리트 칼리지 캘커타 대학교 |
모교 | 케임브리지 대학교 |
박사 지도교수 | J. M. E. 맥타가트 |
박사 지도 학생 | 데비프라사드 차토파디아야 |
경력 | |
직업 | 교수 |
활동 기간 | 알 수 없음 |
철학적 정보 | |
관심 분야 | 동양 철학, 인도 철학 |
주요 저서 | 《인도 철학사》, 《인도 신비주의》 |
2. 생애
수렌드라나트 다스굽타는 1885년 10월 18일 당시 벵골(현재 방글라데시)의 쿠스티아에서 태어났다.[1][2][3] 그는 콜카타의 리폰 대학과 산스크리트 칼리지, 캘커타 대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와 서양 철학을 공부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1920년 인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마하라자 마닌드라 찬드라 난디의 후원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J. M. E. 맥태거트 밑에서 연구하여 두 번째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기 그의 대표작인 《인도 철학사》(A History of Indian Philosophy)의 첫 권이 출판되었으며(1921), 유럽 학계에서 뛰어난 논객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파리 국제 철학 학술 회의, 나폴리 국제 학술 회의, 하버드 국제 학술 회의 등 여러 국제 학회에 벵골 정부 및 캘커타 대학교 대표로 참석했으며, 미국과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강연했다.
인도로 돌아온 후에는 콜카타 프레지던시 칼리지 교수, 산스크리트 칼리지 교장, 캘커타 대학교의 조지 5세 국왕 정신 및 윤리 과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제자 중에는 미르체아 엘리아데와 데비프라사드 차토파디야야와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프라크리트어 원전을 바탕으로 인도 사상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헌신했으며, 이는 총 5권으로 계획된 《인도 철학사》라는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결실을 보았다.
1945년 건강 문제와 에든버러 대학교의 교수직 제안으로 영국으로 건너갔으나, 건강 악화로 인해 주로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영국 체류 중에도 《인도 철학사》 제4권, 《산스크리트 문학사》 등을 출판했다. 1950년 인도로 돌아와 러크나우에 정착했으며, 자와할랄 네루 총리의 지원을 받아 《인도 철학사》 마지막 권 집필에 매진했다. 그는 1952년 12월 18일, 마지막 저술 작업을 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1]
그는 첫 부인 히마니 데비와의 사이에 세 딸(마이트레이 데비, 치트리타 데비, 수미트라 마줌다르)과 세 아들(수바유 다스굽타, 수가타 다스굽타, 수바차리 다스굽타)을 두었으며, 1945년 제자였던 수라마 미트라와 재혼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885-1920)
수렌드라나트 다스굽타는 1885년 10월 18일, 당시 벵골 관구의 쿠스티아(현재 방글라데시)에 있는 바이디야 가문에서 태어났다.[1][2][3] 그의 조상이 살던 곳은 바리살 구의 고일라 마을이었다. 그는 콜카타의 리폰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전공하여 우등으로 졸업했으며, 1908년 산스크리트 칼리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10년에는 캘커타 대학교에서 서양 철학으로 두 번째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그는 인도 영화 감독 히만슈 라이의 여동생인 히마니 데비와 결혼하여 세 딸인 마이트레이 데비(1914-1989), 치트리타 데비(1919-2006), 수미트라 마줌다르와 세 아들인 수바유 다스굽타, 수가타 다스굽타, 수바차리 다스굽타를 두었다. 이 중 마이트레이 데비와 치트리타 데비는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다스굽타는 1916년에 그리피스 상을 받았고, 1920년에는 캘커타 대학교에서 인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마하라자 마닌드라 찬드라 난디는 그가 유럽 철학을 근원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유학 비용 전액을 지원해주었다. 이에 다스굽타는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J. M. E. 맥태거트 박사 밑에서 철학 연구생으로 학업을 시작했다.
2. 2. 인도에서의 교육 및 연구 활동 (1922-1945)
1924년 영국에서 돌아온 다스굽타는 콜카타 프레지던시 칼리지의 철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후 산스크리트 칼리지 교장을 거쳐 캘커타 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1932년에는 인도 철학회 회장을 맡았다. 그의 철학은 ''의존적 출현 이론''으로 알려졌으며, 미르체아 엘리아데와 데비프라사드 차토파디야야 등이 그의 유명한 제자들이다.
이 시기 다스굽타는 그의 대표작인 《인도 철학사》(A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집필에 몰두했다. 원래 한 권으로 계획했으나, 인도 전역에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작업 규모가 커져 총 다섯 권으로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이 저작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프라크리트어 원전을 바탕으로 인도 사상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다루려는 최초이자 유일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그는 특히 미출판된 원고들을 포함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인도 사상의 발전을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추적하고자 했으며, 이 방대한 작업에 큰 헌신을 보였다.
