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블랙호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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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카고 블랙호크스는 1926년 창단된 NHL(National Hockey League) 소속의 프로 아이스하키 팀이다. 1934년, 1938년, 1961년, 2010년, 2013년, 2015년에 스탠리 컵을 우승했으며, 2023년에는 코너 베다드를 영입했다. 팀은 1955년 유니폼 디자인을 변경했고, 2009년부터 재향 군인의 날을 기념해 위장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현재 유나이티드 센터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며, 토미 호크를 마스코트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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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블랙호크스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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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 |
기본 정보 | |
팀 이름 | 시카고 블랙호크스 |
영어 팀 이름 | Chicago Blackhawks |
이전 팀 이름 | 시카고 블랙 호크스 |
창단 | 1926년 |
현재 시즌 | 2024–25 시카고 블랙호크스 시즌 |
연고지 | 일리노이주 시카고 |
경기장 | 유나이티드 센터 |
수용 인원 | 19,717명 |
컨퍼런스 | 웨스턴 컨퍼런스 |
디비전 | 센트럴 디비전 |
팀 색상 | 빨강, 하양, 검정 |
미디어 제휴 | Chicago Sports Network WGN (720 AM) |
공식 웹사이트 | nhl.com/blackhaw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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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정보 | |
구단주 | 위르츠 코퍼레이션 대니 위르츠, 회장 |
단장 | 카일 데이비슨 |
감독 | 안데르스 쇠렌센(임시) |
주장 | 닉 폴리뇨 |
산하 마이너 리그 | 록퍼드 아이스호그스 (AHL) 인디 퓨얼 (ECHL) |
우승 기록 | |
스탠리 컵 | 6회 (1933–34, 1937–38, 1960–61, 2009–10, 2012–13, 2014–15) |
프레지던츠 트로피 | 2회 (1990–91, 2012–13) |
컨퍼런스 우승 | 4회 (1991–92, 2009–10, 2012–13, 2014–15) |
디비전 우승 | 16회 (1969–70, 1970–71, 1971–72, 1972–73, 1975–76, 1977–78, 1978–79, 1979–80, 1982–83, 1985–86, 1989–90, 1990–91, 1992–93, 2009–10, 2012–13, 2016–17) |
2. 역사
1926년, NHL은 보스턴 출신의 전 축구 스타 헌팅턴 하드윅(Huntington Hardwick)이 이끄는 신디케이트에 시카고의 확장 프랜차이즈를 수여했다. 같은 회의에서 하드윅은 웨스턴 하키 리그의 포틀랜드 로즈버드 선수들을 WHL 회장 프랭크 패트릭으로부터 10만 달러에 매입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는데, 이는 보스턴 브루인스(Boston Bruins)의 구단주 찰스 애덤스가 중개한 계약이었다. 그러나 한 달 후 하드윅의 그룹은 시카고 커피 재벌 프레데릭 맥클라우린(Frederic McLaughlin)에게 매각되었다.
맥클라우린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86보병사단의 333 기관총 대대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다.[9] 이 사단은 일리노이 주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블랙 호크[8]라는 소크 부족의 원주민을 따서 "블랙호크 사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9] 맥클라우린은 군 부대를 기념하여 새로운 하키 팀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원주민을 아이콘으로 사용하는 많은 스포츠 팀 이름 중 하나이다. 그러나 군 부대와 달리 팀 이름은 1986년 클럽이 공식적으로 원래 프랜차이즈 문서에 있는 철자를 기반으로 "Blackhawks"가 될 때까지 "Black Hawks"로 두 단어로 표기되었다.
블랙 호크스는 1926-27 시즌에 다른 확장 프랜차이즈인 디트로이트 쿠거스(현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뉴욕 레인저스(New York Rangers)와 함께 경기를 시작했다. 포워드 라인의 미키 매케이(Mickey MacKay), 베이브 다이(Babe Dye), 딕 어빈(Dick Irvin) 등이 각각 리그 득점왕 경쟁에 참여하는 등 대체로 성공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이 팀은 같은 건물에서 경기를 한 에디 리빙스턴(Eddie Livingstone)의 라이벌 시카고 카디널스와 시카고에서 즉각적인 경쟁에 직면해야 했다. 맥클라우린은 스포츠에 대한 배경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팀 운영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웨스턴 리그에서 활약했던 전 골키퍼 빌 토빈을 조수로 고용했지만, 팀을 직접 지휘했다. 그는 또한 당시 프로 하키에서 매우 드물었던 미국 선수들을 홍보하는 데 매우 관심이 많았다. 닥 롬네스(Doc Romnes), 태피 에이벨(Taffy Abel), 알렉스 레빈스키(Alex Levinsky), 마이크 카라카스(Mike Karakas), 컬리 달스트롬(Cully Dahlstrom)을 포함한 여러 미국 선수들이 팀의 주축이 되었고, 맥클라우린 아래에서 블랙 호크스는 최초로 전원 미국 출신 선수로 구성된 라인업을 가진 NHL 팀이 되었다.
블랙호크스는 1926년 11월 17일, 토론토 세인트 패트릭스와의 경기에서 시카고 콜리세움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7,000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4-1로 승리했다. 블랙호크스의 첫 시즌은 19승 22패 3무의 성적으로 3위를 기록하며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27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보스턴 브루인스에게 패했다.
시리즈가 끝난 후, 맥러플린은 감독 피트 멀두운을 해고했다. 짐 콜먼(토론토의 ''글로브 앤 메일''의 스포츠 기자)에 따르면, 맥러플린은 블랙호크스가 1위를 할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다. 멀두운은 동의하지 않았고, 맥러플린은 화가 나서 그를 해고했다. 콜먼에 따르면, 멀두운은 "해고해, 맥러플린 장군, 그러면 당신은 절대 1위를 하지 못할 거야. 이 팀에 영원히 후두가 될 저주를 내릴 거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멀두운의 저주가 탄생했고(콜먼은 나중에 이 사건 전체를 조작했다고 인정했다.) 널리 알려진 최초의 스포츠 "저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팀은 존재한 첫 39년 동안 3번의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단일 또는 복수 디비전 형식에서 모두 1위를 한 적은 없었다. 1927-28년 리그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44경기 중 7경기만 승리했다.
1928-29 시즌에 블랙호크스는 원래 새로 지어진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경기할 예정이었지만, 공사 지연과 맥러플린과 경기장 홍보 담당자 패디 하몬 간의 분쟁으로 인해 콜리세움, 디트로이트 올림피아, 그리고 온타리오주 포트 에리의 피스 브리지 아레나를 오가며 경기를 치렀고, 다음 시즌에 시카고 스타디움으로 이전했다.
1931년, 득점 기계 조니 고트젤리그(Johnny Gottselig), 수비수 사이 웬트워스(Cy Wentworth), 골리 찰리 가디너를 중심으로 팀은 처음으로 스탠리 컵(Stanley Cup) 결승에 진출했지만, 몬트리올 캐네디언스(Montreal Canadiens)에 연패하며 패퇴했다. 1932년에도 뛰어난 선수들을 갖추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34년, 블랙호크스는 스탠리컵 첫 우승을 차지했다. 상대는 디트로이트 레드윙스(Detroit Red Wings)였다. 골리 찰리 가디너의 堅守와 폴 톰슨(Paul Thompson)의 20골이 빛났다. 안타깝게도 시즌 종료 후 불과 2개월 만에 가디너는 편도선 감염으로 사망했다.
이후 3년 이상 시카고는 부진을 거듭했고, 1938년경에는 조롱거리가 되어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몬트리올 캐네디언스전과 뉴욕 아메리칸스(New York Americans)전에서 결정적인 순간 연장전 골을 넣으며 두 팀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1938 스탠리컵 결승전에서 토론토 메이플리프스(Toronto Maple Leafs)와 맞붙게 되었다.
블랙호크스의 골리 마이크 카라카스(Mike Karakas)는 부상으로 초반 결승전 출전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팀은 승부수를 띄워 당시 토론토 마이너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알피 무어(Alfie Moore)를 골리로 기용했다. 이 승부수는 성공하여 무어는 카라카스가 회복할 때까지 2경기에 출전하여 단 2골만 허용했다. 이렇게 호크스는 두 번째 스탠리 컵을 손에 넣었다. 1938년 블랙호크스는 스탠리컵 우승팀 중 정규시즌 성적이 가장 좋지 않았다.
1944년에는 클린트 스미스(Clint Smith)의 리그 최다 어시스트에 힘입어 같은 라인의 더그 벤트리(Doug Bentley), 빌 모시엔코(Bill Mosienko)가 각각 시즌 30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컵 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를 꺾었지만, 결승에서는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몬트리올 캐네디언스에 4연패하며 패했다.[10]
2. 1. 창단과 초기 (1926년 ~ 1944년)
1926년, NHL은 보스턴 출신의 전 축구 스타 헌팅턴 하드윅(Huntington Hardwick)이 이끄는 신디케이트에 시카고의 확장 프랜차이즈를 수여했다. 같은 회의에서 하드윅은 웨스턴 하키 리그의 포틀랜드 로즈버드 선수들을 WHL 회장 프랭크 패트릭으로부터 10만 달러에 매입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는데, 이는 보스턴 브루인스(Boston Bruins)의 구단주 찰스 애덤스가 중개한 계약이었다. 그러나 한 달 후 하드윅의 그룹은 시카고 커피 재벌 프레데릭 맥클라우린(Frederic McLaughlin)에게 매각되었다.맥클라우린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86보병사단의 333 기관총 대대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했다.[9] 이 사단은 일리노이 주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블랙 호크[8]라는 소크 부족의 원주민을 따서 "블랙호크 사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9] 맥클라우린은 군 부대를 기념하여 새로운 하키 팀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원주민을 아이콘으로 사용하는 많은 스포츠 팀 이름 중 하나이다. 그러나 군 부대와 달리 팀 이름은 1986년 클럽이 공식적으로 원래 프랜차이즈 문서에 있는 철자를 기반으로 "Blackhawks"가 될 때까지 "Black Hawks"로 두 단어로 표기되었다.
