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보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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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니스트 보그나인은 1917년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난 미국의 배우로, 2차 세계 대전 참전 후 배우로 활동했다. 1955년 영화 《마티》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지상에서 영원으로》, 《와일드 번치》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시트콤 《맥헤일 해군》에서 주연을 맡아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2012년 95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중 최고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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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보그나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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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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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Ermes Effron Borgnino |
출생일 | 1917년 1월 24일 |
출생지 | 코네티컷주 햄던, 미국 |
사망일 | 2012년 7월 8일 |
사망지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안장 장소 | 포레스트 론 메모리얼 파크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47년–2012년 |
배우자 | 로다 케민스 (1949년–1958년, 이혼) 케티 후라도 (1959년–1963년, 이혼) 에설 머먼 (1964년–1964년, 이혼) 도나 랑쿠르 (1965년–1972년, 이혼) 토바 트래스네스 (1973년–2012년) |
자녀 | 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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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 |
소속 | 미국 해군 |
복무 기간 | 1935년–1945년 |
계급 | 포술 하사 (2004년 명예 상사) |
참전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대서양 전투 |
훈장 | 미국 해군 선행 훈장 (2회) 미국 방위 복무 훈장 ( "A" 장치 포함) 미국 전역 훈장 제2차 세계 대전 승리 훈장 |
수상 | |
아카데미상 | 남우주연상 1955년, 마티 |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 | 남우주연상 1955년, 마티 |
영국 아카데미상 | 외국 남자 배우상 1955년, 마티 |
골든 글로브상 |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1955년, 마티 |
전미 영화 배우 조합상 | 평생 공로상 2010년, 오랜 공로 인정 |
기타 수상 |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남우주연상 1959년, 토끼 함정 |
주요 작품 | |
영화 | 마티 와일드 번치 포세이돈 어드벤처 |
텔레비전 드라마 | 초음속 공격 헬기 에어울프 |
2. 생애
어니스트 보그나인은 1951년 영화계에 데뷔하여 2012년 사망할 때까지 60년 이상 배우로 활동했다.
1935년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1945년 제대 후 연극 학교에서 배우 공부를 시작했다.[8][9][10][11] 1949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했고, 1951년 영화계에 데뷔하여 평생 200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했다.[18]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에서 군조 역을 맡는 등 주로 거친 역할을 맡았지만, 1955년 ''마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섬세한 연기도 선보였다. 1969년 ''와일드 번치''에서는 노련한 도둑 역을, 1972년 ''포세이돈 어드벤처''에서는 진 핵크만이 연기하는 성직자와 대립하면서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남는 남자를 연기했다. 1980년대 이후로는 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며, ''에어울프''에서 주인공 호크를 보좌하는 도미니크 역을 맡았다.[20][21]
보그나인은 다섯 번 결혼했다. 첫 번째 부인 로다 케민스와는 1949년부터 1958년까지, 두 번째 부인 케이티 후라도와는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세 번째 부인 에텔 머먼과는 1964년에 짧게 결혼했다. 네 번째 부인 도나 랭쿠르와는 1965년부터 1972년까지 결혼 생활을 했고, 마지막 부인 토바 트레즈네스와는 197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함께 했다.[23][24]
2000년에는 프리메이슨 50주년 핀을 받았고, 1964년 로스앤젤레스 스코틀랜드 의식에 가입하여 1991년 명예 훈장 대십자훈장을 받았다.[25]
