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라 다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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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세라 다이치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속 투수이다.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규슈 공립대학을 거쳐 2013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한신, 야쿠르트 세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받아 히로시마에 입단했다. 2014년 신인왕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다승왕,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했다. 2024년에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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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라 다이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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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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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91년 6월 17일 |
출생지 | 나가사키현 오무라시 |
신장 | 188cm |
체중 | 94kg |
포지션 | 투수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13년 드래프트 1위 |
첫 출장 | 2014년 4월 2일 |
소속 구단 | 히로시마 도요 카프(2014년 ~ 현재) |
등번호 | 14 |
연봉 | 2억 엔 (2025년) |
경력 | |
고등학교 | 나가사키 일본대학 고등학교 |
대학교 | 규슈 공립대학 |
프로 |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4년 ~ 현재) |
수상 | |
신인왕 | 2014년 센트럴 리그 신인왕 |
타이틀 | 1x 센트럴 리그 최다승 (2018년) |
올스타 | 3x NPB 올스타 (2018년~2019년, 2024년) |
기타 | 2024년 6월 7일 노히트 노런 달성 |
NPB 성적 (2023년 시즌 종료 기준) | |
승-패 | 81승 64패 |
평균 자책점 | 3.56 |
탈삼진 | 981 |
2. 프로 입단 전
오세라 다이치는 가고시마현 기리시마시의 고쿠부니시 초등학교 4학년 때 고쿠부니시 야구 스포츠 소년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174] 중학교 시절에는 고쿠부미나미 중학교를 거쳐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의 사쿠라가하라 중학교에서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주로 오른쪽 팔꿈치를 다쳐 중학교 3학년 때 수술을 받기 전까지 좌완 투수로 경기에 참가했다.[134]
고등학교는 나가사키 니혼 대학 고등학교에 진학했다.[135] 3학년 때 하계 나가사키 대회 준준결승전에서 같은 해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우승 학교이기도 한 나가사키 현립 세이호 고등학교와 맞붙어 이마무라 다케루와 투수전을 펼쳐 4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 3대 1로 승리했다. 결승에서도 소세이칸 고등학교를 꺾고 제91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1차전에서 기쿠치 유세이가 소속된 이와테현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를 상대로[174] 5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팀은 패했다. 졸업 후 프로 지망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규슈 공립대학에 진학했다.[136] 아라카키 나기사와 마하라 다카히로를 프로로 배출한 나카자토 기요시 감독의 지도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136]
규슈 공립대학 스포츠학부에 진학하여 체간 트레이닝, 필라테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4년 만에 체중을 14kg 늘렸다.[136][137] 경식 야구부에서는 1학년 때부터 경기에 출전, 후쿠오카 6대학 야구 2010년 춘계 리그에서 5승, 평균 자책점 0.63으로 1위를 기록,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고 팀 우승에 기여했다. 추계 리그에서는 신인상을 받았다.
2학년 춘계 리그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추계 리그에서 평균 자책점 1위와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베스트 나인에 선정, 춘계와 추계 리그 모두 우승했다. 제60회 전일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 4강, 제38회 미일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 대학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2경기에 출전, 5차전 미국전에 선발 출전했다.[136][138] 제42회 메이지 진구 야구 대회 2차전 소카 대학과의 경기에서 9이닝 159구 10탈삼진으로 호투했지만, 팀은 오가와 야스히로에게 11탈삼진 4안타로 막혀 패했다.[139]
3학년 제61회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소카 대학과의 재대결에서 3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개인 최고 속도 151km를 기록했다.[140] 준결승전에서 와세다 대학에 패해 4위에 머물렀다. 제26회 BF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 파키스탄전에서 3이닝 9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했다.[141]
4학년 때 주장을 맡아 2013년 춘계 리그에서 평균 자책점 0.91을 기록했다.[142] 후쿠오카 6대학 야구 리그 통산 57경기 등판, 38승 5패, 평균 자책점 1.07을 기록했다. 제39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와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다.[143] 2차전에서 선발 노무라 유스케에 이어 등판, 4대 2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3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 3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히로시마가 입단 협상권을 얻었다.[144] 계약금 1억 엔, 성과급 5,000만 엔, 연봉 1,500만 엔(추정)에 계약했고, 등번호는 쓰다 쓰네미가 히로시마 소속 당시 착용했던 '''14'''번으로 정했다.
2. 1. 유소년 시절
오세라 다이치는 가고시마현 기리시마시의 고쿠부니시 초등학교 4학년 때 고쿠부니시 야구 스포츠 소년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174] 중학교 시절에는 고쿠부미나미 중학교를 거쳐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의 사쿠라가하라 중학교에서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주로 인해 오른쪽 팔꿈치를 다쳤기 때문에, 중학교 3학년 때 수술을 받을 때까지 좌완 투수로 경기에 참가했다.[134]고등학교는 나가사키 니혼 대학 고등학교[135]에 진학, 3학년 때 하계 나가사키 대회 준준결승전에서 이마무라 다케루가 소속된 나가사키 현립 세이호 고등학교와 맞붙어 4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었다. 결승에서도 소세이칸 고등학교를 누르고 제91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 1차전에서 기쿠치 유세이가 소속된 이와테현의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와 맞대결을 펼쳤으나[174] 팀은 패했다.