블랙 호크스는 1926-27 시즌에 다른 확장 프랜차이즈인 디트로이트 쿠거스(현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뉴욕 레인저스(New York Rangers)와 함께 경기를 시작했다. 포워드 라인의 미키 매케이(Mickey MacKay), 베이브 다이(Babe Dye), 딕 어빈(Dick Irvin) 등이 각각 리그 득점왕 경쟁에 참여하는 등 대체로 성공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이 팀은 같은 건물에서 경기를 한 에디 리빙스턴(Eddie Livingstone)의 라이벌 시카고 카디널스와 시카고에서 즉각적인 경쟁에 직면해야 했다. 맥클라우린은 스포츠에 대한 배경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팀 운영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웨스턴 리그에서 활약했던 전 골키퍼 빌 토빈을 조수로 고용했지만, 팀을 직접 지휘했다. 그는 또한 당시 프로 하키에서 매우 드물었던 미국 선수들을 홍보하는 데 매우 관심이 많았다. 닥 롬네스(Doc Romnes), 태피 에이벨(Taffy Abel), 알렉스 레빈스키(Alex Levinsky), 마이크 카라카스(Mike Karakas), 컬리 달스트롬(Cully Dahlstrom)을 포함한 여러 미국 선수들이 팀의 주축이 되었고, 맥클라우린 아래에서 블랙 호크스는 최초로 전원 미국 출신 선수로 구성된 라인업을 가진 NHL 팀이 되었다.[9]
블랙호크스는 1926년 11월 17일, 토론토 세인트 패트릭스와의 경기에서 시카고 콜리세움에서 첫 경기를 치렀다. 7,000명이 넘는 관중 앞에서 4-1로 승리했다. 블랙호크스의 첫 시즌은 19승 22패 3무의 성적으로 3위를 기록하며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27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보스턴 브루인스에게 패했다.
시리즈가 끝난 후, 맥러플린은 감독 피트 멀두운을 해고했다. 짐 콜먼(토론토의 ''글로브 앤 메일''의 스포츠 기자)에 따르면, 맥러플린은 블랙호크스가 1위를 할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다. 멀두운은 동의하지 않았고, 맥러플린은 화가 나서 그를 해고했다. 콜먼에 따르면, 멀두운은 "해고해, 맥러플린 장군, 그러면 당신은 절대 1위를 하지 못할 거야. 이 팀에 영원히 후두가 될 저주를 내릴 거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멀두운의 저주가 탄생했고(콜먼은 나중에 이 사건 전체를 조작했다고 인정했다.) 널리 알려진 최초의 스포츠 "저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팀은 존재한 첫 39년 동안 3번의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단일 또는 복수 디비전 형식에서 모두 1위를 한 적은 없었다. 1927-28년 리그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44경기 중 7경기만 승리했다.
1928-29 시즌에 블랙호크스는 원래 새로 지어진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경기할 예정이었지만, 공사 지연과 맥러플린과 경기장 홍보 담당자 패디 하몬 간의 분쟁으로 인해 콜리세움, 디트로이트 올림피아, 그리고 온타리오주 포트 에리의 피스 브리지 아레나를 오가며 경기를 치렀고, 다음 시즌에 시카고 스타디움으로 이전했다.
1931년, 득점 기계 조니 고트젤리그(Johnny Gottselig), 수비수 사이 웬트워스(Cy Wentworth), 골리 찰리 가디너를 중심으로 팀은 처음으로 스탠리 컵(Stanley Cup) 결승에 진출했지만, 몬트리올 캐네디언스(Montreal Canadiens)에 연패하며 패퇴했다. 1932년에도 뛰어난 선수들을 갖추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34년, 블랙호크스는 스탠리컵 첫 우승을 차지했다. 상대는 디트로이트 레드윙스(Detroit Red Wings)였다. 골리 찰리 가디너의 堅守와 폴 톰슨(Paul Thompson)의 20골이 빛났다. 안타깝게도 시즌 종료 후 불과 2개월 만에 가디너는 편도선 감염으로 사망했다.
이후 3년 이상 시카고는 부진을 거듭했고, 1938년경에는 조롱거리가 되어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몬트리올 캐네디언스전과 뉴욕 아메리칸스(New York Americans)전에서 결정적인 순간 연장전 골을 넣으며 두 팀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1938 스탠리컵 결승전에서 토론토 메이플리프스(Toronto Maple Leafs)와 맞붙게 되었다.
블랙호크스의 골리 마이크 카라카스(Mike Karakas)는 부상으로 초반 결승전 출전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팀은 승부수를 띄워 당시 토론토 마이너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알피 무어(Alfie Moore)를 골리로 기용했다. 이 승부수는 성공하여 무어는 카라카스가 회복할 때까지 2경기에 출전하여 단 2골만 허용했다. 이렇게 호크스는 두 번째 스탠리 컵을 손에 넣었다. 1938년 블랙호크스는 스탠리컵 우승팀 중 정규시즌 성적이 가장 좋지 않았다.
1944년에는 클린트 스미스(Clint Smith)의 리그 최다 어시스트에 힘입어 같은 라인의 더그 벤트리(Doug Bentley), 빌 모시엔코(Bill Mosienko)가 각각 시즌 30골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컵 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를 꺾었지만, 결승에서는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몬트리올 캐네디언스에 4연패하며 패했다.[10]
2. 2. 노리스 시대 (1944년 ~ 1966년)
1944년 12월 맥러플린이 사망한 후, 그의 유산은 오랫동안 팀 사장을 지낸 빌 토빈이 이끄는 신디케이트에 팀을 매각했다.[11] 그러나 토빈은 라이벌 레드윙스의 소유주인 제임스 E. 노리스의 앞잡이에 불과했다.[11] 노리스는 1936년 시카고 스타디움을 매입한 이후 블랙호크스의 건물주이기도 했다.[11] 그 후 8년 동안 노리스-토빈 소유권 하에서는 블랙호크스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11]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간의 거의 모든 트레이드는 레드윙스의 약탈로 끝났다.[11] 결과적으로, 그 후 몇 년 동안 블랙호크스는 NHL에서 무능력의 전형이 되었다.[11] 1945년부터 1958년까지 플레이오프에 두 번만 진출했다.[11]1950년, 노리스의 장남 제임스 D. 노리스와 레드윙스 소수 지분 소유주 아서 위르츠(23년 전 레드윙스를 함께 매입했던 노리스의 원래 파트너)가 부진한 클럽을 인수했다.[11] 그들은 재정적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팀을 재건했다.[11] 그들의 첫 번째 조치 중 하나는 전 디트로이트 감독이자 단장인 토미 아이반을 단장으로 영입하는 것이었다.[11]
1950년대 후반, 호크스는 세 명의 젊은 유망주(포워드 바비 헐과 스탠 미키타, 수비수 피에르 빌로트)를 영입하고, 디트로이트에서 스타 골텐더 글렌 홀과 베테랑 포워드 테드 린지(방금 30골 55어시스트의 커리어 시즌을 보낸 선수)를 영입하며 대박을 터뜨렸다.[11] 헐, 미키타, 빌로트, 홀은 팀의 뛰어난 스타가 되었고, 네 명 모두 결국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1]
1959년과 1960년에 몬트리올의 우승팀에 의해 1라운드에서 탈락한 후, 1961년 준결승에서 다시 한번 카나디앵이 호크스를 물리칠 것으로 예상되었다.[11] 그러나 몬트리올의 슈퍼스타들을 완전히 지치게 만든 수비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시카고가 6경기 만에 시리즈를 승리했다.[11] 그들은 그 후 윙스를 제치고 세 번째 스탠리 컵 우승을 차지했다.[11]

호크스는 1960년대에 두 번 더 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1962년에는 리프스에게, 1965년에는 카나디앵에게 패했다.[11] 그들은 10년 내내 강력한 팀으로 남아 있었고, 헐은 50골 시즌을 네 번 기록했으며, 미키타는 득점왕과 MVP를 연속으로 수상했고, 빌로트는 노리스 트로피를 3년 연속 수상했으며, 홀은 9시즌 중 8시즌 동안 퍼스트 또는 세컨드 올스타 골텐더로 선정되었다.[11] 특히 헐과 미키타는 리그에서 가장 두려운 1, 2번 타선으로 널리 여겨졌다.[11] 그러나 빌 헤이, 켄 와램, 필 에스포지토, 무스 바스코, 더그 몬스, 팻 스테이플턴 등 강력한 지원진에도 불구하고 호크스는 결코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11]
6팀 체제의 NHL 마지막 시즌인 1966–67년에 블랙호크스는 1위를 차지하며 프레드릭 맥러플린 사망 23년 만에 소위 "멀둔의 저주"를 깨뜨렸다.[11] 그러나 그들은 준결승에서 토론토에게 패했고, 토론토는 그 시대의 마지막 스탠리 컵을 차지했다.[11] 그 후, 1943년에 저주 이야기를 처음으로 보도한 콜먼은 칼럼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서 작가의 막힘을 극복하기 위해 그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인정했다.[11]
2. 3. 아서 위르츠 시대 (1966년 ~ 1983년)
아서 위르츠(Arthur Wirtz)는 1932년 노리스가 레드윙스(Red Wings)를 사기 위해 결성한 신디케이트의 소수 지분 파트너였으며, 1966년 제임스 D. 노리스(James D. Norris)가 사망하자 오랜 파트너인 아서 위르츠와 그의 아들 빌 위르츠(Bill Wirtz)에게 구단 소유권이 넘어갔다.골텐더 글렌 홀(Glenn Hall)은 1967-68 시즌을 위해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확장팀에 드래프트되었고, 피에르 필로테(Pierre Pilote)는 1968년에 짐 패핀(Jim Pappin)과 교환되어 토론토 메이플리프스(Toronto Maple Leafs)로 트레이드되었다. 1968-69 시즌, 바비 헐(Bobby Hull)이 자신의 이전 기록인 54골을 58골로 경신했지만, 블랙호크스는 1958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1967년, 블랙호크스는 보스턴 브루인스(Boston Bruins)와 스포츠 역사상 가장 일방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시카고는 필 에스포지토(Phil Esposito), 켄 호지(Ken Hodge), 프레드 스탠필드(Fred Stanfield)를 보스턴으로 보내고 핏 마틴(Pit Martin), 잭 노리스(Jack Norris), 질 마로테(Gilles Marotte)를 받았다. 마틴은 여러 시즌 동안 호크스의 스타 선수가 되었지만, 에스포지토, 호지, 스탠필드는 브루인스를 NHL 정상으로 이끌고 두 번의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하게 했다. 특히 에스포지토는 보스턴에서 수많은 득점 기록을 세우며 NHL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1970-71 시즌, 블랙호크스는 서부 디비전으로 이동하여 46승 17패 15무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2년차 골텐더 토니 에스포지토(필의 동생이자 전 시즌 신인왕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 수상자), 헐, 그의 동생 데니스 헐(Dennis Hull), 미키타(Mikita), 그리고 뛰어난 수비수 스테이플턴(Stapleton), 키스 매그너슨(Keith Magnuson), 빌 화이트(Bill White)와 함께 호크스는 스탠리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캐나디앵스(Canadiens)에게 패했다.
위니펙 제츠로 이적한 헐은 100만 달러 계약을 채결하였고, 전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Philadelphia Flyers) 스타 앙드레 라크루아(Andre Lacroix)도 시카고에서 단 한 시즌 동안 매우 적은 출전 시간을 받은 후 그와 합류하여 WHA의 스타 선수가 되었다. 블랙호크스는 그 해 스탠리컵 결승에 다시 진출했지만, 다시 몬트리올에게 패했다.
