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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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도대교는 1931년 착공하여 1934년 11월 23일 개통된 부산광역시의 다리이다. 일제강점기 도시화에 따라 영도와 부산 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며, 조선 유일의 도개교로 '부산 명물'로 불렸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을 담은 장소로, 1966년 도개 기능이 중단되었으나, 2013년 복원되어 하루 한 번 개폐된다. 2006년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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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대교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위치 | |
위치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1가 ~ 중구 남포동 |
횡단 | 부산 남항 |
교량 정보 (신 영도대교) | |
교통 시설 | 부산광역시도 제6101호선 태종로 |
설계 | 도개교 |
길이 | 214.8m |
너비 | 25.3m |
착공일 | 2009년 8월 |
완공일 | 2013년 11월 27일 |
교량 정보 (구 영도대교) | |
교통 시설 | 부산광역시 절영로 |
설계 | 도개교, 게르버교, 트러스교 |
주경간 | 31.3m |
길이 | 214.63m |
너비 | 18.3m |
운행 높이 | 7.2m |
착공일 | 1931년 10월 20일 |
완공일 | 1934년 11월 23일 |
폐쇄일 | 2009년 8월 27일 ~ 2013년 11월 26일 |
관리 | |
관리 | 부산광역시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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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일제강점기에 영도와 부산 시내를 잇는 교통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항의 중요한 수송로를 확보하고자 도개교(跳開橋)로 건설되었다. 건설 당시 공식 명칭은 '''부산대교'''였으며, 조선 유일의 도개교로서 “부산 명물”로 불렸다. 1935년 2월에는 부산시전차가 영도구 남항동까지 연장되어 다리 위를 지나갔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의 애환을 담은 현인의 트로트 "굳세어라 금순아"(1951년)에도 다리가 묘사되어 있다. 1966년 8월 기계 노후화와 수도관 설치로 인해 도개 기능이 중단되었고, 1980년 부산대교 건설로 공식 명칭이 영도대교로 바뀌었다.
2000년 부산시청사 터 재개발과 함께 철거 논란이 있었으나, 보존 운동으로 2006년 11월 22일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2013년 11월 27일 보수·확장 및 도개 기능 복원 공사가 완료되었다.
2. 1. 건설 배경 및 일제강점기
부산 최초로 건설된 연륙교이자 한국 최초의 '일엽식 도개교' 형식의 다리이다. 일제강점기에 도시화가 진행된 영도와 부산 시내를 잇는 교통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이 계획되었다. 부산항의 중요한 수송로 확보를 위해 대형 선박 통행이 가능한 도개교 형식으로 건설되었다. 건설 당시 공식 명칭은 '''부산대교'''였으며, 조선 유일의 도개교로서 '부산 명물'로 불렸다.[5] 1931년 착공하여 1934년 11월 23일 개통하였다. 개통 당시에는 하루 2~7차례 다리가 들어 올려졌으며, 부산, 김해, 밀양 등지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5] 1935년 2월에는 부산시전차가 영도까지 연장되어 다리 위를 운행하였다.2. 2. 한국전쟁과 영도대교
한국전쟁 당시 영도대교 근처에는 많은 피난민이 살았으며, 현인의 트로트 "굳세어라 금순아"(1951년)에도 피난민의 슬픔과 함께 다리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5]2. 3. 도개 중단과 재개
1966년 9월 1일 영도대교의 도개 기능이 중단되고, 전차 운행도 폐지되었다. 이는 교통량 증가와 수도관 설치 때문이었다.[7] 1980년에는 늘어나는 교통량에 대처하기 위해 영도대교 동쪽에 부산대교가 건설되었다.2006년 11월 22일 영도대교는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7] 2009년 8월 27일 영도대교 차량 통제가 시작되고 임시 교량이 개통되었다.[7] 2010년 6월 구 영도대교는 해체되었다.[7] 2013년 11월 27일 영도대교 확장 및 복원 공사가 완료되어 도개 기능이 부활하였다.[7]
2. 4. 도개 시간
2013년 11월 27일 영도대교 재개통 이후에는 토요일 하루만 도개를 한다.[5]2. 4. 1. 과거
영도대교는 부산 최초로 건설된 연륙교이자 한국 최초의 '일엽식 도개교' 형식의 다리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수탈, 애환, 이산, 실향의 역사를 담고 있다. 개통 당시에는 다리가 하늘로 치솟는 신기한 모습을 보기 위해 부산을 비롯, 인근 김해, 밀양 등지에서 6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5]
개통 당시 육지쪽(중앙동) 다리 31.30m를 하루 2~7차례 들어 올렸으며, 도개 속도는 고속(1분 30초)과 저속(4분) 두 가지가 있었다. 1935년 6월 25일부터는 다리를 들고 닫는 시간을 15분으로 줄였다. 개통 이후 교통량 급증으로 도개 횟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1966년 도개가 중단되기 직전에는 오전, 오후 각 1회씩 여닫았다. 공사비는 착공 당시 360만원이 소요되었다.
1935년 2월부터 영도에 전차가 개통되면서 교량 위로 전차가 다니기도 했으나, 1967년 5월 2일 교량이 고정되면서 폐쇄되었다.