졸업 후 프로 지망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규슈 공립대학을 선택했다.[136] 아라카키 나기사와 마하라 다카히로를 프로로 배출한 나카자토 기요시 감독의 지도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136] 스포츠학부에 진학하여 체간 트레이닝과 필라테스를 통해 4년 만에 14kg을 증량했다.[136][137]
규슈 공립대학 경식 야구부에서는 1학년 때부터 경기에 출전, 후쿠오카 6대학 야구 2010년 춘계 리그에서 5승 무패, 평균 자책점 0.63으로 타이틀을 획득하고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2학년 때는 춘계 리그 최우수 선수상, 추계 리그 평균 자책점 1위와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고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제60회 전일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 4강, 제38회 미일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136][138] 제42회 메이지 진구 야구 대회 2차전 소카 대학과의 경기에서 9이닝 159구 10탈삼진을 기록했으나 팀은 패했다.[139]
3학년 때는 2012년 춘계 리그 최우수 선수상과 베스트 나인, 추계 리그 평균 자책점 1위와 감투상을 수상하고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제61회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소카 대학을 상대로 3피안타 완봉승을 거두고, 개인 최고 속도 151km를 기록했다.[140] 제26회 BF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으로 파키스탄전에서 3이닝 9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했다.[141]
4학년 때는 주장을 맡아 2013년 춘계 리그 평균 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142] 후쿠오카 6대학 야구 리그 통산 57경기 38승 5패, 평균 자책점 1.07을 기록했다. 제39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와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143]
2. 2. 고등학교 시절
오세라 다이치는 가고시마현 기리시마시의 고쿠부니시 초등학교 4학년 때 고쿠부니시 야구 스포츠 소년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174] 중학교 시절에는 기리시마 시립 국분미나미 중학교를 거쳐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의 사쿠라가하라 중학교에서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주로 인해 오른쪽 팔꿈치를 다쳤기 때문에 중학교 3학년 때 수술을 받을 때까지 좌완 투수로 경기에 참가했었다.[134]고등학교는 나가사키 니혼 대학 고등학교에 진학했다.[135] 3학년 때 하계 나가사키 대회 준준결승전에서 같은 해 선발 고등학교 야구 대회 우승 학교이기도 한 나가사키 현립 세이호 고등학교와 맞붙어 이마무라 다케루와 투수전을 펼쳐 4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 3대 1로 승리했다. 결승에서도 소세이칸 고등학교를 누르고 제91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1차전에서 기쿠치 유세이가 소속된 이와테현의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와 맞대결을 펼쳤는데[174] 5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팀은 패했다.
2. 3. 대학교 시절
오세라 다이치는 가고시마현 기리시마시의 고쿠부니시 초등학교 4학년 때 고쿠부니시 야구 스포츠 소년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174] 중학교 시절에는 고쿠부미나미 중학교를 거쳐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의 사쿠라가하라 중학교에서 연식 야구부에 소속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주로 오른쪽 팔꿈치를 다쳐 중학교 3학년 때 수술을 받기 전까지 좌완 투수로 경기에 참가했다.[134]고등학교는 나가사키 니혼 대학 고등학교[135]에 진학, 3학년 때 하계 나가사키 대회 준준결승전에서 이마무라 다케루가 소속된 나가사키 현립 세이호 고등학교를 상대로 4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 3대 1로 승리했다. 결승에서도 소세이칸 고등학교를 꺾고 제91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1차전에서 기쿠치 유세이가 소속된 이와테현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를 상대로[174] 5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팀은 패했다. 졸업 후 프로 지망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규슈 공립대학에 진학했다.[136] 아라카키 나기사와 마하라 다카히로를 프로로 배출한 나카자토 기요시 감독의 지도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136]
규슈 공립대학 스포츠학부에 진학하여 체간 트레이닝, 필라테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4년 만에 체중을 14kg 늘렸다.[136][137] 경식 야구부에서는 1학년 때부터 경기에 출전, 후쿠오카 6대학 야구 2010년 춘계 리그에서 5승, 평균 자책점 0.63으로 1위를 기록,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고 팀 우승에 기여했다. 추계 리그에서는 신인상을 받았다.
2학년 춘계 리그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추계 리그에서 평균 자책점 1위와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베스트 나인에 선정, 춘계와 추계 리그 모두 우승했다. 제60회 전일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 4강, 제38회 미일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 대학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2경기에 출전, 5차전 미국전에 선발 출전했다.[136][138] 제42회 메이지 진구 야구 대회 2차전 소카 대학과의 경기에서 9이닝 159구 10탈삼진으로 호투했지만, 팀은 오가와 야스히로에게 11탈삼진 4안타로 막혀 패했다.[139]
3학년 제61회 전일본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소카 대학과의 재대결에서 3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개인 최고 속도 151km를 기록했다.[140] 준결승전에서 와세다 대학에 패해 4위에 머물렀다. 제26회 BFA 아시아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 파키스탄전에서 3이닝 9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했다.[141]
4학년 때 주장을 맡아 2013년 춘계 리그에서 평균 자책점 0.91을 기록했다.[142] 후쿠오카 6대학 야구 리그 통산 57경기 등판, 38승 5패, 평균 자책점 1.07을 기록했다. 제39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와 '2013 BASEBALL CHALLENGE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다.[143] 2차전에서 선발 노무라 유스케에 이어 등판, 4대 2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3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 3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히로시마가 입단 협상권을 얻었다.[144] 계약금 1억 엔, 성과급 5,000만 엔, 연봉 1,500만 엔(추정)에 계약했고, 등번호는 쓰다 쓰네미가 히로시마 소속 당시 착용했던 '''14'''번으로 정했다.