팀이 서부 디비전에서 4시즌 연속 1위 또는 2위를 차지했지만, 1970년대 후반에는 매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10년 동안 7번의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스탠리컵 우승 경쟁자는 아니었으며, 한때 플레이오프에서 16연패를 당했다. 1976년 보스턴 브루인스에서 전설적인 수비수 바비 오어(Bobby Orr)를 영입했지만, 건강 문제로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고 결국 1979년 은퇴했다. 미키타도 다음 해에 시카고에서 22년간 활약한 후 은퇴했다.
1982년, 블랙호크스는 노리스 디비전 4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미네소타 노스 스타스(Minnesota North Stars)와 세인트루이스 블루스를 꺾었지만, 스탠리컵 결승에 진출한 밴쿠버 캐넉스에게 패했다. 시카고는 다음 시즌에도 3라운드에 진출했지만 결승 진출팀인 에드먼턴 오일러스(Edmonton Oilers)에게 패했다. 1984년의 부진한 시즌 이후, 호크스는 1985년 3라운드에서 다시 에드먼턴에게 패했다.
2. 4. 빌 위르츠 시대 (1983년 ~ 2007년)
1983년, 아서 위르츠(Arthur Wirtz)가 사망하면서 블랙호크스는 그의 아들 빌 위르츠(Bill Wirtz)의 단독 통제하에 들어갔다.[12] 빌 위르츠는 "달러 빌(Dollar Bill)"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불렸으며, 홈경기 중계를 허용하지 않고 티켓 가격을 인상하는 등 여러 정책으로 시카고 시민들로부터 많은 무관심을 받았다.[16][17]블랙호크스는 빌 위르츠 시대에 매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992년 스탠리 컵 결승전 진출을 제외하고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5년 에드먼턴과의 플레이오프 시리즈 기간 동안, 블랙호크스와 팬들은 "성조기(The Star-Spangled Banner)" 제창 중에 함성을 지르는 전통을 시작했다.[13]
1986-87 시즌을 앞두고 팀 기록을 검토하던 중, 팀의 원래 NHL 계약서에 팀 이름이 두 단어("Black Hawks")가 아닌 합성어("Blackhawks")로 인쇄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팀의 공식 명칭은 "Chicago Blackhawks"가 되었다.[14]
1980년대 후반, 시카고는 여전히 매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매번 초반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1988-89 시즌에는 골텐더 에드 벨푸어(Ed Belfour)와 센터 제러미 로에닉(Jeremy Roenick)의 신인 시즌에 컨퍼런스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캘거리 플레임스(Calgary Flames)에게 패했다. 1989-90 시즌에는 노리스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3라운드에서 블라디슬라프 트레티악(Vladislav Tretiak)이 골텐더 코치로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드먼턴 오일러스에게 패했다.
1990-91 시즌에는 정규 시즌 최고 기록으로 프레지던츠 트로피(Presidents' Trophy)를 수상했지만, 스탠리 컵 결승전에 진출한 미네소타 노스 스타즈에게 1라운드에서 패했다. 1991-92 시즌에는 로에닉, 스티브 라머(Steve Larmer), 크리스 첼리오스(Chris Chelios), 벨푸어의 활약으로 19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마리오 르미외(Mario Lemieux)가 이끄는 피츠버그 펭귄스(Pittsburgh Penguins)에게 4전 전승으로 스윕을 당했다.[15]
1993-94 시즌에는 시카고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보냈고, 1994-95 시즌에는 유나이티드 센터(United Center)로 이전했다.

제러미 로에닉, 에드 벨푸어, 크리스 첼리오스가 모두 트레이드되면서 블랙호크스는 1990년대 후반 부진을 겪었고, 1998년에는 29년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몇 년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후, 에릭 데이즈(Éric Dazé), 알렉세이 잠노프(Alexei Zhamnov), 토니 아몬테(Tony Amonte) 등이 팀의 주요 스타로 부상했지만, 2002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조기 탈락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4-05 시즌 로크아웃 이후, 새 단장 데일 탤런(Dale Tallon)은 팀 개편에 착수하여 탬파베이 라이트닝(Tampa Bay Lightning)의 스탠리 컵(Stanley Cup) 우승 골텐더 니콜라이 하비불린(Nikolai Khabibulin)과 올스타 수비수 에이드리언 오코인(Adrian Aucoin)을 영입했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인해 서부 컨퍼런스 최하위, NHL 전체에서 두 번째로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2006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조너선 투이(Jonathan Toews)를 지명했고, 이후 마틴 하블라트와 미할 한주스를 영입하는 등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보강했다. 2006년 11월 26일, 데니스 사바드(Denis Savard)가 감독으로 임명되었지만, 팀은 계속해서 고전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패트릭 케인(Patrick Kane)을 지명했다.
2. 5. 로키 위르츠 시대 (2007년 ~ 2023년)
2007-08 시즌 중반, 프랜차이즈는 Comcast SportsNet Chicago와 WGN-TV와 파트너십을 맺어 일부 블랙호크스 홈 경기를 TV로 방영하는 실험을 했다.[20] 다음 시즌에는 Comcast와 WGN이 팀의 모든 정규 시즌 경기를 방영하기 시작했다.[20] 로키는 또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시카고 컵스 전 사장인 존 맥도너를 블랙호크스의 새로운 사장으로 임명했다.[21] 맥도너는 사장직을 맡은 후 블랙호크스의 현재 마케팅 성공에 중요한 인물이었다.[22] 위르츠는 또한 전 블랙호크스의 스타 선수인 토니 에스포지토, 스탠 미키타, 바비 헐을 프랜차이즈의 "하키 대사"로 다시 불러들였다.[23]팀 정책과 프런트 오피스의 변화 외에도, 젊은 위르츠는 팀 재건에 전력을 다했다.[24] 블랙호크스 명단에는 2007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패트릭 케인이 합류하여 신인 선수 중 득점 선두를 차지했다.[25] 케인과 조너선 투스는 NHL 최고 신인에게 수여되는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의 최종 후보였다. 케인은 팀 동료를 제치고 수상했다.[26] 케인은 2007-08 시즌에 82경기에서 21골 5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블랙호크스는 40승 34패 8무승부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3점 차로 실패했다. 2007-08 시즌은 6년 만에 팀이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었다.[27]
2008-09 시즌 개막 전, 블랙호크스는 20세의 투스를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하여 에이드리언 오쿠인(2006-07 시즌 후 캘거리 플레임스로 트레이드됨)의 뒤를 이었고, 당시 세 번째로 어린 주장이 되었다. 새로운 주장 외에도, 블랙호크스는 시즌 전에 몇 가지 주요 명단 변경을 했는데, 2008년 2월 26일, 가장 오랫동안 팀에 있었던 투오모 루투를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로 트레이드하고 그 대가로 앤드류 래드를 받았다.[28] 같은 날, 블랙호크스는 주장 마틴 라포인트를 오타와 세네이터스로 트레이드하고 2008 NHL 신인 드래프트의 6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28] 7월 1일, FA 시장이 열린 첫날, 팀은 골텐더 크리스토발 후에를 4년 2250만 달러 계약으로 영입했고, 나중에는 수비수 브라이언 캠벨을 8년 5680만 달러 계약으로 영입했다.[29] 또한 전 감독인 조엘 퀸빌과 스코티 보먼을 영입했다.[30][31][32]
2008년 2월 13일, 블랙호크스는 첫 팬 컨벤션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2008년 7월 16일, 팀은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 임시 아이스링크를 설치하여 신년에 "오리지널 식스" 멤버인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2009 윈터 클래식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33] 레드윙스는 시카고를 6-4로 이겼다. 6월 16일, 패트 폴리가 댄 켈리(댄 켈리)를 대신하여 블랙호크스의 TV 중계 해설자로 복귀했다. 폴리는 1981년부터 2006년까지 블랙호크스 경기를 중계했고, 다음 2년 동안 AHL 시카고 울브스의 중계를 맡았다. 폴리는 에드 올치크와 함께 블랙호크스의 모든 경기를 중계했다.[34][35] 2008년 10월 16일, 블랙호크스는 드니스 사바르 감독을 경질하고 조엘 퀸빌을 새 감독으로 임명했다.[36] 사바르는 이후 대사로 팀에 복귀했다.