1942년에는 산스크리트 칼리지에서 은퇴하고 캘커타 대학교의 조지 5세 국왕 정신 및 윤리 과학 교수로 임명되어 3년간 재직하며 종교사에 관한 스테파노스 니르말렌두 강연을 진행했다. 1940년부터 심장 질환을 앓았지만, 연구와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개인적으로는 1941년경부터 첫 부인 히마니 마두리 다스굽타와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1945년 동료이자 제자였던 수라마 미트라와 재혼했다. 같은 해, 그는 캘커타 대학교에서 은퇴하였다. 에든버러 대학교로부터 아서 키스 교수의 후임으로 산스크리트어 교수직을 제안받았고, 의사들 역시 건강 문제로 영국 여행을 권했다. 이에 따라 1945년 영국으로 떠나면서 인도에서의 교육 및 연구 활동 시기를 마무리했다.
2. 3. 영국 생활과 말년 (1945-1952)
1945년 캘커타 대학교에서 은퇴한 다스굽타는 에든버러 대학교의 산스크리트어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이 자리는 아서 키스 교수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상태였다. 당시 심장 질환을 앓고 있던 다스굽타에게 의사들 또한 영국 여행을 권했다. 그러나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다시 병에 걸렸다.1945년 11월,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힌두교에 대한 마지막 공개 강연을 했다. 이후 그는 심각한 심장 질환으로 인해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5] 영국에서 5년(1945–1950) 동안 머물렀지만, 그는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인도 철학사》 제4권을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했고, 《산스크리트 문학사》를 캘커타 대학교에서, 《시인이자 철학자인 라빈드라나트》를 자신의 캘커타 출판사를 통해 출판했으며, 벵골어로 미학에 관한 책도 출판했다. 1950년 그는 인도의 러크나우로 돌아왔다.
1951년, 당시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의 도움으로 그는 《인도 철학사》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권 집필을 시작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철학 체계를 두 권으로 써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과 제자들은 그에게 자신의 철학을 먼저 완성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다스굽타는 인도 철학 연구를 자신의 삶의 신성한 사명으로 여기고 그 목적에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한 결의와 흔들리지 않는 헌신으로 그는 자신의 필생의 과업 완수에 매우 가까워졌다.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작업에 매달렸고, 1952년 12월 18일 사망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한 섹션을 완전히 마무리했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도 그는 아침과 오후 내내 남부 샤이비즘 섹션의 마지막 장을 작업했다. 그는 현대 심리학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던 중 그날 저녁 8시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1]
3. 학문적 업적
수렌드라나트 다스굽타는 라즈샤히 칼리지 강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여 치타공 칼리지에서 산스크리트어와 벵골어 교수를 지냈다. 이후 캘커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도 박사 학위를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1924년 인도로 돌아와 콜카타 프레지던시 칼리지 철학 교수, 산스크리트 칼리지 교장을 거쳐 캘커타 대학교 교수로 활동했다.
1932년에는 인도 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철학은 ''의존적 출현 이론''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르체아 엘리아데와 데비프라사드 차토파디야야와 같은 학자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다스굽타는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바르샤바 대학교는 그를 과학 아카데미 명예 회원으로 임명했으며, 영국 왕립 문학 학회 회원으로도 선출되었다. 파리의 소시에테 데 자미 뒤 몽드는 그를 위해 특별 환영회를 열었고, 파리 대학교의 저명한 산스크리트어 교수 루이 르누는 다스굽타를 샹카라나 파탄잘리가 환생한 인물에 비유하며 극찬했다.
그는 학문적으로 매우 활발하여 여러 국제 학회에 참여하며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논쟁했다. 나폴리 국제 철학 회의에서는 베네데토 크로체의 철학을 비판했으며[4], 루이 드 라 발레 푸생과 같은 불교 학자에게도 도전했다. 그의 날카로운 지적과 논증 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회 등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표도르 시체르바츠코이, 실뱅 레비 등 여러 학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가장 기념비적인 업적은 총 5권으로 구성된 《인도 철학사》의 집필이다.
3. 1. 《인도 철학사》 집필
벵골 주지사였던 로렌스 던다스, 제2대 제트랜드 후작은 치타공 대학 방문 중 다스굽타 교수와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이 대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로널드셰이 경은 다스굽타에게 그의 저서 《인도 철학사》 첫 권을 자신에게 헌정해 달라고 요청했다.다스굽타는 처음에 인도 사상의 역사를 단권으로 집필할 계획이었기에, 가능한 모든 자료를 한 권에 담으려 했다. 그러나 인도 전역에서 자료를 수집하면서 방대한 양의 출판 및 미출판 문헌이 드러났고, 이를 활용하려 할수록 작업 규모는 점점 커졌다.
그의 작업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프라크리트어 원전을 바탕으로 인도 사상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하려는 최초이자 유일한 시도였다. 14세기경 마다바차르야가 쓴 《사르바 다르사나 삼그라하》에서도 인도의 다양한 철학 학파를 간략히 소개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내용은 매우 간략했고 모든 철학 체계를 포괄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반면, 다스굽타는 《인도 철학사》 시리즈에서 다양한 자료, 특히 미출판 원고들을 통해 인도 사상의 발전을 역사적이면서도 비판적인 방식으로 추적했다. 그는 인도 사상의 숨겨진 보물을 발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그는 단권 집필 계획을 수정하여 총 다섯 권의 시리즈로 작업을 완성하기로 결정하고, 이 방대한 과제를 깊은 헌신과 열정으로 홀로 감당했다.
