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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테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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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엘 테구스는 원나라 황족으로, 본명은 구나다라이다. 그는 킵차크 한국 군벌 엘 테무르의 지원을 받아 황위 계승을 시도했으나, 여러 차례의 분쟁 끝에 실패하고 고려로 유배되던 중 암살되었다. 엘 테구스는 원 문종의 아들이며, 형 아라토나다라가 일찍 사망한 후 황위 계승 후보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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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테구스

2. 생애

엘 테구스의 본명은 구나다라(古納答剌, Gunadara)이며, 형 아라트나다라(Aratnadara), 동생 타이핑누(太平訥, Taipingnu)가 있었다.

지순 2년(1331) 정월, 구나다라의 병이 나은 것을 기념으로 킵차크 한국 군벌 수령 엘 테무르와 차기르 공주 등에게 금, 은, 지폐가 주어졌다.[22] 엘 테무르는 천력의 난을 일으킨 투그테무르를 추대한 실력자이며, 이후로 구나다라는 엘 테무르와 깊은 연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2월, 티베트 불교승에 의해 황자 구나다라의 불사(佛事) 1주년을 열었고[23] 이후로 구나다라는 티베트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가끔 불사에 관련되었다.[24][25][26][27] 같은해 9월 아루군살리(阿魯渾薩理)의 고택에 구나다라는 엘 테무르와 함께 살게 되었다.[28]

그리고 형 아라토나다라가 일찍 사망하면서 이어서 구나다라가 자야가투 칸의 후계자 지위로 올랐으며, 지순 3년(1332) 구나다라는 이름을 엘 테구스로 고쳤다.[29]

=== 황위 계승 분쟁 ===

같은 해 9월, 병상이 악화된 자야가투 카안(원 문종)은 엘 테구스와 엘 테무르 등을 모으고, 상도(上都) 인근 옹구차트(王忽察都)에서 자신이 즉위하기 위하여 형 코실라(원 명종)를 독살한 사건 한 건을 후회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사후에는 코실라의 장남 토곤 테무르를 후계자로 맞이할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곧 숨졌다.[30] 그러나 자야가투 카안을 사실상 괴뢰로 만든 엘 테무르는 코실라 암살 수모자였기 때문에, 토곤 테무르에 보복당할 것을 우려하여 유언을 무시하고 엘 테구스를 즉위시키려 했다.

그러나 자야가투 카안의 과부 부다시리 카툰메르키트 바얀은 자야가투 카안의 유언을 방패로 엘 테구스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쌍방의 타협안으로서 토곤 테무르의 아우이며 아직 어린 아이인 린친발을 옹립하였으니, 이가 바로 원 영종이다.[30] 그러나 린친발도 즉위 후 몇 개월 만에 사망하였고, 카안 자리를 둘러싼 싸움이 재현되었다.

이전처럼 엘 테무르는 엘 테구스를, 부다시리와 바얀은 토곤 테무르를 각각 즉위시키려 하였고 양보 없이 카안 자리는 좀처럼 결정되지 않았다. 결국 바얀 등에 있어서는 때맞춰 엘 테무르가 급사하였기 때문에, 후원자를 잃은 엘 테구스는 패배하고 토곤 테무르가 우카가투 카안(Uqaγatu Qa'an)으로 즉위하게 되었으니 이가 바로 원 혜종이다. 한편 『원사(元史)』에 의하면, 이때 '무종(武宗)과 인종(仁宗) 때와 같이 토곤 테무르 후는 엘 테구스에게 자리가 양보된다'라고 약속이 이뤄졌다고 한다.[31][9][10]

=== 고려 유배와 죽음 ===

지원 4년(1338), '바얀과 황후 부다시리가 토곤 테무르를 폐하고 엘 테구스를 옹립하려 하고 있다'는 뜻을 바얀의 조카 톡토(脫脫)가 고발하였고,[32] 바얀과 토곤 테무르의 관계는 결국 악화되었다.

지원 6년(1340) 2월, 우카가투 카안이 바얀에 의한 출전(出田) 요청을 거절한 바, 바얀은 엘 테구스를 동행하여 유림(柳林)으로 갔다.[33] 이것이 바얀에 의한 우카가투 카안 폐위의 움직임으로 본 톡토 등은 우카가투 카안과 상담한 후에, 선수를 쳐서 바얀을 포박하였고, 끝내 바얀을 실각시키는데 성공하였다.[34] 우카가투 카안은 바얀을 실각시킨 때에 '바얀이 자신과 부다시리, 엘 테구스 등을 경시하였다'는 것을 죄상으로 들었다.[35]

4개월 후, '부다시리, 엘 테구스 등이 코실라 암살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죄상으로 두 명을 추방할 것을 결정하였다.[36] 엘 테구스는 고려로 추방되었으나,[37] 고려에 도착하는 도중에 오치체르라는 인물에게 암살되었다.[38][39]