블랙호크스는 2008-09 정규 시즌을 디비전 2위(46승 24패 12무승부, 104점)로 마치며 서부 컨퍼런스 4위를 차지했다. 블랙호크스는 4월 3일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3-1로 이기며 2001-02 시즌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4월 8일, 콜럼버스 블루 재케츠에게 슛아웃으로 패했지만, 17년 만에 처음으로 100점 시즌을 확정지었다. 블랙호크스는 5번 시드 캘거리 플레임스를 6경기 만에 꺾고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준결승에 진출했다.[37] 팀은 3번 시드 밴쿠버 캐넉스를 6경기 만에 꺾었고,[38] 이어 챔피언인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십에서 맞붙어 5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패했다.[39]
2008-09 시즌 동안, 팀은 NHL 홈 관중 수 1위를 기록했는데, 총 912,155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고, 경기당 평균 22,247명이었다.[40] 이 수치에는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윈터 클래식의 40,818명의 팬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경기의 총 관중 수는 871,337명이며, 경기당 평균 21,783명으로, 여전히 몬트리올의 평균 21,273명보다 높은 NHL 1위였다. 블랙호크스는 2009년 5월 11일 컨퍼런스 준결승 6차전 경기 전에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100만 번째 팬을 맞이했다.[41]
2020-21 시즌은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2021년 1월로 연기되었고, 경기 수는 56경기로 축소되었다.[147] 블랙호크스는 자유 계약 기간 동안 포워드 마티아스 얀마르크, 루카스 월마르크, 칼 소더베리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147] 베테랑 포워드 브랜든 사드는 콜로라도 애벌랜치로 트레이드되었고, 대신 수비수 니키타 자도로프와 안톤 린드홀름을 받았다.[148] 팀 주장 조너선 투스는 밝히지 않은 의학적 질병으로 인해 시즌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149] 블랙호크스는 오랜 기간 골키퍼로 활약한 코리 크로포드와 결별했는데, 그는 뉴저지 데블스와 계약했지만 결국 데블스에서 한 경기도 뛰지 않고 시즌 시작 전에 은퇴했다.[150] 팀의 베테랑 수비수 브렌트 시브룩은 전 시즌에 입은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시즌 중반 은퇴를 발표했다.[151] 2019년 블랙호크스에 다시 합류했던 앤드루 쇼 또한 커리어 동안 입은 뇌진탕으로 인해 은퇴한다고 발표했다.[152] 블랙호크스는 시즌 동안 포워드 브랜든 해글, 필립 쿠라셰프, 피우스 수터, 수비수 이언 미첼, 와이엇 칼리누크, 그리고 골키퍼 케빈 랭키넨을 포함한 루키들에게 크게 의존하여 선수층을 보강했다.[153][154] 로스터 변화에도 불구하고, 블랙호크스는 시즌 전반기를 14승 9패 5무의 기록으로 마치며 디비전 4위를 차지했다.[155] 3월 중순부터 4월까지 8승 15패 1무로 부진했고, 그 결과 트레이드 마감일에 얀마크, 월마크, 소더버그를 트레이드했다.[154] 블랙호크스는 다시 한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24승 25패 7무의 기록으로 6위를 차지했다.[154][155] 블랙호크스는 2020년 12월 16일 로키 위르츠의 아들 대니 위르츠를 새로운 최고경영자로 임명했다.[156] 팀은 프런트 오피스에 상당한 변화를 주었는데, 스탠 보먼 단장을 하키 운영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제이미 폴크너를 새로운 사업 운영 사장으로 임명했다.[156]
2021–22 시즌을 앞두고, 전 블랙호크스 유망주 카일 비치(Kyle Beach)는 2009-10 시즌 동안 팀의 전 비디오 코치였던 브래드 알드리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157][158] 비치는 알드리치의 잘못을 적절하게 처리하거나 정식 경찰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블랙호크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159] 별도의 당사자인 알드리치가 Houghton High School 재직 시절 성폭행했던 전 고등학생도 블랙호크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팀이 알드리치를 위해 긍정적인 평판을 제공했고 2010년 그의 성폭행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157] 블랙호크스는 Jenner & Block 로펌에 4개월 동안 139건의 인터뷰를 포함하는 내부 조사를 실시하도록 의뢰했다. 조사 결과 팀 회장 존 맥도노, 부사장 제이 블렁크, 단장 스탠 보먼, 부단장 케빈 체벌데이오프, 감독 조엘 퀘네빌을 포함한 팀의 핵심 인물들이 2010 스탠리 컵 결승전 시작 며칠 전에 만나 결승전 이후까지 알드리치에 대한 어떤 조치도 미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알드리치는 이후 스탠리 컵 우승 축하 행사에 참여한 후 조용히 사임하도록 허용되었다.[158]
2021년 10월 26일 보고서 발표 몇 시간 만에, 2010년 회의 참석자 중 블랙호크스에 남아 있던 유일한 사람인 보먼과 수석 하키 운영 이사 알 맥아이삭(Al MacIsaac)이 사임했다. 부단장 카일 데이비슨(Kyle Davidson)이 임시 단장직을 맡았다.[158] NHL은 또한 블랙호크스에 "전 비디오 코치 브래드 알드리치의 고용과 관련된 문제 처리에 있어 부적절한 내부 절차와 불충분하고 시기적절하지 않은 대응"에 대해 2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또한 맥도노, 보먼, 블렁크, 맥아이삭을 포함한 회의 참석자 대부분은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NHL에서 다시 일할 수 없다고 밝혔다.[160] 당시 플로리다 팬서스 감독이었던 퀘네빌은 10월 28일 베트먼과 만난 후 사임했고, 다시 리그에서 일하려면 베트먼과 만나야 한다.[161][162] 베트먼은 이후 현재 위니펙 제츠 단장인 체벌데이오프와 만났지만 그에게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베트먼은 체벌데이오프가 당시 블랙호크스의 최고 경영진이 아니었기 때문에 "클럽의 행동이나 무대응에 대한 책임을 [체벌데이오프]에게 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163] 팀의 요청에 따라 알드리치의 이름은 스탠리 컵에서 삭제되었다.[164] 비치와 블랙호크스는 12월 15일 비공개 합의에 도달했다.[165] 그러나 전 고등학생이 블랙호크스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소송은 기각되었다.[166]
보먼은 사임 전 미래를 위한 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즉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팀을 만들 계획이었다.[167] 팀은 베테랑 수비수 던컨 키스를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트레이드했고, 대신 드래프트 지명권과 케일럽 존스를 받았다.[168] 블랙호크스는 브렌트 시브룩의 계약을 탬파베이 라이트닝으로 트레이드했고, 대신 센터 타일러 존슨을 받았다.[167] 그런 다음 콜럼버스 블루 재키츠로부터 세스 존스를 영입했고, 대신 두 개의 드래프트 지명권과 유망주 아담 보크비스트를 내주었다.[167] 블랙호크스는 남은 연봉 상한선을 활용하여 급여 상한선 완화가 절실했던 베가스 골든 나이츠로부터 베지나 트로피(Vezina Trophy) 수상자인 마크-앙드레 플뢰리를 영입했다.[167] 팀은 자유 계약 기간 동안 수비수 제이크 맥케이브와 윙어 주자르 카이라와 계약했다.[167] 만성 면역 반응 증후군으로 인해 이전 시즌을 결장했던 블랙호크스 주장 조너선 투스는 2021-22 시즌에 복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69]
11월 6일, 콜리턴은 시즌 초 1승 9패 2무의 기록(당시 NHL에서 두 번째로 나쁜 기록)으로 팀을 이끈 후 해임되었고, 전 록포드 아이스호그스 감독 데릭 킹이 그의 임시 후임으로 임명되었다.[170] 데이비슨은 2022년 3월 1일 공식적으로 팀의 단장으로 임명되었다.[171] 블랙호크스는 시즌 초 부진을 만회하지 못했고, 트레이드 마감일까지 플레이오프 진출권에서 멀어졌다. 팀은 브랜든 해글을 탬파베이로 트레이드했고, 대신 두 개의 1라운드 지명권, 보리스 카추크, 테일러 레이디쉬를 받았다.[172] 플뢰리를 미네소타 와일드로 트레이드했고, 대신 2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173] 팀은 센트럴 디비전에서 28승 42패 12무의 기록으로 6위를 차지했다.[174] 2021-22 시즌은 또한 39년 동안 팀과 함께했던 아나운서 팻 폴리의 마지막 시즌이기도 했다.[175]

2022년 6월 27일, 블랙호크스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40번째 감독으로 루크 리처드슨을 임명했다.[176] 단장 데이비슨은 블랙호크스가 로스터를 재건하고 드래프트 자본을 확보하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77] 팀은 알렉스 드브린캣을 오타와 세네터스로, 커비 대치를 몬트리올 캐나디언스로 트레이드했고, 대신 2022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7순위와 13순위 지명권을 받았다.[177] 시카고는 골키퍼 페트르 므라제크의 계약을 인수하는 대가로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부터 드래프트 25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177] 블랙호크스는 자유 계약 기간 동안 베테랑 포워드 안드레아스 아타나시우, 콜린 블랙웰, 맥스 도미와 계약하는 등 보다 적절한 영입을 했다.[178] 팀은 센트럴 디비전 최하위로 떨어졌고, 2022-23 트레이드 마감일에 다시 매물로 나왔다.[179] 패트릭 케인은 애리조나 코요티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이후 3팀 트레이드의 일환으로 뉴욕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블랙호크스는 트레이드를 완료하기 위해 레인저스로부터 앤디 웰린스키, 2023년 조건부 2라운드 지명권, 2025년 4라운드 지명권을 받았다.[179] 블랙호크스는 제이크 맥케이브, 샘 래퍼티, 맥스 도미를 트레이드했고, 추가 드래프트 자본을 얻기 위해 오타와 세네터스로부터 니키타 자이체프의 계약을 인수했다.[179][180] 주장 조너선 투스는 Long COVID에서 회복하는 동안 29경기를 결장했다.[181] 마지막 정규 시즌 경기 전에 팀은 또한 투스와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182] 블랙호크스는 NHL에서 세 번째로 나쁜 기록으로 디비전 최하위를 기록했다.[183]
2. 5. 1. 2009-2010: 시카고로 돌아온 스탠리 컵
2009-10 시즌에 앞서 블랙호크스는 마리안 호사와 12년, 6280만 달러에 계약하며 또 다른 대형 자유 계약 선수 영입을 했다.[42] 팀은 또한 토마스 코페키, 존 매든, 리처드 페티오를 영입했다.[42][43] 7월 초, 단장 데일 탤런과 블랙호크스 경영진은 내셔널 하키 리그 선수 협회(NHLPA)가 팀이 마감일 전에 제한된 자유 계약 선수들에게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비난을 받았다.[44] 최악의 경우, 당시 계약되지 않은 제한된 자유 계약 선수들,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 최종 후보 크리스 버스티그를 포함하여 무제한 자유 계약 선수가 될 수 있었다.[44] 이러한 곤경에도 불구하고, 블랙호크스는 NHLPA가 추가 조치를 취하기 전에 버스티그와 모든 제한된 자유 계약 선수들과 계약할 수 있었다.[44] 2009년 7월 14일, 블랙호크스는 데일 탤런을 고문으로 강등시켰다. 스코티 보먼의 아들인 스탠 보먼이 단장으로 승진했다.[45] 블랙호크스는 계속해서 경기 매진을 기록했으며, NHL에서 몬트리올 캐나디언스의 21,273명을 제치고 평균 관중 수 21,356명으로 최고 기록을 세웠고, 플레이오프를 제외하고 총 854,267명의 관중을 기록했다. 블랙호크스는 샌호세 샤크스와의 컨퍼런스 결승전 3차전에서 100만 명 관중을 돌파했다.
블랙호크스는 패트릭 케인과 조나단 투스와 5년간 315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 연장을 체결했고, 던컨 키스와는 13년간 72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 연장을 2009년 12월 1일에 체결했다. 2010년 4월 6일, 블랙호크스는 댈러스 스타스와의 경기에서 2009-10 시즌 50번째 승리를 거두며 시즌 승리 신기록을 세웠다. 다음 날, 블랙호크스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109번째 점수를 기록하며 또 다른 프랜차이즈 신기록을 세웠다.