3. 프로 입단 후
'''''' 2월 22일 코자 신킨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시범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공식 경기에서는 동기 입단한 쿠리 아렌과 함께 개막부터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4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프로 첫 패배를 기록했지만, 같은 달 16일 한신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7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프로 첫 승을 거두었다.[35] 5회 말 두 번째 타석에서는 같은 대졸 신인 투수인 이와사키 스구루에게서 프로 첫 안타와 첫 타점인 2점 2루타를 기록했다.[36] 5월 1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다시 이와사키와 맞대결을 벌여 9회에 마우로 고메스에게 중월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9회 1실점으로 프로 첫 완투를 기록했다.[37] 5월 16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승리하며 첫 승 이후 5연승을 기록했다.[38] 9월 6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첫 완봉승을 거두었고, 9월 2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10승을 달성했다. 후쿠야 코지, 마타요시 카츠키 등을 제치고 센트럴 리그 신인왕에 선정되었다.[39] 12월 3일, 전년 대비 2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3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40]
'''''' 2월 16일,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41] 3월 10일 제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42] 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43] 시즌에서는 개막 로테이션에 들어갔지만, 3월 31일 DeNA전에서 1회에 아롬 발디리스에게 만루 홈런을 맞고, 3이닝 7실점(자책점 2)으로 강판되었다.[44] 5월 4일 요미우리전에서 겨우 시즌 첫 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1승 6패를 기록하며 구원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6월 10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세이부 프린스 돔)에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구원 등판했고, 6월 27일 주니치 드래곤즈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프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45] 8월 26일 한신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9회 초 마무리 나카자키 쇼타를 대신하여 등판,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46] 그러나 시즌 최종전인 10월 7일 주니치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8회에 등판했지만 3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 패배로 팀은 3년 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47] 12월 9일, 전년 대비 11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46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48]
'''''' 2월 15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 26명에 선출되었지만,[49] 21일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사퇴했다.[50] 23일,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부분 손상 진단을 받아[51] 전반기를 결장했다. 7월 20일 주니치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선발 등판했지만 3이닝 4실점으로 강판되었고,[52] 다음 날 21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53] 8월 12일에 재등록되어[54] 구원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25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구원 투수로 2경기에 등판[55]했지만, 제3차전(삿포로 돔)에서 오타니 쇼헤이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허용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56] 10월 31일, '사무라이 재팬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강화 경기' 일본 대표로 추가 소집되었다.[57] 12월 14일, 전년 대비 10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4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58]
'''''' 2월 8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지명 투수 명단에 포함되었다.[59] 스프링 캠프 중인 11일에 오른쪽 옆구리 통증으로 이탈했다.[60][61] 3월 12일 교육 리그 한신전(나루하마 구장)에서 3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복귀했고,[62] 이후 오픈전에서도 호투하며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했다.[63] 8월 9일 주니치전(나고야 돔)에서 패전 투수가 되기 전까지 개막 이후 7연승을 기록했다.[64] 신인 시절 이후 3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고 규정 이닝을 채우며[65] 팀의 37년 만의 리그 2연패에 기여했다. 12월 19일, 전년 대비 18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63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66]
''''''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6연승을 기록했다.[67] 5월에는 4경기 4승 무패, 방어율 2.03으로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15승 7패, 승률 .682로 최다승과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했다. 12월 14일, 전년 대비 82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4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68]
'''''' 3월 29일 개막전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개인 첫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8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전년까지 동료였던 마루 요시히로를 4타석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69] 4월 25일 주니치 드래곤즈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시즌 첫 완투·첫 완봉을 기록했다.[70] 올스타전에는 팬 투표 1위로 선정되었다.[71] 11승(9패)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지만, 8월 29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10실점을 기록하는 등 아쉬운 시즌이었다. 12월 11일, 전년 대비 3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7500만 엔으로 재계약하며 히로시마 일본인 투수 최고 연봉을 기록했다.[72]
''''''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막이 3개월 늦춰진 가운데,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6월 19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전에서 9회 초 구니요시 유키에게서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 공식전 첫 2점 홈런을 날렸고,[73] 9이닝 1실점으로 완투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개막전 투수 홈런은 2008년 가와카미 겐신 이후 12년 만이며, 같은 날 요미우리 대 한신전 3회 초에서 홈런을 친 니시 유키에 이어 일본 프로 야구 사상 13번째[74], 개막전 투수 2홈런은 사상 처음이다.[75] 7월 25일 컨디션 부족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76] 8월 8일 1군에 복귀했지만, 9월 6일 다시 컨디션 불량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77]되었고, 같은 달 16일에 오른쪽 팔꿈치 클리닝 수술을 받았다.[78] 11경기 등판, 5승 4패, 방어율 4.41로 시즌을 마쳤다. 12월 8일, 전년 대비 250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1억 50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79]
'''''' 투수 주장을 맡았다. 개막전에서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시즌 중 이탈하거나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며 10승 5패, 방어율 3.07로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며 2년 만에 5번째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시즌 중 국내 FA권을 취득했지만, 11월 18일 3년 계약으로 히로시마에 잔류했다.[80] 잔류 이유 중 하나로 "드래프트에 지명되어, 그 당시에 카프에서 '필요하다'고 지명해주셨고, 그리고 경합에서 추첨이라는 형태가 되었지만, 거기서 메구미 씨(타무라 스카우트)가 교섭권 확정 추첨을 해주고, 거기서부터 많은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고, 그 많은 인연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기에, 그런 인연에 등을 돌릴 수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81] 12월 14일, 3000만 엔 증가한 연봉 1억 8000만 엔 + 성과급 3년 계약에 재계약금 1억 2000만 엔을 더하여 총액 8억 10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금액은 추정).[82]
'''''' 3~4월에는 3월 25일 DeNA와의 개막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4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6⅔이닝 3실점(자책점 2)으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고,[83] 4월 29일 주니치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는 2안타 무사사구 1-0 완봉승을 거두는 등[84] 6경기 2완투(1완봉) 포함 4승 1패, 월간 방어율 2.25로 개인 두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85] 6월 24일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시즌 두 번째 무사사구 완봉승을 기록했다.[86] 전반기에만 7승을 거두었지만, 후반기에는 컨디션 불량으로 이탈하며[87] 23경기 8승 9패, 방어율 4.72 (개인 최악)로 마감했다.[88] 시즌 종료 후 12월 7일, 3년 계약 2년차로 현상 유지를 위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으로 계약했다.