『원사(元史)』권107 「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에는 형 아라토나다라, 엘 테구스, 동생 타이핑누 등에게는 모두 자손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40] 툭 테무르 가계는 이렇게 단절되었다. 한편, 『원사』에는 지정 5년(1345) 11월에 진망숙(陳望叔)이라는 인물이 엘 테구스의 이름을 사칭한 죄로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1][42]

2. 1. 황위 계승 분쟁

같은 해 9월, 병상이 악화된 자야가투 카안(원 문종)은 엘 테구스와 엘 테무르 등을 모으고, 상도(上都) 인근 옹구차트(王忽察都)에서 자신이 즉위하기 위하여 형 코실라(원 명종)를 독살한 사건 한 건을 후회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사후에는 코실라의 장남 토곤 테무르를 후계자로 맞이할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곧 숨졌다.[30] 그러나 자야가투 카안을 사실상 괴뢰로 만든 엘 테무르는 코실라 암살 수모자였기 때문에, 토곤 테무르에 보복당할 것을 우려하여 유언을 무시하고 엘 테구스를 즉위시키려 했다.

그러나 자야가투 카안의 과부 부다시리 카툰메르키트 바얀은 자야가투 카안의 유언을 방패로 엘 테구스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쌍방의 타협안으로서 토곤 테무르의 아우이며 아직 어린 아이인 린친발을 옹립하였으니, 이가 바로 원 영종이다.[30] 그러나 린친발도 즉위 후 몇 개월 만에 사망하였고, 카안 자리를 둘러싼 싸움이 재현되었다.

이전처럼 엘 테무르는 엘 테구스를, 부다시리와 바얀은 토곤 테무르를 각각 즉위시키려 하였고 양보 없이 카안 자리는 좀처럼 결정되지 않았다. 결국 바얀 등에 있어서는 때맞춰 엘 테무르가 급사하였기 때문에, 후원자를 잃은 엘 테구스는 패배하고 토곤 테무르가 우카가투 카안(Uqaγatu Qa'an)으로 즉위하게 되었으니 이가 바로 원 혜종이다. 한편 『원사(元史)』에 의하면, 이때 '무종(武宗)과 인종(仁宗) 때와 같이 토곤 테무르 후는 엘 테구스에게 자리가 양보된다'라고 약속이 이뤄졌다고 한다.[31][9][10]

2. 2. 고려 유배와 죽음

지원(至元) 4년(1338), '바얀과 황후 부다시리가 토곤 테무르를 폐하고 엘 테구스를 옹립하려 하고 있다'는 뜻을 바얀의 조카 톡토(脫脫)가 고발하였고,[32] 바얀과 토곤 테무르의 관계는 결국 악화되었다.

지원 6년(1340) 2월, 우카가투 카안이 바얀에 의한 출전(出田) 요청을 거절한 바, 바얀은 엘 테구스를 동행하여 유림(柳林)으로 갔다.[33] 이것이 바얀에 의한 우카가투 카안 폐위의 움직임으로 본 톡토 등은 우카가투 카안과 상담한 후에, 선수를 쳐서 바얀을 포박하였고, 끝내 바얀을 실각시키는데 성공하였다.[34] 우카가투 카안은 바얀을 실각시킨 때에 '바얀이 자신과 부다시리, 엘 테구스 등을 경시하였다'는 것을 죄상으로 들었다.[35]

4개월 후, '부다시리, 엘 테구스 등이 코실라 암살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죄상으로 두 명을 추방할 것을 결정하였다.[36] 엘 테구스는 고려로 추방되었으나,[37] 고려에 도착하는 도중에 오치체르라는 인물에게 암살되었다.[38][39]

『원사(元史)』권107 「종실세계표(宗室世系表)」에는 형 아라토나다라, 엘 테구스, 동생 타이핑누 등에게는 모두 자손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40] 툭 테무르 가계는 이렇게 단절되었다. 한편, 『원사』에는 지정 5년(1345) 11월에 진망숙(陳望叔)이라는 인물이 엘 테구스의 이름을 사칭한 죄로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1][42]

3. 가계

툭 테무르의 아들로, 어머니는 아라트나다라이다. 형제로는 타이핑누가 있다.

참조

[1] 서적 元史
[2] 서적 元史
[3] 서적 元史
[4] 서적 元史
[5] 서적 元史
[6] 서적 元史
[7] 서적 元史
[8] 서적 元史
[9] 서적 元史
[10] 서적 元史
[11] 서적 庚申外史
[12] 문서
[13] 문서
[14] 서적 元史
[15] 서적 元史
[16] 서적 元史
[17] 서적 元史
[18] 서적 元史
[19] 서적 元史
[20] 서적 元史
[21] 서적 元史
[22] 서적 元史
[23] 서적 元史
[24] 서적 元史
[25] 서적 元史
[26] 서적 元史
[27] 서적 元史
[28] 서적 元史
[29] 서적 元史
[30] 서적 元史
[31] 서적 元史
[32] 서적 庚申外史
[33] 문서
[34] 문서
[35] 서적 元史
[36] 서적 元史
[37] 서적 元史
[38] 서적 元史
[39] 서적 元史
[40] 서적 元史
[41] 서적 元史
[42] 서적 元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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