블랙호크스는 정규 시즌 52승 22패 8무의 성적으로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6경기 만에 꺾고, 3번 시드인 밴쿠버 캐넉스를 2년 연속으로 6경기 만에 꺾었다. 블랙호크스는 이어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1번 시드인 샌호세 샤크스를 스윕으로 제압하고 스탠리 컵 결승전에 진출했는데, 이는 년 이후 처음이었다. 결승전에서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와 맞붙은 블랙호크스는 6경기 만에 승리를 거두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4번째, 1961년 이후 첫 스탠리 컵 우승을 차지, 49년간의 우승 가뭄에 종지부를 찍었다.[46]

2. 5. 2. 2010–2012: 더 꾸준한 성적을 위한 노력
블랙호크스는 2010-11 시즌을 앞두고 연봉 상한선 제약에 직면했다. 팀은 2009-10 스탠리 컵 우승에 기여했던 더스틴 바이퓔리언, 앤드류 래드, 크리스 버스티그, 브렌트 소펠, 벤 이거, 콜린 프레이저 등 여러 선수를 트레이드해야 했다.[47] 주전 골텐더 안티 니에미와 계약에 실패하며 그는 산호세 샤크스로 이적했다.[48] 블랙호크스는 댈러스 스타스의 주전 골리였던 마티 투르코를 영입했지만, 결국 루키 코리 크로포드가 주전 골텐더가 되었다.[49]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에서 빅토르 스탈베르그를 영입하고, 루키 닉 레디, 마커스 크루거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50] 시즌 중반에는 플로리다 팬서스에서 윙어 마이클 프로릭을 잭 스킬, 휴 제시먼과 데이비드 파칸과 교환하여 영입했다.[51]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블랙호크스는 44승 29패 9무의 성적으로 중부 디비전 3위, 서부 컨퍼런스 8위를 차지했다. 2011년 4월 10일 정규 시즌 마지막 날,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게 4-3으로 패했지만, 미네소타 와일드가 댈러스 스타스를 5-3으로 이기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52] 2011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프레지던츠 트로피를 수상한 밴쿠버 캐넉스와 맞붙어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대결하게 되었다. 캐넉스가 먼저 3경기를 이겼지만, 블랙호크스는 이후 3경기를 연달아 승리하며 7차전까지 끌고 갔다.[53] 그러나 알렉스 버로우스가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캐넉스가 4-3으로 시리즈를 승리했다.[53]
2011-12 시즌을 앞두고 블랙호크스는 연봉 상한선을 맞추기 위해 윙어 트로이 브라우어를 워싱턴 캐피털스로 보내고 2011 NHL 신인 드래프트 26번째 지명권(필립 다노 지명)을 받았고, 베테랑 수비수 브라이언 캠벨을 플로리다 팬서스로 트레이드했다.[54] 토마스 코페키를 팬서스로, 제이크 도웰은 자유 계약으로 댈러스 스타스와 계약했다.[55][56] 베테랑 포워드 다니엘 카실로, 자말 메이어스, 앤드류 브루넷을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고,[57] 레이 에머리를 영입하여 코리 크로포드의 백업 골리로 삼았다.[58] 또한 앤드류 쇼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59]
블랙호크스는 45승 26패 11무로 중부 디비전 4위, 서부 컨퍼런스 6위를 기록하며 4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60] 1라운드에서 피닉스 코요티스에게 6경기 만에 패배했는데, 6경기 중 5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브라이언 비켈(2차전)과 조나단 투스(5차전)가 블랙호크스의 연장전 승리 골을 기록했다.[61]
2. 5. 3. 2012–2013: 프레지던츠 트로피와 다섯 번째 스탠리 컵
블랙호크스는 2012-13 시즌(잠정 중단된 시즌)을 여러 신기록을 세우며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2013년 1월 27일,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의 경기 승리 후 시즌 초 6승 0패 0무승부를 기록하며 프랜차이즈 신기록을 세웠다.[62] 2월 19일에는 애너하임 덕스가 2006-07 시즌에 세웠던 시즌 초 16경기 연속 승점 획득 NHL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고, 덕스의 기록(28점)을 1점 넘어섰다.[63] 3월 6일에는 21승 0패 3무의 성적으로 NHL 기록을 24경기로 연장했고, 프랜차이즈 최다 연승 기록도 11경기로 경신했다.[64] 그러나 3월 8일 콜로라도 애벌랜치에게 6-2로 패하며[64] 시즌 첫 정규 경기 패배를 기록, 최소 1점 이상 획득했던 24경기 연속 기록(NHL 시즌 개막 최다 기록)[64]이 종료되었고 이는 NHL 역사상 세 번째로 긴 연속 승점 획득 기록이었다.[65][66]
유나이티드 센터는 또한 3월 1일 콜럼버스 블루 재키츠와의 경기에서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통틀어 블랙호크스 경기 매진 기록 200회를 달성했는데, 이는 2007-08 시즌 3월 30일 블루 재키츠와의 경기부터 시작되었다.[67] 블랙호크스는 NHL 정규 시즌 최고 기록을 달성하여 프레지던츠 트로피를 수상했고, 플레이오프 내내 홈 아이스 어드밴티지를 확보했다.[68] 1라운드에서 8번 시드인 미네소타 와일드를 물리친 후, 블랙호크스는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7번 시드인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 맞붙었다. 블랙호크스는 시리즈 첫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다음 세 경기를 내리 패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블랙호크스는 다시 기세를 회복하여 7차전 연장전에서 브렌트 시브룩의 골로 시리즈를 승리로 장식했다.[69] 그 후, 디펜딩 스탠리 컵 챔피언이자 5번 시드인 로스앤젤레스 킹스를 5경기 만에 꺾고 4시즌 만에 두 번째 스탠리 컵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70]
블랙호크스는 2013 스탠리 컵 결승전에서 보스턴 브루인스와 맞붙었다.[71]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오리지널 식스 팀 두 팀이 스탠리 컵 결승에 진출했고,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최근 4개의 스탠리 컵 우승팀이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다.[71] 브루인스는 3년 만에 두 번째 결승 진출(2011년 밴쿠버 캐넉스와의 7차전 승리)이었고, 블랙호크스와 비슷한 부활을 거듭하고 있었다. 6월 24일, 블랙호크스는 시리즈 6차전에서 브루인스를 꺾고 스탠리 컵을 획득했는데, 경기 종료 1분 남짓 남은 시점에서 2-1의 열세를 뒤집었다.[68] 경기 종료 1분 16초와 58.3초를 남기고 브라이언 비켈과 데이브 폴랜드가 연달아 골을 넣어 3-2로 승리했다.[68]
2. 5. 4. 2013–2016: 여섯 번째 스탠리 컵과 계속되는 경쟁
블랙호크스는 1997년과 1998년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이후 최초로 스탠리 컵 2연패를 달성하기 위해 2013-14 시즌(2013–14 NHL season)을 시작했다.[72] 연봉 상한선을 준수하기 위해 오프시즌에 약간의 선수 변화가 있었다.[73] 팀은 베테랑 포워드 데이브 볼랜드, 다니엘 카르칠로, 마이클 프로릭을 미래 드래프트 지명권과 교환했고, 베테랑 골텐더 레이 에머리와 베테랑 윙어 빅터 스탈베르그는 자유 계약으로 팀을 떠났다.[74]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블랙호크스는 2014년 1월까지 28승 7무 7패의 기록을 세웠다. 팀은 프랜차이즈 역사상 두 번째 야외 경기를 2014 스타디움 시리즈(2014 NHL Stadium Series)의 일환으로 솔저 필드에서 피츠버그 펭귄스와 치렀다. 블랙호크스는 62,921명의 팬 앞에서 펭귄스를 5-1로 이겼다.[75]프랜차이즈는 정규 시즌 2,500번째 승리를 기록했고, 감독 조엘 퀘네빌은 감독으로 693승을 거두며 NHL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승수를 기록했다.[76][77] 블랙호크스는 46승 21패 15무의 기록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센트럴 디비전 3위를 차지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 2경기를 먼저 내주었지만, 이후 4연승을 거두며 시리즈를 가져왔다.[78] 팀은 2년 연속 미네소타 와일드를 꺾었지만, 로스앤젤레스 킹스에게 7경기 시리즈 끝에 패하며 킹스가 스탠리 컵을 들어 올렸다.[79] 시즌 종료 후 던컨 키스는 두 번째 제임스 노리스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했고, 주장 조너선 투스는 2년 연속 세 번째 프랭크 J. 셀케 트로피 후보로 지명되었다.[80][81]
블랙호크스는 지난 3시즌 동안의 로스터를 대부분 유지한 채 2014-15 시즌을 시작했다. 2014-15 시즌 시작 전 2014년 오프시즌에 팀은 베테랑 센터 브래드 리차즈와 신인 골텐더 스콧 달링과 1년 계약을 맺었고, 베테랑 수비수 닉 레디를 뉴욕 아일랜더스에 3명의 유망주와 교환했다.[82][83][84] 시즌 전반기에는 패트릭 케인이 득점과 포인트에서 팀을 이끌었다. 블랙호크스는 올스타 브레이크(All-Star break)까지 30승 15패 2무를 기록했다.[85] 블랙호크스는 케인, 조너선 투스, 던컨 키스, 브렌트 시브룩, 코리 크로포드를 포함해 6명의 선수를 2015 NHL 올스타 게임(2015 National Hockey League All-Star Game)에 보냈다.[86] 팀은 또한 워싱턴 D.C.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2015 윈터 클래식(2015 NHL Winter Classic)에서 워싱턴 캐피털스에 3-2로 패했다.[87]
하지만 2월 말 케인이 어깨 부상을 당하며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 대부분을 결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88] 팀은 AHL에서 신인 테우보 테라바이넨을 불러들였고, 2015 NHL 신인 드래프트(2015 NHL entry draft) 1라운드 지명권을 내주고 애리조나 카이오티스에서 센터 앙투안 베르메트를 영입했다.[89] 블랙호크스는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에서 베테랑 수비수 킴모 티모넨을 2015년과 2016년 2라운드 지명권과 교환했고,[90] 산호세 샤크스에서 벤 스미스와 교환하여 앤드류 데자르댕을 영입했다.[91] 블랙호크스는 48승 28패 6무의 기록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디비전 3위를 차지했고, NHL에서 가장 적은 실점을 허용했다.[92]
케인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어 플레이오프 시작을 앞두고 컨디션을 되찾았다.[93] 블랙호크스는 내슈빌 프레데터스를 6경기 만에 제압하고 미네소타 와일드를 스윕하며 7년 중 5번째로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다.[94] 1번 시드 애너하임 덕스가 시리즈에서 3-2로 앞서나갔지만, 블랙호크스는 6차전과 7차전에서 승리하며 시리즈를 뒤집었다. 그리고 2015 스탠리컵 결승전(2015 Stanley Cup Finals)에서 탬파베이 라이트닝을 꺾고 6시즌 만에 세 번째 스탠리 컵을 차지하며 현대 NHL의 강팀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95]