'''''' 3월 31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개막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5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1회 무라카미 무네타카에게 2점 홈런을 맞고 5이닝 2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89] 4월 7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7이닝 2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거두며,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개인 10연승을 기록했다.[90] 4월 14일 야쿠르트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2승을 거두었지만, 다음 날 15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91] 6월 13일까지 등판 6경기에서 승리가 없었지만, 6월 24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7이닝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3승을 거두며,[92]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연승을 11로 늘렸다.[93] 8월 6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오카모토 카즈마, 나가노 히사요시에게 총 3홈런을 맞는 등 5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어,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무패 연승 기록이 11에서 멈췄다.[94] 9월 13일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구단에서 2013년 오타케 칸 이후 시즌 10패를 기록했다.[95] 23경기 6승 11패, 방어율 3.61로 마감했다.[96] CS 파이널 스테이지 한신과의 제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1실점(자책점 0)을 기록했지만, 팀은 1-2로 패했다.[97] 10월 27일 군마현 내 병원에서 오른쪽 팔꿈치 활액막 절제 수술을 받았다. 시즌 종료 후 11월 30일, 3년 계약 3년차로 현상 유지를 위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으로 계약했다.[98]
'''''' 6월 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사상 90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99] 구단으로서는 2012년 4월 6일 마에다 겐타 이후 12년 만이며,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노히트 노런 달성은 처음이었다. 올해 교류전 3경기 23이닝 자책점 0으로, 구단 사상 첫 교류전 방어율 0.00을 달성했다.[100] 6월에는 4경기 29⅓이닝 2승 무패, 방어율 0.00으로 세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3. 1.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3년 가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세 팀의 1순위 지명을 받았다. 히로시마가 추첨에서 승리하여 교섭권을 얻었다.[10] 11월 16일, 히로시마와 계약금 1억 엔, 계약 보너스 5천만 엔, 연봉 1500만 엔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등번호는 14번을 부여받았다.'''''' 2월 22일 코자 신킨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신과의 시범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공식 경기에서는 동기 입단한 쿠리 아렌과 함께 개막부터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4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프로 첫 패배를 기록했지만, 같은 달 16일 한신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7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프로 첫 승을 거두었다.[35] 5회 말 두 번째 타석에서는 같은 대졸 신인 투수인 이와사키 스구루에게서 프로 첫 안타와 첫 타점인 2점 2루타를 기록했다.[36] 5월 1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다시 이와사키와 맞대결을 벌여 9회에 마우로 고메스에게 중월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9회 1실점으로 프로 첫 완투를 기록했다.[37] 5월 16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승리하며 첫 승 이후 5연승을 기록했다.[38] 9월 6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첫 완봉승을 거두었고, 9월 25일 야쿠르트전에서 10승을 달성했다. 최종 성적은 10승 8패, 평균자책점 4.05, 115탈삼진 (26경기) 이었다.[14] 1997년 사와자키 토시카즈 (12승) 이후, 데뷔 첫 해에 10승 이상을 거둔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신인이 되었다.[15] 후쿠야 코지, 마타요시 카츠키 등을 제치고 센트럴 리그 신인왕에 선정되었다.[39] 12월 3일, 전년 대비 2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3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40]
'''''' 2월 16일,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41] 3월 10일 제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42] 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43] 시즌에서는 개막 로테이션에 들어갔지만, 3월 31일 DeNA전에서 1회에 아롬 발디리스에게 만루 홈런을 맞고, 3이닝 7실점(자책점 2)으로 강판되었다.[44] 5월 4일 요미우리전에서 겨우 시즌 첫 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1승 6패를 기록하며 구원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6월 10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세이부 프린스 돔)에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구원 등판했고, 6월 27일 주니치 드래곤즈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프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45] 8월 26일 한신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9회 초 마무리 나카자키 쇼타를 대신하여 등판,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46] 그러나 시즌 최종전인 10월 7일 주니치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8회에 등판했지만 3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 패배로 팀은 3년 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47] 12월 9일, 전년 대비 11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46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48]
'''''' 2월 15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 26명에 선출되었지만,[49] 21일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사퇴했다.[50] 23일,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부분 손상 진단을 받아[51] 전반기를 결장했다. 7월 20일 주니치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선발 등판했지만 3이닝 4실점으로 강판되었고,[52] 다음 날 21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53] 8월 12일에 재등록되어[54] 구원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25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구원 투수로 2경기에 등판[55]했지만, 제3차전(삿포로 돔)에서 오타니 쇼헤이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허용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56] 10월 31일, '사무라이 재팬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강화 경기' 일본 대표로 추가 소집되었다.[57] 12월 14일, 전년 대비 10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4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58]
'''''' 2월 8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지명 투수 명단에 포함되었다.[59] 스프링 캠프 중인 11일에 오른쪽 옆구리 통증으로 이탈했다.[60][61] 3월 12일 교육 리그 한신전(나루하마 구장)에서 3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복귀했고,[62] 이후 오픈전에서도 호투하며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했다.[63] 8월 9일 주니치전(나고야 돔)에서 패전 투수가 되기 전까지 개막 이후 7연승을 기록했다.[64] 신인 시절 이후 3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고 규정 이닝을 채우며[65] 팀의 37년 만의 리그 2연패에 기여했다. 12월 19일, 전년 대비 18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63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66]
''''''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6연승을 기록했다.[67] 5월에는 4경기 4승 무패, 방어율 2.03으로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15승 7패, 승률 .682로 최다승과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했다. 12월 14일, 전년 대비 82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4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68]
'''''' 3월 29일 개막전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개인 첫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8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전년까지 동료였던 마루 요시히로를 4타석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69] 4월 25일 주니치 드래곤즈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시즌 첫 완투·첫 완봉을 기록했다.[70] 올스타전에는 팬 투표 1위로 선정되었다.[71] 11승(9패)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지만, 8월 29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10실점을 기록하는 등 아쉬운 시즌이었다. 12월 11일, 전년 대비 3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7500만 엔으로 재계약하며 히로시마 일본인 투수 최고 연봉을 기록했다.[72]
''''''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막이 3개월 늦춰진 가운데,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6월 19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전에서 9회 초 구니요시 유키에게서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 공식전 첫 2점 홈런을 날렸고,[73] 9이닝 1실점으로 완투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개막전 투수 홈런은 2008년 가와카미 겐신 이후 12년 만이며, 같은 날 요미우리 대 한신전 3회 초에서 홈런을 친 니시 유키에 이어 일본 프로 야구 사상 13번째[74], 개막전 투수 2홈런은 사상 처음이다.[75] 7월 25일 컨디션 부족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76] 8월 8일 1군에 복귀했지만, 9월 6일 다시 컨디션 불량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77]되었고, 같은 달 16일에 오른쪽 팔꿈치 클리닝 수술을 받았다.[78] 11경기 등판, 5승 4패, 방어율 4.41로 시즌을 마쳤다. 12월 8일, 전년 대비 250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1억 50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79]
'''''' 투수 주장을 맡았다. 개막전에서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시즌 중 이탈하거나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며 10승 5패, 방어율 3.07로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며 2년 만에 5번째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시즌 중 국내 FA권을 취득했지만, 11월 18일 3년 계약으로 히로시마에 잔류했다.[80] 잔류 이유 중 하나로 "드래프트에 지명되어, 그 당시에 카프에서 '필요하다'고 지명해주셨고, 그리고 경합에서 추첨이라는 형태가 되었지만, 거기서 메구미 씨(타무라 스카우트)가 교섭권 확정 추첨을 해주고, 거기서부터 많은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고, 그 많은 인연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기에, 그런 인연에 등을 돌릴 수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81] 12월 14일, 3000만 엔 증가한 연봉 1억 8000만 엔 + 성과급 3년 계약에 재계약금 1억 2000만 엔을 더하여 총액 8억 10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금액은 추정).[82]
'''''' 3~4월에는 3월 25일 DeNA와의 개막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4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6⅔이닝 3실점(자책점 2)으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고,[83] 4월 29일 주니치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는 2안타 무사사구 1-0 완봉승을 거두는 등[84] 6경기 2완투(1완봉) 포함 4승 1패, 월간 방어율 2.25로 개인 두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85] 6월 24일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시즌 두 번째 무사사구 완봉승을 기록했다.[86] 전반기에만 7승을 거두었지만, 후반기에는 컨디션 불량으로 이탈하며[87] 23경기 8승 9패, 방어율 4.72 (개인 최악)로 마감했다.[88] 시즌 종료 후 12월 7일, 3년 계약 2년차로 현상 유지를 위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으로 계약했다.