영도대교 부근에는 부산 제일의 명물이었던 도개식 영도대교의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 위한 ‘도개식 영도대교 기념비’와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가수 현인의 대중 가요인 ‘굳세어라 금순아’의 시대적 배경을 담아 건립된 ‘현인 노래비’ 등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5]
2. 4. 2. 현재
2013년 11월 27일 영도대교가 재개통되면서 도개 시간이 바뀌었다. 현재는 매일 오후 2시부터 2시 15분까지 15분간 도개한다.[5]
여는 시간 | 닫는 시간 |
---|---|
14:00 | 14:15 |
2006년 11월 25일 부산광역시는 영도대교를 부산광역시의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였다.[6]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부터 부산 시민과 애환을 함께 해 왔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의 슬픔이 서린 장소였다.
3. 문화재 지정
3. 1. 지정 사유
부산 최초의 연륙교이자 한국 최초의 '일엽식 도개교' 형식의 다리로 희소가치가 높다.[6]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시민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영도대교는 8.15 해방과 6.25 전쟁 이후 생활고에 지친 피난민들이 애환과 망향의 슬픔을 달랬던 장소였다.[6] 전쟁 당시 영도대교에 가면 친인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영도대교 인근은 피난민으로 가득 찼고, 이들의 사연을 듣고 상담하는 점집들이 성업하는 등 한국 근대사와 함께 해온 구조물인 동시에 근대 부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6]
영도대교 건설은 부산항 물류장 확충과 간선도로 개설과 함께 근대 부산의 도시 발달에 중요한 사업이었다.[6] 특히 영도는 영도대교 건설로 인해 부산 도심과 육로로 연결되고 전차가 개통되는 등 도시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영도구의 도시 발달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역사적 장소이다.[6]
영도대교는 교량뿐만 아니라 영도대교를 구성하는 건축물들도 건축적인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6] 교대의 경우 정교하게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바른 층 쌓기를 하여 교대를 형성하고 모서리 돌은 직사각형 화강석으로 모접기 등을 하는 등 정교한 디테일을 갖고 있다.[6] 교대 좌우측의 화강석 계단, 교량 입구의 교문주와 난간 등은 영도대교의 구성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교량 입구 광장인 다리목광장은 영도대교의 얼굴에 해당하는 공간으로 근대 교량의 형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6]
영도대교는 현재 우리나라에 잔존하는 유일한 단엽식 도개교(bascule bridge)로 희소가치가 매우 높은 교량이다.[6] 또한 일반적인 도개교와는 달리 안벽부에 도개장치를 설치하고 있는 등 도개 교량의 형식에서도 특이성이 인정되는 등 한국 교량사(토목)에 있어서도 유례가 없어 근대 교량사를 연구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교량으로 그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6]
4. 영도대교 복원
부산롯데타운 건설과 함께 영도대교는 재난 위험 등급 판정을 받아 대형 트럭과 승합차의 통행이 금지되었다가 해체 및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7] 복원 후 왕복 4차로에서 6차로로 확장되었고, 다리 높이도 더 높아졌다. 40여년 만에 도개 기능도 부활하여, 매일 오후 2시부터 15분간 도개한다.[7]
- 2009년 8월 27일: 영도대교 진입 차량이 임시 교량으로 우회하였다.
- 2010년 6월: 구 영도대교를 해체하였다.
- 2013년 11월 27일: 영도대교가 복원되어 도개 기능이 부활했다.
당초 연면적 1752m2 지상 2층 규모의 전시관을 개관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8]
5. 구조
6. 위치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 근처에 있으며,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연결한다. 다리 우측에는 부산대교가 있고, 부산항과 부산항연안여객터미널, 북측에는 북항이 인접해 있다.[1]
7. 등장 작품
7. 1. 영화
친구7. 2. 음악
1958년 이미자가 발표한 노래 추억의 영도다리가 있다.[1]참조
[1]
웹사이트
Information of Yeongdo Bridge
http://tour.yeongdo.[...]
[2]
웹사이트
Drawbridge restored in Busan after 47 years
https://www.koreaher[...]
2013-11-27
[3]
뉴스
롯데그룹이 복원한 부산 영도다리, 27일 개통
http://news.einfomax[...]
[4]
일반
[5]
웹인용
영도대교
http://tour.busan.go[...]
부산광역시
2009-08-15
[6]
간행물
부산광역시 지정문화재·문화재자료 지정 및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 인정 고시
http://ebook1.busan.[...]
부산광역시장
2006-11-29
[7]
웹인용
부산 영도대교 옛모습 되찾는다 - 매일경제 2007-11-22
http://news.mk.co.kr[...]
2007-11-22
[8]
뉴스
부산 영도대교 복원하고 ‘홍보관’도 개관 - 파이낸셜뉴스 2009-08-18
http://www.fnnews.co[...]
2009-08-18
[9]
저널
부산시, 입체도로(고가.지하도로)에 도로명주소 부여
http://bgtknews.com/[...]
주식회사 코리아문화기획사
2023-03-26
[10]
보고서
부산신항 진입도로 건설공사 대안설계요약보고서
https://policy.nl.go[...]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부산항건설사무소
[11]
웹사이트
부산광역시_도시공간정보시스템 터널 현황 / 2015년 도로교량 및 터널현황
https://stat.kosis.k[...]
[12]
웹사이트
의곡교차로~부산과학산업단지간 도로개설공사 T/K 수행하면서 / 보배터널 관리사무소
http://www.yooshin.c[...]
[13]
웹사이트
부산광역시 교통정보서비스센터 / 지사-웅동 연결도로
http://its.bus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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