블랙호크스의 로스터는 2015-16 시즌(2015–16 NHL season)을 앞두고 또 다른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팀은 2013년과 2015년 스탠리컵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한 없는 자유 계약 선수 브랜든 사드와 계약을 맺지 못했다.[96] 블랙호크스는 사드의 협상권(유망주 알렉스 브로드허스트와 마이클 팔리오타와 함께)을 콜럼버스 블루재키츠에 보내고 아르템 아니시모프, 마르코 다노, 코리 트롭, 제레미 모린 그리고 2016 NHL 신인 드래프트(2016 NHL entry draft) 4라운드 지명권인 아나톨리 골리셰프를 받았다.[97] 블랙호크스는 연봉 상한선 때문에 베테랑 자유 계약 선수인 브래드 리차즈, 앙투안 베르메트, 조니 오두야와 재계약하지 못했다.[98] 팀은 연봉 상한선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팀에 헌신했던 팬들의 사랑을 받는 베테랑 패트릭 샤프 (스티븐 존스와 함께)를 댈러스 스타스에 보내고 트레버 데일리와 라이언 가버트를 받았다.[99] 로스터 변화 속에서 블랙호크스는 KHL(Kontinental Hockey League) 출신의 자유 계약 선수 아르테미 파나린과 입단 계약을 맺었다.[100]
블랙호크스의 공격은 2015-16 시즌에 NHL 최고인 106포인트를 기록하고 리그 MVP인 하트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한 패트릭 케인이 이끌었다.[101] 케인의 라인에서 뛰었던 아르테미 파나린은 NHL 최고의 신인에게 수여되는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를 수상했다.[102] 시즌 중반 블랙호크스는 여러 차례 트레이드를 통해 로스터를 보강하려 했다. 블랙호크스는 제레미 모린을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에 보내고 리차드 파닉을 받았다.[103] 팀은 2016 NHL 신인 드래프트(2016 NHL entry draft) 1라운드 지명권과 마르코 다노를 주고 위니펙 제츠에서 앤드류 래드를 다시 영입했다.[104] 그리고 필립 다노와 2018 NHL 신인 드래프트(2018 NHL entry draft) 2라운드 지명권을 몬트리올 캐나디언스에 보내고 데일 와이즈와 토마스 플레슈만을 받았다.[105] 팀은 46승 26패 9무, 103점을 기록하며 디비전 3위를 차지했다. 스탠리컵 우승팀 블랙호크스는 2016 플레이오프(2016 Stanley Cup playoffs) 1라운드에서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게 7경기 시리즈 끝에 패했다.[106] 이 패배는 2012 플레이오프(2012 Stanley Cup playoffs) 이후 블랙호크스의 가장 이른 플레이오프 탈락이었다.[107]
2. 5. 5. 2016–2020: 스탠리 컵 이후의 해들과 재정비
연봉 상한선 제약으로 블랙호크스는 2016-17 시즌 전에 추가적인 트레이드를 해야 했다.[108] 팀은 자유계약선수(FA)를 앞둔 앤드류 쇼(Andrew Shaw)를 몬트리올로 보내고 2016년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 두 장을 받았다.[108] 블랙호크스는 또한 연봉 상한선 공간 확보를 위해 브라이언 비켈(Bryan Bickell)과 테우보 테라바이넨(Teuvo Teravainen)을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로 트레이드하여 2016년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 한 장을 받았다.[109] 블랙호크스는 베테랑 수비수 브라이언 캠벨(Brian Campbell)을 다시 영입하고 KHL 스타 미할 켐프니와 자유계약을 맺었다.[110][111] 이후 팀은 팜 시스템을 통해 선수층을 보강했다. 블랙호크스는 신인 라이언 하트만(Ryan Hartman), 구스타프 포슬링(Gustav Forsling), 존 헤이든, 타일러 모트(Tyler Motte), 닉 슈말츠(Nick Schmaltz), 비니 히노스트로자(Vinnie Hinostroza)를 주전 라인업에 포함시켜 래드(Ladd), 비켈, 쇼, 테라바이넨이 남긴 공백을 메웠다.[112]패트릭 케인(Patrick Kane)은 82경기 모두 출전하여 34골 55어시스트 89득점을 기록하며 블랙호크스 공격을 이끌었고, 정규 시즌 득점에서 전체 선수 중 2위를 기록했다.[113] 그는 라인메이트인 파나린(Panarin)의 도움을 받았는데, 파나린은 31골 43어시스트를 기록했다.[113] 케인과 파나린 외에도 조나단 토스(Jonathan Toews), 마리안 호사(Marian Hossa), 아르템 아니시모프(Artem Anisimov), 리처드 파닉(Richard Panik) 모두 20골 이상을 기록했다.[14] 토스, 케인, 던컨 키스(Duncan Keith), 코리 크로포드(Corey Crawford)는 올스타전 출전 선수로 선발되었다.[115] 블랙호크스는 109점으로 시즌을 마감하여 센트럴 디비전 1위를 차지하고 2017 플레이오프 서부 컨퍼런스 톱 시드를 획득했다.[113] 하지만 8번 시드 내슈빌 프레데터스에게 1라운드에서 스윕을 당하며 NHL 플레이오프 역사상 가장 큰 이변 중 하나를 맞이했다. 8번 시드가 컨퍼런스 톱 시드를 스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116] 골텐더 페카 린네(Pekka Rinne)와 프레데터스의 수비는 블랙호크스의 공격을 무력화시켜 시리즈에서 총 3골만을 허용했고, 시리즈 시작을 알리는 1차전(1-0)과 2차전(5-0)에서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연속 셧아웃을 기록했다.[117]
2017-18 시즌을 앞두고 블랙호크스는 마리안 호사(Marian Hossa)가 진행성 피부 질환으로 2017-18 시즌 전체를 결장한다고 발표했다.[118][119] 팀은 2017 NHL 신인 드래프트 전에 두 건의 주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베테랑 수비수 니클라스 할마르손(Niklas Hjalmarsson)은 애리조나 코요티스로 트레이드되어 코너 머피(Connor Murphy)와 로랑 도팽(Laurent Dauphin)을 받았고, 아르테미 파나린(Artemi Panarin)은 콜럼버스 블루 재키츠로 트레이드되어 4명의 선수가 포함된 트레이드를 통해 브랜든 사드(Brandon Saad)를 다시 영입했다.[120] 할마르손과 호사는 2010년, 2013년, 2015년 세 차례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한 블랙호크스 로스터의 핵심 선수였다.[120] 팀은 또한 골텐더 스콧 달링(Scott Darling)을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로, 센터 마커스 크루거(Marcus Kruger)를 베가스 골든 나이츠로 트레이드했고, 트레버 반 리엠스다이크(Trevor van Riemsdyk)는 2017 NHL 확장 드래프트에서 골든 나이츠로 이적했고, 브라이언 캠벨(Brian Campbell)은 은퇴했다.[121] 블랙호크스는 자유계약을 통해 윙어 패트릭 샤프(Patrick Sharp), 토미 윙글스(Tommy Wingels), 랜스 부마(Lance Bouma)를 영입했다.[121]
블랙호크스는 2017-18 시즌을 디펜딩 스탠리컵 챔피언 피츠버그 펭귄스와의 경기에서 10-1 승리로 시작했다.[122] 블랙호크스는 2017년 12월 말 18-14-6의 기록으로 5할 승률을 4경기 상회했고, 플레이오프 진출권과는 4점 차이였다.[123] 하지만 골텐더 코리 크로포드(Corey Crawford)는 상체 부상으로 2018년 대부분을 결장했다.[124] 불안정한 수비와 골텐딩, 제한적인 공격력은 팀이 센트럴 디비전 최하위로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125][126] 블랙호크스는 2018년 3월 20일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었고, 9년 만에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126] 팀은 33-39-10의 기록과 76점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플레이오프 진출권과 19점 차이를 보였다.[127]
블랙호크스는 자유계약 첫날 캠 워드, 크리스 쿠니츠(Chris Kunitz), 브랜든 매닝(Brandon Manning)을 영입하며 소소한 영입을 했다.[128] 팀은 호사의 계약을 애리조나 코요티스로 넘기면서 비니 히노스트로자(Vinnie Hinostroza), 조던 오스터레(Jordan Oesterle), 그리고 2019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을 주고 마커스 크루거, 맥켄지 엔트위슬(MacKenzie Entwistle), 조던 말레타(Jordan Maletta), 앤드류 캠벨, 그리고 2019 NHL 드래프트 5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오프시즌 최대의 움직임을 보였다.[129] 조엘 켄빌(Joel Quenneville) 감독은 크로포드가 2018-19 시즌 첫 5경기를 뇌진탕 증상으로 결장하면서 워드를 팀의 주전 골텐더로 지명했다. 블랙호크스는 크로포드의 초기 결장에도 불구하고 6-2-2의 좋은 출발을 보였다.[130] 하지만 다음 5경기에서 패배한 후,[130] 감독 조엘 켄빌(Joel Quenneville) (그리고 수석 코치 케빈 다인(Kevin Dineen)과 울프 사무엘손(Ulf Samuelsson))이 2018년 11월 6일 해고되었다. 블랙호크스 AHL 팀인 록포드 아이스호크스의 감독이었던 제러미 콜리턴(Jeremy Colliton)이 프랜차이즈 역사상 38번째 감독으로 임명되었다.[131]
팀은 닉 슈말츠(Nick Schmaltz)를 애리조나 코요티스로 트레이드하여 딜런 스트롬(Dylan Strome)과 브랜든 펄리니(Brendan Perlini)를 받으면서 로스터를 조정했다.[132] 블랙호크스는 브랜든 매닝을 에드먼턴 오일러스로 트레이드하여 드레이크 카지울라(Drake Caggiula)를 받았다.[133]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팀은 고전하며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NHL 순위 최하위로 떨어졌지만,[134] 시즌 후반 18-10-3의 기록으로 반등했고, 6점 차이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센트럴 디비전 6위를 차지했다.[135]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후 블랙호크스는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2019 NHL 신인 드래프트 3순위 지명권을 얻어 커비 대치(Kirby Dach)를 지명했다.[136][137]
2019-20 시즌을 앞두고 블랙호크스는 자유계약 첫날 센터 라이언 카펜터(Ryan Carpenter)와 골텐더 로빈 레너(Robin Lehner)를 영입했다.[138] 팀은 올리 마타, 캘빈 드 한(Calvin de Haan), 알렉스 나일랜더(Alex Nylander)를 영입하기 위해 세 건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139] 팀은 몬트리올 캐네디언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팬들의 사랑을 받는 앤드류 쇼를 다시 영입했다.[140] 블랙호크스는 전 시즌 LA 킹스에서 영입한 신인 도미니크 쿠발릭을 로스터에 포함시켰다.[141] 블랙호크스는 32-30-8의 기록으로 디비전 최하위를 기록했고,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정규 시즌 잔여 경기가 취소되었다.[142] 팀은 13년간 블랙호크스 사장직을 역임한 존 맥도너를 해고했다.[143] 블랙호크스는 각 컨퍼런스 상위 12팀을 포함하는 24팀 플레이오프 포맷을 사용한 2020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확보했다.[144] 12번 시드 블랙호크스는 플레이오프 예선에서 에드먼턴 오일러스를 물리치고 서부 컨퍼런스 1라운드에 진출했고,[145] 5경기 만에 베가스 골든 나이츠에게 패했다.[146]
2. 6. 대니 위르츠 시대 (2023년 ~ 현재)