'''''' 3월 31일 야쿠르트와의 개막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5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1회 무라카미 무네타카에게 2점 홈런을 맞고 5이닝 2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89] 4월 7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7이닝 2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거두며,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개인 10연승을 기록했다.[90] 4월 14일 야쿠르트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2승을 거두었지만, 다음 날 15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91] 6월 13일까지 등판 6경기에서 승리가 없었지만, 6월 24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7이닝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3승을 거두며,[92]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연승을 11로 늘렸다.[93] 8월 6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오카모토 카즈마, 나가노 히사요시에게 총 3홈런을 맞는 등 5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어,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무패 연승 기록이 11에서 멈췄다.[94] 9월 13일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구단에서 2013년 오타케 칸 이후 시즌 10패를 기록했다.[95] 23경기 6승 11패, 방어율 3.61로 마감했다.[96] CS 파이널 스테이지 한신과의 제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1실점(자책점 0)을 기록했지만, 팀은 1-2로 패했다.[97] 10월 27일 군마현 내 병원에서 오른쪽 팔꿈치 활액막 절제 수술을 받았다. 시즌 종료 후 11월 30일, 3년 계약 3년차로 현상 유지를 위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으로 계약했다.[98]
'''''' 6월 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사상 90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99] 구단으로서는 2012년 4월 6일 마에다 겐타 이후 12년 만이며,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노히트 노런 달성은 처음이었다. 올해 교류전 3경기 23이닝 자책점 0으로, 구단 사상 첫 교류전 방어율 0.00을 달성했다.[100] 6월에는 4경기 29⅓이닝 2승 무패, 방어율 0.00으로 세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3. 1. 1. 2014년
이듬해인 2월 22일에 오키나와시 야구장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시범 경기에 선발 투수로서 첫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정규 시즌에서는 같이 입단한 구리 아렌과 함께 개막부터 선발진의 일각을 구성했는데 복수의 신인 투수가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간 것은 히로시마 구단 역사상 최초이다. 두 경기째의 등판이 된 4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프로 데뷔 첫 패전 투수가 됐지만 같은 달 16일 한신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7이닝 동안 5피안타 1실점의 호투로 데뷔 첫 승리를 거뒀다.[145] 이 경기에서 5회말의 두 번째 타석에서는 자신과 같은 대졸 신인 투수인 이와자키 스구루로부터 프로 첫 안타·첫 타점이 되는 2점 2루타를 날렸다.[146] 5월 1일 한신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또다시 이와자키와 투수전을 펼친 끝에 9회에 마우로 고메스에게서 중월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9이닝 1실점을 호투하여 프로 첫 완투승을 거뒀다. 게다가 같은 달 16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승리 투수가 됨에 따라 5연승을 기록했다.[147]
그 후 이길 수 없는 시기가 있었지만 9월 6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첫 완봉 승리를 따냈고 9월 25일 야쿠르트전에서는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정규 시즌에서 26경기에 등판하여 10승 8패, 4.05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공로로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4월 2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첫 공식 승리를 거두었으며, 앨런 쿠리와 함께 카프는 196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호리모토 리츠오와 아오키 히로아키) 이후 같은 시즌에 데뷔 첫 선발 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한 두 명의 신인 투수를 배출한 첫 센트럴 리그 팀이 되었다.[11] 5월 1일, 그는 고시엔 구장에서 한신 타이거스를 상대로 첫 완투 경기를 펼쳐 8안타 2볼넷을 허용하고 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같은 신인 이와사키 스구루를 꺾었다. 5월 16일에는 개인 연승 기록을 5경기로 늘려 1985년 나가도미 히로시가 6연승을 기록한 이후 히로시마 신인으로서는 6번째로 5연승 이상을 기록했다.[12] 그는 또한 5월 말 전에 5승 이상을 거둔 구단 역사상 네 번째 투수가 되었으며, 이 네 명 중 유일하게 선발로 5승을 모두 거둔 투수가 되었다.[13]
그는 시즌을 10승 8패, 평균자책점 4.05, 115탈삼진으로 마쳤고, 26경기에 출전했다.[14] 그는 1997년 사와자키 토시카즈가 12승을 거둔 이후, 데뷔 첫 해에 10승 이상을 거둔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신인이 되었다.[15]
포스트시즌 동안, 그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1단계에서 타이거스를 상대로 2차전에 7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한신이 1차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최종 단계에 진출했으며, 무승부는 시즌 기록이 더 좋은 팀에게 돌아갔다. 이것은 0-0 무승부로 끝난 두 번째 클라이맥스 시리즈 경기였다.[16]
11월, 그는 센트럴 리그 신인왕으로 선정되었다.[14]
3. 1. 2. 2015년
2월 16일,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41] 3월 10일 제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42] 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43] 시즌에서는 개막 로테이션에 들어갔지만, 첫 등판이었던 3월 31일 DeNA전에서 1회에 아롬 발디리스에게 만루 홈런을 맞고, 2회 이후에도 실책이 겹쳐 3이닝 7실점(자책점 2)으로 강판되었다.[44] 불안정한 투구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5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겨우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이후에는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1승 6패가 된 시점에서 구원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6월 10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세이부 돔)에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구원 등판하여, 구원 투수 전환 5번째 등판이었던 6월 27일 주니치 드래건스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프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45] 8월 26일 한신 타이거스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9회 초부터 마무리 나카자키 쇼타를 대신하여 등판,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46] 그러나 후반에는 득점을 허용하는 경우가 눈에 띄었고 시즌 최종전인 10월 7일 주니치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8회에 등판했지만 앤더슨 에르난데스, 후지이 아츠시에게 적시타를 맞았고, 교체된 나카자키도 투수 와카마츠 슌타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는 등 3실점을 기록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 패배로 팀은 3년 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여 경기 후 벤치에서 통곡했다.[47] 12월 9일, 전년 대비 11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46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48]3. 1. 3. 2016년
