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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바크르 알시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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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부 바크르 알시디크는 메카 출신의 아랍인으로, 초대 정통 칼리파이다. 무함마드의 측근이자 장인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 '알 수디크'(진실을 말하는 자)라는 존칭을 얻었다. 무함마드 사후, 무슬림 공동체의 합의로 칼리파에 선출되어 릿다 전쟁을 진압하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 및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이슬람 세력 확장에 기여했다. 순니파에서는 이상적인 칼리파로 존경받지만, 시아파에서는 알리의 지위를 찬탈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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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바크르 알시디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라시둔 칼리파 아부 바크르 앗-시디크 (압둘라 이븐 아비 쿠하파)
라시둔 칼리파 아부 바크르 앗-시디크 (압둘라 이븐 아비 쿠하파)
작위라시둔 칼리파
재위632년 6월 8일 ~ 634년 8월 22일
전임자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후임자우마르 이븐 알카타브
아부 바크르 압둘라 빈 아비 쿠하파 알시디크
왕조정통 칼리파조
아버지우스만 아부 쿠하파
어머니살마 움므울카이르
출생일573년 10월 27일
출생지아라비아 반도 메카
사망지아라비아 반도 메디나
사망일634년 8월 22일
능묘메디나 예언자의 모스크
종교이슬람교
가족 관계
배우자쿠타일라 빈트 압드알우자(이혼)
움므 루만
아스마 빈트 우마이스
하비바흐 빈트 카리자
자녀아들:
압둘라 이븐 아비 바크르
압둘라만 이븐 아비 바크르
무함마드 이븐 아비 바크르
딸:
아스마 빈트 아비 바크르
아이샤 빈트 아비 바크르
움므 쿨툼 빈트 아비 바크르

2. 생애와 가계

아부 바크르는 아라비아 반도 서부 메카 출신의 아랍인으로, 쿠라이쉬 부족 타심 가문 출신이다. 무함마드와는 친척 관계였다. 그의 본명은 압둘 카바(عبد الكعبة, 카바의 노예)였으나,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무함마드에 의해 무함마드의 아버지 이름과 같은 압둘라(عبد الله, 알라의 노예)로 개명되었다. 그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자'라는 뜻의 '아튀크'(al-‘Atīq/العتیقar)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후세에는 동음이의어로써 '(지옥의 불길에서) 풀려난 자'로 해석되었다. 또한, 이른 시기부터 무슬림으로써 신앙심이 깊었고 어떤 역경 앞에서도 이슬람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무함마드가 미라쥬(승천)의 기적을 말했을 때도 이를 진실로써 믿었으므로 '진실을 말하는 자'라는 뜻의 알 수디크(al-Ṣiddīq/الصدّیقar)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3. 초기 이슬람 활동

아부 바크르는 아라비아 반도 서부의 도시 메카에 살던 아랍인 쿠라이쉬 부족에 속한 타심 가문 출신으로, 무함마드와는 친척이었다. 그는 이른 시기부터 무슬림으로써 신앙심이 깊었고 어떤 역경 앞에서도 이슬람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무함마드가 미라쥬(승천)의 기적을 말했을 때도 이를 진실로써 믿었으므로 「(바른 것을 의심하지 않는) 진실을 말하는 자」라는 뜻의 알 수디크(الصدّيق al-Ṣiddīq)라는 존칭(라캅)으로 불렸다. 아부 바크르라는 쿤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원래 그의 이름(이숨)은 압둘 카바(عبد الكعبة ‘Abd al-Ka‘ba, 카바의 노예)로 무슬림으로 개종하면서 무함마드에 의해 무함마드의 아버지 이름과 같은 압둘라(عبد الله ‘Abd Allāh, 알라의 노예)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자」라는 「아튀크」( العتيق al-‘Atīq)라는 별명이 있었다.

4. 정통 칼리파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하자 무슬림 공동체의 합의(선거)를 통해 초대 정통 칼리파로 선출되었다. 이때 우마르 분 알 하타브와 알 자라프 두 사람이 무함마드의 후계 대리(칼리파)로써 강력 추천하면서 무슬림의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사후 이슬람 공동체(움마)의 합의를 통해 무슬림들 가운데 성사(라술 알라) 무함마드의 대리인(할리파)으로써 그들을 통솔하는 지도자(이맘) 즉 「칼리파」(할리파 알 라술라프)로써 선출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선출된 칼리파는 아부 바크르를 시작으로 그 뒤로 우마르, 우스만, 알리까지 네 사람이었다. 알리 이후 이슬람 공동체(움마) 내부의 대립으로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가 공동체 전체의 합의도 거치지 않고 실력 행사로써 칼리파의 지위를 차지했고, 이슬람 공동체(움마) 최초의 세습 왕조인 우마이야 왕조를 열었다. 때문에 아부 바크르에서 알리까지의 네 사람의 칼리파를 가리켜 순니파에서는 전통적으로 '바르게 인도한 대리인들'이라는 뜻의 「'''알 쿨라파 라시둔'''」( al-Khulafā' al-Rāshidūn/الخلفاء الراشدونar) 즉 정통 칼리파라고 불렀다(후술하듯 시아파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무함마드의 사위였던 알리 이외에 성사 무함마드로부터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를 이끌 이맘의 권한과 무함마드의 자리를 대리할 칼리파의 권한 계승을 모두 부정한다).

4. 1. 칼리파로서의 업적

칼리파가 된 아부 바크르는 '''"성사 무함마드는 죽었고,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무함마드는 신이 아닌 인간의 아들이며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라 강조했다.

그러나 무함마드 생전에 그에게 충성했던 아랍 부족 가운데는 그들의 충성이란 무함마드와의 사이에 맺어진 개인적인 계약으로 보며 아부 바크르에게 충성하는 것을 거부하는 세력도 있었다. 아부 바크르는 할리드 이븐 알왈리드 등의 활약으로 이러한 세력들을 굴복시키고 이슬람 공동체(움마)의 분열을 막았다(릿다 전쟁). 또한 이슬람 세력의 확대를 위해 사산 왕조 페르시아나 동로마 제국과 교전을 벌였는데, 그는 이러한 전쟁을 통해 무슬림 공동체(이맘)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부 바크르는 칼리파로 재위한지 2년만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때문에 그의 일련의 정복활동은 2대 칼리파 우마르 이븐 알카타브가 이어받게 된다.

5. 사망

6. 순니파와 시아파의 평가

순니파에서 아부 바크르는 이상적인 칼리파 중 한 사람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시아파에서는 본래 무함마드의 후계자가 되었어야 할 알리의 지위를 찬탈한 자로 간주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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