보그나인은 1962년까지 골초였다.[26]
2012년 7월 8일 시다스-시나이 메디컬 센터에서 신부전으로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한 달 전 수술을 받았고 사망 며칠 전 건강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었다.[27] 그는 화장되었고 군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28]
2. 1. 초기 생애
보그나인은 1917년 1월 24일 코네티컷주 햄든햄든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에르메스 에프론 보르니노(borˈɲiːno|보르니노it)로 태어났다.[3][4] 그의 어머니 안나는 모데나 근처 에밀리아로마냐주 카르피카르피 출신이었고, 아버지 카밀로 보르니노는 알레산드리아 근처 오티글리오오티글리오 출신이었다.[5] 보그나인의 부모는 그가 두 살 때 헤어졌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약 4년 반 동안 살았다. 1923년까지 부모는 화해했고, 가족 성은 보르니노에서 보그나인으로 변경되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이름을 찰스로 바꾸었다. 보그나인에게는 에블린 보그나인 벨라르디(1925~2013)라는 여동생이 있었다.[6] 가족은 코네티컷주 뉴헤이븐뉴헤이븐에 정착했고, 보그나인은 제임스 힐하우스 고등학교제임스 힐하우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자라면서 스포츠를 즐겼지만 연기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7]2. 2. 군 복무
보그나인은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35년 10월에 미국 해군에 입대했다.[8] 그는 구축함/기뢰제거함에서 복무했고,[9] 1941년 10월 명예 제대했다.[10] 1942년 1월, 진주만 공격 이후 해군에 재입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그는 대잠전 함정인 순찰정에서 대서양 연안을 순찰했다.[11] 1945년 9월, 그는 다시 한번 명예 제대했다. 그는 해군에서 총 10년 가까이 복무했고, 포수 1등 상병 계급을 달았다. 그의 군 공훈 훈장으로는 미 해군 근무 성적 우수 훈장, 미국 방위 훈장(["A" 장치 포함), 미국 전역 훈장(3/16인치 청동별 포함), 제2차 세계 대전 승리 훈장이 있다.[10]2. 3. 연기 경력
어니스트 보그나인은 1951년 영화계에 데뷔한 이후 평생 200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하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42][43][44][45] 초기에는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의 '팻소' 저드슨 중사처럼 주로 거친 역할을 맡았지만, 1955년 ''마티''에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정육점 주인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섬세한 연기력도 인정받았다.[15][16]

이후 ''조니 기타'', ''베라크루스''(1954), ''블랙록의 악몽''(1955) 등에서 악당 역할을 맡으며 믿음직한 조연 배우로 명성을 쌓았다. 1960년대에는 ''피닉스의 비행''(1965), 리 마빈과 함께 출연한 ''더티 더즌''(1967), ''얼음 기지 제브라''(1968) 등에 출연하며 영화 경력을 이어갔다.
1969년에는 샘 페킨파 감독의 서부극 ''와일드 번치''에서 더치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15] 1970년대에는 ''윌러드''(1971),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 ''북방의 황제''(1973), ''컨보이''(1978)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
2. 3. 1. 초창기 (1946-1952)
보그나인은 해군 제대 후 일자리가 없어 앞날이 불확실한 채 코네티컷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현지 공장에 취업했지만, 그런 일에 정착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가 좀 더 화려한 직업을 갖도록 격려했고, 그의 성격이 무대에 잘 어울릴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전혀 열정적이지 않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15] 2011년 보그나인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어머니는 "넌 항상 사람들 앞에서 바보짓을 하는 걸 좋아하잖아. 한번 해보는 게 어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빛이 보였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죠. 그리고 10년 후, 저는 그레이스 켈리에게서 아카데미상을 받았습니다.영어.[16]
그는 하트퍼드의 랜달 드라마 스쿨에서 연기를 공부한 후 버지니아로 이주하여 애빙던의 바터 극장 단원이 되었다.[16] 1947년, 보그나인은 연극 ''연합의 상태''에서 첫 무대 역할을 맡았다. 비록 단역이었지만,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의 다음 역할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에서 신사 방문객 역이었다.[17]
1949년, 보그나인은 뉴욕으로 가서 연극 ''하비''에서 간호사 역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1951년부터 ''캡틴 비디오와 그의 비디오 레인저스''에서 조연 배우로 TV에 데뷔했다.[18]