개막 전인 2월 15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의 일본 대표 26명에 선출되었지만,[49] 21일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사퇴했으며,[50] 23일에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부분 손상으로 진단받아[51] 전반기를 망쳤다. 7월 20일 주니치 드래곤즈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시즌 첫 등판, 첫 선발을 기록했지만 3이닝 4실점으로 강판되었고,[52] 다음 날 21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53] 이후 8월 12일에 재등록되어[54] 이후에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구원 투수로서 호투를 이어가며 팀의 25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구원 투수로서 2경기에 등판[55]했지만, 제3차전(삿포로 돔)에서는 오타니 쇼헤이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허용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56] 시즌 종료 후 10월 31일에 사퇴한 나카자키 쇼타의 대체 선수로 '사무라이 재팬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강화 경기'의 일본 대표로 추가 소집되었다.[57] 12월 14일, 전년 대비 10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4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58]3. 1. 4. 2017년
2월 8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에서 대회 중에 교체가 가능한 지명 투수 범위로 들어갔다.[59] 하지만 춘계 스프링 캠프 중인 같은 달 11일에 오른쪽 옆구리의 위화감을 호소하여 전력에서 이탈했고,[60][61] 3월 12일 교육 리그인 한신전(나루오하마 구장)에서 실전 등판을 위해 복귀하여 3이닝 1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를 보였다.[62] 그 후 시범 경기에서도 호투를 계속하는 등의 좋은 활약으로 개막 로테이션 진입에 성공하여,[63] 8월 9일 주니치전(나고야 돔)에서 패전 투수가 될 때까지 개막 이후부터 7연승을 기록했다.[64] 최종적으로 신인 시절 이후 3년 만의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여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는 등[65] 팀의 37년 만의 리그 2연패 달성에 기여했다. 12월 19일, 전년 대비 18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63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66]3. 1. 5. 2018년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등판 6경기에서 6연승을 기록했다.[67] 특히 5월에는 4경기에 등판하여 4승 무패, 방어율 2.03을 기록하며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1년 동안 안정적인 피칭을 이어가며 15승 7패, 승률 .682로 첫 타이틀인 최다승과 최고 승률을 획득했다. 12월 14일, 전년 대비 82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4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68]3. 1. 6. 2019년
3월 29일 개막전 요미우리 자이언츠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개인 첫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8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전년까지 팀 동료였던 마루 요시히로를 4타석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69] 4월 25일 주니치 드래곤즈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시즌 첫 완투·첫 완봉을 기록했다.[70] 올스타전에는 개인 첫 팬 투표 1위로 선정되었다.[71] 최종적으로 11승(9패)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지만, 8월 29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10실점을 기록하는 등 중요한 순간에 득점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운 시즌이었다. 12월 11일, 전년 대비 3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7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하여 히로시마 일본인 투수 최고 연봉을 기록했다.[72]3. 1. 7. 그 이후
2013년 가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세 팀의 1순위 지명을 받았다. 히로시마가 추첨에서 승리하여 교섭권을 얻었다.[10] 11월 16일, 히로시마와 계약금 1억 엔, 계약 보너스 5천만 엔, 연봉 1500만 엔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등번호는 14번을 부여받았다.'''''' 2월 22일 코자 신킨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신과의 시범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공식 경기에서는 동기 입단한 쿠리 아렌과 함께 개막부터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는 구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4월 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프로 첫 패배를 기록했지만, 같은 달 16일 한신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7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프로 첫 승을 거두었다.[35] 5회 말 두 번째 타석에서는 같은 대졸 신인 투수인 이와사키 스구루에게서 프로 첫 안타와 첫 타점인 2점 2루타를 기록했다.[36] 5월 1일 한신전(고시엔 구장)에서는 다시 이와사키와 맞대결을 벌여 9회에 마우로 고메스에게 중월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9회 1실점으로 프로 첫 완투를 기록했다.[37] 5월 16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승리하며 첫 승 이후 5연승을 기록했다.[38] 9월 6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첫 완봉승을 거두었고, 9월 25일 야쿠르트전에서 10승을 달성했다. 최종 성적은 10승 8패, 평균자책점 4.05, 115탈삼진 (26경기) 이었다.[14] 1997년 사와자키 토시카즈 (12승) 이후, 데뷔 첫 해에 10승 이상을 거둔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신인이 되었다.[15] 후쿠야 코지, 마타요시 카츠키 등을 제치고 신인왕에 선정되었다.[39] 12월 3일, 전년 대비 2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3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40]