1942년, 다스굽타는 산스크리트 칼리지에서 은퇴하고 캘커타 대학교의 조지 5세 국왕 정신 및 윤리 과학 교수로 임명되어 3년간 재직하며 종교사에 관한 스테파노스 니르말렌두 강연을 진행했다. 1940년부터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음에도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계속했다.
1945년 캘커타 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아서 키스 교수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에든버러 대학교의 산스크리트어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의사들도 영국 여행을 권유했으나, 영국 도착 후 병세가 다시 악화되었다.
같은 해 11월,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힌두교에 대한 마지막 공개 강연을 했다. 이후 심각한 심장 질환으로 인해 주로 침상에 머물렀다.[5] 영국에서 5년(1945–1950) 동안 머무는 중에도 그는 《인도 철학사》 네 번째 권을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판했고, 《산스크리트 문학사》를 캘커타 대학교에서, 《시인이자 철학자인 라빈드라나트》를 자신의 캘커타 출판사를 통해 출판했으며, 벵골어로 미학에 관한 책도 출간했다. 1950년 인도의 러크나우로 돌아왔다.
1951년, 당시 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도움으로 《인도 철학사》의 마지막 다섯 번째 권 집필을 시작했다. 자신의 철학 체계를 두 권으로 저술할 계획도 있었으나, 친구들과 제자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인도 철학사》 완간을 자신의 삶의 사명으로 여기고 이 작업에 우선적으로 헌신했다.
강한 의지와 헌신으로 그는 자신의 사명을 거의 완수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에 매달렸으며, 1952년 12월 18일 사망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한 섹션을 마무리했다. 사망 당일에도 아침과 오후에 걸쳐 남부 샤이비즘 섹션의 마지막 장을 작업했다. 그는 현대 심리학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던 중 그날 저녁 8시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1]
3. 2. '의존적 출현 이론'
다스굽타의 철학은 ''의존적 출현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32년 인도 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그의 유명한 제자로는 미르체아 엘리아데와 데비프라사드 차토파디야야 같은 학자들이 있다.다스굽타는 학문적으로 매우 활발했으며, 당대의 저명한 철학자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논쟁했다. 예를 들어, 나폴리에서 열린 제2회 국제 철학 회의에서 그는 베네데토 크로체(1866-1952)의 철학 상당 부분이 이미 인도의 다르마키르티와 다르모타라에 의해 제시되었으며, 크로체가 독창적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은 오히려 오류라고 지적했다.[4] 이 비판은 크로체가 회의에 직접 참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는 J. M. E. 맥태가트가 주재한 모임에서 유명한 불교 학자인 루이 드 라 발레 푸생에게 도전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회 회의에서는 그의 날카로운 지적 때문에 반대자들이 그를 두려워했으며, 그는 상대방의 오류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논쟁을 이끌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표도르 시체르바츠코이(1866-1942), 실뱅 레비(1863-1935) 등 여러 학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파리 대학교의 산스크리트어 교수 루이 르누는 다스굽타에게 "당신이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우리는 마치 샹카라나 파탄잘리가 다시 태어나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4. 주요 저서
- ''인도 철학사'' (A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1-5권 (1922–1955),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https://www.indianculture.gov.in/reports-proceedings/history-indian-philosophy-vol-i 원문 링크], [https://archive.org/details/in.ernet.dli.2015.96713 1권], [https://archive.org/details/in.ernet.dli.2015.461620 2권], [https://archive.org/details/in.ernet.dli.2015.57392 3권], [https://archive.org/details/dli.ernet.231099 4권], [https://archive.org/details/AHistoryOfIndianPhilosophyVol5/page/n1/mode/2up 5권]
- ''탄트라 철학 개론''
- ''고대 힌두교의 자연 과학'' (D.P. Chattopadhyaya 편집, 인도 철학 연구 위원회)
- ''파탄잘리의 연구''
- ''인도 사상의 다른 체계와의 관계에서 본 요가 철학''
- ''산스크리트 문학사''
- ''라빈드라나트: 시인이자 철학자''
- ''힌두 신비주의'' (1927)
- ''카비비차''
- ''사운다리야타트바''
- ''라비디피카''
참조
[1]
간행물
Surendranath Dasgupta: A Memoir
Cambridge Univ. Press
1954-06-19
[2]
웹사이트
Surendranath Dasgupta Biography
https://www.tititudo[...]
2022-02-01
[3]
웹사이트
Drik Panchang Hindu Calendar, Ashwina – Kartika 1942 (October 1885)
https://www.drikpanc[...]
1885-10-18
[4]
서적
Philosophical Essays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Calcutta
[5]
뉴스
Dr.S.N.Dasgupta's personal letter dated 2 August 1948 from Trinity College, Cambridge, addressed to Katyayanidas Bhattacharya, published in "Duti Patra, Duti Charitra-prasanga : Surendranath O Katyayanidas" – an article (in Bengali) by Amitabha Bhattacharya
http://epaper.thesta[...]
Dainik Statesman
20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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