2. 3. 2. 영화 배우로서의 성공 (1953-1961)
보그나인은 1949년 연극 ''하비''에서 간호사 역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18] 1951년부터는 ''캡틴 비디오와 그의 비디오 레인저스''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TV에도 데뷔했는데, 이는 ''굿이어 텔레비전 플레이하우스'', ''포드 텔레비전 극장'', ''화롯가 극장'' 등 수많은 다른 텔레비전 역할로 이어졌다.[18] TV에서 ''캡틴 비디오''의 악당 역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콜롬비아 픽처스의 영화 ''이튼 폭포의 호각''(1951)에 캐스팅되었다.[18]2. 3. 3. 맥헤일 해군 (1962-1966)
보그나인은 1962년부터 1966년까지 ABC 시트콤 맥헤일 해군에서 주연인 퀸튼 맥헤일 중령 역을 맡아 TV 스타로 발돋움했다.2. 3. 4. 지속적인 성공 (1967-1982)
보그나인은 1983년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돌아와 얀-마이클 빈센트와 함께 ''에어울프''의 주연을 맡았다. 1982년 ''매그넘, P.I.'' 에피소드에서 레슬러로 출연한 보그나인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제작자 도널드 P. 벨리사리오의 제안을 받고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18] 그는 헬리콥터 조종사 도미닉 산티니 역을 맡았는데, 이는 즉각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보그나인은 혹독한 제작 일정과 젊은 주연 배우와의 작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 드라마는 1986년 CBS에 의해 결방되었다.[18]
2. 3. 5. 말년의 활동 (1983-2011)
보르그나인은 1983년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돌아와 얀-마이클 빈센트와 함께 ''에어울프''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82년 ''매그넘, P.I.'' 에피소드에서 레슬러로 출연한 보르그나인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제작자 도널드 P. 벨리사리오의 제안을 받고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헬리콥터 조종사 도미닉 산티니 역을 맡았고, 이는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보르그나인은 혹독한 제작 일정과 젊은 주연 배우와의 작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이 드라마는 1986년 CBS에 의해 결방되었다.[20][21]
1989년, 보르그나인은 나미비아로 가서 브랜든 리가 주연한 영화 ''레이저 미션''을 촬영했다. 1995년에는 ''싱글 가이''에서 조나단 실버먼과 함께 문지기 매니 코르도바 역으로 출연하여 2시즌 동안 활동했다. 실버먼에 따르면, 보르그나인은 다른 모든 배우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열정으로 작업에 임했으며, 매일 가장 먼저 촬영장에 도착하고 가장 늦게 떠나는 사람이었다.
1996년, 보르그나인은 텔레비전 판타지/스릴러 영화 ''머린의 신비한 기적 상점''(1984년 공포 영화 ''악마의 선물''을 부분적으로 각색)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해설자이자 이야기꾼으로서 보르그나인은 일련의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의 현대적인 우화는 마법사 머린으로부터 훔친 마법이 걸린 악의적인 징 울리는 원숭이 장난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는 나중에 패러디 텔레비전 시리즈 ''미스터리 사이언스 씨어터 3000''에 등장했으며, 이후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22] 같은 해 보르그나인은 팬들을 만나고 미국을 여행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순회했는데, 이 여행은 1997년 다큐멘터리 ''Ernest Borgnine on the Bus''의 주제가 되었다. 그는 또한 입원한 재향 군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사의 의장을 1년 동안 역임하며 많은 재향군인부 의료 센터의 환자들을 방문했다.

1997년, 보르그나인은 코미디 영화 ''맥헤일 해군''에 출연하여 탐 아놀드가 연기한 퀸턴 맥헤일 주니어의 아버지이자 퀸턴 맥헤일 제독 역을 맡았다. 1998년에는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의 코미디 영화 ''BASEketball''에서 기업가 테드 덴슬로 역으로 출연했다. 1999년부터 보르그나인은 애니메이션 시트콤 ''스폰지밥''에서 노년의 슈퍼히어로 머메이드 맨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는데, ''맥헤일 해군''의 공동 출연자인 팀 코네이와 함께 각각 머메이드 맨과 그의 조수 바나클 보이의 목소리 연기를 했다. 그는 이 역할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는데, 특히 아이들 사이에서의 인기 때문이었다. 보르그나인 사후, 니켈로디언은 머메이드 맨이 출연한 모든 에피소드를 추모 방송으로 재방송했다. 보르그나인은 또한 ''심슨 가족'' 에피소드 "소년 탐험대"와 여러 텔레비전 광고에 자신으로 출연했다. 2000년, 그는 ''후버''의 제작 총괄을 맡았으며,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출연진으로 크레딧을 받았다.