'''''' 2월 16일,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41] 3월 10일 제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42] 3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43] 시즌에서는 개막 로테이션에 들어갔지만, 3월 31일 DeNA전에서 1회에 아롬 발디리스에게 만루 홈런을 맞고, 3이닝 7실점(자책점 2)으로 강판되었다.[44] 5월 4일 요미우리전에서 겨우 시즌 첫 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1승 6패를 기록하며 구원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6월 10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세이부 프린스 돔)에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구원 등판했고, 6월 27일 주니치 드래곤즈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프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45] 8월 26일 한신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9회 초 마무리 나카자키 쇼타를 대신하여 등판,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46] 그러나 시즌 최종전인 10월 7일 주니치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8회에 등판했지만 3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경기 패배로 팀은 3년 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47] 12월 9일, 전년 대비 11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46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48]
'''''' 2월 15일 '사무라이 재팬 강화 경기 일본 vs 중화 타이베이' 일본 대표 26명에 선출되었지만,[49] 21일에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사퇴했다.[50] 23일,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부분 손상 진단을 받아[51] 전반기를 결장했다. 7월 20일 주니치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시즌 첫 등판 및 선발 등판했지만 3이닝 4실점으로 강판되었고,[52] 다음 날 21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53] 8월 12일에 재등록되어[54] 구원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25년 만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구원 투수로 2경기에 등판[55]했지만, 제3차전(삿포로 돔)에서 오타니 쇼헤이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허용하여 패전 투수가 되었다.[56] 10월 31일, '사무라이 재팬 야구 네덜란드 대표 야구 멕시코 대표 강화 경기' 일본 대표로 추가 소집되었다.[57] 12월 14일, 전년 대비 10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4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58]
'''''' 2월 8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 지명 투수 명단에 포함되었다.[59] 스프링 캠프 중인 11일에 오른쪽 옆구리 통증으로 이탈했다.[60][61] 3월 12일 교육 리그 한신전(나루하마 구장)에서 3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복귀했고,[62] 이후 오픈전에서도 호투하며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했다.[63] 8월 9일 주니치전(나고야 돔)에서 패전 투수가 되기 전까지 개막 이후 7연승을 기록했다.[64] 신인 시절 이후 3년 만에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고 규정 이닝을 채우며[65] 팀의 37년 만의 리그 2연패에 기여했다. 12월 19일, 전년 대비 18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63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66]
'''''' 4월 말부터 6월 초까지 6연승을 기록했다.[67] 5월에는 4경기 4승 무패, 방어율 2.03으로 첫 월간 MVP를 수상했다. 15승 7패, 승률 .682로 최다승과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했다. 12월 14일, 전년 대비 82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45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68]
'''''' 3월 29일 개막전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개인 첫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8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전년까지 동료였던 마루 요시히로를 4타석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69] 4월 25일 주니치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시즌 첫 완투·첫 완봉을 기록했다.[70] 올스타전에는 팬 투표 1위로 선정되었다.[71] 11승(9패)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지만, 8월 29일 요미우리전(도쿄 돔)에서 10실점을 기록하는 등 아쉬운 시즌이었다. 12월 11일, 전년 대비 3000만 엔 증가한 추정 연봉 1억 7500만 엔으로 재계약하며 히로시마 일본인 투수 최고 연봉을 기록했다.[72]
''''''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막이 3개월 늦춰진 가운데,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6월 19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전에서 9회 초 구니요시 유키에게서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 공식전 첫 2점 홈런을 날렸고,[73] 9이닝 1실점으로 완투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개막전 투수 홈런은 2008년 가와카미 겐신 이후 12년 만이며, 같은 날 요미우리 대 한신전 3회 초에서 홈런을 친 니시 유키에 이어 일본 프로 야구 사상 13번째[74], 개막전 투수 2홈런은 사상 처음이다.[75] 7월 25일 컨디션 부족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76] 8월 8일 1군에 복귀했지만, 9월 6일 다시 컨디션 불량으로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77]되었고, 같은 달 16일에 오른쪽 팔꿈치 클리닝 수술을 받았다.[78] 11경기 등판, 5승 4패, 방어율 4.41로 시즌을 마쳤다. 12월 8일, 전년 대비 2500만 엔 감소한 추정 연봉 1억 50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79]
'''''' 투수 주장을 맡았다. 개막전에서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시즌 중 이탈하거나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우며 10승 5패, 방어율 3.07로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며 2년 만에 5번째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다. 시즌 중 국내 FA권을 취득했지만, 11월 18일 3년 계약으로 히로시마에 잔류했다.[80] 잔류 이유 중 하나로 "드래프트에 지명되어, 그 당시에 카프에서 '필요하다'고 지명해주셨고, 그리고 경합에서 추첨이라는 형태가 되었지만, 거기서 메구미 씨(타무라 스카우트)가 교섭권 확정 추첨을 해주고, 거기서부터 많은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고, 그 많은 인연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기에, 그런 인연에 등을 돌릴 수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라고 말했다.[81] 12월 14일, 3000만 엔 증가한 연봉 1억 8000만 엔 + 성과급 3년 계약에 재계약금 1억 2000만 엔을 더하여 총액 8억 1000만 엔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금액은 추정).[82]
'''''' 3~4월에는 3월 25일 DeNA와의 개막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4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6⅔이닝 3실점(자책점 2)으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고,[83] 4월 29일 주니치전(반테린 돔 나고야)에서는 2안타 무사사구 1-0 완봉승을 거두는 등[84] 6경기 2완투(1완봉) 포함 4승 1패, 월간 방어율 2.25로 개인 두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85] 6월 24일 DeNA전(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시즌 두 번째 무사사구 완봉승을 기록했다.[86] 전반기에만 7승을 거두었지만, 후반기에는 컨디션 불량으로 이탈하며[87] 23경기 8승 9패, 방어율 4.72 (개인 최악)로 마감했다.[88] 시즌 종료 후 12월 7일, 3년 계약 2년차로 현상 유지를 위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으로 계약했다.