2023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블랙호크스는 1순위 지명권을 획득, 코너 베다드(Connor Bedard)를 지명했다.[184] 이후 베테랑 포워드 테일러 홀(Taylor Hall), 닉 폴리뇨(Nick Foligno), 코리 페리(Corey Perry)를 영입했다.[185] 또한, 뉴욕 아일랜더스로부터 조시 베일리(Josh Bailey)와 2026년 2라운드 지명권을 획득했으나,[185] 베일리의 계약은 즉시 매각되었다.[185] FA 시장에서는 포워드 라이언 도나토(Ryan Donato)와 2년 4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186]2023년 7월 25일, 로키 위르츠(Rocky Wirtz)가 70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187] 그의 아들 대니 위르츠(Danny Wirtz)가 7월 30일 블랙호크스 구단주인 위르츠 코퍼레이션(Wirtz Corporation)의 회장 겸 사장으로 임명되었다.[3] 2023–24 NHL 시즌에서 블랙호크스는 23승 53패 6무로 NHL 최하위권(2위)이자 1974년 이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188] 베다드, 홀, 안드레아스 아타나시우(Andreas Athanasiou), 콜린 블랙웰(Colin Blackwell) 등 여러 선수들의 부상과 코리 페리(Corey Perry)와의 계약 해지 등이 부진의 원인이었다.[189] 베다드는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Calder Memorial Trophy)를 수상하며 최고의 신인 선수로 인정받았다.[190]
2024년 12월 5일, 2024-25 시즌 26경기에서 리그 최저 18점을 기록한 후, 블랙호크스는 루크 리처드슨(Luke Richardson) 감독을 경질하고 안데르스 소렌센(Anders Sorensen)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191]
2. 6. 1. 2023-현재: 코너 베다드 시대의 시작과 재건
블랙호크스는 2023년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하여 2023 NHL 신인 드래프트에서 코너 베다드(Connor Bedard)를 1순위로 지명했다.[184] 이후 블랙호크스는 베테랑 포워드인 테일러 홀(Taylor Hall), 닉 폴리뇨(Nick Foligno) 및 코리 페리(Corey Perry)를 영입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단행했다.[185] 또한, 연봉 상한선에 여유가 있는 것을 이용해 샐러리캡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뉴욕 아일랜더스로부터 조시 베일리(Josh Bailey)와 2026년 2라운드 지명권을 획득했다.[185] 베일리의 계약은 즉시 매각되었고 그는 무조건적 지명할당 면제 명단에 올랐다.[185] 블랙호크스는 FA 시장 개장일에 포워드 라이언 도나토(Ryan Donato)와 2년, 4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186]2023년 7월 25일, 로키 위르츠(Rocky Wirtz)가 70세의 나이로 예상치 못하게 사망했다.[187] 그의 아들 대니 위르츠(Danny Wirtz)가 7월 30일 블랙호크스 구단주인 위르츠 코퍼레이션(Wirtz Corporation)의 회장 겸 사장으로 임명되었다.[3] 소유권 변화 속에서 블랙호크스는 2023–24 NHL 시즌을 23승 53패 6무의 성적으로 마치며 NHL에서 두 번째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고, 1974년 이후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188] 베다드, 홀, 안드레아스 아타나시우(Andreas Athanasiou), 콜린 블랙웰(Colin Blackwell) 등 여러 스케이터들의 부상으로 시즌 내내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블랙호크스는 구단 행동 강령 위반으로 코리 페리(Corey Perry)와의 계약을 해지했다.[189] 베다드는 NHL 최고의 신인 선수에게 수여되는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Calder Memorial Trophy)를 수상했다.[190]
2024년 12월 5일, 블랙호크스는 2024-25 시즌 26경기에서 리그 최저인 18점을 기록한 후 루크 리처드슨(Luke Richardson) 감독을 경질하고 안데르스 소렌센(Anders Sorensen)을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191]
3. 팀 정보
경기장 | 사용기간 | 수용인원 | 장소 | 비고 |
---|---|---|---|---|
시카고 콜리시엄 | 1926년~1929년 | 6,000명 | 일리노이주 시카고 | |
시카고 스타디움 | 1929년~1994년 | 18,472명 | #넘겨주기 | |
세인트루이스 아레나 | 1951년~1959년 | 17,188명 |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 제2홈경기장 체커돔(1977년~1983년) |
유나이티드 센터 | 1994년~현재 | 19,717명 | 일리노이주 시카고 | #넘겨주기 |
블랙호크스는 주로 빨간색 유니폼을 착용하며, 소매와 허리 부분에는 검정색과 흰색 줄무늬가 세 줄씩 있다.[192][193] 유니폼 앞면에는 팀 로고가 표시되고, 어깨에는 "시카고(Chicago)"를 나타내는 "C"자와 두 개의 교차된 토마호크가 있다.[192] 블랙호크스는 1955년에 이 디자인을 처음 선보였으며, 그 이후로 유니폼에 약간의 수정만 가했다.[192][193]
2007년, 블랙호크스는 다른 모든 NHL 팀들과 마찬가지로 로고를 크게 하고, NHL 로고가 있는 새로운 칼라와 바닥에 "야구 스타일 컷"을 추가하는 등 유니폼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194] 이전에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가 있는 검정색 유니폼을 보조 유니폼으로 사용했다.[193][195]
2009년부터 블랙호크스는 재향군인의 날 경기 전 워밍업 때 특별 위장복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으며, 경매를 통해 판매하고 수익금은 일리노이주 USO에 기부한다.[201]
블랙호크스의 유니폼은 ''GQ''와 ''The Hockey News''에서 최고의 유니폼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197][198] 야후! 스포츠의 그렉 와이신스키는 2017년에 블랙호크스 홈 유니폼을 NHL 역사상 두 번째로 좋은 유니폼으로 선정했다.[199] 2017년 NHL 팬 투표에서 블랙호크스는 NHL 역사상 최고의 유니폼을 가진 팀으로 선정되었다.[200]
아디다스는 2017-18 시즌부터 리복을 대체하여 모든 팀의 공식 유니폼 및 라이선스 의류 제조업체가 되었다.[209] 리복 "Edge" 템플릿은 아디다스의 "ADIZERO" 템플릿으로 대체되었다. 홈 및 원정 유니폼은 새로운 아디다스 ADIZERO 템플릿과 새로운 칼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하게 유지된다.[210] 허리 줄무늬는 이제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되어 있다.
2019-20 시즌에는 홈 및 원정 유니폼이 새로운 칼라 디자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었다.[215][216]
2020-21 시즌부터 NHL은 헬멧 광고를 시작으로 경기 유니폼에 광고를 허용하기 시작했다.[217]
2021-22 NHL 정규 시즌부터 아디다스는 아디다스 ADIZERO Primegreen Authentic 템플릿으로 모든 팀을 위한 새로운 친환경 유니폼을 선보였다.[221] 블랙호크스의 경우 유니폼 로고에 로고의 앞면, 이마 선, 눈썹과 눈, 얼굴 페인트 등이 이전과 달리 평평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222]
2024-25 시즌부터 Fanatics는 아디다스를 대체하는 Authentic Pro NHL 온아이스 유니폼을 선보였다.[227] 블랙호크스는 2024년 6월 Circa Sports와 다년 계약을 체결하여 팀의 홈 레드 유니폼 공식 저지 패치 스폰서가 되었다.[228]
맥클라우린의 아내인 아이린 캐슬이 원래 팀 로고를 디자인했는데, 원형 안에 투박하게 그려진 흑백의 원주민의 머리가 특징이었다.[230] 이 디자인은 1926년부터 1955년까지 여러 차례 중요한 변화를 거쳤다. 1955-56 시즌 초에 바깥쪽 원이 제거되었고, 머리는 현재 팀의 주 로고와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기본 로고와 유니폼 디자인은 그 이후로 꾸준히 유지되었다. 2008년, ''호키 뉴스(The Hockey News)'' 직원들은 팀의 주 로고를 NHL 최고의 로고로 선정했다.[231]
2010년, 스포츠 칼럼니스트 데미언 콕스는 "인종적으로 무감각한" 로고를 폐지할 것을 프랜차이즈에 촉구했다.[232] 미국 원주민 전국회의(NCAI)는 블랙호크스를 포함한 모든 원주민 테마 로고가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시작된 유해한 고정 관념으로 이익을 계속 얻고 있다"고 믿고 있다.[233] 2019년, 시카고 미국 원주민 센터(American Indian Center)는 시카고 블랙호크스 재단과의 모든 관계를 끝냈으며, 더 이상 "'인디언' 마스코트를 사용하여 고정 관념을 영속시키는 조직과 제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234][235]
2020년 7월 7일, 블랙호크스는 팀의 이름과 로고를 옹호하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팀은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이름과 로고는 일리노이주 색 앤 폭스족의 중요하고 역사적인 인물인 블랙 호크의 상징이며, 그의 리더십과 삶은 여러 세대의 미국 원주민, 참전 용사 및 일반 대중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236]
미국 원주민 전국회의, 시카고 미국 원주민 센터 등 여러 단체와 블랙 호크의 가족 구성원을 포함하여 팀 이름과 로고 변경을 지지하거나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237][238][239][240][241] 시카고의 원주민 청년 단체인 시-네이션스 청년위원회(CNYC)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이름과 로고는 제국주의와 대량 학살의 유산을 상징한다"고 말했다.[242]
블랙호크스의 마스코트는 '''토미 호크(Tommy Hawk)'''로, 블랙호크스의 네 개의 깃털을 머리에 쓰고 블랙호크스 저지와 하키 팬츠를 입은 의인화된 검은매이다.[243] 토미 호크는 종종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티셔츠 던지기와 퍽 던지기에 참여하며,[243] 경기 전과 경기 중에 컨코스를 돌아다니며 팬들에게 인사를 한다.[243] 팀은 2001-02 시즌에 토미 호크를 소개했다.[244] 토미 호크는 2019년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45]
블랙호크스의 훈련 시설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근서사이드에 위치한 피프스 서드 아레나(Fifth Third Arena)이다. 2019년 5월 이전에는 MB 아이스 아레나(MB Ice Arena)로 불렸다.[246] 125,000 제곱피트 면적의 이 시설은 2017년에 개장했으며, 건설 비용은 6,500만 달러였다.[247] 피프스 서드 아레나는 지역 사회 센터 역할도 하며 청소년, 고등학생, 성인을 위한 하키 및 아이스 스케이팅 프로그램을 개최한다.[248]
블랙호크스는 이전에 교외 지역 벤센빌에 있는 조니스 아이스 하우스 웨스트(Johnny's Ice House West)와 더 에지 아이스 아레나(The Edge Ice Arena)를 훈련 시설로 사용했다.[249]
시카고 불스와 같은 경기장을 사용했던 시카고 블랙호크스는 두 팀 모두 시카고 스타디움을 사용했던 시절부터 매년 11월 중순에 2주간의 원정 경기를 떠났다.[250] 한때 블랙호크스, 불스, 시카고 스타디움을 소유했던 위르츠 가족은 서커스단과 피겨 스케이팅단에 경기장을 임대했다.[251][252][253] 이 기간 동안 블랙호크스는 캐나다 서부와 캘리포니아에서 6~7경기를 치렀다.[250] 2016년 11월, 링링 브라더스 앤 바넘 & 베일리 서커스는 2017년 유나이티드 센터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250] 그 결과, 디즈니 온 아이스는 2017년 2주 공연을 마지막으로 2018년에는 1주일 공연으로 축소되었다.