2007년, 보르그나인은 홀마크의 오리지널 영화 ''크리스마스를 위한 할아버지''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는 소원한 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후 자신이 전혀 몰랐던 손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남자를 연기했다. 손녀는 그의 보살핌을 받게 되고, 곧 절친한 친구가 된다. 보르그나인은 이 연기로 미니시리즈 또는 텔레비전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90세의 나이로 그는 역대 최고령 골든 글로브상 후보였다. 2010년, 그는 ''소원의 우물''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보르그나인의 자서전 ''어니''는 2008년 7월 시타델 프레스에서 출판되었는데, 그의 연기 경력의 하이라이트와 개인적인 삶의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자유롭고 대화체로 회상한 것이다. 2009년 4월 2일, 그는 장수 의학 드라마 ''ER''의 마지막 시즌 여러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그의 역할은 아내의 건강 악화에 대처하는 남편이었으며, 아내는 드라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사망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캐릭터는 병원 침대에 누워 갓 죽은 아내 옆에 있다. 그의 연기는 드라마 시리즈 부문 게스트 배우상 에미상 후보에 올랐는데, 이는 그의 세 번째 후보 지명이자 29년 만의 첫 후보 지명이었다 (1980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한정 시리즈 또는 특별 프로그램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2009년, 92세의 나이에 그는 그렉 스워츠 감독의 ''또 다른 추수의 달''에서 주인공 프랭크 역을 맡았으며, 파이퍼 로리와 앤 미어라도 출연했다. 2010년 10월 2일, 보르그나인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서 모건 프리먼과 함께 스케치에 자신으로 출연했다. 같은 해 10월 15일, 그는 그 해 초에 촬영된 ''레드''에 출연했다. 2011년 말, 보르그나인은 ''빈센테 페르난데스의 손을 잡은 남자''에서 렉스 페이지 역을 맡으며 그의 마지막 영화를 완성했다.
3. 사생활
보그나인은 다섯 번 결혼했다. 첫 번째 결혼은 1949년 해군 복무 중 만난 로다 케민스와의 결혼으로, 1958년까지 이어졌다.[23] 이 사이에서 딸 낸시(1952년 5월 28일 출생)를 낳았다. 1959년에는 여배우 케이티 후라도와 재혼했으나 1963년에 이혼했다. 1964년에는 여배우이자 가수인 에텔 머먼과 결혼했지만, 불화가 잦아 42일 만에 끝났다. 머먼은 자서전에서 이 결혼 생활을 빈 페이지 하나로만 간략하게 표현했다.
1965년부터 1972년까지는 도나 랭쿠르와 결혼하여 아들 크리스토퍼(1969년 8월 9일 출생), 딸 샤론(1965년 8월 5일 출생)과 다이애나(1970년 12월 29일 출생)를 낳았다.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결혼은 1973년 2월 24일 토바 트레즈네스와 한 결혼으로, 보그나인이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다.
보그나인은 1962년까지 담배를 피웠다.[26]
4. 출연 작품
어니스트 보그나인은 영화와 TV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 폭넓은 연기 경력을 쌓았다.
1953년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사디스트적인 상사 '팻소' 저드슨 중사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다.[15]
1955년에는 마티에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정육점 주인 마티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남우주연상, 골든 글로브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16]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시트콤 맥헤일 해군에서 퀸턴 맥헤일 중령 역을 맡아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이 작품으로 1963년 에미상 코미디 시리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19]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에어울프에서 헬리콥터 조종사 도미닉 산티니 역을 맡아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1999년부터 2012년까지는 애니메이션 스폰지밥에서 노년의 슈퍼히어로 머메이드 맨의 목소리 연기를 맡아 어린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외에도 와일드 번치(1969),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 뉴욕 탈출(1981)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4. 1. 영화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골든 글로브상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