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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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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고쇼는 일본에서 천황의 거처, 친왕의 은거소를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하여, 은거한 친왕, 섭정, 관백 등을 존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전 쇼군의 거처를 "대어소"라고 불렀으며, 무로마치 시대에는 아시카가 막부 쇼군직을 지낸 자들을 지칭했다. 에도 시대에는 쇼군직을 물려준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오고쇼가 되어 이두 정치를 펼쳤으며, 이후 여러 쇼군들이 오고쇼가 되었다. 현대에는 속어로 정계, 연예계 등에서 은퇴 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2. 역사

무로마치 시대까지 오고쇼는 천황의 거처나 친왕의 은거소, 은거한 친왕, 섭정·관백의 실부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면서 의미가 변화했다.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직을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물려주고 슨푸 성에서 일종의 이두 정치를 펼치며 오고쇼로 불렸다. 히데타다 또한 도쿠가와 이에미쓰에게 쇼군직을 물려준 후 에도성 니시노마루에서 오고쇼로서 정무를 보았다. 이후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 9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도 오고쇼가 되었다. 특히 이에나리는 50년간 쇼군직에 있으면서 쇼군직을 물려준 후에도 오고쇼로서 실권을 쥐어, 이 시기를 오고쇼 시대라고 부른다.

에도 막부에서 오고쇼는 쇼군직 경험자만 될 수 있었는데, 이에나리가 생부 도쿠가와 하루사다를 오고쇼로 추대하려 했으나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도 있었다.

2. 1. 어원과 초기 의미

고어에서는 천황의 거처인 "오호미모토"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나아가 친왕의 은거소인 어소를 가리키게 되었고, 이윽고 은거한 친왕 그 자체를 부르는 존칭으로 사용되었다. 『고부기』 가키 2년 (1442년) 11월 26일 조에 그 용례가 있다. 후에는 섭정·관백의 실부를 부를 때에도 사용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의 편찬물 『아즈마카가미겐닌 3년 9월 6일 조에는, 에마 도노(호조 요시토키)가 전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어소, "대어소(오쿠라 어소)"에 있는 호조 마사코에게 시종했다는 기술이 있으며, 『아즈마카가미』가 편찬된 시기에는 전 쇼군의 거처에 대해 "대어소"를 사용하는 것이 행해졌다. 한편, 실제로 아들에게 쇼군직을 물려준 후지와라노 요리쓰네는 "대전"으로 칭해졌다(초출은 『아즈마카가미』 겐겐 2년 5월 20일 조).

무로마치 시대에는 아시카가 막부의 쇼군직에 있는 자의 실부, 아시카가 요시미쓰·아시카가 요시마사·아시카가 요시미·아시카가 요시하루가 대어소로 존칭되었다.

2. 2. 가마쿠라 시대

가마쿠라 시대 이전에는 천황의 거처인 "오호미모토"나 친왕의 은거소인 어소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나아가 은거한 친왕을 부르는 존칭으로 사용되었다. 『고부기』 가키 2년 (1442년) 11월 26일 조에 그 용례가 있다. 후에는 섭정·관백의 실부를 부를 때에도 사용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의 편찬물 『아즈마카가미겐닌 3년 9월 6일 조에는, 에마 도노(호조 요시토키)가 전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어소 "대어소(오쿠라 어소)"에 있는 호조 마사코에게 시종했다는 기술이 있다. 아즈마카가미가 편찬된 시기에는 전 쇼군의 거처에 대해 "대어소"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편, 실제로 아들에게 쇼군직을 물려준 후지와라노 요리쓰네는 "대전"으로 칭해졌다.

2. 3. 무로마치 시대

고어에서는 천황의 거처인 "오호미모토"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나아가 친왕의 은거소인 어소를 가리키게 되었고, 이윽고 은거한 친왕 그 자체를 부르는 존칭으로 사용되었다. 『고부기』 가키 2년 (1442년) 11월 26일 조에 그 용례가 있다. 후에는 섭정·관백의 실부를 부를 때에도 사용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아시카가 막부의 쇼군직에 있는 자의 실부, 아시카가 요시미쓰, 아시카가 요시마사, 아시카가 요시미, 아시카가 요시하루가 오고쇼로 존칭되었다.

2. 4. 에도 시대

에도 시대가 되면서 도쿠가와 막부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직을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물려주고 오고쇼가 되었다. 이에야스는 슨푸 성으로 옮겨 일종의 이두 정치를 펼쳤다. 히데타다 또한 도쿠가와 이에미쓰에게 쇼군직을 물려준 후 에도성 니시노마루에 들어가 오고쇼로서 정무를 보았다. 이후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 9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시게,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가 오고쇼가 되었다. 이에나리는 쇼군직을 50년이나 역임했고, 그 직을 적자 이에요시에게 물려준 후에도 오고쇼로서 실권을 쥐었기 때문에, 그 기간은 오고쇼 시대라고 불린다.

에도 막부의 오고쇼는 쇼군직 경험자만이 될 수 있었으며, 이에나리는 생부 도쿠가와 하루사다를 오고쇼로 만들려 했으나,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3. 현대적 용법

현대에도 "오고쇼"는 속어로 사용되고 있다. 어떤 분야의 장로나 권위, 또는 과거에 큰 공로가 있었던 자나 그 분야의 선구자적 존재 중, 1선에서 물러나도 큰 존재감을 계속해서 나타내는 자를 '''정계의 오고쇼''', '''연예계의 오고쇼''' 등으로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이 용례의 유의어로서 "원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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