3. 1. 유니폼
블랙호크스는 주로 빨간색 유니폼을 착용하며, 소매와 허리 부분에는 검정색과 흰색 줄무늬가 세 줄씩 있다.[192][193] 유니폼 앞면에는 팀 로고가 표시되고, 어깨에는 "시카고(Chicago)"를 나타내는 "C"자와 두 개의 교차된 토마호크가 있다.[192] 블랙호크스는 1955년에 이 디자인을 처음 선보였으며, 그 이후로 유니폼에 약간의 수정만 가했다.[192][193]2007년, 블랙호크스는 다른 모든 NHL 팀들과 마찬가지로 로고를 크게 하고, NHL 로고가 있는 새로운 칼라와 바닥에 "야구 스타일 컷"을 추가하는 등 유니폼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194] 이전에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가 있는 검정색 유니폼을 보조 유니폼으로 사용했다.[193][195]
2009년부터 블랙호크스는 재향군인의 날 경기 전 워밍업 때 특별 위장복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으며, 경매를 통해 판매하고 수익금은 일리노이주 USO에 기부한다.[201]
블랙호크스의 유니폼은 ''GQ''와 ''The Hockey News''에서 최고의 유니폼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197][198] 야후! 스포츠의 그렉 와이신스키는 2017년에 블랙호크스 홈 유니폼을 NHL 역사상 두 번째로 좋은 유니폼으로 선정했다.[199] 2017년 NHL 팬 투표에서 블랙호크스는 NHL 역사상 최고의 유니폼을 가진 팀으로 선정되었다.[200]
아디다스는 2017-18 시즌부터 리복을 대체하여 모든 팀의 공식 유니폼 및 라이선스 의류 제조업체가 되었다.[209] 리복 "Edge" 템플릿은 아디다스의 "ADIZERO" 템플릿으로 대체되었다. 홈 및 원정 유니폼은 새로운 아디다스 ADIZERO 템플릿과 새로운 칼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하게 유지된다.[210] 허리 줄무늬는 이제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되어 있다.
2019-20 시즌에는 홈 및 원정 유니폼이 새로운 칼라 디자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었다.[215][216]
2020-21 시즌부터 NHL은 헬멧 광고를 시작으로 경기 유니폼에 광고를 허용하기 시작했다.[217]
2021-22 NHL 정규 시즌부터 아디다스는 아디다스 ADIZERO Primegreen Authentic 템플릿으로 모든 팀을 위한 새로운 친환경 유니폼을 선보였다.[221] 블랙호크스의 경우 유니폼 로고에 로고의 앞면, 이마 선, 눈썹과 눈, 얼굴 페인트 등이 이전과 달리 평평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222]
2024-25 시즌부터 Fanatics는 아디다스를 대체하는 Authentic Pro NHL 온아이스 유니폼을 선보였다.[227] 블랙호크스는 2024년 6월 Circa Sports와 다년 계약을 체결하여 팀의 홈 레드 유니폼 공식 저지 패치 스폰서가 되었다.[228]
3. 2. 로고
맥클라우린의 아내인 아이린 캐슬이 원래 팀 로고를 디자인했는데, 원형 안에 투박하게 그려진 흑백의 원주민의 머리가 특징이었다.[230] 이 디자인은 1926년부터 1955년까지 여러 차례 중요한 변화를 거쳤다. 1955-56 시즌 초에 바깥쪽 원이 제거되었고, 머리는 현재 팀의 주 로고와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기본 로고와 유니폼 디자인은 그 이후로 꾸준히 유지되었다. 2008년, ''호키 뉴스(The Hockey News)'' 직원들은 팀의 주 로고를 NHL 최고의 로고로 선정했다.[231]
2010년, 스포츠 칼럼니스트 데미언 콕스는 "인종적으로 무감각한" 로고를 폐지할 것을 프랜차이즈에 촉구했다.[232] 미국 원주민 전국회의(NCAI)는 블랙호크스를 포함한 모든 원주민 테마 로고가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시작된 유해한 고정 관념으로 이익을 계속 얻고 있다"고 믿고 있다.[233] 2019년, 시카고 미국 원주민 센터(American Indian Center)는 시카고 블랙호크스 재단과의 모든 관계를 끝냈으며, 더 이상 "'인디언' 마스코트를 사용하여 고정 관념을 영속시키는 조직과 제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234][235]
2020년 7월 7일, 블랙호크스는 팀의 이름과 로고를 옹호하는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팀은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이름과 로고는 일리노이주 색 앤 폭스족의 중요하고 역사적인 인물인 블랙 호크의 상징이며, 그의 리더십과 삶은 여러 세대의 미국 원주민, 참전 용사 및 일반 대중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236]
미국 원주민 전국회의, 시카고 미국 원주민 센터 등 여러 단체와 블랙 호크의 가족 구성원을 포함하여 팀 이름과 로고 변경을 지지하거나 변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237][238][239][240][241] 시카고의 원주민 청년 단체인 시-네이션스 청년위원회(CNYC)는 "시카고 블랙호크스의 이름과 로고는 제국주의와 대량 학살의 유산을 상징한다"고 말했다.[242]
3. 3. 마스코트
블랙호크스의 마스코트는 '''토미 호크(Tommy Hawk)'''로, 블랙호크스의 네 개의 깃털을 머리에 쓰고 블랙호크스 저지와 하키 팬츠를 입은 의인화된 검은매이다.[243] 토미 호크는 종종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티셔츠 던지기와 퍽 던지기에 참여하며,[243] 경기 전과 경기 중에 컨코스를 돌아다니며 팬들에게 인사를 한다.[243] 팀은 2001-02 시즌에 토미 호크를 소개했다.[244] 토미 호크는 2019년 마스코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45]
3. 4. 훈련 시설
블랙호크스의 훈련 시설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근서사이드에 위치한 피프스 서드 아레나(Fifth Third Arena)이다. 2019년 5월 이전에는 MB 아이스 아레나(MB Ice Arena)로 불렸다.[246] 125,000 제곱피트 면적의 이 시설은 2017년에 개장했으며, 건설 비용은 6,500만 달러였다.[247] 피프스 서드 아레나는 지역 사회 센터 역할도 하며 청소년, 고등학생, 성인을 위한 하키 및 아이스 스케이팅 프로그램을 개최한다.[248]블랙호크스는 이전에 교외 지역 벤센빌에 있는 조니스 아이스 하우스 웨스트(Johnny's Ice House West)와 더 에지 아이스 아레나(The Edge Ice Arena)를 훈련 시설로 사용했다.[249]
3. 5. 서커스 트립
시카고 불스와 같은 경기장을 사용했던 시카고 블랙호크스는 두 팀 모두 시카고 스타디움을 사용했던 시절부터 매년 11월 중순에 2주간의 원정 경기를 떠났다.[250] 한때 블랙호크스, 불스, 시카고 스타디움을 소유했던 위르츠 가족은 서커스단과 피겨 스케이팅단에 경기장을 임대했다.[251][252][253] 이 기간 동안 블랙호크스는 캐나다 서부와 캘리포니아에서 6~7경기를 치렀다.[250] 2016년 11월, 링링 브라더스 앤 바넘 & 베일리 서커스는 2017년 유나이티드 센터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250] 그 결과, 디즈니 온 아이스는 2017년 2주 공연을 마지막으로 2018년에는 1주일 공연으로 축소되었다.4. 미디어 및 중계진
2008-09 시즌부터 시카고 블랙호크스는 팀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 시즌 82경기와 플레이오프 경기 전체를 텔레비전으로 방송했다.[254] 최소 20경기는 WGN-TV(9번 채널)에서 방송되었는데, 이는 30년 만에 블랙호크스 경기가 지상파 지역 방송에서 방영된 것이다. WGN 스포츠 부서를 통해 제작된 WGN-TV의 경기는 리그 방송권 제한으로 인해 자매 방송국인 WGN 아메리카에서는 볼 수 없었다. WGN-TV에서 방송되지 않은 경기는 지역 스포츠 네트워크인 NBC 스포츠 시카고에서 방송되었는데, 이는 최소 35년 만에 전국 방송되지 않은 홈 경기가 지상파 또는 케이블 방송을 통해 지역에서 방영된 것이다. 2011년 2월 15일, 팀은 WGN-TV와 5년 동안 방송 계약을 갱신했고,[254] 2014년 5월 15일 3년 더 연장되어 2018-19 시즌까지 9번 채널에서 계속 방송되었다.[254] 2019년 1월 2일, 블랙호크스는 시카고 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함께 2019-20 시즌부터 NBC 스포츠 시카고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여 WGN-TV에서의 방송을 종료했다.[255] 2024년 6월 5일, 블랙호크스, 불스, 화이트삭스는 새롭게 설립된 시카고 스포츠 네트워크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256]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라디오 방송은 WBBM(780)과 WMAQ/WSCR(670) 사이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두 주파수 모두 5만 와트의 클리어 채널 방송국이어서 블랙호크스 경기를 밤에 전국적으로 청취 가능했지만, 블랙호크스 경기는 4월 초부터 화이트삭스 야구 경기와 종종 시간이 겹쳤다. 2008년 4월 30일, 팀은 WGN 라디오(720 AM)와 3년 계약을 체결했고, 야구 시즌 중 일정이 겹칠 경우 WIND(560 AM)에서 번갈아 방송되었다. 2010년 스탠리컵 결승전 기간 동안 컵스는 블랙호크스 경기를 WGN에서 방송하고, 시간이 겹칠 경우 컵스 경기를 WIND로 옮기는 데 동의했다. 모든 블랙호크스 경기는 WGN 또는 WGWG-LP에서 방송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wgnradio.com에서 라이브 스트리밍된다. WLUP-FM(97.9 FM)도 대체 방송국으로 사용되었다.
2024-25 시즌부터 릭 볼과 존 위데만이 각각 텔레비전과 라디오 중계를 맡고 있다.[257][258] 대런 팡과 트로이 머리는 각각 TV와 라디오 해설자 역할을 하며, 케일리 첼리오스는 다양한 미디어에서 가끔 경기 분석과 다른 콘텐츠를 제공한다.[257][258]
5. 시즌별 기록
최근 5시즌 동안 시카고 블랙호크스는 플레이오프에 한 번 진출했다. 2019-20 시즌에는 1라운드에서 베가스 골든 나이츠에 패배했다. 나머지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 GP | W | L | OTL | Pts | GF | GA | 순위 | 플레이오프 |
2019-20 | 70 | 32 | 30 | 8 | 72 | 212 | 218 | 중부 디비전 7위 | 1라운드 패배 (1-4) (골든 나이츠) |
2020-21 | 56 | 24 | 25 | 7 | 55 | 161 | 186 | 중부 디비전 6위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2021-22 | 82 | 28 | 42 | 12 | 68 | 219 | 291 | 중부 디비전 7위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2022-23 | 82 | 26 | 49 | 7 | 59 | 204 | 301 | 중부 디비전 8위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2023-24 | 82 | 23 | 53 | 6 | 52 | 179 | 290 | 중부 디비전 8위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참고: GP = 경기 수, W = 승, L = 패, T = 무승부, OTL = 연장 패, Pts = 승점, GF = 득점, GA = 실점
6. 선수 및 관계자
1995~19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