'''''' 3월 31일 야쿠르트와의 개막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5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1회 무라카미 무네타카에게 2점 홈런을 맞고 5이닝 2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89] 4월 7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7이닝 2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거두며,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개인 10연승을 기록했다.[90] 4월 14일 야쿠르트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2승을 거두었지만, 다음 날 15일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91] 6월 13일까지 등판 6경기에서 승리가 없었지만, 6월 24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7이닝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3승을 거두며,[92]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연승을 11로 늘렸다.[93] 8월 6일 요미우리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는 오카모토 카즈마, 나가노 히사요시에게 총 3홈런을 맞는 등 5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어,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요미우리전 무패 연승 기록이 11에서 멈췄다.[94] 9월 13일 야쿠르트전(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구단에서 2013년 오타케 칸 이후 시즌 10패를 기록했다.[95] 23경기 6승 11패, 방어율 3.61로 마감했다.[96] CS 파이널 스테이지 한신과의 제2차전(한신 고시엔 구장)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1실점(자책점 0)을 기록했지만, 팀은 1-2로 패했다.[97] 10월 27일 군마현 내 병원에서 오른쪽 팔꿈치 활액막 절제 수술을 받았다. 시즌 종료 후 11월 30일, 3년 계약 3년차로 현상 유지를 위한 추정 연봉 1억 8000만 엔 플러스 성과급으로 계약했다.[98]
'''''' 6월 7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사상 90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99] 구단으로서는 2012년 4월 6일 마에다 겐타 이후 12년 만이며, 마쓰다 스타디움에서의 노히트 노런 달성은 처음이었다. 올해 교류전 3경기 23이닝 자책점 0으로, 구단 사상 첫 교류전 방어율 0.00을 달성했다.[100] 6월에는 4경기 29⅓이닝 2승 무패, 방어율 0.00으로 세 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스리쿼터에서 최고 속도 154km/h의 직구를 던지는 속구파이다.[173] 변화구는 컷 패스트볼이나 슬라이더를 축으로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도 한데 섞은 투구가 특징이다.[174]
2018년 시즌에서는 왼손을 높게 올리면서 사용하는 투구폼으로 변경해 구위, 제구력이 늘어났고 주도권을 잡으면서 투구를 펼칠 수 있게 됐다.[168]
5. 에피소드
- 2013년 히로시마가 처음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여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인 한신 - 히로시마 전이 열린 10월 13일, 오세라는 드래프트 전 휴가를 이용해 야구부 동료와 함께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대형 전광판을 통한 관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사전에 배부된 정리권을 갖고 있지 않아 입장할 수 없어 마쓰다 스타디움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낯선 남성에게서 ‘남았으니까 줄게’라며 정리권을 건네받아 입장, 구장 내 뜨거운 함성과 열렬한 응원에 감동을 받았고, 동행했던 야구부 매니저에게서 히로시마에 입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그러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174][134][175]
- 드래프트 당일, 스카우트 담당이던 다무라 게이와 함께 빨간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규슈 공립대학 감독인 나카자토 기요시의 ‘내기는 빨간색으로 임한다’라는 말에서 그렇게 했다고 하며, 기이하게도 그 ‘빨간색’을 팀 컬러로 하는 히로시마로부터 1순위로 지명받았다.[134]
- 2013년 12월 2일부터 약 2주 동안 대학에서 교직 과정 단위를 취득하기 위해 모교인 나가사키 니혼 대학 고등학교에서 야구부 감독이기도 한 교사의 지도 하에 고등학교 보건 체육 교원 면허 취득에 관한 교육 실습을 했다.[176][177] 12월 16일에는 같은 계열의 중학교 학생을 포함한 재학생 1,054명이 모인 강연회에서 프로에 입단한 꿈을 실현시킨 자신의 체험담과 에피소드를 소개했다.[178][179]
- 드래프트 회의를 앞두고 “가족들의 지원이 투지를 불태우게 했다”라고 말했는데, ‘자신은 야구로 가족을 지지한다’라는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있다.[180]
- 위기에 강한 집중력은 자위관인 아버지의 교육에 따른 결과이다. 오세라는 아버지에 대해 “예의 바르지 않으면 엄청 화를 냈었다”라고 말했고 가끔은 주먹을 휘두를 정도의 체벌을 가하기도 했으며 식사 때 조차도 긴장을 놓으면 안 됐다. 그런 스파르타 교육에 의해서 예의 바른 행동과 동시에 어떤 일에 대해서도 집중력이 길러졌다. 이에 대해 오세라는 “당시엔 무서웠지만 그런 아버지로부터의 엄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의 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말을 했다.[181]
- 팀 선배인 마에다 겐타는 드래프트에서 오세라의 히로시마 입단이 확정됐을 때부터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고 로커룸이나 신칸센으로 이동할 때 자리나 좌석도 근처에서 “에이스로 가는 길의 전수”를 진행시켰다. 또한 이동 중에 실황 파워풀 프로 야구를 플레이하는 경우가 있지만 마에다가 너무 강해서 오세라는 매번 진다.
- 이마무라 다케루, 요미우리에서 트레이드로 이적한 이치오카 류지와 함께 팬으로부터 얼굴이 카피바라를 닮았다는 이유로 ‘카피바라 형제’라고 불리고 있다. 히로시마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마무라와 함께 사람들로부터 카피바라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둘이서 함께 노력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트위터에서는 팀 선배이면서도 이치오카 류지를 ‘카피오카 씨’라고 부르는 일도 있다. 히로시마 구단 공식 상품에서도 이마무라, 이치오카와 함께 일명 ‘카피바라 3형제’로서 T셔츠나 손수건 등의 상품도 판매되고 있다.
- 가끔씩 하는 소극적인 기쁨의 세리모니는 가수 이츠키 히로시가 노래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며, 야구 잡지에 게재된 독자 투고란에서도 언급된 바있다.[182]
- 2019년 1월 16일, 탤런트 아사다 마유와 약 2년 간 교제를 거쳐 결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183] 1월 29일에 혼인 신고를 했다.[185]
- 2022년 5월 13일, 첫째 아이인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115]
6. 상세 정보
이닝
자책점