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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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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학교는 1907년 12월 남강 이승훈 선생이 민족운동 인재 양성과 국민교육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평안북도 정주에 설립한 학교입니다. 이승훈 선생은 애국 계몽 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민족 운동 노선에 따라 학교를 세웠으며, 당시 관찰사 박성봉의 재정 지원을 받았습니다.

오산학교는 설립 당시 7명의 학생으로 시작하여 수신, 역사, 지리, 수학, 물리, 법학통론, 헌법대의, 체조 등의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초대 교장은 백이행이었으며, 1910년에는 나부열 목사를 설립자 겸 교장으로 추대하여 기독교주의 학교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이종성, 조만식, 류영모, 홍명희, 김성환, 주기용 등이 학교를 이끌었으며, 교사로는 여준, 서진순, 류영모, 이택호, 염상섭, 김억, 이상정, 진연근, 이윤재 등이 있었습니다.

오산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사관학교, 훈련원, 정치학교, 인문중학교 및 특수모범자 양성소 등을 겸한 학교였습니다. 교과 과정 외에도 남강 선생의 훈화와 직접적인 지도를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민족성을 개조하는 데 힘썼습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이승훈 선생은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가 투옥되었고, 오산학교 학생들과 졸업생, 주민들이 만세운동을 벌이자 일제는 학교를 불태우고 폐교시켰습니다. 그러나 김기홍 등이 사재를 털어 교사를 신축하고 1920년 9월 다시 개교하였습니다. 1926년에는 5년제 오산고등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광복 이후 공산 정권을 피해 교장 주기용을 비롯한 교사와 학생 대다수가 남한으로 내려와 1953년 4월 부산에서 학교를 재건했습니다. 1954년에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2가로 이전하고 부산 교정은 분교로 운영하다가 1956년에 폐쇄했습니다. 이후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광동으로 이전하여 현재 오산중학교와 오산고등학교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산학교는 김소월 시인, 백석 시인, 이중섭 화백 등 유명 인사를 배출했으며, 5대 사립학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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